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눈~
‘남의 물건을 훔치고 싶어요.’
이병률의 여행 산문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의 20쪽, 4째 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을 조금 바꾸어 옮기면 이렇다.
앞을 보지 못하는 분(장님)에게 물었다.
“(당신이 만약에 눈을 떠) 앞을 볼 수 있다면 뭘 제일 먼저 하고 싶어요?”
하고 물으니 그가(장님) 이렇게 대답을 한다.
“남의 물건을 훔치고 싶어요. 그 기분을 알고 싶어요.”
세상에 이렇게 뚱딴지같은 소리가 어디 있는가.
남의 물건을 훔치고 싶다니....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을 할 것이다.
“내 얼굴을 제일 먼저 보고 싶어요.”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싶어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제일 먼저 보고 싶어요.”
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그는 왜 제일 먼저 남의 물건을 훔치고 싶다고 했을까?
“물건을 훔치고 싶어요.”
이것이 오늘의 화두이다.
이 말의 뜻은 무엇일까?
이 한마디 말에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바로 인간은 탐욕과 집착의 동물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인간은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에 욕심을 내고
어떡하던 소유하려고 하는 집착에 빠져 산다.
더 좋은 자동차가 갖고 싶고, 더 넓은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한다.
멋진 옷을 사 입고 싶어 하고, 값비싼 명품을 갖고 싶어 한다.
값진 보석을 지니고 싶어 하고, 남보다 더 예뻐지길 바란다.
남 보다 더 많이 소유하기를 바라고, 자신만 행복해 지길 바란다.
남에게 나눠 주기보다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움켜쥐고 산다.
............
.........
......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 눈을 뜨면서부터 끊임없이 소유욕에 매달려 산다.
그래서 인간을 탐욕의 노예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소유욕과 집착은 모두 물질에 대한 소유욕 때문이고,
눈에 보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보이지 않으면 실체도 보이지 않는다.
실체가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것을 간절히 갖고 싶다는 욕망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앞을 못 보는 장님을 존경해야 한다.
탐욕도 집착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님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진리를 깨친 현자(賢者)이다.
현자는 세상의 온갖 물질을 보고도 탐욕과 집착을 일으키지 않는다.
사람은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물건을 탐한다.
차라리 앞을 보지 못하면 보이지 않으니 탐욕이 생기지 않는다.
바로 “남의 물건을 훔치고 싶어요.” 의 진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 평범하고 짧은 이야기 속에 그런 깊은 진리가 숨어 있다니...
작가의 깊은 사유(思惟)의 세계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결코 탐욕의 늪에서 빠져 나가지 못할 것이다.
우리 집 TV가 너무 오래되고 작다.
요즘 새로 나온 고화질 광폭 LED TV로 바꾸고 싶다.
디지털 카메라도 더 좋은 것으로 바꾸고 싶다.
스마트폰 새 제품이 출시 됐다는데 폰도 바꾸고 싶다.
이런 욕망은 모두 보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차라리 앞 못 보는 장님이 되고 싶다.
앞이 보이지 않으면 모두 필요 없는 것들이다.
앞을 못보는 사람은 세상이 온통 까맣게만 보일 것 같지만
그분들에겐 그분들만 가지고 있는 눈이 있다.
바로 상상의 눈이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정신세계의 눈이다.
우리는 결코 가질 수 없는 눈이다.
욕망의 눈, 탐욕의 눈만이 있을 뿐이다.
>미지로
'※思索의 窓門 > 思惟의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래 그렇게 살자. (0) | 2012.11.25 |
---|---|
시를 쓰고 싶다. (0) | 2012.11.01 |
사색의 창(1) (0) | 2012.09.05 |
천년 석탑과 두 여인~ (0) | 2012.05.22 |
♪우리 어머니... (0) | 2011.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