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전국문화재 斷想

토기 단상(덧무늬토기 와 빗살무늬토기)

migiroo 2015. 4. 6. 13:03

 

 >2015.4.6

 

덧무늬토기 와 빗살무늬토기


 


 

 


찬란한 신라금관이나 황금보검, 순금귀고리, 백제대항로 같은 금속유물 보다 더 정감이 가고 인간적인 공감이 가는 유물이 바로 순박하고 질박한 선사시대 토기 들이다.
 

흙으로 비저 장구한 세월을 보내는 동안 비록 깨지고 마멸되긴 했지만 토기들에게서는 돌도끼 들고 떠돌이 생활하던 원시인의 탈을 벗고 이제 막 정착농경생활로 접어든 선사인들의 삶의 냄새가 고스란히 배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선사시대의 토기들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현세에 존재하고 있는 유물들이다. 그래서 선사인(先史人)과 현대인이 결국 한 줄기였다는 진한 인간적인 정서가 내면 깊숙이 서로 이어져 있다. 

 

 

 


덧무늬토기와 빗살무늬토기는
도대체 그 나이가 얼마나 쯤 될까...?


‘백년, 오백년, 천년.....“


사람의 나이로 치면 백년, 오백년도 엄청 나지만....
이들 토기의 나이는 자그마치 8,000에서 6,000 살쯤 된다.


인간들이 감히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시간이 토기에 배여 있다.
그것들은 선사 인들이 흙으로 빗어 사용한 단순한 토기가 아니다.
비록 지금은 박물관에 갇혀있는(?) 유물에 불과하지만....
8천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을 간직한 살아있는 생명체들이다.

 

 

 

 

어둑어둑한 박물관 안에 보일 듯 말 듯 조명을 받아 전시된 토기들....
그것들을 만나는 순간, 우리들은 어느새 타임머신 캡슐에 올라타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초광속으로 선사시대로 빨려 들어간다.
잠시 후 우리들은 어느 선사시대의 움집 앞에서 토기를 빗고 있는
한 사람의 선사 인이 되어 있다. 

  

 

 

 

덧무늬란 토기의 겉면에 약간 돋아나오게 한 무늬를 말하고,
빗살무늬란 머리빗 빗살모양의 무늬를 말한다.

 


덧무늬토기와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 형제간~

 

 

덧무늬토기와 빗살무늬토기는 모두 신석기 시대 유물이다. 덧무늬토기는 빗살무늬토기보다 한 시대 앞선 토기이고 빗살무늬토기는 덧무늬토기 다음단계 시기에 사용된 토기이다. 그러니깐 전기 신석기 때에 사용된 것이 덧무늬토기 이고, 빗살무늬토기는 후기 신석기시대에 사용한 것이다.  이런 토기들은 모두 기원전(BC) 6,000~4,000년경에 나타난 것들이다.


신석기시대는 인류가 원시적 뗀석기(打製石器)를 사용하던 오랜 구석기시대를 벗어난 시대이다. 비로소 초기 농경을 이루고 정착, 촌락생활이 시작되는 단계로 도구를 사용하는 간석기(磨製石器) 시대가 된 것이다.

 


덧무늬토기 


 

 


토기의 겉면 무늬를 약간 튀어 나오게 했다고 해서 ‘융기문(隆起文)토기’라고도 한다. 다시 말해서 그릇 표면에 진흙 띠를 붙이거나 겉면을 손끝으로 집어 올려 약간 튀어 나오게 무늬를 입힌 토기를 말한다.


덧무늬토기의 사용 시기는 기원전 6천 년~4천 년 무렵으로 출토지는 주로 신석기시대 조개무지로 동해안과 남해안 지역에서 발견된다.

 

 

 

 

 


 

빗살무늬토기

 

 

 


빗살무늬는 말 그대로 머리빗살 모양의 무늬를 토기 표면에 연속적이고도 기하학적으로 새긴 것을 말한다.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로서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에서 발견되는데 두 지방의 토기가 조금씩 그 형태가 다르다.


중부지방의 빗살무늬토기는 모양이 좀 길쭉하고, 남부지방 것은 키가 좀 작고 바닥이 약간 둥글다.

 

 


그런데 토기의 아랫부분이 둥글고 길쭉하여 어떻게 세워 사용했을까 궁금하다.
밑이 납작하면 세우기가 쉬웠을 터인데 말이다.


 

 


그러나 그런 기우는 현재 우리의 시각으로 봤을 때의 생각일 뿐이다.
그들은 아마도 돌 받침대라든가 나무받침대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는 화로 같은 것에 걸쳐놓고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 든다. 


 

 
드디어 잠에서 깨어났다.
아니 스스로 깨어난 것이 아니다.
아파트를 짓는 다고....,
공장을 세운다고.....,
혁신도시를 건설한다고....
중장비로 울창한 숲을 뭉개버리고 산을 깎아내리다가
발굴된 유구(遺構)에서 강제로 잠에서 불현듯 깨어난 토기들이다.


수천 년 동안 땅속에서 잠자고 있던 토기들이 21세기 햇빛을 받아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하마터면 무지막지한 불도저에 뭉개지고 포클레인에 박살날 뻔했지만 다행히 무사하다. 이제 안전하게 보존처리를 거쳐 박물관 전시관에 안치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한낱 옛 문화재가 되어 유리관 속에 갇혀 있다가 곧 소멸될 것이다.


백년, 이백년.... 을 견딜 수 있을까?


깊은 땅속에서 지상으로 노출된 모든 물질들은 공기와 오염물질에 의해서 결국 소멸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분별한 유적지 발굴은 제한되어야 한다.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땅속의 유물들을 단 몇 세기 동안에 모조리 발굴한다면 후대에는 유물의 발굴기회조차 영원이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먼 후대에는 땅을 파지 않고도 첨단 장비로 땅속에
묻혀있는 유물들의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박물관에 자주 방문하여 옛 유물들을 자주 접해야 된다.
토기도 보고 금관도 보자.
그리고 생각하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혀 현재와 미래를 창조한다.
그래서 옛것이 소중한 것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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