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6.29 강우방의 수월관음의 탄생 -강우방 저/글항아리
수월관음도을 통한 ‘영기화생’이라는 독자적 이론 제시
일 년 만에 경주박물관에 갔다. 지난 10년 동안 일주에 두 세 번씩 다녔던 곳이었는데.... 은퇴(?) 선언 후 발길을 끊었다가 지인을 만나기 위하여 엊그제 박물관에 갔다가 강우방 선생이 쓴 ‘수월관음의 탄생’이라는 대형 책자를 받았다.
수월관음도는 그 동안 불로그에 몇 차레 글을 올릴 만큼 관심이 많았던 분야인데 좋은 책을 받고 나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강우방 박사의 ‘수월관음도의 탄생’은 그 동안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던 수월관음도에 대한 인식을 ‘영기화생론(靈氣化生論)’이라는 새로운 학설로 증명한 것이어서 관심 있게 읽으면 고려불화는 물론 수월관음도에 대하여 보다 심도 있는 지식을 얻을 것이라 믿는다.
다음은 책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수월관음의 탄생』은 강우방의 ‘영기화생론’을 증명하는 장이기도 하다. 생명의 시초인 제1영기싹이 생겨나서 그것이 꼬불꼬불한 모양으로 다시 제2영기싹을 만들어내고 점차적으로 구체적인 생명의 형태로 자라나게 되는 것이 영기화생론의 개관이다. 이 부분은 저자의 직접적인 설명을 들어봐야 한다.
“고려불화의 조형을 자세히 살펴보면, 화면상의 복식과 복식에 표현된 공예품에 베풀어진 것들만이 무늬가 아니고, 그 밖의 전체 화면에 펼쳐진 자연과 인체 등 모든 조형이 무늬임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그 모든 무늬가 영기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일체에 부여한 영기에서 관음보살이 화생하는 것이어서 ‘관음보살의 영기화생’이라는 신비한 탄생의 광경을 보여준다. 일체에 영기를 부여한다는 것을 영기화, 줄여서 영화靈化라고도 한다. 이 책에서는 기氣 대신 영기靈氣라는 용어를 쓰기로 한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기’를 굳이 ‘영기’라고 부르는 까닭은 기를 조형적으로 가장 훌륭하게 표현한 용, 봉황, 거북, 기린 등을 사령四靈이라고 부르는 데서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령이란 현무와 백호를 빼고 거북(실은 용龍)과 기린을 포함해 부르는 것이지만, 현무와 백호를 포함한 사신四神도 충분히 사령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기란 우주에 충만하되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것으로, 억지로 설명하자면 서양의 ‘에너지’에 대응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는 자연과학적인 면과 함께 철학적·사상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동양 우주생성론의 중심 개념을 이루므로 단지 물리적 현상인 것만은 아니다. 이 기에서 만물이 생긴다고 하니, 그 기를 조형화한 영기문에서 만물이 탄생하는 도상들이 한없이 성립해가는데, 구체적이며 자세한 것은 책을 읽어가면서 점점 드러날 것이다. 수월관음도의 도상적인 기원 문제, 수월관음도에 대한 경전을 포함한 여러 문헌의 기록들에 대한 검토 등 역사적 접근에 입각한 연구는 이미 선학들이 상당히 이뤄놓았으므로 이 책에서 다시 논하지 않는다. 놀랍도록 고차원의 표현으로 이루어진 ‘순전한 조형 자체의 구조’를 밝힘으로써, 그림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특수성’에서 ‘초역사적 보편성’을 추구하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따라서 조형해석학은 사상사思想史와도 직결된다. (…) 이 글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법론을 따랐다. 과거의 일반적인 양식 파악과 도상해석학의 방법이 아님은 물론이고 내가 기존에 이야기했던 방법론과도 다르다. 새로운 이론에 입각한 ‘조형해석학’이라는 방법론에 따라 썼다. 작품을 전체의 유기적 관계에서 파악함은 물론 미시적 관찰을 통해 그 세계에 숨겨진 조형의 구조와 그 구조 자체에 내재하는 상징을 밝히려 한 것이다. 조형의 이러한 성립과정을 단계적으로 밝히는 작업에서 중요한 것이 ‘채색분석법’이다. 이 글에서는 그 여러 단계를 도판을 통해 하나하나 펼쳐 보일 것이다. (…) 고구려 고분벽화의 여러 무늬 가운데 우선 안악 3호분 벽화 영기문, 삼실총 벽화 영기문, 강서중묘 벽화 영기문 1, 사신총 벽화 영기문, 강서중묘벽화 영기문 2, 강서중묘 벽화 영기문 3, 강서대묘 영기문 등 일곱 가지 영기문을 채색분석해 생명 생성의 과정을 보여주는 영기문의 전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발점이 되는 생명의 최소한의 단위인 고사리 모양 ‘제1영기싹’, 즉 선線으로 된 생명의 싹이 ‘둥근 면面’이 되고(일본에서는 혹이라 부른다), 다시 자라서 더 큰 면으로 변하다가 다시 입체적으로 변해 독립하여 모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또 덩굴무늬 영기문이 어떤 원리에 따라 전개되어가는지도 파악해볼 수 있다. 앞의 세 가지 영기문은 제한된 공간 때문에 영기문을 길게 전개할 수 없지만 그 자체에서 무한히 전개되고 있으며, 다음의 세 가지 영기문은 길게 무한히 전개되는 조형이다. 이들 영기문을 일본이나 한국 학계에서는 괴운문怪雲文이나 당초문唐草文이라 부르고 있다. 대개 무엇인지 알 수 없으면 괴운문이나 당초문이라 부르곤 한다. 일반적으로 영기문은 회화나 조각이나 공예품에서는 단색으로 나타낼 때가 많아서 전개과정을 파악할 수 없다. 한편 색깔을 달리하여 하나하나 채색해보면 무늬의 형성과정과 구성 원리를 정교하게 밝힐 수 있다. 영기문의 형성과정을 채색을 달리해 단계적으로 그려나가면 곧 생명의 생성과정을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그 생성과정은 문자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우니 채색분석한 것을 보면서 이해하도록 그 곁에 설명해두고자 한다. 이 글에서 영기문이라는 생명 생성의 과정을 보여주는 일체의 무늬는 이 일곱 가지 영기문의 전개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나는 3000여 점의 영기문을 채색분석하며 이것이 모두 ‘생명 생성의 과정’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 영기문은 순환성, 연속성, 역동성 등 여러 속성을 지닌다. ‘영기문에 공통하는 속성’은 당연히 ‘영기의 속성들’이기도 하다. 영기 및 영기문의 속성을 찾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영원성永遠性, 순환성循環性, 연속성連續性, 파동성波動性, 역동성力動性, 폭발성爆發性, 율동성律動性, 자발성自發性, 충만성充滿性, 균형성均衡性, 전일성全一性, 상보성相補性(相卽相入), 다양성多樣性, 무한성無限性, 반복성反復性 등을 들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영기화생의 원리를 바탕으로 수월관음의 화생을 다루고 있다. 그 과정에서 영화된 물이 가득 찬 항아리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만병화생, 천년 묵은 향목을 태워 그 향기에서 보살이 탄생하는 향기화생의 모티프도 최초로 제기했다. 이러한 주장은 다이토쿠 사 소장 고려 수월관음도 한 작품을 통해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동시대에 그려진 다른 작품들, 불상과 조각들, 의복의 무늬, 도자기 등을 통해 폭넓게 검증되고 있기 때문에 나름의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무엇보다 치열하게 생명과 생성의 과정으로 고대예술의 중심적 특징을 발굴해내고 있다는 것 또한 이 책 『수월관음의 탄생』이 갖는 장점이다.
저자 강우방 프로필
저자 강우방은 1941년 만주 안동(지금의 단둥) 출생. 서울대 독문학과 졸업.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학사 편입-중퇴. 일본 교토와 도쿄의 국립박물관에서 연수하고 미국 하버드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 및 학예연구실장,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및 관장을 역임했으며 이화여대 초빙교수로 봉직하다 현재 일향 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으로 있다. 저술로는 논문 모음집인 『원융과 조화-한국불교조각사의 원리 1』과 『법공과 장엄-한국불교조각사의 원리 2』가 있다. 불교조각 개설서로는 『한국불교조각의 흐름』이, 불화에 관한 것으로는 『감로탱』이 있다. 에세이 형식으로 쓴 예술론으로는 『미의 순례』『미술과 역사 사이에서』 『한국미술, 그 분출하는 생명력』 그리고 사진전 도록이자 에세이인 『영겁 그리고 찰나』 등이 있다. 평생 한국 미술의 모태가 통일신라시대 미술에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2000년 이래 더 근원적인 모태가 고구려 미술임을 깨달아 한국 미술 전체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나아가 세계미술사를 한데 아우르는 작업을 하고자 중국과 일본, 그리스, 로마, 서아시아 미술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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