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나라 乙淑島에 가다.
●을숙도 旅情
또 길을 떠난다.
걷는 것만이 삶의 미망(迷妄)에서 잠시나마
벗어 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오늘은 어디로 갈 것인가?
딱히 목적지를 정한 곳은 없다.
갑자기 새가 보고 싶어진다.
하늘을 자유롭게 비상하는 새들의 모습을...
인간들의 삶에는 왜 이리도 갈등과 걸림이 많은 것일까?
아무 걸림이 없는 새들의 무애(無碍)적 삶이 부러워진다.
그러고 보니 새 소리를 들어 본지도 꽤나 오래 된 듯하다.
요즘 공원이나 주변 야산에서조차 새 소리 듣기가 어렵다.
문득 철새도래지 을숙도가 떠오른다.
새들이 낙원 을숙도....
그래 을숙도로 가자.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오지....
새들의 나라 을숙도....
내 머리 속에는 어느새 훨훨 창공을 날며 늪지에서
부지런히 먹이를 찾는 새들의 모습들이 영상처럼 떠오른다.
나는 아직도 그 을숙도를 한 번도 가 보질 못했다.
그러나 그림으로나 글로서나 인터넷 상으로는 수도 없이 많이 보아 왔다.
을숙도에 가면 새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비로소 목적지를 정하고 발길을 옮긴다.
을숙도, 부산 서 쪽 끝에 있으니 일단 부산 사하구까지는 버스를 이용하면 될듯하고,
을숙도 부근부터는 걷기로 하고 카메라와 간단히 배낭을 꾸린다.
불쑥불쑥 예고 없이 일어나는 나의 무위(無爲)적 짧은 여행은 길 떠나 무엇을 얻어
채우려 하기보다는 비우기 위함이다.
내 마음 속에 가득 채워져 있는 온갖 집착과 욕망 같은 것들...
그리고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고통, 애증 같은 것들...
삶의 고단함, 허무함, 외로움 같은 것들을 비우기 위함이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와 보면 비우기는커녕 더 많은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음을 깨닫고 또 절망하곤 한다.
●낙동강 하구둑(다리)
점심도 거른 체 낙동강 하구둑 다리를 건넌다.
길이 2,400m, 그 거대한 인공구조물 앞에 서니 왠지 주눅이 든다.
낙동강의 마지막 종착지 낙동강 하구, 바다와 합류하는 곳이다.
강원도 태백 천의봉 계곡에서 발원하여 장장 5천키로(513.5km)를 남으로, 남으로
흘러 내려온 낙동강 강물....
강물은 그 머나먼 길을 흘러오면서 인간들의 식수원이 되 주고,
농업과 공업용수로 자신의 몸을 내 주기도 한다.
그리고 인간들이 양산한 각종 오염물질을 깨끗이 정화시키면서
마지막 여기 바다와 만나는 낙동강 하구에 닿는다.
이제 강물은 바다와 합류하여 강물이 아닌 자신도 바다가 되어
우리나라의 남해가 되고, 태평양, 오대양이 된다.
그러나 그 강물은 인간들이 만든 거대한 하구 둑 수문에 막혀 더 이상 바다로 나가지 못한다.
수문보가 닫혀 있기 때문이다.
강물은 바다로 나가려고 서로 엉켜 몸부림을 치다 겨우 수문이 열리면 좁은 출수구를
어렵게 빠져나와 한바탕 소용돌이를 치다 비로소 남해 바다로 빠저 나간다.
1987년 낙동강 하구둑이 완공되면서 강과 바다는 단절된다.
낙동강은 지난 23년 동안 하구둑에 갇혀 인간들을 위한 또 다른 용도로 사용 되면서 오염되어 왔다.
하구둑은 착공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격렬한 환경파괴 논란을 불러일으켜 오고 있다.
근년 들어 낙동강하구관리의 목적을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친환경하구 조성으로 개선해야 된다는
주장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른바 4대강 살리기 대역사가 시작되면서 낙동강도 더 이상 자연이 아닌
인간들만을 위한 환경으로 변해 가고 있다.
4대강 살리기, 언제 4대강이 죽었던가?
강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강물인체 놔두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낙동강하구둑의 부정적 해석만 해서는 안 될듯하다.
철새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많은 생활 혜택을 가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은 물론이고, 양산, 울산 등 낙동강 하구 인근 도시민들의 식수와
농, 공업용수 등으로 낙동강 물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 두자.
하구둑 다리 난간 끝에 돌사자가 마치 스핑크스처럼 앉아 있다.
왜 하필 사자상인가?
하구둑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도 되는 걸까?
강과 사자, 정말 안 어울리는 조형물이다.
사자는 잔뜩 불만에 찬 표정이다.
무슨 불만이 있는 것일까?
다리는 편도 4차선 다리로 무수한 차들이 고속으로 질주 하고 있다.
대형차들이 지날 때마다 다리의 상판과 교각이 여진(餘震)처럼 흔들린다.
다리 양쪽에 설치된 인도를 따라 다리를 건넌다.
11개의 거대한 수문부가 또 거대한 수문을 쇄 줄에 매달아 강물을 막고 있다.
그야말로 모두가 거대하다. 거대하다는 단어를 자꾸만 쓰게 된다.
거대하다는 것은 흉하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수문에 갇힌 강물의 몸부림인가 바람도 강하다.
다리를 건너는 사람이 나 말고 아무도 없다.
난간을 잡고 다리 아래를 내려다본다.
강물이 수문 밑으로 빠져 나오려고 소용돌이치며 몸부림 치고 있다.
여기서 뛰어 내리면 소용돌이에 휘말려 한순간에 죽고 말 것 같은 방정맞은 생각을 해 본다.
죽음은 늘 우리를 유혹하고 있으니 방정맞은 생각만은 아닌 듯싶다.
그러나 그 흉한(?) 하구둑은 밤이 되면 화려하게 변신한다.
아름답게 보이도록 야간 조명 시설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름답다는 말을 아무곳에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야경은 단순한 외적인 아름다움일 뿐이다.
새들에게 있어 하구 둑의 야경은 또 다른 공해로 대두 됐다.
드디어 환경단체에서 야경 철폐를 주장하고 나섰다.
오직 인간들의 눈을 즐겁게 하기위하여 철새들의 서식지를
망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주장하고 있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고 새들을 배려하지 않는 처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당국이라는 거대한 집단은 환경단체 같은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그들은 한번 계획하면 좋던 싫던 타협이나 포기란 결코 없다.
환경단체가 아무리 떠들어 봤자 그들에게는 우이독경(牛耳讀經)이다.
그러나 철새들에게 고통스러운 것은 야경뿐만이 아니다.
하구둑 다리 중간쯤에서 남해 바다를 바라본다.
거기에 하구둑 다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또 다른 거대한 다리가
을숙도를 가로 질러 길게 누어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바로 얼마전(2009년 말)에 개통한 “을숙도대교”이다.
부산 신평역에서 을숙도 하단을 관통하여 강서구 명지동을 잇는
장장 5.1km (교량2.85km) 초대형 다리이다.
왜 하필 철새들이 날아다니는 을숙도 하단을 다리가 통과 하는가?
하구둑 건설 때도 환경문제로 그렇게 논란이 많았었는데 그 뼈아픈 기억을 깡그리 잊어먹고
그것도 을숙도 하류 철새들의 활동이 가장 많은 습지대를 다리가 통과 되도록 하다니 기막힌 일이다.
예시당초 철새들의 존재 같은 것은 눈곱만치도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오직 사람만을 위한 것이니 그까짓 새 같은 것은 무시해 버린 것일까?
세상은 모든 존재가 공존하는 곳이고, 공존의 소유물이다.
결코 사람만이 것이 아닌 모든 존재의 것이다.
그러나 오직 인간만이 그 공존의 질서를 깨고 홀로 독점하려한다.
지구의 멸망이 온다면 아마도 그 원인은 인간의 욕심 때문일 것이다.
새들의 나라 을숙도 그 안으로 들어가 본다.
과연 새들을 만나 볼 수 있을까?
●을숙도는 더 이상 철새들의 도래지가 아닌가?
을숙도에 왔다.
그러나 나의 상상은 너무도 쉽게 무너져 내렸다.
새가 창공을 유회하고, 습지에서 먹이를 쪼고,
물에서 헤엄치는 모습은 어디에고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을숙도는 그 명칭이 “을숙도유원지”로 개발되어
철새들의 쉼터가 아닌 사람들의 쉼터로 바뀌어 있었다.
광대한 습지는 절반 이상이 땅으로 매립되어
현대식 건물들이 그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고,
만남의 광장이라는 곳엔 거대한 하구둑기념탑이 우뚝 솟아 있다.
기념탑에는 “대통령 전두환”이라는 비문이 있고,
탑 아래에는 분수대가 열심히 물을 뿜고 있다.
한국 수자원공사,
낙동강하구둑 물 문화관,
낙동강하구둑 물 홍보관
을숙도 문화회관,
낙동강하구둑 전망대,
하구둑 준공 기념탑,
인라인스케이트장,
축구장, 테니스장
을숙도자동차극장
낙동강하구둑에코센터
그리고
숨어 있는 쓰레기 매립장,
분뇨처리장
.
.
.
등 등 등...
을숙도에 포진하고 있는 대형 건물들이다.
공원이니 당연히 강변을 따라 조성한 멋진 산책로도 있고,
자전거 도로도 만들어 자건거도 공짜로 빌려 준다.
유원지답게 확성기에서는 신나는 음악도 흘러나오고
간단한 먹 거리도 파는 식당과 커피숍도 있다.
엘리베이터 타고 전망대에 오르면 하구 둑을 한 눈으로 조망할 수도 있다.
모두가 새가 아닌 사람을 위한 시설임엔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한 쪽에서는 철재 가림막을 처 놓고 또다른 공사가 한창이다.
낙동강 살리기 1공구 공사 현장, 가림막 벽에 걸린 조감도에서처럼 을숙도 상단 쪽이
완전히 개발되어 생태공원화 하고 있는 그림이다.
모두가 철새를 몰아내고 사람들만이 즐기기 위한 시설이다.
섬 하단 쪽으로 가니 비로소 제법 늪지대가 보이고 을숙도 맛이 난다.
그러나 보고자 하는 철새들은 보이지 않고 갈매기들만 강가 난간에 앉아 털을 고르고 있다.
“낙동강하구에코센터“라는 건물이 보인다.
뭐하는 곳인가?
들어가 보니 각종 철새, 물고기, 동물 등을 박제해 전시해 놓은 곳이다.
건물 이층 안 쪽 면은 대형 유리로 되어 있어 숲지대와 늪지대를 조망할 수 있도록 고성능
망원경까지 설치되어 있어 늪지대에서 놀고 있는 철새들을 관찰 할 수도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철이 아닌지 오늘은 철새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건물 안에 전시해 놓은 박제 철새들만 보일 뿐이다.
건물 안 쪽에서 바라다본 을숙도의 유일한 철새도래지 이다.
창에 비친 새들의 모습은 진짜 새가 아니라 새 그림을 창에 붙인 것이다.
늪 지내 저 멀리 을숙도대교가 가물가물 보인다.
과연 철새들이 저 거대한 다리를 맘대로 오고 넘을 수 있을까?
에코센터를 나와 습지대를 둘러본다.
습지는 나무로 만든 예쁜 길이 나 있다.
생태체험시설로 습지를 돌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길이다.
길을 따라 쭉 걸어 본다. 정말 환상적이고 예쁜 길이다.
죽은 갈대와 새로 자라고 있는 갈대와 연못이 어우러져 습지의 생태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습지의 생태를 체험하는 사람들은 즐거울지 몰라도 새들에게 있어서는 고통의 길이 될 것이다.
을숙도 하단 쪽은 대부분 생태 체험장으로 개발 되어 가고 있었다.
완충지구, 교육 이용지구, 탐방장, 탑조대....
피크닉장, 야생동물치료센터, 대형 주차장...
물론 모두가 사람들을 위한 시설들이다.
단 한 곳, 핵심 보전지구를 할애하여 철새들을 보호하고 있을 뿐이다.
원래 새들의 땅을 사람들이 다 차지하고 마치 인심 쓰듯
습지 보존지구를 남겨 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시간에 쫓겨 을숙도 남단 탐조대까지 가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다.
오늘 한나절 을숙도 모두를 둘러본다는 것은 무리이자 욕심이다.
생태 공원에서 가장 핵심지구랄 수 있는 탐조대를 못가보고 돌아서다니...
조금 남겨 둔다는 것은 다음을 위한 것이다.
알지(知) 못하면 우(愚)를 범하는 법인가.
을숙도에 들어서자마자 처음부터 탐조대 쪽으로 갔어야 했는데 엉뚱하게도 별 볼 것도 없는
유원지부터 둘러 봤으니 그만 우를 범하고 만 것이다.
처음 오는 사람들은 맨 먼저 탐조대 쪽으로 가기 바란다.
근래 어느 신문(부산 국제신문)에 실린 기사가 생각난다.
을숙도의 새들이 한해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철새들은 온갖 인위적 환경으로 바뀌고 있는 을숙도가
더 이상 자신들의 쉼터가 아님을 알고 있을 터이다.
더 기막힌 사실은 먹이가 없어 굶어 죽는 새가 무지기수라는
가슴 아픈 소식이다. 어찌 이런 현상이 여기 을숙도뿐이겠는가.
4대강 살리기 공사를 비롯하여 전국의 하천과 바닷가 갯벌 밭이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파 해쳐지고 있는 한 새들의 보금자리는
점점 줄어들 것이 뻔하다.
새가 보고 싶다.
철새가 아니더라도 좋다.
탐조대 쪽에서 찍은 사진을 몇 컷 여기에 올린다.
물론 본인이 찍은 것이 아니고 인터넷 블로그에서 옮겨온 것이다.
을숙도의 철새들이 노니는 모습을 사진만으로도 보아 보자.
나는 오늘 이런 새들을 보지 못하고 을숙도를 떠났다.
갈매기만 보고....(*사진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진파리님’
http://blog.naver.com/liberor/105590577)
무거운 마음으로 을숙도를 나온다.
을숙도를 나오며 문득 입적하신 법정스님을 떠올린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법정스님이 하신 말씀이다.
정말로 새들이 숲을 떠난 것인가?
을숙도 철새들도 정말 을숙도를 떠날 것일까?
다시 낙동강하구둑 다리를 건넌다.
오던 길과는 다르게 나가는 인도(人道)는 겨우 한 사람이 걸어갈 절도로 좁은 길이다.
길이 너무 좁아 앞 쪽에서 마주 오는 사람이 있으면 한 사람은 옆으로 비켜 서 있어야 할 정도다.
거대한 다리를 놓으면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내는데에는 너무 인색한 것 같다.
사람을 위한 길이 아닌 자동차를 위한 길이기 때문이리라.
발걸음을 재촉한다.
다리를 건너 다대포 쪽으로 향한다.
다대포의 몰운대 낙조 시간을 맞추어야하기 때문이다.
[을숙도 서식 철새 종류] |
>未知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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