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知로 가는 땅/예슬이의 인도여행

15.불교의 성지 사르나트에서....

migiroo 2009. 11. 3. 09:50

 

        

 

 

‘다맥스투파’를 둘러싼 담장 너머에 있는 수많은 걸인들이
우리들을 향해 칸막이 사이로 손을 내밀고 구걸을 해 온다.
눈이 먼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과 몸이 기형인 사람...,
노인과 어린 아이들,여러 형태의 걸인들이 간절한 눈길로
손을 내밀고 있는 모습은 내 마음을 한없이 무겁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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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렇게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수많은 중생들의 모습을 본다면
부처님은 얼마나 안타까워하실까.
(본문 중에서...)

 

 

아침 7시, "바라나시"에 도착하여 가까운 거리에 있는 호텔 "리젠시"로 걸어서 갔다. 이른 아침에 60여명의 외국인 단체가 길을 걸으니 인도 사람들이 잔뜩 호기심에 찬 눈으로 바라본다. 숙소에 여장을 풀자마자 불교의 4대 성지중의 하나인 "사르나트"로 가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불교의 4대 성지는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인 "룸비니"와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 세상을 떠난 곳인 "쿠시나가르" 그리고 최초의 설법을 한 곳인 "사르나트"이다.

 

 

 

이제 우리는 버스도 알아서 잘 타고 낯선 길도 물어서 잘 찾아다닌다. 인도에 온지 보름이 지났으니 어느 정도 현지 생활에 익숙해져서 어떤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아주 무난하게 해결을 하면서 다녔다. 버스에 오른 뒤 차장에게 사르나트에 꼭 내려달라고 부탁한 뒤 자리에 앉았다. 인도의 일반 서민들이 이용하는 버스를 타면 많은 볼거리가 있어 심심하지 않다. 눈이 예쁜 인도여자들을 감상하는 것도 재미가 있고 몸에 감은 치렁치렁한 장신구들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색적인 거리풍경도 즐길 수 있으며 인도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 해준다.

 

 

우리는 1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사르나트에 내려 녹야원에 있는 다멕 스투파로 향했다. 주위에 사슴농장이 있어 녹야원의 스투파로 더 많이 알려진 다멕스투파는 부다가 다섯 도반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초전법륜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용도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맥 스투파 주위에는 불은 색 가사를 입은 티벳 스님들이 탑돌이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인솔자인 스님의 주관으로 기념법회를 가졌는데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의식에 참여 하였다. 불교의 성지라서 참배하러 오는 한국인 단체들이 많은 듯 우리 뒤에는 또 다른 한국인 단체가 도착하여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법회를 마친 후 티벳 스님들과 함께 탑돌이를 하였는데 부처님의 일생과 무념무상 무소유의 깨달음을 가슴깊이 느끼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탑을 돌았다. 티벳 스님들은 얼마나 불심이 깊은지 하루 종일 탑돌이를 한다고 하였는데 그 깊은 불심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다맥 스투파를 둘러싼 담장 너머에 있는 수많은 걸인들이 탑돌이를 하는 우리들을 향해 칸막이 사이로 손을 내밀고 구걸을 해 온다. 눈이 먼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과 몸이 기형인 사람, 나이가 많은 노인과 어린 아이들,여러 형태의 걸인들이 간절한 눈길로 손을 내밀고 있는 모습은 내 마음을 한없이 무겁게 하였다.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구하고자 평생을 바친 부처님이 아니셨던가? 2,6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렇게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수많은 중생들의 모습을 본다면 부처님은 얼마나 안타까워하실까……. 이런저런 상념으로 마음이 자꾸 우울해졌다.


다맥 스투파 앞에서 우리 일행은 기념촬영을 하고 고고학 박물관으로 이동하였다. 박물관에는 인도의 국장인 사르나트의 사자 상의 진본이 있어 유명한 곳 이다. 사자상은 아쇼카 석주의 상단에 있었던 것인데 네 마리의 사자가 사방으로 서있는 모습으로 인도의 돈인 루피에 이 사자상이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3세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아쇼카 석주 사자상은 볼수록 당당하고 위엄이 넘쳐 보였다. 그밖에 초전법륜상도 전시되어 있고 불교 미술품과 불상이 있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사르나트의 주변에는 여러 나라의 사찰들이 있었는데 티벳 절과 스리랑카 절, 중국 절 그리고 우리나라의 사찰인 녹야원도 있었다.
“물라간따 꾸띠 비하르”는 이곳에서 제일 큰 불교 사원으로 전 세계의 독지가들이 낸 기부금으로 세워졌다는데 내부에는 일본의 유명한 화가가 그렸다는 벽화가 있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나의 눈에는 그 벽화가 별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부처님의 인자한 표정을 살리지도 못한 것 같았고, 모든 벽화의 얼굴에는 감성이 실려 있지 않았다. 그저 색감만 선명하고 화려할 뿐 무미건조한 느낌만 들었다.

 

 사원 밖으로 나오니 10대의 인도 소녀들이 사진을 찍어 달라며 조르르 몰려온다. 청순하고 맑은 10대 소녀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는 내 기분 까지도 덩달아 좋게 하였다. 티 없는 웃음소리를 귓가에 들으며 소녀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중에 아주 예쁜 소녀가 있어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하자 수줍은 듯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까르르 웃는다. 웃는 모습 또한 너무나 귀여웠다.

 

오후 4시에 사르나트 관광을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바라나시로 돌아왔다. 저녁 6시에 갠지스 강에서 행해지는 죽은 자를 위한 의식 "뿌자"를 보러가기 위해 릭샤를 탔다. 강가에 까지 이르려면 바자르가 밀집된 지역을 지나야 했는데 수많은 상점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미로 같은 좁은 길을 한참 통과해야 했다.

 

 

 

매일저녁 빠짐없이 뿌자가 거행되는 다사스와 메드 갓트(육지에서 강으로 연결된 계단 길)에는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과 인도인들로 북적이었다. 의식을 주관하는 "뿌자리바바"들은 모두 브라만 계급으로 젊고 잘생긴 청년들 이었다. 제단 앞에는 죽은 자의 안식처인 갠지스 강이 흐르고 산자는 제단 뒤쪽에 서서 의식을 지켜본다.

 

 

 

제단은 산자와 죽은 자의 경계선인 것이다. 한 시간 동안 진행 되는 의식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생사일여(生死一如) 즉, 삶과 죽음은 서로 다른 세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밤, 죽은 자를 위하여 살아있는 사람들이 "뿌자"를 행하니 갠지스 강에 뿌려진 영혼들은 외롭거나 소외되지 않을 것 같았다. 산자와 죽은 자는 이렇게 제단을 사이에 두고 언제까지나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의식이 끝나고 주위를 살펴보니 계단의 하나하나마다 수많은 걸인들이 앉아 구걸을 하고 있다. 손을 내밀며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들을 차마 마주볼 수 없어 시선을 앞만 보고 걸었다.
인파들로 북적대는 바자르를 구경하며 걸어가다가 저녁을 먹으러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창문이 없는 2층 창가에 앉아 물결처럼 움직이는 수많은 인파의 흐름을 바라보며 늦은 저녁을 먹었다.


 

                   

 

어두운 밤이라 갠지스 강의 다른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우리는 내일 이른 아침 다시 갠지스 강으로
오기로 약속하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인파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글: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