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索의 窓門/여행~

2.중군-인월-운봉-중군 구간

migiroo 2009. 10. 27. 23:54

 

 
2.중군-인월-운봉-중군마을까지

 

▶첫째 날 걷기(제1구간-1)


일단 차를 민박집 마당에 주차 시킨 다음 배낭을 메고 인월로 향한다.
둘레길 시점인 운봉까지 가는 버스가 인월면에 있기 때문이다.
민박집 중군마을에서 인월면까지는 약 2.5km, 차가 별로 없는 포장
도로를 걷는다.


걷는 도중 경운기를 몰고 가는 늙은 농부도 만났고,
다리 밑에서 풀을 뜯고 있는 누런 소도 만났다.
소 등에는 하얀 백로 한 마리가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옛날 같았으면 소가 쟁기를 끌고 짐수레를 끌 것이었으나 지금은 경운기나 트랙터에 일거리를 내어주고 소는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신세인가. 그러나 사실은 행복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인간들의 식용으로만 잠시 살아가는 신세로 전락했음이니 그지없이 불행한 일이다.

 

 


그래도 시골 소는 개천이나 들에 나가 풀을 뜯을 수 있으니 신세가 좋은 편이다.
축사에서 전문적으로 키우는 소는 한 평도 안 되는 좁디좁은 우리 속에서 그저 사료만 먹고 살을

찌우는 소들의 신세에 비하면 시골 소의 신세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만하다.
 

 

 


‘달오름’ 이라는 이름도 예쁜 마을 앞을 지나 인월면 버스 정류소에 도착했다.
운봉 가는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니 운봉 읍사무소 앞이다.
모두 둘레길의 출발 시점을 찾는다.
안내센터의 설명에 의하며 운봉 읍사무소 뒤편에 출발점이 있다 했는데 읍사무소

어디에도 안내 표지판이 없다.
표지판 하나 세웠으면 좋겠다.

 

 

  


지나는 행인에게 물어 겨우 출발점 위치를 찾아 나섰다.
1구간 운봉-인월 가는 둘레길 출발점은 서천리 석장승 뒤편에 있었다.
우리는 논두렁길을 가로 질러 언젠가 답사 때 한번 와 본 석장승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둘레 길의 출발점 ‘서천리 석장승’

 
 

 
두 눈이 부리부리한 운봉의 석장승 두 분이다.
장승의 공식적 이름은 ‘서천리 석장승’이다.
전국에 나무로 깎은 목장승은 흔하지만 석장승은 그리 많지가 않다
그런데 유독 남원지방에 석장승이 많다고 한다. par운봉 서천리, 북천리, 권포리,
산내 실상사에도 석장승이 있다고 한다.   
서천리 당산은 석장승과 그 옆에 있는 당산나무와 솟대로 구성되어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지고 있다고 전한다.


그중 남녀 한 쌍인 부부 석장승은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데 외형으로 보아서는 남녀가 구분 되지 않는다. 이 들은 마을의 약한 곳을 방어하고 서쪽을 제압한다는 의미로‘방어대장군(防禦大將軍),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이라고 몸체에 한문으로 새겨져 있다. 높이는 각각 2m 가 조금 넘고, 세워진 시기는 대략 300년 전 쯤이라고 한다.

양쪽 장승들의 표정을 보면 참으로 우습다. 표정에 전혀 미소가 없는 악상(惡像) 인데 벙거지를 쓰고 왕방울 눈을 험상궂게 부라리고 코는 벌렁벌렁 주먹코를 하고 있다. 입 꽉 다물어 비저 나온 굵은 윗니가 매우 사나워 보이나 무섭지가 않고 그런 모습이 오히려 순박함과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이 장승들은 1989년에 도난을 당했다가 되찾았다는데 현재에도 마을의 안녕과 복을 빌기 위해 음력 정월 초하룻날 당산나무와 석장승에게 제를 지낸다 한다.


 


장승은 단순한 돌이 아닌 우리들의 모습이다.
석장승의 모습에서 인고(忍苦)의 삶을 생각케 한다.
마을의 수호신으로서 얼마나 많은 세월을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며...
또 앞으로 얼마나 숫한 세월을 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그러나 도로 옆에 있어 각종 대기 오염과 차량의 매연,
사람들의 손길로 인하여 마모가 빨라 질것 같다.

 


>미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