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1
●경주 남산 출토 철와골대불두
▷국립경주 박물관에 있는 대불두
경주남산의 철와골(鐵瓦谷) 절터를 찾아 간다. 철와골은 남산 통일전의 뒤쪽에 있는 골짜기로 골이 깊지만 비가 오지 않으면 계곡의 물이 거의 흐르지 않는 골짜기이다. 두 군데의 절터 이외엔 별다른 유적이 없어 그런지 이곳은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산길도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아 절터로 찾아 가기가 비교적 어려운 곳이다.
철와골은 사람들의 왕래가 별로 많지 않은 탓일까, 산길의 흔적이 너무 미미하여 찾아 가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남아 있는 길의 흔적이 무수한 낙엽들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통일전에서 약 6~700여 미터 정도 올라왔을까, 키 작은 대나무인 신우대 군락지가 나타난다.
남산의 옛 절터에는 어김없이 키 작은 대나무 밭이 있다. 왜 절 주변에는 대나무가 많을까? 혹자는 화살을 만들기 위해서 대나무를 심었다고 하는데 숭유억불 조선시대에 절의 승려들이 왜 살상의 무기인 화살을 만든단 말인가. 불교를 억압했던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사찰에 명하여 강제로 화살을 만들도록 했다는 말도 있지만 모두가 근거 없는 추측일 뿐이다. 아마도 자연환경의 영향일 것으로 본다. 대나무는 아주 잘 자라 추운 동절기에도 잎이 무성하다. 그래서 가옥 주변에 심으면 찬바람도 막고, 짐승들도 막는 일종의 방풍림이나 방호림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이런 방풍림은 일반 가옥 주변에도 조성되어 있다.
●탑재는 차가운 땅에 나뒹굴고...
철와골 절터... 옛 영화는 사라지고 쓸쓸한 적막감만 겹겹이 쌓여 있다. 깨지고 마멸된 석탑재 와 주춧돌들이 맨 땅에 쓸쓸히 앉아 있다.
철와골 절터도 이런 공식의 범주에 속한다. 절터에는 축대의 흔적이 두 곳이 있고, 위쪽 축대의 건물터에는 탑의 기단석 2개가 매몰되어 있고 아래쪽 축대 대나무 숲 속에는 심하게 마모된 석탑재인 옥개석 3매가 보인다. 그러나 이런 잔잔한 흔적을 무색케 하는 일대 사건(?)이 이곳에서 벌어졌으니 바로 철와골 대불두(大佛頭)의 출현이다.
대사건은 이렇게 시작된다. 지금(2012년)으로부터 대략 50년 전에 일어나 사건이다. 1959년 철와골에서 대형 불두(佛頭)가 발견되었다. 발견된 불두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데 불두의 높이가 자그마치 1.53m나 된다. 불상 관련 학계의 판단에 의하면 이 불두는 일반적인 불상의 비례로 보아 만약 입상(立像)이었다고 하면 그 전체 높이가 무려 10m가량이나 되고 설혹 좌상(坐像)이었다고 해도 그 높이가 6m가 넘는 규모였을 것으로 판단 한다니 그만 입이 딱 벌어질 따름이다. 그리고 더욱 놀랍고 극적인 사건은 불두를 발견한 이야기에 있다. 1959년 9월17일 새벽 남해안으로 ‘사라호’라는 초대형 태풍이 상륙했다. 태풍 사라호는 단 몇 시간 만에 영남지방 전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지나갔다.
경주남산 그 깊은 산 속 철와골도 사라호 태풍의 마력을 피할 수가 없었다. 강력한 바람과 물이 계곡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태풍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철와골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잠잠해 졌다. 그러나 잠잠해 진 것이 아니었다. 태풍은 골짜기 한 구석에 거대한 부처님 머리 하나를 선물(?)로 놔두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철와골 대불두 그 심연의 미소 속으로...
철와골 대불두(大佛頭), 안타깝게도 코언저리가 깨지긴 했지만 이목구비가 수려하다. 근엄하면서도 자비의 미소가 불안(佛眼)에 가득하다. 그런데 귀가 보이지 않는다. 왜 귀가 없을까? 혹시 오랜 세월에 떨어져 나간 것일까? 자세히 보면 아예 조각할 때부터 귀가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미완성 일까?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각한 사람의 숨은 의도가 숨어 있을 듯하다.
바로 세속의 모든 소리를 듣지 않으시겠다는 뜻으로 귀를 새기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생각이지 공식적인 학계의 주장이 아니다. 눈도 감으시고, 귀도 없으시니..... 오욕에 찌들어 있는 속세의 소리를 듣지도 보지도 않으시겠다는 뜻이라면 뭇 중생들이 너무나 가엾다.
●철와골에 부처님이 나타나셨다.
마을사람들은 흥분했고 이 소식을 경주박물관(관장 박일훈)에 급히 알렸다. 박물관 사람들이 급파되어 현장을 조사했다. 과연 대형 불두가 골짜기에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 불두를 박물관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불두가 워낙 육중하고 커서 쉽사리 옮길 수가 없었다. 당시만 해도 중장비가 아주 열악했기 때문이다.
불두의 높이가 153cm. 무게만도 1.7톤이나 달했으니 그 깊은 산 속에서 장비하나 변변히 없었던 당시에 어찌 쉽게 불두를 박물관으로 옮겨 갈수 있었겠는가. 운반을 포기하고 그로부터 불두는 현장에 그대로 방치되다가 6년 후인 1965년 12월22일에야 군부대의 도움을 빌려 마침내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불두는 지금 경주박물관 옥외 전시장에 있다.
그러나 박물관에 전시 되어 있는 어떤 불상도 아무런 종교적 예배 대상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 그저 한낱 문화재로서의 대우만 있을 뿐이다. 만약에 철와골 대불두가 박물관으로 옮겨지지 않고 원대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수많은 순례자들의 예배 대상이 됨은 물론, 관심 있는 사람들의 유적 답사지로서 더 많은 인기와 명성을 얻고 있을 거라고 믿는데 나의 생각이 잘못된 편견 일까.
불두의 표정은 정말 깊고도 심오(深奧)한 느낌을 갖게 한다. 민머리에는 큼직한 육계(六界)가 정수리에 우뚝 솟아 있고, 이마에는 백호(白毫)를 돋을새김 했으며, 이마와 눈두덩 사이에는 눈썹을 깊게 한 홈으로 초승달처럼 표현한 불두. 굳게 다문 두툼한 입, 그러면서도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다.
철와골 불두의 출현처럼 아마도 남산 어딘가에는 무수히 많은 불두가 땅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 되는데 지금도 머리 없는 석불이 남산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작은 현실에도 만족하고 묵묵한 눈빛으로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지족(知足)의 가르침을 일깨워 주시는 그 분과의 만남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다시 어둠이 찾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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