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索의 窓門/여행~

12일간의 감동적인 인도 여행기-미즈넷

migiroo 2010. 2. 20. 12:06

12일간의 감동적인 인도 여행기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생각이든 몸이든 움직여야 한다. 외투 하나도 무거워 걷기 힘들던 때 현실의 무거움을 얼마나 떨쳐버리고 싶었던지. 어디로든지 떠나서 투명해지도록 맑아진 나를 만나고 싶었다. 생의 본질을 찾으며 삶을 조금 더 나은 걸로 바꾸고 싶었다. 고인 물처럼 뭔가 조금씩 내가 썩어가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몹시 힘들고 외로웠다. 증세가 더 깊어지기 전에 그런 나에게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스스로 묻고 답을 얻기 위해 집이란 공간을 떠나 확 트인 곳으로 가고 싶었다. 이미 다 알려진 곳, 첨단 문명이 자리한 곳이 아니라, 원시의 자연과 오래된 역사를 간직한 곳이 몹시 그리웠다.

때마침 한 출판사의 일 제의가 있어 나는 선뜻 응하였다. 인도의 위대한 시인 ‘까비르’의 시 공역과 시집에 넣을 사진을 찍으러 인도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까비르가 태어난 인도에 가서 그의 발자취를 따라, 보고 느끼고 그의 영혼의 향기를 안고 오는 일이었다. 내면의 어떤 따끈따끈하고 배부른 풍요함도 더불어 올 것만 같았다. 태어나 처음 떠나는 맞춤 여행. 절친한 방송 작가 후배 최선영과 인도 여행 기획자와 11일간의 일정을 함께하게 되었다.

8시간 비행 끝에 도착한 델리에서-쟌시-오르차 아그라-카주라호-바라나시- 리시케시-델리-인천. 인도 문화탐방 11일의 계획표에 따라 움직였다.

이제 눈을 뜨고 보면 된다. 귀를 열어 듣고, 흘러가는 바람과 구름을 보듯 느끼면 된다. 다만 가방과 발길은 가볍게. 가슴 한구석 낯설고, 예스럽고, 영적 기운으로 가득 찬 신비로움을 기대하며 나의 발길은 길게 이어져갔다.



쟌시에서 아자르 뽀르 마을로, 오르차 성으로

델리에 도착한 후 여독을 풀기 위해 잠시 잠을 청한 뒤 기차를 탔다. ‘쟌시역’에 내려 ‘숨은 마을’이란 뜻을 지닌 ‘오르차’로 향했다. 소들이 먹지 못하게 어린 나무들을 벽돌로 예쁘게 둘러쌓아놓은 모습의 가로수들이 인상 깊었다. 소박하면서 아름다운 마을 주민과 아이들의 미소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참으로 그리웠던 호젓함과 사람들의 순박함이 아니던가. 나무 그늘 밑에 모여 앉아 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듯 참으로 느긋했고, 평화롭게 보였다. 그 훈훈한 마을 이름은 ‘아자르 뽀르’였다.

그 마을에서 5분 거리에는 영겁의 세월도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은 성이 눈앞에 펼쳐졌다. 성 앞의 작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내 얼굴에 바른 화장품 냄새를 맡고 날벌레가 달려들었다. “내가 원하는 건 날벌레가 아냐. 남자란 말야.” 가이드도 후배도 웃음을 터뜨렸지만 나는 날벌레를 쫓느라 약간 멍해진 상태로 성에 올랐다.

성이 가까이 다가오자 정신이 났다. 천천히 해질녘 노을빛을 받아 신성한 기운을 띠는 고대 성. 그 성이 지닌 놀랍운 신비스러움을 뭐라 표현해야 하나. 유리창이 없던 시대에 돌을 깎아 만든 창은 잊을 수 없는 이미지로 지금도 내 가슴을 흔들어댄다. 창 너머 또 다른 성곽의 남은 흔적과 나무가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어렴풋하게 피어오르는 저녁 연기와 노을빛에 성은 두둥실 떠오르는 듯하였다.

오르차에서 빠져나와 타지마할성이 있는 아그라로 향했다. 세상의 별들은 마치 인도의 하늘에 다 모인 듯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맑고 투명한 수많은 별에 감탄하고, 처음 본 그 맑고 긴 은하수에 감동하며 동화 속의 그림을 보는 듯 달콤한 꿈에 젖어들었다. 1000년쯤 되어 보이는 굵기의 나무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깊고 아름다웠다. 나무 이름은 ‘님트리’.

머리를 맑게 해주는 생약으로도 쓰이는 두루 유익한 나무다. 동행한 후배는 내 이름의 끝 자가 수풀 림이니까 인도 이름을 ‘님트리’로 정하라고 한다. 속으로 가만히 불러봤다. ‘님트리…’ 나쁘지 않다.

마을 곳곳의 가로수들은 엄청난 세월을 간직한 굵기다. 그 나무들이 바람에 한 번 흔들릴 때마다 내 가슴속 설움이나 괴로움이 뿜어져 나왔다. 모든 지저분하고 어지러운 낮의 풍경을 덮어주는 밤은 언제나 신비롭다.

우리가 찾은 카주라호는 현재 20개 이상의 힌두교 및 자이나교 사원이 있는 순례지로 유명한 관광지. 사원 벽면에는 중세 인도 부조를 대표하는 수많은 상, 병사, 여인상, 섹스의 극치를 보여주는 많은 에로틱한 이미지가 새겨져 있다. 모든 시스템이 남녀 합일의 구조였다. 독과 희열을 다 지닌 섹스. 간디가 때려 부수고 싶다 할 만큼 ‘음란한 부조상’이지만, 너무나 생생하고 아름다워 인도인의 심미안과 위대한 생명력으로 다가왔다.

인도인들의 여자에 대한 기본 생각은 에너지나 힘이다. 여성의 성적 에너지가 ‘다산’과 연결된다. 남자가 여자를 안고 있지만, 실은 안고 있는 여자가 목적이 아니라 자기 속에 잠자고 있는 여성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다. 합일이라는 말 속에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다. 둘로 나뉘었지만 다시 돌아가 하나가 되자는 것.



카마수트라, 관능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미지들

바라나시에 도착하자마자 혼이 나간 듯 멍했다. 현실의 시간은 순탄하고 평화롭게 흘러갔지만 나의 내면은 무척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다. 이 낯선 곳에서 힘들지 않으려고, 괴롭지 않으려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다시 살며시 눈을 뜬 채로 내 앞에 펼쳐진 장면을 바라봤다.

길마다 소똥, 염소똥, 개똥 때로는 사람똥, 여기저기 울리는 시끄러운 클랙슨 소리와 더러운 악취로 가득 차 있었다. 인도인들이 신의 은총을 받고 싶거나 죽음을 맞이할 때 바라나시를 찾을 만큼 성스러운 곳이라는데, 나는 견딜 수 없는 존재의 악취를 먼저 맡게 되었다. 현실의 시간이 순탄하게 흘러가도, 나의 내면은 혼란스러웠다.

인도 성지인 바라나시에서 받은 문화 충격은 누구라도 가볍지 않을 것이다. 갠지스강가 주변이 지저분해서 경악했고, 그 더러움에 개의치 않는 인도인들이 경이로웠다. 내 마음은 경악에서 경이감으로 저울추처럼 이동하였다.

똥물도 흘러든 강물을 성수라 하여 물병에 담고 기도를 올리고, 목욕과 수영을 하고, 이를 닦고 낡은 호텔의 침대보를 빨고 있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며 부활을 위한 정화로서 시신을 태우고 재를 뿌린다는 갠지스강. 온갖 세균과 유해물질로 가득하다는 이 강이 힌두교도들에겐 죄를 씻고 병을 고치고 내세로 들어가는 곳이었다.

찬찬히 보니 인도인들은 너무나 열심히 씻고 닦고 잘 사는데, 왜 나는 이곳을 몸서리칠까. 감추거나 없애야 할 그 무엇으로 여기던 배설물이나 악취 등은 너무나 강렬해서 아름다운 풍경을 압도하였다. 인도 대륙에 있는 강들 중엔 일곱 개의 강이 신성시되었는데 특히 갠지스강, 즉, ‘강가’는 번영과 구원을 부여하는 어머니로 불리며 신과 동일시되어왔고, 인도인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왔다. 인도인들에게 강이 신화화되고 인격화되어 그 중요성이 부각되는 점은 참 흥미롭다.

배를 타고 강 복판을 향해 나아가니 강가의 광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이른 아침부터 행해지는 의식이 조화롭고 장엄하게 펼쳐졌다. 갠지스강 주변 마을엔 더러운 골목을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내가 아는 더럽고 깨끗함의 경계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한 외국인 커플이 키스하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여기서 저렇게 정욕에 시달려도 되나?” 내 말에 우리는 같이 웃었다. 가슴을 저미는 저들의 키스는 무슨 냄새가 날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렇게 뿌자 아르띠를 거행한 저녁의 강가에는 연인들의 키스 냄새와 꽃향기와 시신을 태울 때 쓰는 향수가 기묘한 향기가 되어 흘러다녔다.



요가의 본산지, 리시케시에서의 마지막 밤

힘들던 바라나시에서 리시케시로 떠나는 기차에 올랐다. 밤 침대차에서 불을 켜면 바퀴벌레가 내 눈앞에서 재빠르게 도망쳤다. 그때마다 나는 견딜 수 없어 바퀴벌레를 죽였고, 한 인도 여성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인도는 살생을 금지한다). 문화 차이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으로 불편하고 몹시 죄책감이 들었다. ‘레드제플린’의 ‘블랙 독’을 따라 부르며 소리를 질러버리고만 싶었다. 미치도록 창의적인 막춤을 추면서 이 후미지고 닫힌 공간에서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싶었다. 물도 휴지도 다 떨어져 흰 티셔츠를 잘라 사용하고, 잠을 자지 못하는 괴로움 속에서 허우적대었다. 기차는 무려 19시간이나 걸려 ‘리시케시’에 도착하였다.

리시케시는 요가의 본고장이다. 바라나시와는 달리 이곳 갠지스강 상류는 더없이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였다. 우리가 묵은 여행 기획자의 집은 일반 아파트였는데, 바닥이 다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고, 베란다 문을 열면 바다같이 느껴질 만큼 넓은 갠지스강이 길게 누워 있었다.

이튿날, 비틀스의 존 레논이 거닐고 묵었다는 사원을 찾아 나섰다. 찾긴 찾았는데, 사람이 묵지 않는 폐가 느낌이 강했다. 넓은 이곳을 헤매며 도대체 존 레논이 어디에 묵었을까, 혹시 우체통에, 하며 우체통을 50초 동안 흔들어보았다. 이후 우리는 5시간 기차를 타고 델리로 향했다.

인도음식의 진미는 우리나라 압구정과 같은 뉴델리 고급 식당에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10만원 넘는 식사가 3인분에 2만원 정도였다. ‘바라나시’에는 ‘바바 게스트 하우스’라는 한국 식당이 있다. 한국 가이드 여성과 결혼한 인도 사업가가 운영하는 곳인데 밥맛이 없고 인도음식이 달갑지 않을 때 이 식당을 찾곤 하였다.

적절히 먹고 많이 움직이다 보니 이 순례는 다이어트 여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인도 여행 내내 절감한 것은 한국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는 편이라는 것. 또한 인도 여행은 소비적이고 환경 파괴적인 여행 방식이 아닌 친환경적인 ‘에코여행’이란 점이다. 그들이 가난한 것도 그 이유겠지만 최소한의 살림살이로 지구 환경에 해를 덜 끼치며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난해도 높은 행복지수를 지닌 나라이다.



인도에서 내가 매혹된 풍경

인도에서 내가 매혹된 풍경은 인도 여성의 90%가 입는다는 전통 의복 싸리와 펀잡이었다. 하늘하늘하고 치렁치렁하고 화려한 여인들의 옷자락이 아슬아슬한 연기처럼 흘러내렸다. 인도에는 카스트제도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여인들의 옷차림에선 계층 차이를 느낄 수가 없었다. 오래되고 낡고 불편하면 다 버리고 새것으로 갈아버리는 첨단 시대 21세기에도 전통 옷을 입고, 원시의 모습이 지켜지는 인도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기차역마다 버려진 쓰레기와 자주 눈에 띄는 커다란 쥐와 벌레들도 인도인들은 하나의 우주 순환으로 바라본다. 돌고 도는 게 인생이며, 극과 극은 서로 통하며 우주와 운명에 순응하겠다는 인도 철학은 현대인들에게 그립고 중요한 화두이기도 한 느림의 철학과도 통한다. 1600종류의 신이 있다는 인도에서 10억이 넘는 인구를 서로 조화롭게 하나로 묶는 힘은 물질이 아니라 영적인 세계에 마음을 두고 살아서란 깨달음을 얻었다.

까비르 취재를 위해 떠난 여행이었지만 일상과 인간관계에서 부딪치는 자잘한 소외감이나 상처를 치유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고단함을 넘어 다시 열렬히 살고자 하는 욕구,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의 자유, 마음의 평온 등을 구하였다. 간절히 구한 만큼 나는 평화로워졌다. 나 자신이 타인과 이어지고, 원시의 자연과 이어져 있음을 느끼기, 또한 하나 되어 숨쉬기, 모든 경계가 없어지고 바람이 난지 내가 구름인지 모르는 그 물아일체의 경지 속에서 인생은 조금 가뿐해졌고 자신감을 찾은 나는 조금 더 젊어졌다. 돌아오는 밤 비행기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갠지스강에 풀어놓듯이 인도 순례기행의 짧은 마무리 글을 내 빈 의자에 놓아두었다.



| 기획 : 하은정 | 글·사진 : 신현림 | 자료제공 : 우먼센스 | www.ibestbab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