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3.26
봄날에 보는 김홍도의 ‘춘일우경(春日牛耕)’ 감상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 병풍 제7폭
▲단원 김홍도의 <춘일우경> 행려풍속도병 1795.100.6x34.8cm, 국립중앙박물관
단원 김홍도의 그림 중에 ‘춘일우경(春日牛耕)’이라는 병풍 그림이 있다. ‘춘일우경’ 글자 그대로 따뜻한 어느 봄 날 농부들이 소와 함께 밭을 일구는 장면이다. 긴 겨울 동면에서 깨어나 농부들이 3월이 되자 기지개를 펴고 본격적인 농사일에 든다. 농사 초보가 80여 평의 텃밭을 일구면서 계절과 정서적으로 딱 맞는 그림인 듯싶어 감상문을 적는다.
겨우내 얼어있던 흙이 녹아 푸석해 졌으나 속은 아직도 얼음이 풀이지 않은 듯 딱딱하다. 농부는 소에 쟁기를 채운다. 두 뿔을 보니 소는 힘센 황소다. 소도 답답한 우리에서 나와 오랜만에 기지개를 편다. 그리고 겨우내 먹을 것을 제공해준 고마운 주인에게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 지른다.
농부는 소의 엉덩이를 몇 번 치며 무거운 쟁기를 소 어깨에 멘다. 이랴~ 하고 주인이 신호를 하자 소가 알았다는 듯 힘차게 앞으로 나간다. 흙이 뒤집어 지고 신선한 공기가 흙 속으로 들어간다.
소가 뒤집어엎은 흙을 다른 농부 두 사람이 쇠스랑과 괭이로 뒤따라오면 잘게 부순다. 밭 주변에는 아기를 엎은 아낙이 이제 막 파릇파릇 새싹이 나오는 나물을 케는 중이다. 밭두렁에는 무슨 나무인지 늙은 나무 한 그루가 이제 푸르스름 물기가 올라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 소는 그 순박하고 느림의 감성으로 인간과 친해졌다. 그로인해 옛 우리네 농가에서는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소는 농경에 빼 놓을 수 없는 존재였고. 인간과 서로 공존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젠 농기계에 밀려 소의 존재는 인간의 식욕을 충족 시키기 위한 가축으로 전략하여 좁은 우리에서 살만 찌워 도살 당하는 가축이 되고 말았으니 소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춘알우경' 정말 정겨운 농촌의 봄날의 풍경이다. 나는 이런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몰락한 양반의 가문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 직접 농사를 짓는 체험을 하지 못했다. 이제 다 늙어 산촌으로 거처를 옮기고 서투른 농부 흉내를 내면서 텃밭을 가꾸니 문득 김홍도의 ‘춘일우경’ 이 생각나서 그림을 인터넷으로 찾아 여기에 옮겨 싣는다.
지금 시대는 영 딴판이다. 소 대신 경운기가 땅을 파고 밭고랑, 밭이랑을 판다. 괭이나 쇠스랑으로 흙을 고루지 않아도 농기구가 척척 흙을 일궈 준다. 나는 밭을 갈아 줄 경운기도 없고 흙을 골라 줄 농기구도 없다. 그래서 나는 쇠스랑과 괭이 그리고 삽만으로 텃밭을 일군다. 농경(農耕)은 원래 원시적 방법이다. 요즈음은 모든 경작이 과학이 첨가된 기계영농이다. 만약 김홍도가 이 시대의 영농 장면을 보고 그림을 그린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김홍도의 ‘춘일우경(春日牛耕)’은 행려풍속도병풍 7폭에 들어있는 작품이다. 1795년 김홍도의 나이 51세 때 완성한 작품이다. 화폭은 병풍화이기 때문에 세로로 화폭이 길다. 그러나 김홍도는 인물, 나무, 소를 화폭에 여백을 두고 적절한 위치에 배치함으로서 전체 공간을 아주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오늘은 간간히 봄비가 내리고 있다. 간밤에 내린 비가 낮이 되자 안개비로 변했고, 앞 산 중턱에는 뿌연 안개구름이 걸려있다.
어제 오후에 미리 일궈 놓은 밭에 씨감자를 심었다. 매년 마다 심는 것이지만 6,7월경에 수확 하려 감자를 캐 보면 흙 속의 굼벵이란 놈들이 파먹어 상처투성이 감자를 수확하곤 한다. 농약을 안 쓴 탓이다. 요즘 농약은 발전하여 인체에 무해하다는데 아무래도 농약을 써야 할 듯하다.
요즘 텃밭 일에 늙은 몸을 너무 무리한 탓인지 난데없이 코피가 터지는 등 몸이 너무 무겁다. 오늘은 충분히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책을 보고 음악을 듣는다. 정말 오랜만에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듣고 있다. 왜, 이 시대에는 베토벤 같은 악성(樂聖)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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