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전국문화재 斷想

울산 울주군 언양읍성에 서다.

migiroo 2022. 8. 4. 12:58

언양읍성 동문 성곽


태풍 송다호가 북상 중 서해상에서 그 위력을 잃고 주저앉아 버렸다. 비는 제법 내렸으나 다행히 큰 피해 없이 지나 갔다. 그러나 무더위는 여전하다. 하늘은 잿빛 구름이 가득하지만 습도가 높아 후덥지근한 열기로 수온주가 영상 30도를 웃돌고 있다.

언양 읍성에 올라…

성곽 안쪽으로 조성된 농경지에 벼들이 바람에 일렁일렁 춤을 추고 있고 아직 철거 되지 않고 남은 낡은 민가들이 긴 세월의 시간을 머금고 웅크리고 앉아 있다. 민가에는 얼마나 사람들이 살았을까? 아마도 조선말기, 일제 강점기 어간에 지어진 집들이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읍성주변으로 나 있는 산책길을 따라 성곽을 둘러본다. 울퉁불퉁한 성곽의 크고 작은 석축의 돌들이 서로 엉켜 제각기 역할을 담당하면서 서로 단단이 맞물려 결박되어 있다. 자연석을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 서로 어긋나게 쌓아올린 석축을 ‘그렝이공법’이라 했던가. 한국식 석축기법은 거의 비슷하다. 석축이 자연적이면서도 그 견고함은 물론 미적 감성까지 묻어 있어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디게 하고 있는 듯하다. 석축 중간중간에 성곽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하여 길쭉한 돌기둥을 박았으니 일종의 돌못인 셈이다. 우리 옛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축조기법이다.석축의 단면들을 바라보면 돌이 지닌 딱딱한 질감이 아니라 부드럽고 유연한 느낌을 받는다.


언양읍성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근년에 대대적인 발굴 복원을 순차적으로 하고 있는 중이다. 도심지 중심에 위치해 있어 고층아파트와 도시 건물로 둘러싸여 있지만 울산시민에겐 아주 중요한 문화재로서 사랑을 받고 있다.

복원된 남문


성곽의 역사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원래는 토성으로 쌓은 성이었으나 조선 연산군 시기에 이르러 왜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석성으로 확대 변경 축조한 성이다. 성곽은 조선 후기까지 잘 보존되어 왔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무너지고 일제에 의해 헐려 주거지나 일의 관공서로 사용해 오다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성곽의 둘레는 약 1km 정도이다. 성지를 발굴 조사한 결과 동서남북에 누각(문)이 있었으며 성곽 안에서 많은 건물지가 발견되었다. 현재는 남문(南門)만 복원된 상태이다.

그랭이 공법의 석축 모습
새로 복원된 언양읍성 남문 영화루

성곽 안쪽 산책길

성곽 안에 있은 어느 민가의 옛 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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