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내가본國寶문화재

▶국보 116호, 고려청자의 비색(翡色)

migiroo 2012. 6. 5. 13:55

 

  >2012.6.5

 

■ 내가 보고 느낀 국보급 문화재(33)

국보 116호,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靑磁 象嵌牡丹文 瓢形 注子)

 

●고려 청자의 비색(翡色)에 취하다.


 

 

비색(翡色)

 

고려청자의 색깔을 흔히 '비색(翡色)'이라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비색이란 어떤 색을 말하는 것일까?
나는 으레 이 비색을 비밀스럽고 신비하다는 의미를 가진 비(秘)자의 비색(秘色)을
뜻하는 줄 알았는데 그 게 아니고 비색(翡色)이라 하니 무식이 탄로가 나 버렸다..
그럼 비색(翡色)의 비(翡)자는 한문으로 무슨 글자일까?
사전을 뒤져보니 엉뚱하게도 '물총새 비'자라고 나와 있다.
'물총새' 가 비색하고 무슨 연관이 있겠나 싶어 물총새 사진을 찾아봤다.
그 순간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어쩌면 물총새 깃털의 색이 고려청자의 색이었으니
바로 비색의 원류가 물총새였던 것이다.

 

 

 

 

색감에 대한 선조들의 센스와 지혜가 얼마나 오묘한지 참으로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물총새를 봐도 비색에 대한 나의 갈증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물총새의 색이든 비색이든 도무지 비색을 꼭 집어서 이런 색이다. 라고
말이나 글로서는 표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와 있다.

 

'고려청자의 빛깔과 같은 푸른색' 이란다.
이건 또 뭔가, 정말 사전답지 않은 우답(愚答)이다.

 

비색을 영어로는 'Celadon'이라 하고, 영어사전에는 비색을 청자색. 회록색,
회청색으로 설명 되어 있으니 국어사전 보다는 좀 나은 편이다. 
그러나 이 또한 애매모호한 우답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는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그나마 가장 나은 설명이 나와 있다. 

 

비색이란 밝고 은은한 녹색에 가까운 빛깔로서 고려 시대 청자에 쓰인 품질이 우수하고 유층에 작은 기포가 꽉 차 있어 반투명하며 밝은 담녹색(淡綠色)을 띠는 회청색(灰靑色) 유약의 색을 가리킨다. 즉, 고려청자의 비색은 마치 아름다운 비취 옥색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이 설명 또한 비색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다. 
이렇게 비색에 대하여 여기 저기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어떤 곳에서도
납득할 만한 설명을 찾지 못하고 결국 내 나름대로의 결론에 도달했다.

 

즉, 비색이란 육안(눈)으로 보이는 현상의 색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정신의 색이라는 사실을....

 

 

 

그렇다 비색은 우리 눈으로 보이는 현상색계(現象色界) 그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정신색계, 곧 마음과  영혼으로 보이는 색인 것이다. 그런 영혼의 색을 고려의 장인들은 현상(도자기)으로 구현해 놓은 것이리라. 불교적으로 말 한다면 나의 자의 적인 비유지만 비색이란 바로 부처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색이 아닌가 싶다.

 

본론의 고려청자 이야기 하려다 비색에 대한 구차한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 같다.
첨단과학문명시대에 사는 지금은 왜 고려청자와 같은 신비의 비색을 재현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정신세계에서가 아닌 물질만능의 세계에서 정신의 색을 얻으려 하기 때문일 것이라 본다.
고려의 비색은 내가(장인) 어떤 색을 얻겠다, 하여 얻은 색이 아니고,
어떤 경지에 도달한 자(장인)가 하늘로부터 얻어 지는 색이 아닌가 생각한다.

 

고려청자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이야기 한다면 도자기 자체보다는
도자기의 독특한 색깔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고 그 아름다움을 이야기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고려청자의 그 아름다움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름다움이란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현상이다.
보는 사람마다 그 보이는(마음) 현상이 다르기 때문에
보이는 눈도 있고 보이지 않는 눈도 있는 것이다.
바로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은 도자기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두운 것 같으면서도 어둡지 않고,
화려한 것 같으면서도 결코 화려하지 않고,
넘치는 것 같으면서도 절대 넘치지 않고,
한 가지 색인 듯 한데 자세히 들여다 보 있으면
오만가지 색깔이 다 들어 있음을 본다.

 

깊은 명상 후에 비로소 얻는 색깔....
고요하면서도 적멸의 세계에서 얻는 색깔....
모나지 않고 부드러운.... 오만하지 않고 겸허한...
가장 한국적인 색이 바로 비색이 아닌가 생각 한다.

 

국보 116호, 청자삼감모란문 표주박 모양 주전자...
한자 이름은 ‘靑磁 象嵌牡丹文 瓢形 注子’이다.

 


이 길고도 어려운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국보급 고려청자 중에 유독 이 주전자형 청자가
내 마음을 끄는 이유는 색과 선이 주는 정감이 좋기 때문이다.


마치 금속 구리를 구부리고 두드려서 만든 것 같은 한없이 유연한 선(線)들...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면서 가냘픈 선들이 점점 풍만해지고...
비색의 짙고 옅은 농담(濃淡)의 경계가 안개처럼 처리된 색의 심오한 조합...

그리고 비대칭적으로 표면 가득히 채워 놓은 모란꽃 문양....

주전자 목 위에 백학 한 마리가 창공을 날고 있고,

손에 쥐면 딱 맞을 것 같은 가냘픈 목은 요즘 여자 애들이 좋아하는 잘룩한 허리 선 같다.

학과 모란은 행복, 부귀영화, 장수를 상징하는 것이니....

천년 세월 지나도 결코 변하지 않는 비색이야 말로 가장 감성적인 색이 아니가.

오늘 나는 이 청자의 비색에 취해 만취했다.

깨어나지 말고 그대로 비색에 묻어 잠들고 싶다.

 

 

 

 

과연 이 주전자에는 무엇을 담았을까?
풍류를 즐기던 선비들이 마실 청주가 담겼을까...?
아니면 관세음보살이 든 정병속의 맑은 생명수 일까...?

 

한 성숙한 여인이 긴 머플러를 목에 감고 공원 숲길을 걷고 있다.
그녀가 맨 머플러는 바람에 하늘거리며 향긋한 여인의 체취를 하늘로 날려 보내고 있다.
스카프의 색깔은 어떤 색이었으면 좋겠는가?


빨강색, 노랑색, 파랑색, 하양색...?
아니면 옅은 하늘 색...?


모두 아니다. 바로 비색이어야 한다.
그래야 분위기와 그녀의 품위가 어울리기 때문이다.

 

여기(아래 사진)에 비색이 있을까?

 

 

 

 

 

 


지난 달 울산 외고산 옹기축제 때 천연염색한 여인들의 머플러를 찍은 사진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아름답다. 가장 한국 여성적인 색이고 감성적인 색이다.
이런 색들이야말로 고려청자의 비색에서 영감을 얻은 또 다른 비색이 아닌가 싶다.

 

 

내가 서울의 국리중앙박물관 전시실에서 비색의 고려청자들을 본 것은
벌써 2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그 색감이 나의 감성을 떠나지 않고 있다.
다시 그들과의 해후를 기대한다.

 

>미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