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문화재 관련

한국의 고대 토기들~

migiroo 2013. 1. 11. 23:25

 

 신석기 시대의 토기들...

 

비록 깨지고, 금가고, 퇴색된 토기 들이지만

감히 인간들이 넘 볼 수 없는 수천년의 시간의 흔적들이 찐덕찐덕 달라 붙어 있다.

한낱 오래된 그릇이 아닌 살아 숨 쉬고 있는 유물들이다.

언제가 우리의 조상들이 사용했을 이야기들이 토기 속에 담겨 있음을 본다.

지금은 비록 박물관이라는 유리관 속에 갇혀 있지만.....

우리는 이것들에게서 역사와 전통의 문화를 배운다. 

 

찬라한 신라 금관도 좋지만

나는 부서진 토기들을 더 사랑한다.

 

 

 

신석기시대(기원전 8,000-기원전 1,000년 무렵)는 빙하기 이후 달라진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새로이 토기와 간석기를 만들고 정착 생활을 시작한 시기이다.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 유적으로는 집터와 무덤, 조개더미 등이 있으며, 전국적으로 400여 곳에 이른다. 서울 암사동, 강원 양양 오산리, 부산 동삼동 등이 대표적인 유적이다.

 

 

 

 

신석기인들은 물과 식량이 풍부한 바닷가나 강가에 움집을 짓고 고기잡이와 사냥, 야생식물을 채집하면서 살았다. 이 시기에 조, 기장 등을 재배하는 농사도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 간석기와 뼈 연모는 더욱 효과적으로 식량을 구할 수 있는 도구였으며, 토기는 식량을 저장하고 음식을 조리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들은 실로 짠 옷감이나 동물 가죽으로 간단한 형태의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옥·동물 뼈와 뿔·조가비 등으로 몸을 꾸몄다. 또한 이들은 일본 열도, 중국 동북 지역, 연해주 등 주변의 여러 집단과 활발히 교류하였다.

 

 

1.빗살무늬 토기(櫛文土器) 

덧무늬토기 이후에 등장한 것으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여러 기하학적 무늬는 자연을 배경으로 살아간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토기는 서울시 암사동 집터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겉면을 삼등분하고 각각 다른 무늬로 장식하였다. 토기 아래쪽에 뚫린 두 개의 구멍은 깨진 토기를 임시로 수리하여 사용했던 흔적으로 추정된다. 이를 통해 당시의 토기는 누구나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만드는 기술자가 따로 있었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2.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

 

 덧무늬토기는 토기의 겉면에 진흙 띠를 붙이거나 겉면을 맞잡아 돋게 하여 무늬를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중 가장 이른 시기에 나타난다. 주로 남해안과 동해안 지역에서 출토된다. 이 토기는 경남 통영시 연대도 조개더미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체에 덧무늬를 마치 한 송이 꽃봉오리처럼 베풀었다. 신석기인들의 뛰어난 공간 구성력과 미적 감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3.덧띠토기(粘土帶土器)

덧띠토기는 아가리에 진흙 띠를 덧붙인 토기로 배가 부른 바리 모양[鉢形]을 하고 있다.

대전 괴정동 유적에서 출토된 덧띠토기는 진흙 띠의 자른면이 원형을 띠고 있다. 자른면이 원형인 덧띠토기는 검은간토기[黑色磨硏土器]와 더불어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서 초기철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이다. 이들은 중국 요령지방에서도 출토되고 있어 다른 문화요소들과 함께 이 지역에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3.덧띠토기(粘土帶土器)

 

 

덧띠토기는 아가리에 진흙 띠를 덧붙인 토기로 배가 부른 바리 모양[鉢形]을 하고 있다.

대전 괴정동 유적에서 출토된 덧띠토기는 진흙 띠의 자른면이 원형을 띠고 있다. 자른면이 원형인 덧띠토기는 검은간토기[黑色磨硏土器]와 더불어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서 초기철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이다. 이들은 중국 요령지방에서도 출토되고 있어 다른 문화요소들과 함께 이 지역에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4.검은간토기(黑色磨硏土器)

 

 

검은간토기는 보통 긴 목을 지닌 단지의 형태로 표면에 흑연 등의 광물질을 바르고 잘 문질러 구웠기 때문에 검은 광택이 돈다.

검은간토기와 자른면이 원형인 덧띠토기[粘土帶土器]는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서 초기철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이다. 이들은 중국 요령지방에서도 출토되고 있어 다른 문화요소들과 함께 이 지역에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5.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

 

함경북도 웅기 송평동 조개무지에서 출토된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이다. 청동기시대에는 토기 겉면에 무늬가 없는 민무늬토기가 등장한다. 이 시대 토기들은 굵은 모래나 돌가루를 섞은 다소 거친 진흙으로 빚어 한뎃가마에서 구웠으며 바닥이 납작하고 적갈색을 띤다. 민무늬토기는 전체적인 형태나 아가리 부분에 베풀어지는 무늬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로 나누어진다.

청동기시대 전기의 대표적인 토기인 구멍무늬토기는 아가리 아래에 거의 같은 간격으로 작은 구멍이 뚫어져 있다. 송평동 조개무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아가리 부분이 밖으로 꺾여 있고 아가리 바로 아래에 구멍무늬가 두 줄로 베풀어져 있어 일반적인 구멍무늬토기와는 차이가 있다.

 


6.항아리(組合式牛角形把手附長頸壺)와 단지

 

 

목이 긴 항아리에 쇠뿔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항아리와 주머니 모양의 단지이다. 원삼국시대의 대표적인 와질토기로 밀폐된 굴가마에서 구워 회색을 띤다. 형태는 민무늬토기에서 변화된 것으로 주로 널무덤[木棺墓]에서 출토되며 원삼국시대 전기에 유행하였다. 경상남도 김해 다호리 널무덤[木棺墓]에서 출토되었다.

 


7.오리모양토기(鴨形土器)

 

죽은 이의 영혼을 천상으로 인도하는 새 또는 오리를 본떠 만든 와질토기로, 의식용이나 부장용으로 사용되었다. 속이 빈 몸통은 술 등 액체를 담을 수 있고 등과 꼬리부분에 있는 구멍으로 액체를 담거나 따를 수 있다. 『삼국지위서동이전三國志魏書東夷傳』에는 "以大鳥羽送死, 其意欲使死者飛揚 (장례에 큰 새의 깃털을 사용하는데, 이는 죽은 자가 날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라는 기록이 있어, 당시의 생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8.아라가야 토기(阿羅加耶土器)

 

 

아라가야는 함안지역에 위치한 가야로, 변한의 안야국(安邪國)이 성장·발전한 나라이다. 낙동강(洛東江)과 남강(南江)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육상과 해상의 교통 이점을 이용하여 성장하였다. 아라가야 토기는 상하의 폭이 똑같은 공(工)자형 굽다리접시와 굽다리접시의 굽에 뚫린 불꽃모양[火焰形]의 구멍이 특징적이다.

 


9.토우 붙은 항아리(土偶附長頸壺)

-국보 195호

 

 

 

토우가 붙은 이 항아리는 아가리와 항아리 밑 부분이 찌그러지고 표면에 기포가 있지만, 완벽하게 남아 있어 토우 붙은 항아리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1973년 경주 대릉원 조성 공사를 위한 발굴조사에서 출토되었다.

목 부분에 물결 무늬와 원 무늬를 2단으로 나누어 장식하고, 그 위에 남자와 뱀, 개구리를 연속으로 붙였다. 남자는 오른손으로 남근男根을 잡고, 왼손에는 막대기를 들고 있으며, 뱀은 개구리의 뒷다리를 물고 있다. 신라의 토우는 춤추고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인물부터 출산 장면, 남녀의 성교장면까지 연출하는 등 다산과 풍요를 바라는 당시 사람들의 소박하고 솔직한 모습을 표현하였다.

 

*위의 자료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옮겨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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