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知로 가는 땅/예슬이의 인도여행

13.에로틱한 미투나상들....

migiroo 2009. 10. 24. 11:16

 

 

 

탄트리즘은
양과 음, 남과 여, 정신과 육체,
절대자와 피조물의 완전한 합일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성적결합은 해탈로 이르는 길이 된다는 것이다.
(본문 중에...)

 

 

 

나의 숙소로 배정 받은 방은 최악의 수준 이었다. 창문도 없는 창고 같은 방으로 환기도 안 되어서 카펫에서는 곰팡이 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눅눅한 습기는 침낭에도 배어서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머리 꼭대기까지 뒤집어쓰니 답답하여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새벽 2시에 호텔 로비로 나갔다. 로비의 소파에서라도 잠시 누울까 싶어 나왔더니 종업원이 소파에서 코를 드르렁 거리며 잠을 자고 있었다. 다시 방으로 들어왔으나 곰팡이 냄새로 인해 기침도 나고 정말 인도에 온 후 최악의 밤이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 신경이 예민해지고 화가 자꾸 치솟아 올랐다. 내일은 어떻게 해서라도 방을 바꾸리라 생각하며 호텔 문에 기대서서 밖을 내다보니 야심한 밤에 개 한마리가 길가에 앉아 있다. 나를 본 그 개는 화들짝 놀라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니 화가 난 와중에도 웃음이 나왔다.

 

밤을 하얗게 밝히고 아침에 친구들과 함께 바로 옆에 있는 총각식당으로 아침을 먹으러 갔다. 어젯밤 한숨도 못잔 사연을 얘기하니 큰 창문이 달린 전망 좋은 2층에서 잠을 잔 친구들은 나의 괴로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수제비는 아그라의 타지마할 앞에서 먹은 것보다 훨씬 맛이 있고 김치는 어제 사파리 식당 것보다 맛이 좋았다. 오늘은 총각식당에서만 밥을 먹어야 할까보다.

 

서부사원은 숙소에서 가까운 곳이라 자전거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가기로 했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도 등록되어있는 서부사원군은 남녀 교합상인 미투나 상으로 유명하다.
카쥬라호의 유적은 천여 년 전 찬델라 왕조에 의해 건설되었는데 전성기 때에는 무려 85 개에 달하는 사원이 있었다고 하나 이슬람 세력에 의해 모두 파괴되어 지금은 22개만 남아 있다고 한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의문점은 수많은 미투나 상이 도대체 왜, 무슨 의미를 두고 새긴 것일까 하는 것이다. 많은 의견 중에 당시 북인도에 전파된 탄트리즘의 영향이라는 설이 유력한 것 같았다. 탄트리즘은 양과 음, 남과 여, 정신과 육체, 절대자와 피조물의 완전한 합일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성적결합은 해탈로 이르는 길이 된다는 것이다. 성적 표현은 거꾸로 성적 사념으로부터 자유로워는 지는 방법이라고 하기도 했다. 어쨌든 모든 추측만 난무할 뿐 정확한 해답은 없는 것이다.

 

 

 

칸다리아 마하데브 사원 옆에는 부겐베리아 나무의 진홍색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나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부겐베리아 꽃은 컬러가 없는 무미건조한 인도에서 유일하게 색감을 주는 아름다운 꽃이다. 잿빛 투성이의 삭막한 도시에서 가끔 부겐베리아 꽃을 볼 때면 그 화려한 색채에 빠져들곤 하였다.

여행자들의 최대 관심사인 미투나상은 칸다리아 마하데브 사원의 외벽에 새겨져 있었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자세의 남녀 교합 상을 보니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었다.

 

 

인도인 가이드의 장황한 설명을 들으면서 사원일대를 둘러보았다.
우리의 한국인 가이드는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알려 주었는데 처녀인 그녀는 성적으로 적나라한 표현들을 어떻게 전달해야할지 몰라 무척이나 난감해 하는 것 같았다.
종교적인 차원에서 미투나 상을 감상해야 할 텐데 나 또한 에로틱한 조각에 자꾸만 민망스러워 지는 것은 아직 마음의 수양이 덜된 탓이리라. 깊은 오지인 카쥬라호에 미투나 조각상이 없었다면 관광객이 이렇게 많이 올까…….
특히나 한국인들의 방문이 유별스럽게 많은 것을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서부사원을 둘러본 뒤 정원의 나무 밑에 누워 커피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였다.

 


깨끗하게 잘 정돈된 푸른 잔디는 여행자의 마음을 한없이 평화롭게 해주었다.

오늘은 카쥬라호의 장날인 것 같았다. 길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호기심이 난 우리는 이곳저곳을 기울이며 장터 구경을 하였다. 그들이 파는 제품들은 너무나 단순하고 조잡스러웠다. 하지만 소박하다고 해야 맞는 말이 아닐까.
최소한의 생필품만 있으면 일상을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진데 우리는 너무나 많은 물자의 홍수 속에서 산업 쓰레기를 만드는 것 같았다. 어쩌면 지저분한 인도보다 겉으로는 깨끗하지만 엄청난 폐기물을 생산하는 선진국이 더 쓰레기 더미에 묻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가나 인도 아이들이 칼라 펜? 샴푸? 하면서 졸졸 따라 다니며 얻으려 한다. 여행객들이 뿌리고 간 볼펜과 일회용 샴푸가 오지인 이곳에서도 생필품으로 느낄 정도가 된 것 같았다.
저녁 무렵 한국음식을 파는 복잡한 식당을 피해 호수 주변의 조용한 인도식당을 찾아갔다.

식사 후 홍차를 마시면서 석양이 호수에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어둠은 모든 지저분한 것들을 감싸주며 아름답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호수의 탁한 물도, 불결한 거리도 모두 황홀한 붉은 빛으로 물들게 한다.
숙소에 돌아와서 호텔주인을 만나 방을 바꾸어 줄 것을 요구하니 "노프라블럼"이란 말만 되풀이 한다. 자기 코에는 냄새도 나지 않으며 아주 딜럭스한 방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단다.

 

"너만 노프라블럼이면 다냐? 나는 매니매니 프라블럼이다"

 

아무리 인상을 쓰며 얘기해도 주인은 어깨만 들썩일 뿐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가이드에게 도저히 못자겠다고 말하니 자기가 쓰는 방하고 바꾸자고 말한다. 하지만 어찌 내가 편하자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 있겠는가. 도저히 양심적으로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하루만 더 참기로 하고 들어가기 싫은 방으로 향했다 .

 

밤새 뒤척이며 어서 빨리 날이 밝기를 학수고대하니
카쥬라호의 마지막 밤은 길기도 해서 아무리 기다려도
동이 트지 않는다.

 
>글 : 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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