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보고 느낀 국보급 문화재(31)
▶국보 제195호
●리얼하고 해학적인 ‘토우장식목항아리’ -토우장식 장경호 (土偶裝飾 長頸壺)
나는 울산에 살면서 일주일이면 한두 번은 경주박물관에 간다. 문화재가 좋아서 가고, 사람들이 그리워서 간다. 그리고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옛 유물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선사시대의 돌도끼나 토기와도 만나고, 천년 숨결이 스며있는 신라의 찬란한 국보급 금관이나 황금보검, 금동불상과 석불 등 왕경시대 신라와 만난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물은 금관이나 금동불상 같은 화려한 유물이 아니고 깨지고 부서진 것을 복원한 토기나 녹슨 철기 문화재 같은 유물들을 더 좋아한다. 그 것들에게서는 천 수백 년 유구한 시간들이 켜켜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그 중 오늘은 관람객들에게 가장 호기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국보 195호 ‘토우장식장경호(토우장식목항아리)’를 만나 본 나의 소감을 쓰고자 한다.
‘토우장식목항아리’는 박물관 고고관에 전시 되어 있다. 아쉽게도 항아리의 주둥이 부분이 깨져 조각이 달아나고 없지만 이 단순한 항아리가 왜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항아리 목 주변에 붙어 있는 ‘리얼한’ 토우(土偶)들 때문이다.
요즈음 ‘리얼’이라는 단어가 잘 나오는데 토기가 리얼하다니 더욱 호기심이 발동한다. ‘리얼(real)’이라는 말은 사실적, 실제적 이라는 뜻이다. ‘토우장식장경호‘는 단순한 토기에 인물이나 동물상 같은 인형(토우)을 항아리 주변에 붙여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엉성하기(?) 이를 데 없는 토우들 속에는 선사시대의 각종 생활상이라든가 풍습 등이 숨겨져 있어 학자들에 의해 당시의 생활상을 오늘에 유추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항아리는 경주의 계림로 고분에서 출토됐다. 크기는 높이 34cm 정도인 작은 항아리이다. 항아리에 장식된 토우는 개구리, 뱀, 거북이, 새 , 토끼, 임산부 그리고 남녀가 성교하는 자세가 등이 묘사되어 있다. 특히 남녀의 성교하는 장면이 너무 리얼하게 묘사 되어 있어 보는 사람들의 호기심은 물론 그 해학적인 표현에 웃음을 머금게 한다.
그렇다면 옛 사람들은 왜 이러한 토우들을 붙여 놨을까? 이에 대한 얄팍한 나의 지식보다는 전문가들이 연구해 놓은 내용을 요약하여 여기에 싣는다.
인류의 역사는 예술의 역사와 함께 공존하며, 예술은 그 시대의 정신과 사상을 나타내 주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신라토우 또한 당시 신라인들의 풍속이나 관념을 가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신라인의 생활문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신라토우의 표현양상과 내용적 성격을 보면 불교전래 이전 정령신앙(Animism), 무속신앙(Shamanism), 동물숭배(Totemism) 등의 원시신앙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생산력을 상징하는 성(性)이미지를 통해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였고, 운반이나 수송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통해 죽음에 대한 생의 영속성을 기원하는 내세관이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토우들은 자세한 묘사나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토우가 상징하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어졌다. 솔직하고 대담한 표현과 소박하고 익살스런 모습 등 서툴고 단순한 듯 하지만 토우에 집약된 상징성은 신라인들의 사상을 충분히 내재시키고 있으며 생명에 대한 솔직한 감정과 생활상이 조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토우를 통해 본 신라인들의 사상과 생활상에 관한 연구(김현아, 서경석 학술논문 중에서-)
요즈음은 박물관 안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다만 삼각대 나 플래시를 사용할 수 없다. 박물관 전시물들은 조명시설이 아주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카메라의 플래시를 사용하면 좋은 사진이 안 나온다.
은은한 조명을 받고 있는 박물관 전시 유물들은 좋은 사진 소재이기도 하다.
중1, 외손녀가 박물관에서 만든 ‘토우장식목항아리‘ 이다. 엉성하지만 그럴 듯 하다. 어른들은 사실적 복제품처럼 만들려고 하지만 아이들의 눈은 항상 어떤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면을 바라본다.
어른들의 의식에는 가식이 섞여 있지만 아이들 의식은 늘 순수하다.
>미지로의 생각
■문화재청 정보
국보 제195호 토우장식 장경호 (土偶裝飾 長頸壺)
토우란 흙으로 만든 인형이라는 뜻으로 어떤 형태나 동물을 본떠서 만든 토기를 말한다. 토우는 장난감이나 애완용으로 만들거나 주술적 의미, 무덤에 넣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흙뿐 아니라 동물의 뼈나 뿔, 나무들로 만든 것도 있고, 짚이나 풀로도 만들기도 하지만, 많은 수가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토우라는 말로 표현한다.
2점의 토우장식 목항아리(장경호)로 계림로 30호 무덤 출토 목항아리는 높이 34㎝, 아가리 지름 22.4㎝이고, 노동동 11호 무덤 출토 목항아리는 높이 40.5㎝, 아가리 지름 25.5㎝이다.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30호 무덤 출토 목항아리는 밑이 둥글고 아가리는 밖으로 약간 벌어진 채 직립(直立) 되어 있고, 4개의 돌출선을 목 부분에 돌렸다. 위에서 아래로 한번에 5개의 선을 그었고, 그 선 사이에 동심원을 새기고 개구리·새·거북이·사람 등의 토우를 장식했다. 몸체 부분은 2등분 하였고, 윗부분은 목 부분과 같이 한 번에 5개의 선을 긋고, 그 사이에 동심원을 새겼다. 어깨와 목이 만나는 곳에 남녀가 성교하는 모양과 토끼와 뱀 및 배부른 임산부가 가야금을 타는 모양의 토우를 장식했다.
노동동 11호 북쪽 무덤 출토 목항아리의 아가리는 밖으로 약간 벌어진 채 직립이 되다가 끝부분에서 안으로 꺾어졌다. 목 부분은 돌출선에 의해 2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각각 한번에 5개의 선을 이용한 물결무늬를 겹치게 새겼고, 그 사이사이에 원을 찍었다. 몸체에도 역시 5선을 이용한 물결무늬를 새겼다. 토우는 계림로 30호 토우와 같은 형태이나 목 부분에만 있고 그 수도 적은 편이다.
이러한 토우들은 생산, 풍요, 귀신을 물리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토우들은 소박함 속에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고, 시대적인 신앙과 풍부한 감정 표현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