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知로 가는 땅/예슬이의 인도여행

14.바라나시로 가는 고행의 길...

migiroo 2009. 11. 3. 01:47

 

 

 

야간 침대칸 열차는 좌석을 확보하지 못해서 한자리에
다섯 명이 비좁게 앉아서 3시간여를 가다가 겨우 누울 수 있었다.
나는 왜 인도에 와서 이렇게 힘들게 여행을 하는 걸까…….
두 다리 뼜고 잘 수 있는 푸근한 내 집이 간절하게 그리웠다.
그동안 늘 내 곁에 있어서 느끼지 못했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소중함으로 가슴이 젖어왔다.
(본문 중에서...)

 

 

 

아침에 일어나 서둘러 호텔을 빠져 나왔다. 곰팡이 냄새 때문에 도저히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호텔 앞에는 호수가 있었는데 그 너머로 보이는 전원적인 풍경이 너무 운치가 있어서 산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름드리나무가 즐비한 숲 속에 폐허가 된 사원이 고요한 침묵을 지키며 나를 응시하는 것 같았다. 그 분위기에 끌려 친구와 같이 오솔길을 걸어 사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감성에 젖었던 분위기는 금방 깨어지고 말았다. 숲길의 양쪽에는 온갖 사람과 짐승의 배설물로 즐비하게 널려있고 앞쪽에는 어떤 할아버지가 엉덩이를 들어낸 체 한창 볼일을 보는 중이었다. 애써 시선을 외면한 채 길을 걷고 있노라니 이번에는 젊은 새댁으로 보이는 여자가 막 볼일을 끝내고 옷을 추스르고 있었다. 맞은편에서는 한 여자가 조그마한 물병을 끼고 걸어오는 것을 보니 이 길은 마을사람들의 공중 화장실인 것 같았다. 물병의 물은 손을 씻는데 사용하므로 한적한 길에서 물병을 든 사람을 만나면 볼일을 보러가는 사람으로 보면 정확하다.  

 

인도의 풍경은 100미터 밖에서 보아야 아름답다. 가까이 가면 온갖 지저분한 것과 못 볼 것을 보게 되니 실망스럽기가 한이 없다. 폐허가 되어 형태만 조금 남은 사원에는 놀러 나온 마을의 아이들이 반가운 눈빛을 하며 다가온다. 한 아이가 나에게 볼펜을 달라고 손을 내밀자 다른 아이들도 줄줄이 따라온다.

볼펜이 없다고 하자 10루피를 달란다. 대답을 안 하고 물끄러미 쳐다보니 이번에는 초콜릿을 달라고 한다. 관광객들은 순박한 시골아이들의 동심마저도 버려 놓은 것 같다. 볼펜이나 초콜릿을 달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10루피를 달라는 말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구걸하여 쉽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워버린다면 이 다음에 커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삶을 살려고                            ▲인도의 아이들...

할까, 아이들에게 내가 사용하던 볼펜과 가

지고 있던 몇 개의 초콜릿을 모두 주었다.

 

아침 9시 이틀 동안 열악한 방에서 나와 함께한 룸메이트가 건물옥상에서 인도인이 직접 요가를 가르치는 곳이 있다며 같이 가보자고 한다. 요가의 발상지 인도에서 정통요가를 현지인에게 배우고 싶은 호기심에 따라 나섰다.
건물옥상에는 기골이 장대한 인도인 요가선생이 누워 있다가 우리를 맞이한다. 생각 외로 요가를 배우러 온 사람은 룸메이트와 나 단둘이 뿐이었다. 잔뜩 기대를 하였지만 선생이 가르치는 요가는 한국에서도 익히 보아 온 아주 기본적인 스트레칭만 할 뿐 별다른 것이 없었다. 한 시간도 체 하지 않았는데 100루피를 주었다. 돈이 아까운 생각에 몇 달 전에 삐어서 조금 불편한 오른쪽 발목을 내밀며 치료해달라고 했다. 손으로 몇 번 맛사지를 하다 그만두니 나는 더 해달라고 자꾸 졸랐다. 마지못해 조금 더 해주는 맛사지를 받았지만 그래도 왠지 본전을 못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인도에 온 첫날 델리에서 200달러를 환전하여 8,500루피 정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인도에 온지 보름 만에 거의 다 써버렸다. 더 이상은 환전을 안 하고 버티려 했지만 아무래도 모자랄 것 같아 고고학 박물관 앞의 환전소에서 150달러를 더 바꾸었더니 6,450루피로 델리에서 보다 50 루피를 더 많이 주었다.
돈 가방이 갑자기 두둑해지자 마치 내가 인도에서 제일 부자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아주 좋았다. 호수의 맨 가장자리에는 파라다이스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한국음식을 파는 어수선한 식당  과는 달리 깨끗하고 한적하였다. 어제 밤에도 이곳에 와서 맥주를 마셨는데 주인이 무척이나 친절하고 서비스도 좋았다. 다시 점심을 먹으러 이곳에 들르니 주인이 굉장히 반가워한다. 블랙티를 서비스로 자꾸만 따라주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오후 2시경 "사트나"로 가는 대절버스는 3시가 넘어서야 출발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전 세낸 버스에 인도인 운전사는 자꾸만 일반 손님을 태워서 가이드와 실랑이가 벌어졌다. 무거운 배낭은 차 위에 실었는데 짐을 묶는 끈도 준비가 안 되어서 끈을 사러 시장에 가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너무 많은 사람을 태워서 다 앉지도 못하고 젊은 아이들은 서서가는 고역을 감당해야 했다. 우리 일행의 젊은 아이들은 얼마나 착하고 믿음직스러운지 궂은일은 도맡아 하고 자리도 어른들에게 양보하느라 앉지도 않았다. 차위에 배낭을 싣고 묵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을 보니 다들 내 자식 같아서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듬직한 마음도 들었다.

 

 

 

 

 

 

 

 

 

 

 

 

 

 

 

 

 

 

 

 

                                                       ▲인도의 만원 버스

 

포장도 안 된 길을 4시간에 걸쳐 달리니 차안의 사람들은 날리는 먼지를 다 뒤집어쓰고 차가 튈 때마다 충격으로 온몸의 근육이 아파왔다. 앉아있는 사람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서서 가는 사람들은 몇 배나 더 힘이 들었을 것이다. 고생 끝에 "사트나"에 도착하니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가 또 2시간이 넘게 연착을 하였다.

 

야간 침대칸 열차는 좌석을 확보하지 못해서 한자리에 다섯 명이 비좁게 앉아서 3시간여를 가다가 나중에 빈자리를 배정받아 겨우 누울 수 있었다. 너무 고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하고 편안한 내 집을 두고 나는 왜 인도에 와서 이렇게 힘들게 여행을 하는 걸까…….                                ▲인도의 기차

따끈한 밥과 김치도 그립고 두 다리 뼜고 잘 수 있는 푸근한 내 집도 간절하게 그리웠다. 그동안 늘 내 곁에 있어서 느끼지 못했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소중함으로 가슴이 젖어왔다. 나는 너무나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부자는 아니지만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경제력과 건강하고 성실한 나의 가족들…….
보편적인 인도사람에 비해 나는 가진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과 함께 가슴속 깊은 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힘든 인도여행 길에서 이런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으니 정말로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 같다.


나의 깊은 상념을 안은 체 바라나시로 가는
야간열차는 캄캄한 철로를 무심히 달리고 있다.


>글: 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