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보고 느낀 국보급 문화재(30)
불국사, 석굴암은 경주의 대명사라면, 백제의 대명사는 ‘백제금동대향로’이다.
그 후 고구려의 남하정택으로 22대 문주왕(477) 때 웅진(공주)으로 수도를 옮기니 이를 웅진시대라 한다. 그리고 26대 성왕(523) 때에 이르러 지금의 부여 즉, 사비성으로 천도(538)하니 이를 사비시대라 일컫는다.
이리하여 오늘 날에 전해 오는 백제의 유물 유적은 고구려, 신라에 비하여 너무나 빈약한 편이다.
그래서 그런가, 지금 부여에는 ‘백제역사문화단지’ 라는 곳이 생겼다.
그냥 관광지의 볼거리 정도로 본다면 모를까 역사적인 문화유적지로 보기엔 왠지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그것들에 배여 있어야할 과거의 찐득한 시간들이 묻어 있지 않으니 그저 현대에 지은 전통 건축물로 보일뿐이다.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부여를 답사 할 때는 꼭 백제의 한과 눈물이 짙게 서려 있는 ‘정림사지오층석탑’을 꼭 돌아보 아야 ‘백제문화단지’에서 느낀 아쉬운 감정을 조금은 달랠 수 있을 것이다.
‘백제금동대향로’ 찬란한 그를 만나다~
대향로에 조각된 갖가지 상들은 그야 말로 다양하다.
위기의 순간도 있었고, 그 극적인 순간을 놓쳤다면 금동대향로는 영원히 발견 되지 못하고 진흙 속에 묻혀 버렸을지도 모른다고 발굴 당시의 뒷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또한 감격스럽다.
이 한 장의 사진만 봐도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극적인가. 말끔히 복원하여 박물관에 전시된 모습 보다 이렇게 진흙탕 속에 묻혀 있었던 모습이 더 실감나고 감격스럽다. 이 또한 행운이고 하늘의 배려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출토 당시 이야기 또한 대향로만큼이나 극적이었다 하니 어찌 그 이야기를 빼 먹을 수가 있겠는가, ....하여 아래에 옮겨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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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이야기
아래 이야기는 중앙박물관 웹진 30호 박물관 타임캡슐에 실린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1천 4백여 년 전 백제인 들의 삶과 내세관을 그대로 담아 만든 백제 문화의 정수이자 유럽보다도 천년을 앞서 한반도에 드러난 바로크 예술의 산 증거로 평가받는 <백제 금동대향로>. 1993년 늦가을, 부여 능산리의 차가운 어둠 속에서 끈질긴 정열과 남다른 정성으로 일구어낸 금동향로의 발굴현장을 찾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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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금동대향로‘에 대한 상세한 정보
(*자료출처:중앙박물관 및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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