이제 가을인가 했는데...... 무상한 세월은 벌써 만추가 지나고 겨울로 드는 입동이다. 낙엽이 우수수~ 속절없이 바람에 날리고 폐사지의 쓸쓸함이 더욱 가슴을 애잔하게 한다. 하얀 화강암의 석탑이 오후 저물어 가는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니 천 수 백 년 세월 모진 풍상 속에서도 당당하게 서 있는 탑, 그 앞에 서있는 나 자신의 존재가 더욱 외소해 보이고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폐사지를 거닐며 나의 상념은 먼 시간 속 여행을 시작한다. 간월사지는 가을 억새평원으로 유명한 신불산, 간월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 그래서 수많은 등산객들로 늘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등산객들 중 간월사지를 찾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래서 폐사지를 지키는 암자 간월사는 늘 가난한지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간월사지가 좋다. 등산 후 들르기도 하고, 가끔씩 기분이 울적할 때 들르기도 한다. 여기 와서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하고, 삶이 무상함을 가슴 깊이 느끼기도 하고, 세상이 덧없음을 마음속에 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쓸쓸한 폐사지를 자주 찾는다. 나는 지금 간월사지나 그 석탑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냥 간월사지에서 느낀 감정을 여기에 잠간 옮겨 보고자 함이다. 간월사지에 오면 늘 가슴이 아프다. 폐사지의 허망함과 쓸쓸함 때문이 아니다. 바로 탑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모텔 건물 때문이다. 이곳에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모텔들이 들어서게 되었는지 모른다. 폐사지 주변 사방이 모텔들이 밀집되어 있다. 사람들이 많은 도심지와는 너무 동 떨어진 후미진 곳인데도 말이다. 불국정토(佛國淨土),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불탑(佛塔) 주변에 별로 달갑지 않는 뉘앙스를 품고 있는 소위 러브호텔이라는 위락 시설들이 밀집 되어 있으니 불탑과 대조되어 묘한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거대한(?)한 모텔 건물이 탑을 위압적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그래도 탑은 말이 없다. 그저 자비로움으로 바라 볼 뿐이다. 어리석고 불쌍한 속세의 인간들이 어찌 불탑의 깊음을 알겠는가. 쓸쓸한 절터에도 가을은 저물어 가고 있다. 그나마 조금 위로가 되는 것은 절터가 예전보다는 다르게 잔디도 깔리고 부지도 잘 정리되어 말끔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 간월사지삼층석탑 간월사지 삼층석탑은 석탑의 배치가 남, 북으로 된 울산의 유일한 쌍 탑이다. 탑도 그냥 단순한 삼층탑이 아니라 초층 탑신에 고부조(高浮彫)의 인왕상이 우수한 조각솜씨로 새겨진 보기 드문 탑이다. 탑신 중앙 면에 귀면문양의 문고리(문비)가 새겨져 있고 그 양편으로 금강역사 두 분이 그야말로 역동적인 모습으로 4면에 각각 새겨져 두 눈을 부릅뜨고 불문(佛門)을 지키고 있다. 탑 윗 층에는 사리공(舍利孔)이 뚫려 있다고 한다. 탑은 전형적인 신라 탑으로 7세기 경에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복원 당시 결손된 부재가 많아 기단부, 탑신 등 부분 부분 새 부재를 사용하였다하여 보물로 지정 되지 못했다하나 내가 보기엔 조각상 하나만 보더라도 보물급 문화재가 되고도 남을 듯 하다. 경주의 장항리 절터 오층석탑(국보236호)과 원원사지 삼층석탑(보물1429호) 등에 새겨진 인왕상과 너무 빼여 닮은 것도 그렇고 울산의 유일한 남,북 쌍탑 가람인 점을 감안한다면 보물급 문화재로 지정해도 모자람이 없을 듯 한데..... 서운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이는 문화재청 쪽 보다는 보물급 문화재로 지정해 달라는 울산시의 열정이 모자란 것이 아닌지 생각 들어 더욱 아쉽다. 탑은 오래전에 무너져 있던 것을 다시 일으켜 복원해 놓으면서 결실된 부재를 새것으로 끼워 복원한 흔적이 뚜렷하지만 전체적으로 체감 율이 우수하고 안정감이 있다. 쌍탑의 위치가 다른 절터의 탑에 비하여 좀 특이 한 점이 있다. 두기의 탑의 방향이 동, 서 배치라는 통념을 깨고 남, 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고, 두 탑의 간격이(34m)너무 넓다는 점이다. 이는 아마도 지금 남아 있는 금당 터의 위치로 봐서 탑의 위치를 불가피하게 남, 북으로 배치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탑에 대한 자세하고 전문적인 지식정보는 아래에 별도로 첨부 해 놓는다. 그런데 조금 문제가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소나무 숲에 가린 동(북)탑이다. 탑 주변에 큰 소나무가 너무 많아 그 영향으로 그늘이 많이 생기고 소나무로부터 습기를 많이 받아 탑신 곳곳에 이끼와 희뿌연 백태현상이 끼어 탑의 손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급히 소나무를 속아내고 석탑에 낀 이끼와 백태를 벗겨 내야 할 듯하다. ■ 절터 앞에 있는 암자 간월사 절터 앞에 간월사라는 가난한(?) 작은 암자가 있다. 암자는 간월사터에 근세에 지은 작은 절간이다. 그런데 암자 건물 편액이 좀 특이하다. ‘간월사지석조여래좌상전’이라 쓰여 있기 때문이다. 바로 보물 제370호인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는 불전이라는 뜻임은 알겠는데 그 흔한 이름의 대웅전도 아니고 불상이름을 그대로 전각 이름으로 사용했으니 주지스님의 깊은 안목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암자는 말 없이 간월사지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컴컴한 법당 안에 모셔진 여래좌상은 그야말로 너무 마멸되어 이목구비가 희미하여 폰카 같은 카메라로는 불상의 윤곽을 잡아 낼 수가 없다. 그래도 국가지정 보물이니 범상하지 않은 불상임에는 틀림없다. (위의 사진은 문화재청에서 옮겨온 것임) 그런데 간월사 불상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내력이 기막히다. 간월산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왜가 불을 질러 폐사되었다가 1634년(인조 12년)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중 석조여래좌상을 일인들이 훔쳐 가다가 다시 도독을 맞아 지금의 울산 병영 호계 논두렁 흙 속에 버려진 것을 1984년 한 농부가 산사태로 밭에 묻혀 있던 불상을 발견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란다. 석불좌상과 더불어 금당터에서는 청동여래입상과 청동보살입상 같은 불상 등 각종 기와, 토기 및 자기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 다음은 석조여래상에 대한 간량한 정보이다.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은 울산에서는 최초로 보물 제 370호로 지정되어있어 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다. 발견 당시 광배는 결손 된 상태로 대좌 역시 완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불상에서 보여지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재현한 듯한 얼굴과 신체적 비례는 8세기 말에서 9세기에 즐겨 사용되었던 모습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로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가 자리잡고 있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며 단저한 입과 긴 눈, 짧은 귀 등의 표현에서 온화하고 인간적인 느낌을 준다. 어깨는 좁아지고 몸은 양감이 없이 펑퍼짐한 모습이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 은 얇으며 U자형 의 옷 주름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몸과 머리의 색이 다르다 이는 머리를 세제 로 깨끗이 씻었기 때문이다. 얼굴과 신체의 풍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기록과 남아 있는 유구가 거의 없는 간월사지의 창건 연대를 확인 시켜 준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크다고 하겠다.(*이상 자료 참조 ‘지역정보포탈) ■ 석남사에 있는 간월사 엄나무 구유 간월사에서 사용하던 구유는 현재 석남사에 전시되어 있다. 구유는 옛 사찰에서 여러 대중스님들의 공양(밥)을 지을 때 쌀을 씻어 담아 두거나 밥을 퍼 담아 두던 일종의 나무 그릇이다. 석남사 구유는 아주 오래전에 간월사지에서 옮겨 온 것이라 한다. 구유는 엄나무(음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엄나무는 껍질, 줄기, 뿌리, 잎 등 모두 사람의 몸에 이로운 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엄나무는 예로부터 잡귀를 쫓는 나무라 하여 대문 옆에 심기도 했다. >미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