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知로 가는 땅/예슬이의 인도여행

12.자전거로 카쥬라호 시골길을 달리다.

migiroo 2009. 10. 23. 00:29

 

 

 

사원의 건물은 어디한곳 빈틈의 공간도 없이
수많은 조각들로 채워져 있는데
얼마나 깊게 돋을새김을 했는지 조각을 때면
내손으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본문 중에서...)


 

 

아침 7시30분 호텔 정문에서 대절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시내버스를 전세 내어 "잔시"에서 갈아타는 번거로움을 없애고 곧바로 "카쥬라호"로 직행하기로 했다. 달리는 버스 속에서 뒤를 돌아보니 짧지만 아늑한 휴식을 제공한 "오차"의 정경이 점점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다.

카쥬라호…….

내가 아는 카쥬라호에 대한 지식은 별로 없다. 처음에는 "카쥬라"라는 곳의 호수를 말하는 줄 알았다.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 같은…….  

 

 

막연히 남녀의 교합상인 미투나로 유명하다는 것 외에는 달리 아는 것이 없었다. 인도에 오기 전 인솔자인 스님이 "카쥬라호"로 가는 길을 설명할 때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스님이 말씀하시길 20년 전에 포장을 했던 흔적이 있는 울퉁불퉁한 길을 버스가 달리면 뒷좌석에 앉은 사람은 튕겨서 머리가 천정에 부딪치고 더 심하면 자리에 드러누울 정도라고 했다. 직접 모션까지 취하면서 얘기를 하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서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었다. 내심 맨 뒷좌석에 앉아 청룡열차를 탄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지만 젊은 아이들에게 양보(?) 하기로 하고 앞쪽의 자리에 앉았다. 생각 외로 도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고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해낸 스님은 그사이 많이 달라졌다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신다. 스님이 오지 않았던 몇 년 사이에 카쥬라호로 가는 도로는 포장을 했던 것이다.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할 때면 중간 중간 차를 세워서 볼일을 보게 하는데 허허 벌판에 버스를 세우면 여자들은 정말로 난감할 수밖에 없다. 한쪽 편으로는 남자들이 몰려가고 반대편은 여자들이 차지하는데 돌담사이에 겨우 몸을 숨기고 일렬횡대로 밀밭에 앉아서 볼일을 보는 모습은 참으로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인도에서만 볼 수 있는 희한한 광경일 것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인도의 자연경관을 감상하려고 했지만 여행의 피곤함 때문일까 끄덕 끄덕 졸다보니 어느새 카쥬라호에 도착 하였다. 시계를 보니 낮 12시가 막 지나가고 있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점심을 먹으로 식당을 찾아 거리로 나섰다. 이곳에도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듯 총각식당, 반딧불 식당이라 써진 한글 간판이 눈에 보인다. 가이드북에 한국인 여행자와 식당주인인 인도남자가 결혼하여 유명해진 "사파리 식당"이 소개되어 있어 그곳으로 갔다. 우리는 김치 볶음밥과 200루피나 하는 꽤 비싼 값의 닭백숙을 시켰는데 마늘도 넣고 제법 맛이 그럴듯하였다. 인도에서 닭백숙을 먹다니 다음에는 불고기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됐다.

오후에는 자전거를 20루피에 빌려 근처의 동부와 남부사원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미투나 상으로 가득한 서부사원을 먼저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서 내일 보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몇몇 일행과 같이 출발 하였는데 자전거를 잘 못타는 사람들을 중간에서 기다리다가 그만 놓쳐 버렸다. 일행을 찾아 나섰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고 졸지에 혼자가 된 나는 용감하게 자전거를 타고 동부 사원으로 향했다. 

 

 

파르스바나트 사원 안으로 들어가니 마침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있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같은 단체인 것처럼 따라 다녔다.
사원의 건물은 어디한곳 빈틈의 공간도 없이 수많은 조각들로 채워져 있는데 얼마나 깊게 돋을새김을 했는지 조각을 때면 내손으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든 조각들은 볼륨감 넘치고 율동적인데 특히나 눈 화장을 하는 여인상과 가시를 빼는 여인상은 볼수록 매력적인 자태이다. 사원의 바로 옆에는 자인아트 박물관으로 입장료가 5루피라 별 부담 없이 들어가 보았다.


 

 

조각상의 풍만한 가슴은 사람들이 (남자들이?) 하도 많이 만져서 손때로 인해 새까맣게 되어있었는데 인간의 모성회귀 본능인지 성적인 호기심인지 유적지 어디를 가도 손이 닿는 곳에 위치한 조각들은 거의 어김없이 까맣게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사원을 나오니 상인들이 조잡한 물건을 내밀며 사기를 강요한다. 그중에 아주 요상한 물건이 내 눈길을 끌었다. 열쇠고리로

 

 

 손을 대면 남녀 교합상이 움직이는 정말로 희한한 것인데 아이디어 하나만은 기가 막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사치는 두 가지 체위로 바꿀 수도 있다고 연신 작동을 하며 사기를 원하니 당혹스러웠다.
사실 간단한 기념품을 사서 친구들에게 주어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만 차마 이런 민망한 물건을 선물로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한국에 와서 친구들에게 이 열쇠고리 이야기를 하였더니 왜 안 사왔냐고 원망스러운(?) 듯 말하니 그때 살걸 그랬나. 후회(?)하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 폐허가 된 사원을 둘러보았는데 마을의 풍경도 감상하고 현지인 들이 사는 집도 기웃거리며 혼자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도 무척 즐거웠다.

 

 

 

밤에는 인도 민속무용 공연을 보러 숙소에서 제법 먼 곳에 위치한 공연장으로 캄캄한 밤길을 걸어갔다. 하지만 이곳은 값비싼 기념품을 위주로 파는 상점으로 진열대에는 고가의 제품들이 수없이 널려 있었다. 가게 점원은 우리에게 여러 물건을 보여주었는데 나는 살 것도 아니면서 괜스레 이것저것 값을 물으며 거드름을 피웠다

조그마한 공연장에는 붉은 카펫이 깔려 있고 무대가 잘 보이는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조금 있으니 일본인 관광객들이 들어왔는데 직원으로 보이는 인도 사람이 우리가 앉은 자리를 비켜달라고 한다. 다른 빈자리도 많은데 굳이 자리를 비켜달라는 심보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도 일본인 손님을 맞기 위해 비키라니 기분이 상한 우리는 언성을 높이며 입장료를 환불해 달라고 했다. 일본인들에게 굽실거리는 인도인에게 무척 비위가 상했고 화가 났다.

덕분에 거금 250루피를 아낄 수 있었으니 차라리 잘된 일인 것 같다. 화장실에 갔더니 얼마나 고급스러운지 모두 검은 대리석으로 반질반질하게 닦여있고 인도에서 보기 힘든 고급의 화장지가 걸려 있었다. 나는 화장지를 둘둘 말아 가방에 잔뜩 넣는 것으로 화풀이를 대신하였다. 나중에 책에서 보니 그렇게 비싼 돈을 들여 볼만한 가치가 없는 곳이라 써있었다.

깊은 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보니 공해가 없는
오지 마을이라 별이 한층 더 선명하게 보이고
마치 손을 뼜으면 잡을 수 있을 듯하였다.


 
>글 : 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