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知로 가는 땅/예슬이의 인도여행

4.푸쉬카르의 주민 "바부르" 네 집...

migiroo 2009. 10. 11. 23:06

 

 

 

짜파티를 구워 달라고 하니 다소곳하며 수줍음을 타는 부인이
그 좁은 공간에서 우리를 위해 엎드려 짜파티를 굽는 것이었다.
그들의 잠자리인 침대에 앉아 짜파티 만드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무어라 말 할 수 없는 부끄러움에 괜스레 미안한 감이 들고
안쓰러워 가슴이 아팠다.(본문 중...)


 

 

 

이틀 동안 열악한 환경의 열차에서 자는 강행군으로 행색이 말이 아닌데다 하루 종일

오토릭샤에서 뿜어내는 매연과 온갖 먼지를 뒤집어쓰고 다니며 세수조차 하지 못했으니

내 형색은 현지의 가무잡잡한 인도인들과 별로 구별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기차를

타자마자 세면대에 가서 대충 고양이 세수를 했다.

 

 

 

화장실 안에도 반드시 바닥 옆에 수도꼭지가 설치되어 있는데 화장지 문화가 없는 인도

사람들은 볼일을 보고난 후 이 수도 물로 뒤처리를 한 다음 손을 씻는다.

밤이 되자 기온이 떨어져 난방시설이 없는 객실이 너무 춥게 느껴졌다.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으나 침낭 속으로 스며드는 추위로 몇 번이나 잠을 깼다. 그때마다 머리까지 침낭을

뒤 집어 썼지만 얼마나 움츠리고 잤는지 새벽에 일어나니 온몸의 근육이 욱신거리고

아파왔다. 아침 일찍 눈을 떠 열차에서 파는 짜이를 한 잔 사서 마시니 추위에 움츠러들었던

몸이 한결 훈훈해졌다 .

 

 

우리 일행은 아즈메르에 내려 푸쉬카르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인도 버스는 그

수명이 보통 50년은 된다고 했는데 우리가

탄 버스도 예외는 아니어서 좌석 시트는

다 떨어져 너덜너덜하고 몇 십 년 묵은

때가 앉기조차 거부감이 들었지만 인도에

와서는 인도식으로 살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버스는 내가 가는

목적지까지 태워주는 기능만 다하면 될 뿐

그 밖의 조건을 따지는 것은 물질만능주의와

편리주의에 젖은 정신적 사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인도에 온지

며 칠 만에 현지 환경을 이해하고 적응하려는

나만의 철학을 터득한 것 같았다.

 

푸쉬카르에 도착하니 아침 8시 30분. 우리가 묵을 숙소로 걸어 올라가니 길가에서는 막

가게를 열려는 사람들과 하수구를 청소하는 아주머니, 아랫도리를 다 벗고 신발조차도

신지 않은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환한 웃음으로 "헬로우" 하며 인사를 한다.

 

숙소인 "나브라탄 펠리스" 호텔은 푸른 물이 넘실대는 수영장도 갖춘 꽤 괜찮은 곳으로

전망도 탁 트여서 휴양지로 멋진 휴가를 즐기러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이틀 동안 씻지도 못한 처지라 제일먼저 샤워를 하고 그동안 밀린 빨래를 하며 오전시간을

여유롭게 보냈다.

푸쉬카르는 힌두교의 3대신인 비쉬누(vishnu), 쉬바(shiva), 브라흐마(brahma, brahman

이라고도 한다) 중에서 창조의 신인 브라흐마 신을 모신 사원이 있고 일 년에 한번 낙타

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낙타 사파리도 할 수 있는 곳이다.

 

 

 

낙타 축제가 있는 기간에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하는데

지금은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라 그 혼잡함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오후에는 친구들과 쇼핑을 나섰다. 푸쉬카르는 히피들의 성지라고도 한다는데 그래서인지

거리에는 서양인으로 보이는 히피족들이 많이 보였다. 최소한의 경비로 세계 곳곳을 누비는

그들의 자유가 부럽기만 했다. 몸은 인도에 있으면서 집에 있는 가족들이 걱정되어 수시로

전화를 하는 내 처지를 생각하니 거칠 것 없는 그들의 자유분방함이 내심 부럽기조차 했다.

우리는 인도의 전통의상인 '펀자비'라는 옷을 한 벌에 400루피에 맞췄다. 맞춘 옷은 다음날

찾기로 하고, 은 세공품이 유명하다 하여 딸아이에게 줄 인도풍이 짙은 은 목걸이를 200루피에

샀다. 시장 통에서 토마토와 양배추, 석류도 한 아름사고 양가죽으로 만든 어깨에 둘러매는

작은 가방을 230루피에 사기도 했다.(이 가방은 인도에 머무는 한 달 동안 줄 곳 매고

다녔는데 인도를 떠나는 날 현지인에게 주었다).

 

밤에는 사막 부근에 사는 한 인도인의 집을 방문하였다. 두 칸 방을 가진 집에는 부부가

어머니를 모시고 3명의 자녀와 산다고 했는데 방 한 칸은 어머니가 쓰고 다른 한 칸은 부부와

아이들이 쓴다고 했다. 이들 부부의 방에는 다 헤지고 밑도 처진 싱글 침대가 하나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침대에서 부부와 아이들 3명이 모두 함께 잔다고 하여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방바닥은 흙으로 되어 있었고, 그 좁은 공간에 부엌까지 딸려있어 다른 어떤 공간도 남은

곳이라곤 없었다. 싱글 침대에서 5명이 잔다는 말을 정말로 믿을 수밖에... 세간 사리는

최소한으로 필요한 그릇 몇 개와 모포 두 어장으로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열악한 수준의 방이었다.

 

이름이 "바부르"인 주인남자의 나이를 물어보니 29세라고 하는데 겉으로는 족히 40살은

되어 보였다. 짜파티를 구워달라고 하니 다소곳하며 수줍음을 타는 부인이 그 좁은 공간에서

우리를 위해 엎드려서 짜파티를 굽는 것이었다. 그들의 잠자리인 침대에 앉아 짜파티 만드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무어라 말 할 수 없는 부끄러움에 괜스레 미안한 감이 들고 안쓰러워

가슴이 아팠다. 조금 있으니 남자의 동생이라는 사람도 오고 화기애애하게 짜파티와 짜이를

먹으면서 순박한 인도인들과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냈다.

 

우리 일행은 한 사람 당 10루피씩 거둬 100루피(한화 약 2,500원)정도를 만들어서 음식 값으로

주인에게 전하니 아주 고마워했다. 100루피 정도이면 그들에겐 꽤 많은 돈으로 생활에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액수였다.

사실 짜파티와 짜이 값으로만 치면 100루피는 큰돈이지만 장사꾼이 아닌 현지인이 만들어 주는

음식은 특별한 의미가 있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이 깊어 숙소로 돌아와야 할 시간, 그들 부부와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우리들은 흥겨운 마음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밤길을 걸어 숙소로 향했다.

 

푸쉬카르의 밤하늘에서 하얀 별들이

내 머리 위에 쏟아 졌다.

 

 

>글 : 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