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索의 窓門/여행~

다대포 몰운대(沒雲臺)에 가다.

migiroo 2010. 5. 20. 21:52

 

다대포 몰운대(沒雲臺)에 가다.

 

●다대포 백사장


늦은 오후 을숙도를 나와 다대포 몰운대로 향한다.
오늘 너무 많이 걸었는지 다리에 힘이 없다.
빨리 가면 몰운대 일몰 시간대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대포까진 길이 좀 먼 것 같다.
버스를 탈까 말까 망설이다 처음 맘먹은 대로 걸어가기로 한다.
길가 슈퍼에서 음료수 한 캔을 사 마시니 한결 힘이 생기고
기분도 좋아지는 것 같아 빠른 걸음으로 다대포로 향한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했던가,
다리에 힘이 없다는 것도 정말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이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다.
끝까지 걸어가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못 걸을 이유가 없다.


낙동강하구둑에서 다대포까지 약 8km, 복잡한 도심지 길을 걸어
1시간 반 만에 다대포 해수용장 백사장에 닿았다.  
오후 내내 을숙도 주변을 걷고 또 다대포까지 약 16km 정도를
걸은 셈이니 이 나이에 조금은 무리한 것은 아닌지 생각 든다.
그러나 끝까지 차 안 타고 걸어 왔다는 기분은 참으로 좋다.

 
일몰은 오후 7시 반경, 낙조까지는 앞으로 2시간이나 남았다. 
하루해는 서서히 서쪽 하늘로 기울기 시작하고 있다.
 

 

 

다대포 해수욕장 백사장을 걷는다.
몰운대는 해수욕장 끝머리에 섬처럼 누워 몸을 반쯤 바다에 담고 있다.
백사장 모래가 바닷물에 쓸려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 놓았다.
다대포의 백사장 모래 입자는 흙처럼 가늘어 자동차가 달려도 될 정도다.

 
오후 하얀 햇살이 백사장과 해면에 내려 앉아 은빛 파도를 일렁이고 있다.
포구 안쪽에는 거대한 아파트군 이 운집하고 있어 다대포와 몰운대의
아름다운 절경을 독점하고 있다.
수십 년 전만해도 부산의 오지나 다를 바 없었던  다대포 해안....
그런 후미진 해안가에도 이렇게 많은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있다니 도대체
아파트라는 괴물(?)은 어디까지 그 세력을 뻗어 나갈 것인지 모르겠다. 
 

 

 

도시의 스카이라인마저도 무시한 비정서적인 건축물들....
아무리 사람 사는 주거라 하지만 이 아름다운 해안 절경에 마구 식 아파트를 짓다니....
그러나 어찌하랴, 집은 있어야 되고....
아파트를 짓되 주변 자연환경과 잘 어울리도록 질 수는 없는 것일까?
이제 아파트도 네모 상자 같은 획일적인 모양을 탈피하여 같은 값이면 개성 있고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디자인이 바뀌어야 된다고 본다.  
 

 

●몰운대 해안  
 

 

 

다대포 몰운대 해넘이 낙조는 전국에서 유명하다.
남해에서 일출과 일몰을 한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곳 이기도하다.
낙조 시간을 기다리며 몰운대의 절경 해안 길을 따라 걷는다.
천혜의 몰운대 해안은 그야말로 말이 필요 없는 바로 선경(仙境)이다.
기기묘묘한 바위와 돌, 모래와 바다 그리고 은빛 파도....
바람, 구름, 안개, 태양....
이런 자연의 모체들이 만들 낸 조화와 신비로움....
그래서 몰운대는 부산팔경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텅 빈 백사장 사람들도 별로 없다. 모래와 바다뿐이다.
그러나 이제 여름 피서 철이 되면 백사장은 그야말로 차와 사람들로 넘쳐 날 것이다.
지금은 침묵하고 있지만 앞으로 다가올 한 바탕 인간들의 여름 축제(?)에 바다와 
백사장은 한 동안 몸살을 알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미인(美人)이나, 절경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드는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것,
너무 아름다운 미모나 경치를 가진 것이 죄라면 죄이다.  

 

 

 

백사장을 나와 설레는 마음으로 몰운대 해안 길로 향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아름다운 해안에 인공구조물로 만든 길이 설치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해안 암반에 철골을 설치하고 나무판자를 깔아 산책로를 낸 것이다.
아무리 사람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라고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
해안 절경을 손상 시키면서까지 인공적인 길을 내야 하는 것일까?
굳이 길을 내려면 해안 암반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돌을 다듬어
산책로를 내면 될 것을 그냥 생각없이 단순한 편의주의에만 매달려 있으니
이런 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산책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편하기가 이를 데 없겠지만....
경관 상으로 보면 흉한 철근이 다 드러나 천혜의 절경 몰운대 경관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 것 같아 안타갑기가 그지없다.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것 하나 만들고 설치하는데도 깊은 사고가 필요하고,
정서와 감성이 필요하고,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무 행정기관은
알아야  할 것이다.
 

 

경관 우선인가, 산책이 우선인가? 
둘 다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산책로 하나 설치하는 데에도 많은 생각을 해야 되는 것이고
여러 사람들의 좋은 의견을 수렴하여 최선의 방법을 선택해야 되는 것이다.
아무튼 비판적인 나 자신도 나무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너무 편하다.


몰운대(沒雲臺) 절경에 대하여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沒雲臺는 구름과 안개조차도 그 절경에 취하여 잠긴다는 뜻에서 얻은 이름이다.
이런 몰운대 절경을 보고 옛 화가들이 그냥 있을 리 없다.
조선 후기(숙종 37년)의 문인 화가 진재(眞裁) 김윤겸(金允謙,1711~1775)의 그림을
여기에 소개한다. 그는 우리나라 각지의 절경을 진경산수화로 남겼는데 그 중에
부산 인근의 절경을 그린 영남명승도첩(嶺南名勝圖帖)이라는 것이 있다.
이 도첩 안에 특히 부산의 태종대와 몰운대 그림이 유명하여 여기에 옮겨 싣는다.  

 

 

 그림을 한번 보자.
화폭에 담겨 있는 사물보다는 아무 것도 없는 하얀 여백(餘白)이 더 많으니
그 여유로움이 부럽다.
섬과 나무와 파도, 그리고 해안가 바위들이 적당한 여백 안에 그려 있다.
앞에 보이는 섬은 쥐 섬, 수평선 가까이 멀리 보이는 섬은 거제도 인듯하고,
몰운대는 해룡처럼 물속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다.
몰운대 맨 끝(현 전망대) 그 용머리에는 갓 쓴 선비 두 사람이 쥐 섬을
바라보면서 절경에 취해 있다.

 

 


위의 그림은 태종대이다. 그러나 지금의 태종대는 옛 모습을 많이 잃었다.
자연적인 변화가 아닌 거대한 인공구조물이 전망대란 이름으로 세워졌고,
태종대 주변은 도로와 산책로가 역시 많이 생겼다.

 
산책로를 지나 더 깊숙이 해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바위에 앉아 해질녘 바다를 바라본다.
잔잔한 수면 위로 역광을 받은 바위 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 모습들이 수반 위에 올려놓은 수석처럼 멋져 보인다.
 

 

 

오늘 따라 바다는 너무 얌전하다.
역시 바다는 파도가 쳐야 제 맛이 나는데 말이다.
너무 잔잔하니 오히려 불안하다.
언제 거센 풍랑을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출과 일몰, 해돋이와 해넘이...
아침에 떠오르는 일출을 장엄하다고 하고,
저녁에 떨어지는 일몰은 장렬하다고 표현한다.
장렬하다 함은 극적인 마지막 순간을 말한다.
낙조 시간은 아직도 1시간이나 남았다.
문득 그 장렬한 낙조를 생각하니 공연히 마음이 서글퍼진다.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고 바다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태양...
그 모습이 어쩌면 내 인생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 서글픈 생각을 하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낙조를 봐야 되겠다는 의지가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서둘러 해안 길을 되돌아 나온다.


낙조를 포기하고 몰운대 바닷가를 나오는데
앗차! 진짜 몰운대로 들어가는 길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해안 길이 아닌 몰운대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몰운대는 16세기까지는 섬이었으나 그 후 낙동강에서 내려오는
흙과 모래가 쌓여 다대포와 연결되어 육지가 되었다고 한다.

안내판을 보니 볼 것이 제법 있다.
화손대, 다대포 객사, 정운공순의비, 자갈마당 등등...
여기까지 와서 이런 걸 안 보고 갈 수는 없다.


해안 절경만 보고 진짜 몰운대를 못 봤으니 어찌하겠는가?
다시 몰운대로 올라간다.
길은 제법 넓은 길이다. 조금 들어가니 정말 환상적인 소나무
산책로가 눈앞에 전개 된다.
 

 

 

해질녘 숲이 너무 좋다.
부지런히 걸으면 한 바퀴 돌아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걸음을 빨리 한다.
숲의 기를 받아 서 인지 속보로 걷는데도 별로 힘이 들지 않는다.
 

 

숲은 바다와는 또 다른 감성을 일으키게 한다.
바다에는 격정(激情)과 정적(靜寂) 그리고 여백(餘白)이 있지만...
숲에는 넘치는 의욕과 녹색이 주는 신선한 생명력을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바다도 좋고 숲도 좋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들이 서로 다툼 없이 조화롭게 공생하고 있는 숲들의 세계.
키 큰 나무는 키 작은 나무를 깔보지 않고,
키 작은 나무는 키 큰 나무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하지 않는다. 
서로 자리를 양보하고 배려하며 나누며 공생하고 있다.


시기와 반목과 갈등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인간들에 비하면
숲의 조화로운 세계는 정말 아름답다.
인간들은 숲에게서 이런 점을 배워야 한다.

 

 

●다대포 객사(客舍)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3호 다대포 객사. 건물의 지어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825년(순조 25)에 중수(重修)된 기록이 있다 하니
아마도 그 이전부터 있었던 건물일 것이다.
객사의 용도는 수령(守令)이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하여 임금에게
절을 올리는 데 사용하거나, 사신들의 숙소로 이용한 건물을 객사라 한다. 
그런데 왜 여기에 객사가 있을까, 풍치가 좋아서 여기에 지은 객사 일까?
객사는 보통 관아 주변에 있은 것이 통례인데....
납득이 가질 않아 안내판을 읽어 보니 그러면 그렇지 본래 자리
(현 다대초등학교 교정)에 있던 것을 1970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복원한 것이라 되어있다.
객사 주위에 큰 나무들이 너무 많아 전망을 가리고 있어 답답해 보인다.
적당히 나무를 솎아 준다면 바다가 시원하게 보일 텐데...
건물만 옮겨왔지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고려치 않음이니 주무 담당
행정 관료들의 안목은 언제나 닫혀 있는가 보다.

 

 

●몰운대 전망대에서 본 앞 바다 등대와 쥐 섬

 


 

 

정말 노랫말처럼 외로운 섬이다. 섬 이름 쥐 섬...,
그 섬 아래에 더 외로운 등대가 하나가 물위에 떠 있는 듯하다.
수평선 위로 저녁노을이 들면서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있다.

 

 

 


몰운대 동편 해안, 일명 자갈마당이다.
모래가 아닌 잔자갈로 이루어진 해안이 저녁 역광을 받아
잔잔한 파도가 밀려 왔다 밀려가고 있다.
해는 점점 지고 있고 돌아가야 된다는 마음도 급해 진다.
서둘러 전망대를 빠져 나온다.

 

 

●정운공순의비(鄭雲公殉義碑)


여기 와서 정운(鄭雲)장군을 만나다니....
아! 여기가 바로 여기구나....
정운장군의 넋이 잠들어 있는 몰운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함께 수백 척의 왜선을 격침 시키고
이 몰운대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정운 장군... 
몇 년 전 사극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 나왔던 정운 장군,
그 장렬한 최후의 모습이 다시금 떠오른다.

 

정운장군이 누구인가? 

 

 
정운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의 휘하의
장군으로 왜병이 호남에 이르기 전에 먼저 나아가 칠 것을 주장하고,
맨 앞에 서서 공격할 것을 스스로 청하였다.
또한 옥포·사천·한산도 해전에서 공을 세웠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산포 해전(1592년 9월 1일)의 우부장(右部將)으로 출전하여 공격의
맨 앞에 서서 싸우다가 장렬하게 이곳 몰운대에서 전사하였다.


여기 순의비는 정조 22년(1798) 정운 장군의 8대손 정혁이 다대첨사로
왔을 때 세운 것이며, 비문은 이조판서 민종현이 짓고, 훈련대장 서유대가 썼다.
1974년 부산시가 지금의 비각을 세우고 비를 보호하고 있다.


몰운대를 나오면서 상상한다.
구름과 안개마저 잠긴다는 몰운대 앞 바다에서 펼쳐진 부산포 해전...
그 격전의 장면이 영상처럼 펼쳐진다.
이순신 장군과 정운 장군의 함대는 왜선 100척을 격침 시키는 대승을
거두지만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운 장군은 끝내 전사하여 몰운대 앞바다에
그의 넋을 묻어야 했다.


“정운 장군님, 당신이 지켜 주신 이 바다이기에
 오늘 나는 여기 와서 당신께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누구든지 여기에 와서 해수욕만 즐기고 몰운대의 경치나
낙조만 보고 간다면 참으로 민망한 일이 될 것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한번쯤은 정운장군을 생각하고 가슴 속에
그분을 기려야 될 것이다.
몰운대를 나온다.

 


●몰운대 낙조


 

 


지는 해가 서글퍼 낙조를 보지 않으려 했는데....
시간이 그만 일몰 시간대가 되어 다시 처음 왔던 해안으로 나간다.
이미 태양은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운명의 순간을 맞고 있다.
하늘도 붉게 물들고, 바다도 붉게 물들고 나의 가슴도 붉게 물든다.
정운장군이 전사했던 날의 낙조도 이렇게 장렬하게 마지막 불꽃을 태웠으리라.

 


나도 저렇게 장렬하게 불꽃을 태워 끝 낼 수 있을까?
이미 사랑의 불꽃은 꺼졌지만....나도 낙조처럼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싶다.
그러나 태양은 내일 다시 장엄하게 다시 뜨겠지만
인생은 다시 뜰 수 없다.


누가 낙조가 아름답다고 했는가?

 
집에 돌아오니 밤 11시 반이다.
현관문을 여니 아무도 없다.

  
>未知路(201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