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9.11
■경주남산 에도 성곽이 있다. ●남산 城의 개념
남산신성(南山新城)은 도당산토성(都堂山土城), 남산토성(南山土城), 고허성(高墟城)과 함께 신라의 왕궁 월성(月城)을 방위하기 위해 남산에 축성되었던 삼국시대 신라의 대표적인 현존하는 석성의 하나로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진평왕 13년(591년)에 처음 축성이 있었고 문무왕 3년(663)에 장창(長倉)을 만들고 대대적으로 증축되었다고 파악되고 있다.
●남산신성의 규모 및 개략도
•성곽 총 길이 : 4.85km •총 면적 약 : 7.08km2 •수구 8개소 •3개의 무기 및 식량 저장고 •성문지 6개소 •망루 22개소 •건물지 5개소 (*1999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조사)
●남산 성의 규모에 대한 역사서의 기록
성의 규모는 삼국유사》나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고 《삼국사기》 본기(本紀)에 2,854보(步)라고 더 상세 기록됐다. 거의 대부분의 성벽이 무너지고 유실되었으나, 돌 세로20cm, 가로 50cm 정도의 가공석으로 축조하고, 높이가 약 2m 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평왕 때는 구려와 백제의 급박한 침입에 대처하고, 문무왕 때는 당(唐)나라와의 싸움에서 도성을 수비하기 위한 요새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경주남산신성
울산에는 서생포 왜성이 있고, 관문성이 있다. 서울에는 북악산성이 있고, 남한산성이 있다. 수원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화성이 있고, 전남 순천에는 낙안읍성, 충남서산에는 해미읍성이 유명하다.
이 외에도 옛 성곽은 많다. 모두들 성곽을 복원하여 관광자원으로 개발한 지방도 있고 문화유적지로 소중히 관리하는 곳도 있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대부분 경주남산에도 성곽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그러나 경주 남산에도 어엿한 성곽이 있다. 위에서 열거한 성곽들은 울산의 관문성(722)을 제외하곤 대부분 조선시대 성곽들 이지만 경주의 성곽(남산성, 명활산성, 선도산성, 반월성 등)들은 그 축성 년대가 자그마치 천년하고도 수백 년이 지난 고신라시대의 성곽들이다. 오래된 성곽으로서는 국내 유일한 고성(古城)인 샘이다. 그런데 이런 찬란한 고성을 경주에서는 별로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그 관리 또한 부실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남아 있는 몇 개 안 되는 성벽마저도 점점 무너지고 있는 현실이다. 비바람 같은 자연 재해에 무너지고, 무분별한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 아마도 현재와 같이 관리가 허술한 상태가 지속 된다면 수 십 년 뒤엔 그나마 남아 있는 성곽이 모두 사라질지 모른다.
2.남산성은 왜 남산신성(南山新城)인가? -사적 제22호
남산신성(南山新城)은 모두 신라의 왕궁 월성(月城)을 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 된 성이다. 원래 성곽 이름은 남산성이었는데 그 후 이름이 남산신성으로 바뀌었다. 그러면 왜 성 앞에 새신 자 신(新)자가 붙었을까?
남산성은 기존에 남산에 있던 성곽을 신라 26대 진평왕(591년)이 전국 각지에서 인력을 징발해 남산성을 새로 만들거나 기존 성을 대폭 보수 정비했다하여 신성(新城)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런 명칭은 성곽을 쌓으면서 성벽 일정 구간마다 신성비(新城碑)를 새웠는데 이 비문에 밝혀져 있다.
3.남산신성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남산성은 신라의 왕궁인 월성에서 잘 보이고, 명활성 같은 곳에서 잘 보이는 군사 요충지 이랄 수 있는 남산의 북쪽 지역에 위치해 있다. 총 면적은 약 7.08㎢ 이고, 성곽길이는 4.85km 이다.(1999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측량) 성으로서의 본격적이 축성은 신라 진평왕 13년(591)에 쌓았고, 그 다음 문무왕 19년(679)에 성을 크게 고쳐 쌓았다고 전한다. 지금 성벽이 잘 남아있는 부분은 이때 쌓은 것으로 보이고, 성 안에는 3개의 큰 창고가 있어 무기와 군량미를 저장한 흔적이 남아 있다.
남산에는 신성 이외에도 남산 맨 북쪽 끝머리에 도당산 토성(都堂山土城)이 있고, 남산 이곳저곳에 흙으로 쌓은 남산토성(南山土城)이 겨우 알아 볼 정도로 남아 있다. 그리고 남 남산 방향 고위봉 부근에 고허성(高墟城)이 있다. 고허성은 신성 축조 후 30여년 후인 진평왕 48년에 쌓은 것이다.
4.남산신성비가 가르치는 교훈
경주남산 신성비는 모두 200여개로 추정 되는데 현까지 모두 10개가 발견 되었다. 오늘 날 남산성이 아주 중요한 문화유적 사적지로 관리보존 되어야하는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 신성비 때문이다. 신성비에 새겨진 비문(碑文)의 내용을 보면 남산성이 현대에 얼마나 중요한 교육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를 현대의 모든 건축 축조물에 적용한다면 부실공사 같은 것을 막을 수 있는 획기적 제도라 생각한다.
그러나 정부의 관리들이나 기업인들이 어찌 경주 남산성의 신성비 따위(?)를 알겠는가. 그러면 남산신성비의 내용이 과연 어떤 것인지 비문을 들여다보자.
그 비문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만일 3년 이내에 (우리가 쌓은)성벽이 무너지면 벌을 받겠다."
너무 간단명료하다. 그러나 이 짧은 글에는 감히 부실공사 같은 것을 생각할 엄두도 못 내게 하는 위력이 숨어있다.
●남산신성비문 원문(제1비)
이러한 제도는 마땅히 오늘 날 우리가 본받아 들여야 하는 좋은 제도라 여긴다. 이 신성비의 복제품을 만들어 정부 청사나 지방의 모든 관공서 그리고 건설업계 사옥 등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하나씩 전시해 놓는 다면 부실 공사를 막는 좋은 지표가 될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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