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중군마을에서-장항마을까지
▶둘째 날 걷기(제2구간-1)
●새벽 공기는 너무도 맑다.
맑은 공기, 깨끗한 숲, 바람소리.... 꼭두새벽에 잠이 깨인다. 어제 밤 과음도 했었는데 왜 이리 머리가 맑을까? 역시 시골 공기는 좋다. 민박집 아주머니가 특별히 해준 아침상을 받았다. 아주머니의 반찬 솜씨가 일품이다.
반찬이 좋은 건지... 분위기가 좋은 건지... 시원한 국밥, 담백하고 깔끔한 밑반찬들.... 국하나 만이라도 밥 한 사발을 거뜬히 비웠다. 5천 원짜리치고는 너무도 좋다. 아마도 장삿속으로 만든 식단이 아니고 아주머니의 후한 인정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7시 반. 모두 모여 파이팅~ 을 외치고 오늘 장도에 오른다. 중군마을에서~ 금계마을까지 약 20km의 거리를 걷는다. 난이도는 어제보다 배는 더하리라 짐작된다. 5개의 마을을 거쳐 3개의 가파른 고개를 넘을 것이다.
●2구간 걷기 시작
중군마을 출발점 담벼락 표지 그림이 너무 멋지다. 담벼락에 꽃 그림을 그리고 약도를 그려 놨다.
그림 밑 부분에 ‘범숙학교’에서 그린 것이라도 써 있다. 아마도 대안학교 같은 학교 같았다.
오늘 본격적인 걷기가 시작 됐다. 가는 방향은 무조건 이정표의 빨간 화살표(▶) 방향으로 가면 된다. 진행방향 화살표는 이정표에도 있지만 길바닥에도 그려져 있다. 초행자도 쉽게 둘레길을 찾아 걸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리라.
자! 출발전 기념 촬영부터 하고... 하늘은 맑다. 기온은 덥지도, 춥지도 않다. 걷기에 딱 좋은 기온이다.
간밤에 잠이 안와 어제 주운 밤을 한밤중에 삶았다고 하면서 총무님이 밤을 한 옴큼씩 돌린다. 주머니에 넣고 한 알씩 꺼내 먹으니 정말 토종밤 맛이다.
“총무님, 탱큐~~~
마을을 벗어나자 임도가 나타난다. 황매암 가는 길이다. 가는 길에 수수도 만나고, 소도 만났다. 벌통 밭도 만났다.
1시간쯤 걸었을까? 벌써 황매암 이정표가 나타난다. 오후 1시쯤이나 도착 할 것 같았는데 벌써 황매암 이라니... 황매암 주지스님을 만나기로 했었은데.... 완전히 일정이 어긋나 버렸다.
●황매암의 텅 비어있고...
중군마을에서 황매암까지의 거리를 너무 멀리 잡은 것이다. 정확한 거리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절간 구석구석을 찾아 봐도 아무도 없다. 공양주도 없고 스님의 그림자도 안 보인다. 다만 요사체 마당에 매어 놓은 흰둥이 개 한 마리가 멍멍 짖으며 우리 일행을 맞아 줄 뿐이다.
며칠 전에 전화로 스님께 방문 계획을 알려 드릴 때 오전엔 읍내에 행사가 있어 오후에 와야만 만날 수 있다고 하셨는데 무려 4시간이나 빨리 와 버렸으니 절에 아무도 없다고 누구를 탓 하겠는가. 모두 인솔자인 내 잘못이다. 그렇다고 4시간을 절에서 스님들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일... 할 수 없이 암자를 나올 수밖에 없다.
황매암 일장스님은 선서화(禪書畵)로 유명한 분이시다. 순례 길에 잠시 들려 고매하신 스님의 법문도 청해 듣고,
선서화도 몇 점 얻을까 생각했었는데 그게 과욕이었을까. 허망하게 희망사항이 물거품이 됐다.
그래 어찌하겠는가? 할 수 없는 일임을... 빈집이니 아쉽지만 돌아설 수밖에 없다. 희망은 깨지고 황매암 감로수를 벌컥벌컥 퍼 마신다. 샘물 이름이 석천(石泉)이다. 이름처럼 돌에 맑은 샘물이 가득 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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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기하게도 석천(샘) 벽에 스님의 법문이 붙어있지 않은가! 우리가 올 줄 알지만 부득이 집을 비우니 여기에 법문을 써 두고 간다. 이런 스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싶다.
사진 속의 글이 잘 안 보이지 여기에 옮겨본다.
“모처럼 내 두발로 스스로 나선 길, 살아온 삶~ 진솔하게 돌아 볼 순간 되고 닥아 올 인생~ 새로운 포부 키울 소중한 기회 되시길...
숲, 바람, 하늘, 구름....
이 우주 온갖 것이 오직 나와 연결되어 비로소 생명으로 빛나고 있음 발견하시고,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모든 순간들 오로지 사랑과 연민 나눠야 할 때님을 깨달으시길.“
이 보다 좋은 법문이 어디 있을까. 다시 석천(石泉) 수 한 잔 깊이 들이 마시고 이 소중한 법문을 마음속에 새겨 간다.
●황매암에서 수성대로 가다.
8시 반. 황매암을 떠나자 비로소 길은 임도에서 산길로 바뀐다. 길섶마다 산국하며 참취, 꽃향유가 피어 길손은 맞아준다.
오전 9시 경, 수성대에 도착했다. 수성대? 별로 볼 것이 없는 바위 계곡이다. 가뭄 탓인지 계곡물이 거의 없다. 그래도 바위에 앉아 쉬었다 간다.
●배너미재
수성대를 나와 한 고개를 오르니 배너미재이다. 배너미재란 이름은 아주 옛적에 운봉이 호수였었는데 배들이 호수를 넘나 들었다하여 배너미재라고 했다한다. 아울러 배너미재는 운봉의 배마을(주촌리), 배를 묶어두었다는 고리봉과 함께 연결되는 지리산 깊은 산속에 있는 배와 관계된 지명이라고 전한다니 참으로 기이하다.
어찌 저 높은 산이 배와 호수와 관련되었을까? 하기야 티벳의 히말리아 산맥도 그 옛날에는 바다였는데 해저면의 대륙붕 융기로 인하여 산이 됐다하였으니 지리산인들 수억만 년 전에 바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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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너미재에서 바라보니 까마득한 산 아래 국도가 뱀처럼 휘어져 사라진다. 길은 산속에도 있고 산 아래에도 있다. 인생 자체가 길이니 어찌 길을 떠날 수 있겠는가. 인생은 길에서 시작하고 길 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가?
●고사리 밭의 경고판
배너미재를 넘어 장항마을로 향한다. 가는 길에 수수밭도 만나고 고사리 밭도 만났다. 지리산에 고사리가 많다는 말은 들었어도 고사리 밭이 있다는 것은 처음으로 본다.
고사리는 봄이 되면 수확을 하는데 길손들이 고사를 슬쩍슬쩍 뜯어가는 모양인가 여기저기 고사리 밭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판이 꽂혀있다. 어느 고사리 빝엔 ‘할머니가 뿔난다‘는 경고판이 전봇대에 매달려 있는데 웃음을 자아내지만 어쩐지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분명히 둘레길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소행일터인데 오죽했으면 저런 경고판을 붙여 놓겠나 싶어 내 자신이 그들 인양 할머니께 죄송해 진다.
장항마을 부근을 지나는데 또 이런 경고판이 붙어 있다. 이번에는 할매가 아니라 양심 카메라이다. 물론 카메라가 고사리 밭에 설치 됐을 리 없다. 설마 이런 경고판을 보고도 고사를 몰래 따가는 사람이 있을까?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은 모두 큰 도시에서 내려온 외지인들이다. 농촌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주고 부끄러운 행위는 하지 말아야한다. 농촌을 사랑하고 길을 내준 그곳 사람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안아야한다. 지리산 자락에 사는 그분들이 없다면 우리는 쌀을 구할 수도 없고 싱싱한 지리산 나물도 먹어 보지 못할 것이다.
>다음 장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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