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사랑의 어록

♪추억 이야기~

migiroo 2011. 11. 22. 23:59

▷2011.11.22

추억 이야기~


나의 잊히지 않는 성모상~

 

나에겐 아주 오래된 성모상 하나가 있다.
밑 부분이 실수로 절단되어 접착재로 봉합한 것이긴 해도
이 성모상에는 나의 젊은 시절 애절한 추억의 이야기가 짙게 묻어 있다.

 

 

 


내 나이 20대 총각 시절, 한창 성당에 잘 나갈 때 이다.
나 혼자 짝사랑(?) 했던 여자 친구한테서 이별의 선물로 받은 것이니깐
지금으로부터 한 40년 쯤 된듯하다.

내가 성당에 나가게 된 동기는 순전히 그녀의 권유 때문이었고

그 후 나는 영세까지 받아 열공신자가 됐지만,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를 더 자주 만나기 위하여 성당에 들락 거린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주일이면 성당에서 만나곤 했지만 나는 좋아 한다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끙끙 속만 태우다 그녀와 헤어지곤 했었다.


우리는 함께 성가대에 들어 있었는데 합창 연습이 있을 때면

거의 날마다 만나 음악 선생님의 지도하에 합창연습을 같이 하곤 했다.
합창곡은 거의 대부분 어려운 라틴어 성가였는데 그녀는 특히
합창 중 솔로를 맡아 미사곡을 부르곤 했다.
그 때 불렀던 라틴어 미사곡은 지금도 잊히지 않고 몇 소절은 중얼 거릴 수 있다.


기리에/글로리아...
크레도/쌍뚜스...
베네딕투스/아뉴스데이....
성탄 대미사곡 메시아 합창곡

....등등


특히 영성체를 할 시간에는 그녀 혼자 솔로로 미사곡 ‘글로리아’ 나
‘아뉴스데이 ‘같은 영성체 곡을 불렀는데 그녀의 노래가 성당 안으로
은은히 퍼질 때는 영성체를 모신 신자들의 마음을 더욱 깊은
신앙심으로 빠져들게 하곤 했다.

 
드디어 그녀와의 이별을 맞이 하게 됐다.
내가 서울로 전근을 가게 됐기 때문이다.
그녀는 떠나는 날 배웅하면서도 야속하게도 한 방울의 눈물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미소를 지으면서 성모상과 수정으로 만든 묵주 하나를 신부님으로부터

직접 성소를 받아 내게 주었는데 바로 지금 가지고 있는 성모상과 묵주이다.


그러나 그땐 그녀도 나도 좋아 한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그냥 친구로서 이별을 하고 말았으니 참으로 용기 없는 숙맥 같은 나였었다. 
그 후 그녀와의 몇 번의 편지는 오고 갔지만 편지에서 조차도 사랑한단 고백은커녕 좋아 한다는

말도 못했으니 결국 내 부족한 용기와 수줍음이 그녀와의 영원한 이별이 되고만 셈이다.


그러나 사실은 서로 고백 못한 진짜 이유가 있었으니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나를 지독하게 좋아하는 또 다른 B라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B녀는 서슴없이 남들에게 나와 좋아하는 사이라고 소문을 내고 다니곤 했다.
그러나 나는 B, 그녀를 친구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깐 나는 A녀를 좋아 하고  B녀
는 나를 좋아했다.
A,B 두 여자들은 서로 같은 여고를 나온 친구 사이 였고...
또 내 절친한 친구(남자)가 있었는데 이놈이 글쎄 내가 좋아하는 A녀를
제가 좋아 한다고 하면서 그녀를 졸졸 따라 다니곤 했다.


이런 복잡한 삼각, 사각관계(?)가 급기야 표면으로 노출 되어 신부님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고 나서 결국 자청하여 내가 서울로 전근을 가게 된 것이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가 부르는 성가가 또렷이 들려오는데
지금 나는 그녀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이제는 그녀도 아마 나처럼 늙어 있을 것이지만... 


그녀가 준 하얀 성모상은 지금도 내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성모상이 아니라 나에겐 바로 그녀의 모습이었으니 어찌 성모상을
없앨 수가 있겠는 가.


지금 나는 성당에 안 나간 지 벌써 수십 년이 흘렀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이 주교로 계실 때 그분으로부터 견진성사를 받았는데
나의 대부와 대모를 선 사람이 바로 그녀였고, 대부는 누군지 기억이 없다.


나의 성당 행은 그녀로 인해 나가기 시작했고, 또한 그녀로 인해 종지부를 찍었으니 

나는 진정한 가톨릭 신자로서 성당에 나갔던게 아니고 그녀 때문에 나간 것이 되버렸다. 

 

이렇게 나의 첫사랑(?)은 짝사랑으로 끝이 났고 

피우지도 못한 한 송이 꽃봉우리인체로 끝을 맞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꽃봉우리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꽃봉우리인체 내 가슴에 살아 있음이니

비 내리는 날 이라든가,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을 봐도 눈물이 나는 것은

어쩜 피우지 못한 그녀와의 사랑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언젠가는 다시 성당엘 나갈 테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녀의 환영이 어른거리는 성당이 가슴 아파서가 아니고,
이미 나는 불교 사상에 심취되어 있고 그 분야를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불자가 되겠다는 뜻은 아니다.
아마 나는 내 삶을 마칠 때까지 어느 특정한 신앙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 이 건, 개신교 신자 이 건,  불자이던 나에게 별 의미가 없다.


내 마음 속에는 이미 ‘사랑하라’ 는 모든 종교의 메시지가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죽을 때 성모상과 묵주가 함께 묻히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성모상을 꺼내 닦으며
머리를 양 갈래로 딴 소녀 같은 그녀의 환영을 그러본다.
지금도 내 머리 속의 그녀 모습은 그 때 머리 딴 소녀의 그 모습이다.
피아노도 잘 치고, 성가도 잘 불렀던 그녀....
어디에 살고 있을까.

아직도 그녀만 생각하면 그냥 울고 싶어 진다.

 

 

♪ Unspoken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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