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知로 가는 땅/예슬이의 인도여행

17.보드가야... 부처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migiroo 2009. 11. 3. 18:30

 

 

 

나의 소견으로는 인도의 가난을 구제하는 길은
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맹률이 높은 국민이 교육을 받음으로써
왜 가난한지 깨우침을 얻는다면 나라가 발전하고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이 될 것이다.
(본문 중에서...)

 

 

 

아침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동안 새벽이나 밤 늦게 이동하는 강행군으로 피곤이 누적 되었던지 아침 일찍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지 못했다. 늦은 아침을 먹으러 밖으로 나오니 어제 내린 비로인해 모든 풍경이 깨끗하고 상쾌하다.

숙소 부근의 티벳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으로 우리의 인솔자인 스님을 따라 나섰다. 티벳의 수제비는 우리나라 수제비와 맛이 흡사하고 만두 "땐뚜"와 빵과 야채볶음도 맛이 아주 좋았다. 인도음식보다 티벳 음식이 훨씬 우리 입맛에 잘 맞는 것 같았다. 거리로 나오니 어제가 부처님 성도일이라 불교신자들이 성지인 이곳에서 법회를 여는 행사로 티벳 자치구인 다람살라에서 온 스님들이 많이 보였다.

 

 
마하보디 사원으로 가는 길가에는 많은 노점상들이 줄을 잇고 있었는데 불교의식에 필요한 염주나 작은 불상들을 팔고 있었다. 
 

 

사원의 넓은 입구에 들어서자 너무나 많은 걸인들이 진을 치고 있어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관광지와 유적지의 많은 걸인들을 보았지만 이곳처럼 많이 있는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앞을 가로막기도 하고 불편한 몸으로 따라오며 옷을 잡아당기기도 하니 걸어가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마하보디 사원 안에는 많은 스님들이 자리에 앉아 불경을 외거나 절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음 주에는 달라이라마도 올 것이라 하였는데 그 때는 신자들이 30만이나 모일 것 이라하니 작은 마을인 보드가야 일대는 불교도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것 같다. 마하보디 사원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자리에 세운 52m에 달하는 아름다운 건물로 사원 안에는 항마촉지인을 한 황금빛이 찬란한 부처님이 앉아 계셨는데 참배하려는 사람들로 붐비었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삼배를 올리며 부처님께 예를 드렸는데 티벳 스님들은 오체투지를 하며 절을 하는 모습이 너무나 경건해 보였다. 사원 앞에는 부처님이 앉아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나무가 보호대 안에 있었는데 나무 둘레에는 신자들이 걸어놓은 오색 천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떨어지는 보리수 잎을 줍고 싶은 마음에 탑돌이를 하며 나무 밑에서 서성거렸지만 한 잎도 떨어지지 않아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다음 세대의 달라이라마가 될 어린 린포체도 와 있었는데 멀리서 보아도 인물이 예사롭지 않았다. 둥근 얼굴에 눈썹이 짙고 얼굴에는 근접할 수 없는 귀티가 넘쳐 보였는데 신자들은 린포체에게 절을 하고 약간의 시주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오후 2시경 우리 일행은 부처님이 처절한 고행을 한 곳인 전정각산(둥게스와리)로 가기 위해 대절한 버스에 올랐다. 한적한 시골 길에는 아름드리나 무와 푸른 녹지가 펼쳐져 있고 우리나라의 초가집처럼 지붕을 밀짚으로 이은 집도 보여서 마치 한국의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이 들게 했다. 전정각산은 야트막한 산으로 바위로 덮인 나무도 없는 민둥산 이었는데 시체를 화장할 돈도 없는 불가촉천민들이 이 산에다 시신을 버리기도 한다 했다. 이 척박한 산속의 굴에서 고행을 하며 깨달음을 얻으려 했던 부처님의 깊은 뜻을 한갓 범인인 내가 어찌 헤아릴 수 있으리오…….
전정각산으로 오르는 비탈길에는 불가촉천민인 이곳의 주민들이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부처님이 6년간 고행을 하셨다는 굴 입구에는 수많은 촛불을 밝힌 흔적으로 바위 전체가 새까맣게 그을려져 있고 굴 안으로 들어가니 티벳 스님들이 촛불을 키고 앉아 정진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더워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우리 일행은 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아랫마을에 있는 수자타 아카데미로 향했다. 우리나라의 민간단체인 정토회가 운영하는 수자타 아카데미는 불가측 천민인 주민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며 아픈 사람들을 위해 병원도 지어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인도의 오지에서 봉사하는 정토회의 박애정신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운동장에 들어서니 한국에서 온 대학생 봉사자들과 학생들이 어울려서 북과 꽹과리, 장구를 치며 풍물놀이를 하는 것이 보였다.

 

모두들 흥겨운 듯 운동장에는 웃음소리가 메아리 치고 보고 있는 우리들도 즐거워서 한참을 서서 구경하였다. 수자타는 고행하는 부처님께 우유죽을 끓여준 처녀인데 가난한 인도의 천민을 위해 정토회에서 베푸는 자원봉사도 수자타의 우유죽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걸인이었던 아이가 교육을 받고 교사가 되어 다시 유치원생을 가르치는 것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는 이 학교를 이끌어가고 있는 자원 봉사자의 얘기를 들으니 내 가슴에도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

 

나의 소견으로는 인도의 가난을 구제하는 길은 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맹률이 높은 국민이 교육을 받음으로써 왜 가난한지 깨우침을 얻는다면 나라가 발전하고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이 될 것이다.

우리들은 수자타 학교를 위하여 즉석에서 기부금을 거두었는데 나는 400루피를 내었다. 몇몇 사람들은 100달러도 선뜻 기부하니 국가와 민족을 넘어선 인류애를 보는 감동스러운 장면이었다.

 

즉석에서 거둔 기부금이 540달러였는데 아무쪼록 인도의 오지에서 학교를 운영하는 정토회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 이었다.

 

        

 

캄캄한 밤에 숙소에 도착하여 티벳 음식을 파는 천막에서 티벳 만두 "땐뚜"를 먹었다. 천막식당 안에는 티벳 스님들이 많이 있었는데 외모는 우리나라 사람과 별로 구별이 되지 않았다. 정작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는 신자들이 거의 없고 다른 나라에서 온 불교도들이 명맥을 이어가는 현실이 한없이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저녁을 먹은 후 마하보디 사원을 밝히는 오색찬란한 불빛이 아름답다고 하여 사원으로 갔더니 정전으로 사방이 캄캄 하기만 했다.

 

         


그 많던 스님들은 숙소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고 낮에 보았던 걸인들만이 구걸하던 자리에서 잠을 자고 있다. 어린 아이를 안고 잠이 든 엄마가 너무 불쌍해 보였다. 추운 겨울을 거리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 부처님의 자비가 있기를 손 모아 기도했다.


삶과 죽음의 여로…….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은
영원한 고행의 길이 아닐는지…….
영원히 풀길 없는 고뇌가
나의 가슴을 답답하게 옥죄어 온다.


>글: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