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giro Gallery/숲,꽃 이야기~

장미

migiroo 2011. 6. 10. 11:42

장미


 

 

 


우리 마을 공원에는 지금 장미 축제가 한창입니다.
온갖 장미가 한껏 자태를 뽐내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유명한 전문가들이 만든 수많은 개량종 장미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발산하며 꽃의 향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아름다운 장미는
집 담장에 핀 야생 넝쿨장미가 제일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으면서도 장미의 참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장미꽃이 바로 넝쿨장미가 아닌가 생각 듭니다.
변종 개량종 화려한 장미가 도시의 아름다운 여성이라면....
담장에 핀 넝쿨장미는 시골마을의 처녀처럼 청순하고 맑습니다.

 

 

 


장미꽃을 보면 장미의 상반된 두 얼굴을 보게 됩니다.
美와醜(미와 추)의 두 얼굴입니다.
너무도 아름다움과 너무도 슬픈 추함입니다.


 

 


아름답게 핀 빨간 장미꽃을 보면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어쩌면 꽃이 저렇게도 아름다울 수가 있는 것일까 하고 감탄하곤 합니다.
그래서 장미꽃을 꽃 중의 꽃, 꽃의 여왕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뒤에는 슬프고 추한 또 다른 얼굴이 있습니다.
장미꽃이 질 때의 또 다른 모습을 이르는 말입니다.
누렇게 퇴색된 추한 모습을 보면 슬픔을 지나서 참으로 처연하기까지 합니다.
여기서 추(醜)함이라함은 보기흉하고 더럽다는 의미가 아니고 슬프다는 의미입니다.
장미꽃이 질 때의 모습에서 받는 슬픔의 강도는 꽃이 활짝 폈을 때의
그 아름다움에 대한 탄성의 강도보다도 몇 배나 더 높게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다른 꽃들도 시든 모습이 슬프기는 마찬가지 이지만...
장미꽃은 유별나게 처연해 보입니다.
다른 꽃들은 대부분 시들 때는 꽃잎을 땅에 떨어뜨려 죽어갑니다.
우리들은 이를 낙화(落花)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장미꽃은 떨어져 낙화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그 자리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말라 죽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름다움의 뒤안길에는 이렇게 추함과 슬픔이 내재되어있다는 진실...
아름다운 사람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미에 얽힌 오래된 저의 이야기 두편 입니다.


1


바닷가 우리 회사 사무실 옆에는 척박한 작은 화단 하나가 있었습니다.
짠 바다 물과 찐득찐득한 바다 공기에 찌들어 토양마저 나쁜 화단이었습니다.


그나마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잡초만 무성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보다 못한 내가 잡초를 뽑아내고,
삽으로  땅을 뒤집어 제대로 된 화단으로 바꿔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장미 나무 몇 그루를 얻어다 화단에 심었습니다.
그땐 공교롭게도 가뭄이 심한 때라 나는 매일 장미에 물을 주고
줄기와 잎에 달라붙은 진딧물을 털어 내곤 했습니다.
그런데도 장미는 생기가 없이 매일 시들시들 했습니다.
그렇게  4월이 가고 5월이 갔습니다. 그리고 유월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기가 없던 장미에 이변이 생기기기 시작했습니다.
꽃 몽우리가 생기기 시작한 것 입니다.
장미꽃은 보통 5월에 피어서 계속하여 여름 내내 핀다고 했습니다.
어떤 꽃은 가을에 피는 것도 있다고 했습니다.


 

 


유월 중순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장미 빨간 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우리 사무실 사람들도 기뻐하며 장미를 쳐다보곤 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던지 꽃의 여왕이라는 칭호가 하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6월이 지나 7월 중순이 됐습니다.
그 아름답던 장미꽃이 하나 둘 지기시작 했습니다.
지는 것도 그냥 지는 것이 아니라 빨간 꽃잎이 누렇게 말라 죽어갔습니다.
그 죽어가는 모습이 너무나 처연했습니다.


잠시 아름답게 피었다가 시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장미의 모습에서
인간들도 그렇지 않나 싶어 더 슬펐습니다.
그해 여름 내내 그렇게 말라 죽어가는 장미꽃을 지켜보면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장미를 심지 않겠다고.....


 
2


장미와 얽힌 또 다른 나의 옛 추억입니다.

 
제가 20대 젊은 시절 때 다녔던 어느 조그마한 성당이 있었습니다.
성당 뒤편에는 작은 토굴 하나가 있었는데 그 토굴 입구 안쪽에 아주
예쁜 성모마리아상이 있었습니다.
성모상은 사람 키 만했는데 하늘을 향하여 기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토굴 주변은 넝쿨장미가 무성했습니다.


 


5, 6월이 되면 성모상은 그야말로 장미꽃 속에 묻혔습니다.
성모상 옆에는 성당 수녀님들의 작은  수녀원이 있었고,
우리들은 5월이 되면 넝쿨장미가 만개한 성모상 앞에서
음악회도 열고, 시 낭송회 같은 것도 가졌습니다.

 
그 시절 나는 성당의 성가대 지휘자로 활동했었는데
그만 그 성가대에 있는 여학생 한 사람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그 여학생은 장미처럼 예뻤고 너무도 청순했습니다.


나는 정말 무지하게 그 여학생을 좋아했었는데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끝내 그녀와는 짝사랑으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졸업하자마자 수녀가 되겠다며 수녀원으로 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후 그녀를 두서너 번 만나긴 했지만....
이미 그때는 그녀가 수녀 복을 입고 있는 상태의 만남이었습니다. 


 


이제 그로부터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녀도 지금쯤은 나처럼 머리가 희끗희끗한 오, 육십 대 초노가 되어 있을 것이고,
그 예쁘고 청순했던 모습도 이제는 지는 장미꽃처럼 시들어 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시듦은  나처럼 그냥 시듦이 아닐 것입니다.
내 늙음과는 격이 다른 성숙한 성녀로서의 아름다운 시듦일 것입니다.


 5, 6월이 되면 넝쿨장미가 만발한 그 때에 다녔던 성당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청순했던 그녀도 생각납니다.


 

 


장미는 아름답지만...
처연하게 시들어 지는 그 모습의 뒤안 길에는
이렇게 슬픈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장미는 다시 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결코 다시 필 수가 없습니다.


>미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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