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 <2010.4.22>
그 분이 잠들어 있는 봉하마을을 찾아 가다.
●여정의 첫 시간
봄비가 내린다.
가로수 벚꽃들이 길바닥에 하얗게 떨어져 죽어있다.
화려했던 시간은 잠시, 시들어 처연히 낙화된 꽃들...
오늘 따라 왜 이리 서러운가.
혼자라는 것이 서럽고, 늙어다는 것이 서럽다.
이제는 누구도 사랑 할 수 없다는 것이 서럽고,
남은 시간이 내겐 별로 없다는 것이 서럽다.
그리고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 서럽다.
길을 나선다.
어디로 갈 것인가?
문득 그 분이 생각난다.
“바보 노무현”
이제 그분이 돌아가신지 1년이 다 되가는데 그분이 잠들어 있는
봉하 마을의 생가를 한 번도 찾지 못했음이 너무도 야박스럽다.
대통령 때 보다 퇴임 후 농부로 변한 그가 더 좋았었는데...
김해 행 버스를 탄다.
일단 김해까지는 버스로 갔다가 거기서부터 봉하 마을까지는 걸어서 가기로 마음먹는다.
어느새 비는 그쳤으나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다.
노무현. 그는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을까?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나약함인가, 희생인가?
아니면 정치적 공권력인가?
그 원인이 정치적 공격 이었다면 무엇이 두려워 퇴임 후 촌부가 되어
밀짚모자 쓰고 논 갈고 밭 매는 그를 죽게 만들었단 말인가?
이제 그분이 가신지 다음 달이면 꼭 1년이 된다.
작금의 국내 상황은 천안함 침몰이라는 초유의 사건으로 온 나라 안팎이 시끄럽다.
북한의 소행이라고 믿지만 그들이 저지른 만행이라고 단정 지을 만한 증거가
아직은 나오지 않고 있다.
설령 그들의 짓이라는 증거가 나왔다 할지라도 단호히 보복성 군사조치를 취할 수 없는
상황임을 국민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국제적 이해관계와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발목을 잡고 있고,
섣부른 대응으로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이 뻔한 우리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단호히 응징하라.”
“호된 맛을 보여 줘야 한다.”
하고 온 국민이 흥분하고 있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것을 조금만 신중히
생각하면 알 수가 있다. 그래서 MB(이명박 대통령)가, 군이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미묘한 상황을 국민들은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이럴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분 이라면 어떻게 이 미묘한 사건을 풀까?”
바로 이 화두를 풀기 위하여 오늘 그분을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버스가 경유지 양산 터미널에 잠시 멈추다 손님을 태우고 다시 김해로 출발한다.
김해에 도착하여 봉하까지 걸어가려 했는데 가는 길도 모르고 봉하까지는
너무 거리가 멀뿐더러(약 23km) 대부분 복잡한 도심의 도로를 걸어야 하는
부담 때문에 다시 진영까지 버스를 탄다.
●걸어서 진영읍에서 봉하마을까지
정오, 진영 터미널에서 봉하까지 걷기로 하고
길에서 만난 어느 촌노에게 길을 묻는다.
"아저씨 봉하마을 어느 길로 가나요?"
“봉하마을? 여기서 아주 먼데....”
“여기서 봉하 마을까지 가는 마을버스가 있는데 왜 걸어가시려고...?”
그도 나도 늙기는 마찬가지인데 그가 더 늙어 보인다.
“네! 아저씨 걸어서 가려고 합니다. 얼마나 먼가요?”
“음~ 그러니깐 한 시오리는 족히 넘을 껀데....."
노인에게는 십리 길이 아주 멀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십리면 4km, 시오리면 대략 5~6km 쯤 될 것이다.
한 4~50분정도 걸으면 될 듯싶어 슈퍼에서 생수 한 병을 사들고 걷기 시작한다.
오전에 우울하고 허전했던 마음이 한결 좋아졌다.
역시 걷는 다는 것은 기분 좋은 즐거운 고행인것 같다.
진영읍은 김해와는 딴판이다.
도심의 거리는 아주 좁고 집들은 낡고 퇴색하여 옛 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겨우 신시가지에 서 있는 아파트 군들이 그나마 변화를 조금 보여주고 있다.
2km쯤 걸었을까, 크고 작은 공장 밀집 지대가 나타나고 그 곳을 벗어나니
드디어 ‘노무현 대통령 생가’ 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리고 이내 봉하마을의 너른 들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도심이 아무리 휘황찬란해도 역시 자연의 아름다움과는 비교가 안 된다.
비는 완전히 그쳤다.
해는 나지 않았지만 기온은 적당하고 바람도 훈훈하다.
나는 일부러 차도를 버리고 논두렁길을 걸어 봉하마을로 향한다.
오후 1시. 아직 점심을 안 먹은 상태,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인근에 식당은 보이지 않고 자꾸만 배 속에서 밥 달라고 아우성이다.
드디어 봉하마을이 보인다.
작년 5월,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그 봉하마을이 너무도 한가롭고
평화롭게 앉아 있다. 마을은 상상했던 것 보다 너무 작다.
▲봉하마을
눈대중으로 헤아려 봐도 100여체 정도 밖에 안 될 성싶다.
마을 집들도 그저 그런 시골집들뿐이고, 작년에 언론 방송 등에서
그토록 떠들어 됐던 호화 가옥도 보이지 않는다.
어찌 이런 작은 마을에 일국의 대통령 사저가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봉하마을 앞 들판 길을 걷는다.
논을 보니 꽥꽥~거리며 논바닥을 헤집고 다니던 오리들이 생각난다.
바로 그분(노대통령)이 열정적으로 개발한 오리농법의 오리들은
다 어디 가고 지금은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는다.
봉하마을 들판에 서서 앞을 바라보니 봉화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그 후 유명해진 사자바위도 보인다.
그리고 아! 그 바위....,
그분이 한 송이 꽃처럼 낙화하여 죽은 부엉이바위도 보인다.
TV로, 사진으로 얼마나 많이 봐 왔던 바위인가.
●봉하마을에서 그분은 만나다.
마을 안으로 들어선다.
도로변 시멘트 블록 가드레일에 노무현 대통령 할아버지를 만난 아이들의
동화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아이들은 그분을 어떻게 바라 봤을까?
아이들의 그림 속에 그 해답이 담겨 있는 듯하다.
아직도 빗물이 마르지 않은 도로변과 마을 주차장에 서너 대의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주차 되어 있고, 한 무리의 시골 노인들이 생가를 구경하고 있다.
작은 초가집 생가 두체가 보이고 그 뒤로 노무현 대통령의 사저가 나무 뒤편에
은둔자처럼 숨어 있다. 저 집이 대통령 이었던 분의 저택인가. 할 정도의 평범한
가옥인데 어찌 언론사들은 호화판 사저라고 떠들어 됐는지 모를 일이다.
생가를 둘러 본 후 사저 쪽으로 가니 경찰 두 명이 대문을 지키고 있다.
지금 저 안에는 ‘권양숙’ 여사가 계실까?
아들, 며느리가 아직도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고 있을까? 그럴리 없다.
아마도 혼자 계실 것이다. 말동무 할 사람도 없을 것이고....
이제 그분이 돌아가신지 일 년이 다가오는데 권양숙 여사은 지금 어떤 심정으로
사저를 지키고 있을까? 한번 만나 볼 수 없을까?
●노무현 대통령 기념 전시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 아주 작은 전시관의 이름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노대통령의 생전 육성 연설 이 녹음으로 흘러나오고
전시관엔 사진, 신문기사 그리고 퇴임 후 농사꾼으로 생활 했던 모습들이 담긴
자잘 구례한 것들이 전시 되어있다.
퇴임 대통령의 기념 전시관치고는 너무 작고 전시품들도 초라하기가 그지없다.
보통 대통령이었으니 남은 유품도 보통이었던 모양이다.
●국밥집 아주머니
하나 밖에 없다는 마을 국밥집에서 늦은 점심을 시킨다.
국밥을 기다리며 수첩에 메모를 하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사진 한 장을 들고 와서는 자랑을 하다 눈시울을 적신다.
봉하마을의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보니 노대통령은 꼭 촌부(村夫)의 모습이고,
그분의 팔짱을 끼고 있는 식당 아주머니는 촌 아낙의 모습이다.
“아주머니, 그런데 왜 눈물을 흘리세요?”
내가 물으니 아주머니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이제 대통령님의 1주기가 되잖아요. 너무 그리워요.
그리고 저 안에 늘 혼자 계시는 권양숙 여사님이 너무 불쌍해요.“
국밥집 아주머니는 또 눈물을 찔끔거린다.
국밥이 나왔다. 나도 목이 멘 체 국밥을 먹는다.
배는 고픈데 국밥을 다 먹지 못하고 식당을 나온다.
●아주 작은 비석하나
천 원짜리 국화 한 송이를 사들고 그분의 묘역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묘역에는 석재들이 잔뜩 쌓여 있고 포그레인 한 대가 굉음을 내며
묘역 바닥을 파헤치고 있지 않은가. 연유를 알아보니 그분의 서거 1주기를 맞아 묘역을 확장
새로 단장하려고 벌리고 있는 공사라 한다.
공사장 간이 건물 위에 내 걸린 간판에 이렇게 쓰여 있다.
“아주 작은 비석 묘역 설치 공사”
아주 작은? 쓴 웃음이 나온다.
고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쪽으로 변질 되 가고 있는 듯하다.
작은 비석이 아니라 아주 큰 비석을 세우기 위한 공사판이 아닌가 싶다.
묘역을 넓히고 새 단장을 왜 하는가?
재직 중 그분을 집요하게 헐뜯던 소위 그 언론사들이 이런 사실을 알면은 또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또 한바탕 고인을 괴롭힐 것이 뻔한데 왜 이런 행위를 하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원래 있던 묘지는 어찌 됐는지 공사장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진으로 만든 묘지에 국화 한 송이를 바치고 그분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잠시 서서 생각에 잠기다 그분께 말한다.
●그분에게 물었다.
“일 년 전 당신의 서거로 온 나라가 슬픔에 젖어 있을 때 나는 차마
당신의 묘소를 찾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죽음을 인정하기 싫었고,
스스로 자진했다는 소식에 너무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변명이라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이제 그 일 년 후 사람들로부터 점점 잊혀 가는 당신을 보면서
비로소 당신의 땅 봉하마을을 찾았습니다.
그 때 많은 식견 있는 사람들 중에는 당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바로
새 권력이라고 했지만, 생생히 살아 있는 거대 권력 앞에 어찌 위와 같은
겁도 없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님. 지금 나라 안팎이 야단인것 잘 아시지요?
온 국민이 흥분으로 들끓고, 슬픔에 젖어 있습니다.
바로 우리 해군의 주력함 중의 한척인‘천안함 침몰 사건’때문입니다.
상황은 점점 국내에서 국제화 사건으로 확대 가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 이였다면 작금의‘천안함 사건‘을 어떻게 해결 하시겠습니까?
엊그제 MB가 TV 방송으로 한 대국민 담화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물증을 찾는데 주력해야 한다.
만약 북의 소행이라고 판단되면 단호히 응징하겠다.“
물론 당연한 말입니다. 그러나 다분히 흥분하고 있는 국민들의 감정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인 듯합니다. 대통령은 감정으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도 대통령으로서 감정 섞인 말을 많이 하신 적이 있으셨지요.
국민들은 감정으로 말해도 대통령은 냉정을 가지고 말해야 합니다.
사태의 해결이 그리 간단치 않은 미묘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한방 맞았다고 해서 나도 한방 먹이겠다는 그런 합리적 대응 방식이
통하지 않는 아주 딜레마적인 사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이었다면 이 사건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물론 당신이 아직도 대통령으로 있다면 아예 천안함 같은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보수수구세력들은 이러한 작금의 사건이 일어난 근본원인은
당신과 그분(DJ)의 10년 정권이 만들어 놓은 결과라고 핏대 올리며 주장합니다.
민주주의, 민주주의 하면서 국가의 주적 개념을 모호하게 했고,
언론들이나 국민들의 대북정서를 느슨하게 만든 결과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천안함 사태를 유발했다는 기막힌 주장입니다.
아마도 하늘에 계신 당신과 그분이(DJ) 이 같은 주장을 듣는 다면
땅을 칠 기막힌 일이라 하시겠지요.
그러나 어찌 합니까?
고약한 모함이라고 흥분하시는 것 보다는 모든 것 다 용서하시고
아직도 이 조국을 사랑하신다면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노무현 대통령님. 이제 당신은 속세의 산자가 아닙니다.
능력이 있는 신들의 영역에 살고 있는 천인(天人)이 되셨습니다.
이제 당신께서 큰 지혜를 주실 때가 왔습니다.
부디 우리 대통령 MB에게 힘을 주시고 이 난제를 슬기롭게 풀어갈
용기와 지혜를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꼭 그렇게 해 주시리라 당신을 믿습니다.“
●애도의 리본 그리고 눈물
그가 담배 한 모금 피우고 한순간 떨어져 죽은 봉화산 부엉바위에 오른다.
어디선가 정말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부엉~ 부엉~ 부엉~
애처로운 부엉이 울음소리가 그분의 원혼 소리처럼 들린다.
부엉 바위 아래 수많은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흔들려 파도처럼 출렁이고 있다.
리본 마다 그분의 죽음을 애도하는 깨알 같은 글들이 쓰여 있다.
작년 서거 애도 기간 중 봉하 마을을 방문한 수많은 국민들의 눈물의 흔적들이다.
“바보 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영원히 대통령으로서 기억 할 것입니다.”
“사랑해요, 대통령 할아버지....”
애도의 리본들이 산 아래에서 산 중턱까지 빼곡히 걸려 있다.
그 때 단 리본을 차마 정리하지 못하고 그대로 놔둔 것이리라.
조금 더 올라가니 한문 현수막 하나가 나무에 걸려있다.
고사성어(故事成語)같은데 정확히 무슨 뜻인지 금방은 알 수가 없다.
한자 한자 읽어 보니 “사공명주생중달”이라 쓰여 있다.
대략 무슨 뜻인지 알 듯도 한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여기게 이런 현수막이 걸리게 됐는지 알 수가 없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런 뜻이 담긴 기막힌 고사성어 이다.
“死孔明 走 生仲達”
이 글은 삼국지에 나오는 말로‘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낸다.’는 뜻이다.
제갈공명은 위(魏)나라 사마중달(司馬仲達)과 오장원에서 대치하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다. 그는 죽기 전 자신의 모습을 본뜬 목상을 만들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지시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공명의 지략에 여러 차례 혼쭐이 난 사마중달은 그의 사망소식을 듣고
이때다 싶어 추격에 나선다. 그러나 사마중달은 수레 위에 의연히 앉아 있는
공명의 모습을 보고 혼비백산해 도망쳤다는 이야기다.후세 사람들은
사마중달의 이런 행동을 보고 ‘죽은 공명이 살아있는
중달을 달아나게 하였다’며 비웃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공명 주 생중달’이라는 고사성어에는 탁월한 인재는
죽어서도 그 값을 한다는 뜻이 담겨있고, 사마중달에 빗대서는
싸워보지도 않고 미리 도망치는 겁쟁이라는 풍자의 뜻이 담겨있다.
이런 의미의 고사성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아마도 여기에 그 의미를 곧이곧대로 쓴다면 껄끄러울 젓이라 여겨 이쯤해서
덮어 두기로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은 공명이라면 허둥대며 도망친 자는 누구일까?
다분히 정치성을 띈 고사성어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부엉이 바위 정상을 향하여 올라간다.
●부엉바위
얼마 쯤 가다 그 자리에 발걸음을 멈춘다.
바로 그 자리이다. 작년 TV에서 수 없이 보았던 그 자리...
아직도 그분의 붉은 선혈이 바위와 흙 사이사이에 얼룩져 있는 듯하다.
떨어지면서 바위에 부딪쳐 머리가 깨지고 어깨가 으깨어진 체
한 찰라 생(生)과 멸(滅)의 경계를 넘어 버린 참담한 그의 찢겨진
주검의 처연한 모습이 바위 아래에 보이는 듯 아른 거린다.
그분이 그 날 아침 죽음을 향하여 올랐을 가파른 바위 길을 나도 따라 오른다.
길은 비교적 경사도가 심했지만 별로 길지 않은 편이다.
이 짧은 길을 오르면서 그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젠 죽어 버릴 꺼야. 죽음으로서 내 결백을 보여 줄 꺼야.”
이렇게 중얼 거리며 바위 위로 올라 간 것은 아닐까?
푸드득, 꿩 한 마리가 놀라서 숲 속에서 날아간다.
놀란 것은 나도 그도 마찬가지, 아마 그분도 놀랐을 것이다.
부엉이 바위 정상에 올랐다.
그분이 떨어진 바위 앞에는 출입금지 표시판과 목책이 설치되어 있다.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봉하마을이 한 눈에 들어오고 권양숙 여사가 있을 사저도 보인다.
한창 재 단장을 하고 있는 그분의 묘역도 보이고 이장 집도 보인다.
마지막 담배 한 대를 피우면서 그분도 나처럼 산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죽음~,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분은 죽음으로서 자신을 완성했고, 모든 고통을 털어버렸다.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때로는 완성이고 구원임을 깨닫는다.
아! 나도 떨어져 죽을까? 하고 순간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나에겐 그럴 필요성은 느끼지만 용기가 없다.
●그분의 영혼이 잠든 정토원
정토원으로 향한다.
그분의 영혼이 머문 곳으로 알려진 봉화산의 작은 암자이다.
암자는 지금 연등 꽃으로 빨갛게 뒤 덮여 있다.
다음 달이면 부처님 오신 날이니 벌써부터 연등 공양을 하는 모양이다.
연등은 왜 달까?
연등 하나, 하나마다 간절한 소망 하나씩 적혀있다.
수많은 연등이 모두 획일 적으로 똑 같아 개성미가 없어 보인다.
돈 주고 산 상품이기 때문이다.
원래 연등을 자신이 만들어 단다 했는데....
연등조차도 기계화 되고 디지털화 된 것일까?
전각은 딱 한 체 뿐이다.
수광전(壽光殿)이란 편액이 팔작지붕 처마 밑에 달려 있다.
나머지 건물들은 모두 사찰 전각이 아닌 벽돌과 조립식 가옥으로
아마도 요사체로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아미타여래가 봉안 되어 있는 법당 안으로 들어간다.
먼저 불단에 절하고 내 깐에는 모처럼 맘먹고 불전함에 큰 시주를 한다.
주 불단 옆에 고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영정이
다정하게 형제처럼 나란히 모셔져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위패는 정토원에 모셔져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김대중 대통령도 함께 모셔져 있으니 조금은 의아하다.
법당을 나와 그분이 자주 올랐다는 사자봉으로 향한다.
●사자봉 사자는 잠이 들고...
사자봉은 봉화산의 얼굴로서 부엉이 바위 조금 위쪽에 있다.
사자봉에서 바라보니 봉하 들판이 한 눈에 들어오고 구름 덮인 산천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그리고 봉하마을의 권양숙 여사가 쓸쓸히 들어 있는 사저도 손에 잡힐 듯 시야에 들어온다.
사자봉을 내려온다.
해는 이미 서녘하늘을 넘으려 하고 있다.
서두르지 않으면 막 버스를 놓칠 수도 있어 걸음을 재촉한다.
봉화산을 내려오다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맞았다.
●봉화산 마애불과의 만남
봉화산에 마애불이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으니
오늘 마애불과의 만남은 나에게 있어 행운인 셈이다.
그런데 커다란 바위 옆에 마애불을 설명한 안내판은 있는데
두리번 두리번, 이 바위, 저 바위를 찾아 봐도 마애불은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찾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 한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아저씨 부처님 찾으세요?”
“아! 네, 마애불이 여기 있다는데 안 보이네요?”
“부처님은 아무나 앞에 나타나시지 않는 답니다.”
아주머니가 웃으면서 마애불이 있는 방향을 가르켜 준다.
목책 난간이 설치된 그 아래 바위 틈새를 보니 커다란 마애불이 옆으로 넘어져 있다.
마애불은 아마도 현 위치에서 위쪽에 서 있던 것이 아래로 굴러 떨어진 듯하다.
그러나 용케도 큰 손상 없이 양쪽 큰 바위틈에 끼여 있으니 마치 일부러 옆으로 새긴 듯 보인다.
마애불을 함께 보고 있던 아주머니가 또 엉뚱한 소리를 한다.
“그런데 어떤 스님이 그러는데요. 이 부처님(마애불)이 환생하여
노무현 대통령이 되셨대요.“
황당한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이야기들이 입으로 귀로 전해저서 세월이 흐르면
전설이 되고 설화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아주머니, 이 부처님이 노무현 대통령으로 환생하신 것까진 좋은데 왜 자살을 하셨을까요?”
“그야 뭐 세상이 하도 시끄러우니깐 다시 부처님으로 돌아 가신게 아니겠어요.”
아주머니의 마지막 대답이 명답 중에 명답이다.
마애불의 정식 이름은 “진영봉화산마애불(進永烽火山磨崖佛) ”이다.
김해시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 됐다.
양손과 왼쪽 어깨부분이 약간 훼손되긴 했으나 대체로 양호한 상태이다.
마애불의 머리부분은 민머리(素髮)에 상투(肉)모양이 크게 표현되었고,
목에는 3개의 주름(三道) 희미하게 보인다.
코와 입은 부분적으로 마모되었고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며 지그시 감은
눈은 깊은 사색에 잠긴듯하다. 양쪽 어깨에 걸친(通肩) 옷자락(法衣)은
U자형으로 자연스레 흘러내리고 있다.
수인(手印)은 시무외인(施無畏印),여원인(與願印) 으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전설에 의하면 이 마애불은 당나라 황후의 꿈에 한 청년이 나타나 자꾸만 자기를 괴롭히므로
신승(神僧)의 힘을 빌려 그 청년을 바위틈에 넣어 김해 땅 봉화산의 석불이 되게 했다고 전해 온다.
●봉하마을 어슬렁거리는 누렁이와 찹살개
진영읍내 나가는 마을버스를 기다린다.
그러데 주차장에 커다란 누런 개와 아주 작은 강하지 두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
큰 개가 물지는 않을까 겁을 먹고 있는데 길가 던 할머니 한분이 그 개 노건평씨 개인데
안문다고 하신다. 내가 이리와 하니 정말 어슬렁어슬렁 다가온다.
재빨리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호주머니에 있던 빵 하나를 주니 씹지도 않고
꿀컥 한 입에 삼켜 버린다.
개는 제법 기품이 있어 보이고 명견 같이 보인다.
아주 작은 강아지가 쫄랑쫄랑 누렁이를 곁을 따라 다닌다.
노건평씨는 동물애호가라는 전한다.
노대통령의 형 노건평씨, 그도 호된 경을 치르고 겨우 살아서
지금은 어찌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대통령 형이라는 직함(?)이 너무 과했던 것은 아닌지 그의 삶도
평탄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듯하다.
천생 농부였던 그의 수더분한 모습이 더 좋았었는데 갑자기
대통령 형이 되고 보니 세상이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음이니
권력이란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님을 그를 통하여 깨닫는다.
마을버스가 왔다.
봉화 마을을 나온다.
그분은 가고 없지만 그의 바보 철학은 상존 할 것이다.
바보 노무현, 바보 김대중...
바보 김수환 추기경, 바보 법정스님...
아마도 이 세상은 영악한 잘난 사람보다도
진솔한 바보가 더 필요 할지도 모른다.
차창 뒤로 봉하마을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용기는 스스로 죽을 수 있는 용기일 것이다.
그러나 그 용기는 의로운 것이 아니라 가장 나약한 용기라고 본다.
이 짧은 말을 지으며 나는 오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며
그분의 명복을 다시 기원한다.
>201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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