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7.6
7월, 봉숭아 꽃 피고 예쁜 여인네 손톱 빨갛게 물든다. 우리 집 담장 밑 봉숭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디선가 가슴 애는 봉선화 노래 소리 아련히 들려온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
가곡 봉선화, 우리 젊었을 때 너무나 많이 듣고 부른 노래.... 봉선화는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한이 서린 노래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이 ‘봉선화 노래’를 알기나 할는지.... 봉선화 노래가 어디 있나 하고 인터넷에 찾아보니 정말 오래된 노래 두 곡이 어렵게 검색된다.
일제 강점기 말 1940년, 김형준 작사, 홍난파가 작곡한 걸 소프라노 김천애가 불러 더욱 유명해진 가곡 봉선화, 그리고 엉뚱하게도 가수 조용필씨가 부른 봉선화이다. 이 두 곡을 다운받아 듣고 또 들어본다.
구슬픈 선율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니 가슴에서 슬픔이, 눈에서 눈물이 봉숭아 꽃잎 떨어지듯 뚝뚝 떨어진다. 나도 한번 따라 불러본다. 가사 1절은 저절로 불러지는데 2,3 절은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가사를 검색하여 적어 놓고 따라 부른다. 역시 울컥 울컥 슬픔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그 중 3절이 가장 심금을 울린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봉숭아물들인 돌아가신 어머니의 손도 생각도 나고, 어린 내 손톱에 물을 들여 주던 막내 이모도 생각난다. 어릴 적 이웃 누나들의 빨간 손톱도 생각나고. 사내애가 봉숭아물은 들였다고 놀려대던 어깨동무들도 생각난다. 그들은 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또 눈물이 글렁 글렁 해 진다.
요즈음 여인들의 손은 봉숭아 대신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지만.... 어찌 매니큐어 손이 봉숭아물 들인 손보다 예쁠 수가 있겠는가.
봉선화에 얽힌 이야기들~
이야기 1, 봉선화인가, 봉숭아 인가?
어릴 때는 봉숭아라고 불렀었는데 ‘봉선화’가 표준 이름 이란다. 그래도 봉선화 보다는 봉숭아가 더 정감이 가는 이유는 뭘까. 봉숭아만큼 우리 생활과 가까운 야생화가 또 있을까. 그는 늘 우리 생활 주변에 함께 하며 산다. 시골집 화단에도 있고 담장 밑에도 있다. 도심지 공원에도 있고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산다. 초등학교 유치원 화단에도 있다. 그러나 봉선화는 사람들로부터 대접을 잘 받지 못한다. 그저 흔하디흔한 야생화쯤으로 천대 시 한다. 민족의 꽃 봉선화를 사랑하자.
이야기 2, 왜, 봉선화를 손톱에 바르면 빨간 물이 드는 것일까?
봉숭아물이 드는 것은 봉선화 잎이나 꽃에 매염료라는 물질이 있기 때문이다. 이 염료가 어떤 물체(손톱)의 표면에 묻으면 염색이 되는 특성이 있다.
봉숭아물들이기 매염제는 흔히 백반(또는 명반)이나 소금을 사용한다. 봉숭아꽃만이 아니라 잎이나 줄기 그리고 흰꽃, 분홍꽃 그 어떤 것을 가지고 물들이기를 해도 봉숭아에는 매염제가 있어 공통적으로 빨간 물이 든다.
이야기 3. 꽃말에 얽힌 이야기
봉숭아의 꽃말은 ‘신경질’ 또는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란다.
꽃말이 왜, 하필 히스테리를 연상케 하는 이름 일까, 그것은 툭하고 튀겨 나가는 봉숭아의 씨주머니 특성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란다.
봉선화의 씨주머니는 껍질이 다섯 조각으로 되어 있고 끝에는 솜털이 나 있다. 익으면 검은빛이 되고 갈색의 씨앗이 씨주머니에 들어 있다. 그런데 씨주머니에 사람 손이나 짐승의 발에 닿기만 하면 툭 튀겨져 씨앗이 밖으로 튀어 나간다. 씨주머니는 언제나 안쪽으로만 말린다. 씨주머니에 탄력이 생기는 것은 안쪽과 바깥쪽 껍질의 탄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씨앗이 더 멀리 튀겨 나가게 되는 것이다. 바로 신비로운 자연의 생존방식이다. 그래서 이런 툭 튀어 나가는 성질 때문에 '신경질' 또는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꽃말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생존방식을 가진 야생화는 봉선화를 비롯하여 여럿 종류가 있다.
이야기 4. 옛 날에 봉선화를 집 화단이나 울타리 등에 심은 이유
옛 날에 봉선화를 집 마당에 심은 것은 악귀나 전염병을 옮기는 역귀(疫鬼)의 침입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농가의 울타리나 밭 가장자리에 봉선화를 많이 심는데 이는 여름철에 자주 출몰하는 뱀을 퇴치하는데 효과가 있기 때문이고, 작물의 병충해를 방지하는데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손톱에 봉선화 물을 들이는 것도 이런 악귀나 역귀로부터 보호하자는 뜻이 담겨져 있다. 그러니 열심히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자. 봉숭아 잎이나 꽃을 잘 보관하면 겨울철에도 물을 들일 수 있다. 여자들이 손톱에 매니큐어를 자주 바르면 발암성 화학물질로 인해 인체에 해롭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이야기 5. 봉숭아물들이기 풍습에 따른 이야기
우리 풍습에 봉숭아물은 주로 젊은 여자들이 했지만 아이들도 물을 들였다. 봉숭아물은 열 손가락을 다 들이는 수도 있고 새끼손가락 또는 *무명지에만 들이기도 하는데 엄지발가락에 들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부모의 상중(喪中)에 있는 사람은 봉숭아물을 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무명지: 엄지손가락으로부터 넷째 손가락. 약지(藥指). 약손가락)
그리고 다음과 같은 믿거나 말거나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 온다.
• 엄지손가락에 봉숭아물을 들이면 아버지는 오래 살고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신다. • 봄날이 지난 뒤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면 불길하다. • 봉숭아를 손톱에 매고 문지방 셋을 넘으면 봉숭아물이 들지 않는다. • 오빠나 남동생이 있는 사람은 유월에 봉숭아물을 들이지 않는다. • 봉숭아물이 가을 서리 내릴 때까지 손톱에 남아 있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이야기 6. 봉선화의 약용에 대한 효능(본초강목)
봉숭아는 민간요법에 잘 이용되었다. 먼저 고기를 먹고 중독이 되었을 때 봉선화의 뿌리, 줄기, 잎으로 즙을 내어 먹으면 풀린다고 한다.
목에 생선뼈가 걸렸을 때 봉선화의 종자를 빻아서 물에 풀어 이빨에 닿지 않게 마시면 뼈가 부드럽게 되어 빠진다고 한다. 질긴 고기도 몇 개의 봉숭아 씨와 함께 찌면 연해진다고 하며, 산모의 난산일 경우 봉숭아 씨를 찐 물을 마시면 분만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독사에 물렸거나 독충에 찔렸을 때 봉숭아의 꽃, 특히 백색의 꽃을 잘 찧어서 그 즙을 국부에 바르면 효험이 있다고 한다.(*이상 네이버 지식백과. 본초강목)
이야기 7, 가곡 봉선화에 대한 내력
가곡 〈봉선화〉를 작사한 김형준은 홍난파와 이웃에 살았는데 서로 교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김형준이 살던 집 울안에는 봉선화 꽃이 가득했는데 봉선화를 보면 그는 곧잘 "우리 신세가 저 봉선화꽃 같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20년에 홍난파는 ‘처녀촌’이란 단편집을 내면서 그 서장에 〈애수〉라는 제명의 곡보를 실었는데 뒤에 김형준이 가사를 붙임으로써 가곡 〈봉선화〉가 탄생된 것이다. 그러나 이 노래가 널리 퍼져 만인의 심금을 울리게 된 것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40년대의 일이다.
당시 김천애(金天愛)라는 소프라노 가수가 있었다. 그는 1930년 후반 일본의 무사시노(武藏野)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1942년 봄 동경의 히비야(日比谷) 공회당에서 신인 발표회가 있었는데 그는 여기에 선발되어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고향에 있는 어머니가 보내준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무대에 섰다. 예정된 노래를 부르자 앙코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에 답해서 그는 가곡 〈봉선화〉를 부른 것이다. 청중석의 교포들은 너무도 감격하여 모두 눈물을 흘렸다. 노래가 끝난 후 분장실로 달려간 교포들은 그를 붙들고 울어 흰 치마저고리가 눈물에 젖었다고 한다. 그 후 귀국한 김천애는 일제의 탄압을 받아가면서 소복차림으로 이 노래를 불러 청중들의 심금을 울렸고 이 노래는 곧 전국으로 퍼져나갔다고 한다.(*이상 네이버 지식백과) 자! 그러면 1940년도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 김천애가 부른 ‘봉선화 노래’를 들어 보자. 동영상 가운데 ▶ 이 표시를 꾹 눌러 주자. 김천애와 홍난파 1940년도
가수 조용필의 봉선화
이야기 8, 김형준의 작사 ‘봉선화’에 대한 이야기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어언 간에 여름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이 시는 초라한 초가집 쓸쓸한 울타리 밑에서 모진 비바람을 겪으면서도 한여름 내내 빨갛게 피어 있는 봉선화의 이미지를 뚜렷이 부각시키면서 어떤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살아가는 민족의 의기를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이 가사의 제1절에서는 봉선화가 성하(盛夏)의 시절에 아름답게 꽃을 피우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제2절에서는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화의 처량한 모습을 읊었다. 일제의 모진 침략으로 쓰라림을 당한 조국의 비운을 가을에 지는 봉선화에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래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제3절에 담겨 있다. 1절과 2절은 3절을 도입하기 위한 서사에 불과한 것이다. 만약 이 노래가 2절에서 그쳤다면 그것은 봉선화의 낙화에 대한 애틋한 시에 불과했을 것이다.
가사 봉선화의 1,2 절은 그야말로 우리 민족의 한스런 비애를 표현 한 것이었다면 제3절은 그 비애를 넘어서 부활해야겠다는 강인한 의지가 숨 쉬고 있다. 즉 비록 겨울이 닥쳐와서 모진 눈바람에 형체마저 없어진다고 할지라도 그 혼백만은 결코 죽지 않고 길이 남아서 찾아온 새봄에 다시 살아나기를 바란다는 애절한 민족의 염원을 처절하게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이 폐부를 찌르는 비원의 시구가 있어 이 노래가 단순히 애수어린 가곡에 머물지 않고 민족의 노래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 9, 봉선화에 얽힌 설화들...
서양 설화
옛날 올림프스 궁전에서 연회를 열고 있을 때 손님으로 참석한 신들에게 대접할 황금 사과가 한개 없어지고 말았다. 어느 심술궂은 신의 장난이었는데 그날 손님들에게 음식을 나르던 한 여인이 의심을 받아 쫓겨나고 말았다. 그녀는 누명을 벗고자 필사적으로 호소하나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지 못하고 끝내 슬픈 최후를 맞아 봉선화가 되었다. 지금도 봉선화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결백을 증명하려는 듯 씨주머니를 터트려 자신의 속을 뒤집어 보인다. 그래서 꽃말도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이다.
한국의 민간설화
우리의 민간 설화에는 봉선화란 꽃 이름이 봉선이란 궁녀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화이다. 백제(혹은 고려) 때의 한 여자가 선녀로부터 봉황 한 마리를 받는 꿈을 꾸고 딸을 낳아 봉선이라 이름 지었다. 봉선이는 곱게 커서 천부적인 거문고 솜씨로 그 명성이 널리 알려져 결국에는 임금님의 앞에까지 나아가 연주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궁궐로부터 집으로 돌아온 봉선이는 갑자기 병석에 눕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님의 행차가 집 앞을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봉선이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힘을 다하여 거문고를 연주하였다. 이 소리를 알아듣고 찾아간 임금님은 봉선이의 손으로부터 붉은 피가 맺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매우 애처롭게 여겨 무명천에 백반을 싸서 동여매주고 길을 떠났다. 그 뒤 봉선이는 결국 죽고 말았는데 그 무덤에서 이상스런 빨간 꽃이 피어났다. 사람들은 그 빨간 꽃으로 손톱을 물들이고, 봉선이의 넋이 화한 꽃이라고 하여 봉선화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에필로그
이제 긴 봉선화 이야기를 끝내려 한다. 오늘 이라도 화단에, 아파트라면 화분에 봉선화 몇 그루 심어 보자. 그리고 봉숭아꽃을 바라보면서 봉선화 노래를 불러보자. 다음 달 8월이면 광복 70주년을 맞는 광복절이다.
*위의 이야기들은 네이버 백과 또는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재편집 구성한 것이니 다소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지로 떠나는 길 未知路
|
'※Migiro Gallery > 숲,꽃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숲들의 찬란한 해탈 (0) | 2015.11.15 |
---|---|
임 그리워 달밤에 고개 내민 달맞이꽃~ (0) | 2015.07.28 |
개망초, 나도 꽃이다. (0) | 2015.06.26 |
꽃은 다 아름답다. (0) | 2015.06.14 |
장미, 아름다움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0) | 2015.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