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경주南山 斷想

●암자 와룡사 여정~

migiroo 2012. 6. 4. 23:56

 

 >2012.6.2


경주남산 암자 와룡사 여정~

 

 

 

 

저녁 해질 무렵 경주남산 틈수골 와룡계곡의 와룡사를 찾는다. 남산에서 가장 외로운 암자. 가장 초라한(?) 암자다. 그러나 가장 조용하고 가장 맑은 암자다. 사부중 수행자라면 묵언 좌선의 도량이고, 속인이라면 탐욕을 내려놓고 들 수 있는 암자이다. 그리고 암자에는 연대가 불분명하지만 조선시대로 추정되는 두 고승의 부도가 있다.


그리고 암자엔 지금 이 세상 도를 다 깨친 ‘윤선덕화’라는 할머니 보살님이 계신다. 암자를 짓고 여자 홀로 공양주로 지낸 지난 35여 년 동안을 살아오면서 그녀는 지금 부처가 다 되신 보살님이시다. 그녀의 지금 세수는 80 고령, 지금 그녀 곁에는 두 마리의 누렁이(개)가 있을 뿐이다.

 

 

 

 

암자로 가는 길은 둔탁하고 거친 시멘트로 포장된 좁은 농로로 되어 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길 좌우편에 제법 나이 든 키다리 소나무들이 빼곡히 들어 서 있어 그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바람 소리 들으며 걷기에 좋은 길이다.


암자가 가까이 오니 청량한 목탁 소리와 함께 염불 소리가 들려온다. 비록 CD에 녹음 된 앰프에서 들려오는 소리이지만 염불소리가 너무나 낭랑하다.  염불은 천수경 인 듯 하다.


“수리수리마하수리수수리사바하 수리수리마하수리수수리바하....”


시작되는 천수경은 불자들이 가장 많이 독송하는 관세음보살의 연호로 광대한 자비심을 찬양하는 다라니경(陀羅尼經)이라고 한다.


절의 염불 소리는 그 어떤 고전 음악 소리보다도 사람의 정신을 맑게 해 주는 이상한 힘이 있다. 탁, 탁, 탁 높낮음이 거의 없는 목탁 두드리는 소리와 스님의 독경 소리가 하나로 조화되어 나오는 염불소리야 말로 바로 자연이 울음소리이며 영혼의 노래 소리가 아닌가 생각 된다.

 

 
●와룡동천(臥龍洞天)

 

 

 

 

암자로 가는 길가에 ‘와룡동천’이라는 명문이 새겨 진 비석하나가 보인다. 동천(洞天)이라는 지명은 경치가 아주 뛰어난 곳을 말하는데 이곳 계곡이 그렇게 빼어난 계곡이었는지 몰랐다.

 

본래 동천(洞天)이란 의미는 높은 산, 그윽한 운치, 멋진 계곡 물이 흐르는 곳을 선정하여 ‘무슨무슨동천’이라 이름 짓는다. 물론 지금이 아니고 조선시대 이야기이다. 그래서 각 지방마다 멋진 절경을 동천이라 이름 지은 흔적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가까이는 울산의 운흥동천, 발리동천이 있고, 서울의 수락동천, 강화도의 함허동천 등등 전국에 이름난 동천이 많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자연 환경이 훼손되어 진정한 동천은 몇 곳이 안 된다고 전한다.  
와룡동천 또한 그 동안 많이 훼손이 됐는지 지금은 ‘동천’ 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하지만 동천이라는 비석까지 새운 것을 보면 분명히 옛날에는 절경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동천의 유래는 중국의 낙양동천으로부터 전래 됐는데 한국에도 그 영향을 받아 주로 조선시대에 풍류를 즐긴 선비들이나 문필가 등 유배된 정치가들이 산수 좋은 곳을 찾아 동천이라 한 것이 지금까지 그 흔적이 비석 등으로 남아 전해 오고 있는 것이다.

 
와룡(臥龍)이란 말은 말 그대로 용이 누워 있다는 말인데 이 곳 계곡은 남산 수리산(고위봉) 정상에서 시작한 천룡계곡이 서남산 쪽으로 구불구불 내려오다가 와룡계곡을 만나고 틈수골과 합쳐저 형상강으로 합류 한다. 그 긴 계곡의 모습이 마치 용이 누워 있는 것 같다 하여 ‘와룡’이라 한 것 같은데 이는 순전히 내 개인의 생각 일 뿐이다. 지금도 와룡계곡엔 작은 폭포들이 몇 곳 보이긴 하지만 훼손 상태가 심하고 숲에 묻혀 눈에 잘 띄지 않고 있다.


 

 

 

암자 가려다 그만 동천 얘기가 길어졌다.
드디어 암자가 보인다.
암자는 그야말로 초라함 그 자체이다.
그러나 왠지 나는 이 초라함이 좋다.
때로는 화려함 보다는 작고 초라한 것이 더 좋을 때가 있다. 
투박한 조선의 분청사기가 화려한 매화문 청자보다도 좋은 것처럼 말이다.
 

 

 

 

법당 안은 밖과는 달리 정갈하게 꾸며져 있다.
불단에는 석가여래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그 옆으로 지장보살이 독존으로 모셔져 있다.
불론 불상 뒤면에 후불탱화도 보인다.


암자에는 통도사에 계셨던 ‘고광’이라는 노스님이 지금의 늙은 보살(공양주)과 함께 있었는데 작년에 스님이 돌아 가셨다 한다. 그래서 지금은 스님이 계시지 않는 암자가 됐고, 이제는 홀로 된 보살님이 암자를 지키고 계신다. 아주 가끔씩 남자 스님들이 이 곳 암자를 찾아와 좌선이나 묵언선정을 하고 가시곤 한단다. 그래서 와룡사를 좌선도량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보살님, 저 여기서 며칠 자고 갈 수 없나요?” 하고 내가 늙은 보살님께 물었다.
“안 돼, 스님 말고 남정네는 못 자고 가....” 하고 보살님이 단호히 거절 하신다.


정말 초라한 암자이지만 며칠 묵으며 쉬고 싶은 그런 암자가 와룡암 이다. 암자 앞에는 작은 연못도 있고, 그림 같은 팔각 정자도 한 체 있다. 그러나 손이 없어 관리가 잘 되지 않은 상태이다. 보살님 말로는 필요할 때마다 암자 청소를 해주는 아주머니 한 사람을 부르는데 하루에 4만원을 주고 일을 시킨다고 했다.

 

 

 

 

●와룡사 부도

 

 

 

 

오늘 탐방의 키포인트는 암자 방문이 아니고 이곳에 있는 부도에 있다. 부도는 2기로서 모두 명문이 있고 조선시대 부도로 전해지고 있다. 두 부도 중 한기는 암자 위 쪽 커다란 절벽 암반 위에 올려져있고, 또한 기는 암자 좌측 작은 산신각 가는 길목 돌 축대 위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올라 앉아 있다. 부도에 쓰인 명문은 잘 알아 볼 수가 없다. 이끼가 끼고 마모도가 심하기 때문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부도의 주인 이름이 이렇게 나와 있다.


 ‘한월당 대사 선문(寒月堂 大師 善文)’
 ‘운암당 대사 대백(雲巖堂 大師 大伯)’

 

 

 

 

 

두기 모두 전형적인 석종형 부도이다. 사진 상으로는 부도의 명문이 잘 보이지 않아 내가 서툰 그림 솜씨로 그린 것을 사진과 함께 여기에 옮겨 싣는다. 북쪽 부도로 올라가려면 묶여 있는 받줄을 붙들고 가파른 암반을 기어서 올라가야 한다.


부도 위에 손을 얹어 본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 오는 듯 하다. 아무래도 이 귀중한 부도들이 안전하게 보전유지 될 수 있도록 지금의 허술한 상태를 당국에서 정비를 해야 될 듯 하다. 경주남산에는 미등록 이름 없는 문화재가 많다. 그런 문화재는 보호 관리상태가 좋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렇더라도 천 년 전 기왓장(와편) 한 조각이라도 문화재임에는 틀림없으니 소중히 여겨야 될 것이다. 꼭 등록된 유물만 문화재가 아니잖는가.

 

 

 

 

부도는 정말 적요(寂寥)에 들어 있다. 적요란 무엇인가, 고요함이다 그냥 고요함이 아니라 숨소리조차 시끄러운 그야말로 시간이 정지된 듯한 침울함의 상태를 말한다. 바로 죽음의 공간이다. 부도는 그런 적요를 홀로 즐기고 있는 듯 했다. 얼마나 저렇게 홀로 앉아 있었을까?
백년, 이백년, 아니면 500년?
거므티티한 부도 표면에 그런 시간의 찌꺼기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다.

 

 

 

 

“보살님, 저 부도는 쓰러질까 위태로운데요?”
“뭔 얘기여, 저 부도는 태풍이 와도 끄떡도 안 하거든...”
“내가 여기서 35년 동안 사는 동안 아무리 강한 비바람이 불어도 저 부도만큼은 끄떡도 없었어...“


아래쪽 부도(한월당 대사부도)가 너무 위태로워 보여 내가 보살님께 물으니 전혀 불안하지 않다고 하신다.


“아하, 부처님이 보호하고 계신가 보군요.”
“암, 그렇겠지...”


 

 

 

부도 답사를 마치고 법당으로 내려와 한참 동안 할머니 보살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보살은 이미 죽으면 자신이 묻힐 무덤(부도)을 암자 옆에 만들어 놓은 상태이다. 허리가 꾸부정하고 아랫배가 불룩 튀어나온 할머니 보살님... 그녀가 바로 와룡사의 주인이시고, 와룡사의 부처님이시고, 관세음보살의 화신이 아닌가 싶다.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또 오겠습니다.”


이 깊은 산 중에 늙은 보살님은 또 홀로 긴 밤을 보내야 한다.
그녀가 나를 보내고 방으로 들어가신다.
부도도 그녀도 깊은 적요에 들 것이다.

 

 

 

 

할머니의 유일한 친구들... 누렁이 둘이 나를 배웅한다.


“할머니 저 개들 목줄 풀어 주면 안 되나요?”
“안 돼,  줄 풀면 저놈들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서워하거든...”


저녁 7시가 훌쩍 넘어 왔던 길을 되돌아 암자를 나온다.
낭랑한 염불소리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나를 따라온다.


“할머니, 저 염불소리 하루 종일 틀어 놓나요?” 하고 내가 물으니
‘그래, 난 저 염불소리 없으면 불안해서 못 견뎌, 한 밤중만 빼고 틀어 놓는 편이지...“


할머니 보살님의 말씀이 돌아가는 내 발길을 자꾸 붙잡는다.
문득 세상 뜨신지 30년도 넘은 우리 어머니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래, 할머니 보살님이 바로 어머니의 모습이었어...“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암자를 나왔다.
아직 해는 서쪽 끝머리에 머뭇거리고 있다.
6월의 해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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