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전국문화재 斷想

지리산 천은사 독경소리 들리고....

migiroo 2009. 11. 5. 16:42

 

 

●지리산 천은사 독경소리 들리고....

 

 

  

 

 

샘물이 숨었다는 전설의 산사(山寺)....
지리산 자락에 숨어 있는 천은사(泉隱寺)를 찾는다.
그러나 산사는 보이지 않고 온통 녹색 숲뿐이다.
나를 떠나 들어가는 산문 길...
그 깊은 술 길을 걷는 것만도 행복하고
속진(俗塵)이 모두 씻겨 내리는 것 같다.
 

 

이윽고 산문이 보이기 시작하고 목탁 소리를 타고
스님의 독경소리가 들려온다.
산문은 늘 열려있다.
주인이 따로 없고 바로 길손이 주인 인 듯...
반기는 사람도 없고 밀어내는 사람도 없다.
성큼 산문으로 들어선다.

 

천은사에는 보물급 문화재가 별로 없다.
그래서 그런가? 찾아온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절도 속인(俗人)들이 마구 찾아오는 것을 싫어하는지...
스님들을 만나도 별로 반기지 않으시는 눈치다.

 

그러나 그 유명한 천은사 감로수 한 잔 마시고
산사에 잠시만이라도 머무른다면 행복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게 된다.
그리고 법당에 들어 공손히 절 올리고 나와 수홍루(垂虹樓)에 올라
물빛이 고운 천은지(연못)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로 내가 선계(仙界)에 와 있음을 느끼게 된다. 
 

 

 

천은사(泉隱寺), 샘이 숨어있는 절이라?
이름의 뜻이 좀 수상쩍다.
원래 이름이 감로사(甘露寺)였다는데.... 
828년경에 인도승려인 덕운(德雲)선사가 창건한 절이었다한다.
감로사라는 절 이름은 경내에 이슬처럼 맑고 차가운 샘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이 물을 마시면 정신이 맑아진다 하여 많은
대중 스님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고려 충렬왕 때에는 '남방제일선원(南方第一禪院)으로까지 발전하였으나,
임진왜란 등의 병화를 겪으면서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 들었다한다.
이후 1679년에 단유선사(袒裕禪師)가 절을 크게 중수하면서
이름도 천은사로 바꾸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단유선사가 절을 중수할 무렵 절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무서움에 떨게 하였으므로 한 스님이 뱀을 잡아 죽였는데
그 이후로 샘물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천은사도 '샘이 숨었다'는 뜻으로 붙여졌던 이름인데, 그 뒤로 이상하게
여러 차례 화재가 발생하는 등의 불상사가 이어졌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구렁이를 죽였기 때문에 그 화가
미친것이라고 하였다.

 

얼마 뒤 이광사가 이곳에 들렀다가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도판과 같이
'智異山泉隱寺'라 써주면서 이것을 일주문에 현판으로 걸면 다시는 화재가
나지 않을 것이라 하였는데 실제로 그 후 천은사에는 신기하게도 화재가
한 번도 나지 않았다고 전해 오는데......

 

불타 없어진 국보 1호 숭례문 현판도 진작이 이광사 글씨로 만들어
달았더라면 화재를 면했지 않았을까 여겨지는데.....

 

 

(1).명필의 현판을 달고 있는 천은사 일주문( 一柱門).... 

 

 

 

 

차에서 내리자 전방 100여 미터 앞에 수문장처럼 서 있는
천은사 일주문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일주문 아래에 서니 그 당당함과 장중함에 압도당하고
엄숙한 기품에 눌려 흐트러진 내 옷매무새를 고쳐 매게 한다. 

 

                      <공포가 화려한 일주문의 모습...>  

 

 

 

 

 

 

 

 

 

 

 

 

 

 

 

 

 

 

 

 

 

 

 

 

 

 

 

 

 

 

포물선처럼 살포시 들려 있는 용마루의 유연한 선...
흘러내리는 듯한 지붕 양끝 내림마루의 날렵한 곡선...
육중한 지붕의 무게를 거뜬히 떠받치고 있는 화려한 공포의 얽게..
평방과 창방을 밀어 올리듯이 받치고 있는 두 개의 일주(一柱) 기둥...
비록 빛바랜 단청이지만 그 고색(古色)의 질감에서 세월의 흔적을
가슴으로 느끼게 해준다.

 

 

아~ 그리고 또 있다.
나의 무지(無知)의 소치로 미쳐 그 진가를  알아  보지 못한
천은사 일주문 현판 글씨.....
나는 왜 명필(名筆)과 졸필(拙筆)을 구분 할 수 있는
식견과 안목을 갖추지 못했을까.
세수 육십을 넘겼는데도 아는 거라곤 고작 속세의 잡설(雜說) 뿐이니...
다시 시작할 수도 없고 후회가 막심하다.
 

 

조선의 4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圓嶠 李匡師, 1705~1777)가
마치 물 흐르듯 수기를 불어놓은 수체(水體)로 쓴 글씨가 바로
이 현판 글씨라고 하는데...
명필답게 전해 내려오는 설화가 또 명필의 위력을 가슴으로 느끼게 한다.
현판을 단 때부터 화재가 한 번도 나지 않았다하니 과연 화신(火神)도
명필을 알아보는 모양이 아니가.

 

 

그런데 일주문을 살펴보니 다른 사찰과는 다르게 일주문 양편으로
낮은 담장을 날개처럼 설치했다.
이런 담장은 일주문 양편의 빈 공간을 매 꾼 공간감은 있을지 모르나...
어딘지 산문답지 않은 속가의 대문처럼 보이게 한다.
또 공간에서 얻는 시원스러운 느낌이 안 들고 꽉 막힌 느낌이 들게 한다.
원래 일주문 옆으로는 아무 것도 놓지 않는 것이 가람 배치의 원칙 이라고
했는데... 영역을 표시 한 것처럼 되 버렸으니 아마도 후대에 설치한
담장이 아닐까 생각 들었다.
(속리산 법주사의 일주문도 후 대에 담을 설치했다.)
 

 


일주문은 절 경내로 들어가는 산문이다.
그 문은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는 사실적 문이 아니고
속계(俗界)와 불계(佛界)를 잇는 상징적인 문이다.
그런 문을 속가(俗家)의 문처럼 사실적인 담장으로 둘러쳤으니
이를 어찌하랴....
옛 과 지금의 안목과 철학이 이렇게 변하다니....
과학은 첨단화로 발달했어도
사상과 철학은 너무도 좁아 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선사님이 이렇게 일렀다.  


일주문 밖은 속계(俗界)요, 일주문 안은 진계(眞界)라.....
이 문을 들어설 때에는 "오직 일심(一心)에 귀의 한다 " 는 
깊은 결심의 뜻이 있어야 한다 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니요.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다.
반야(般若)와 번뇌(煩惱)가 둘이 아니요,
재가(在家)와 출가(出家)가 둘이 아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空間)이 둘이 아니요,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이 둘이 아니다 .

 

누구든지 이 일주문에 들어오면 이 진리를 깨닫고 본바탕을
찾으라는 뜻으로 세워진 문이 일주문이다.

 

선사는 이렇게 가르친다.

 

어찌됐던 일주문의 공포가 화려하고 위엄이 넘친다.
그리고 얼마나 날렵한지...
작은 학이 날개를 펴고 하늘로 비상하는 듯하다.
그 일주문을 두 손 합장하고 들어선다.

 

 

 

(2).수홍루(垂紅樓) 아래 천은지(泉隱池) 잠자고... 

 

 

 

불계(佛界)가 시작 되는 일주문 안으로 들어서니
흙 갈색의 노송들이 하늘을 가리고 
무장한 군인처럼 열병(閱兵)을 하고 있다.

 

 

 

수홍루는 계곡 위에 설치한 홍예교(虹霓橋,무지개다리) 위에 새운
정자(亭子)식 건물인데 연못에 비친 수홍루 물그림자는 참으로 절경이다.
그러나 그 절경의 물그림자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기가 쉽다.
천은사에 가거든 반드시 수홍루 밑에 흐르는 물을 봐야 할 것이다.
 

 

 

 

수홍루는 정면 1칸, 측면 1 칸인 2층 누각 조선후기에 만들어 진 것이다.
계곡과 어우러진 누각은 천은사를 대표하는 절경으로 이름 나 있다.
정면 현판의 글씨는 염제(念齊) 선생의 글씨다. 
 

(3).천은사 감로수는 철철 넘쳐나고... 

 

수홍루를 건너면 천은사의 상징인 샘 감로수(甘露水)가 나온다.
돌을 쪼아 만든 항아리 모양의 홈통에 맑은 물이 철철 넘치니
굳이 목이 마르지 않아도 한 쪽박 마시고 마음을 청청하게 한 다음
경내로 들어 갈 일이다.
대웅전 앞마당에 맷돌 모양의 또 작은 감로수가 있다.
그 물 또한 맛이 그만이다.
왜 이름이 샘 泉자 천은사 인지 알게 해주는 듯하다.

 

천은사 샘(감로수)은 다른 사찰의 샘과 다르다.
물맛이 좋은 것 보다는 샘 자체가 천은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의미 깊은 감로수를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도록 만들었으니
편리성만 생각했지 역사성과 설화성은 전혀 생각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감로수 한 모금 마신 뒤 가파른 돌계단으로 올라서면 비로소 법당이다.
전각들은 새로 지어 비록 고색(古色) 짙은  맛은 없지만....
그래도 고찰(古刹)로서의 품위를 보여주고 있다.
노후 된 건물을 새로 보수할 때  옛 모습을 살리려는 노력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법당에 들기 전 천왕문에 들어 사천왕에게 인사를 한다.
부릅뜬 천왕들의 모습에서 두렵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음은
어인 일일까. 부리부리한 모습에서 오히려 자비를 느낀다.
공손히 합장하여 인사드리고 “잠시 머물다 가겠습니다.“
허락을 받는다.

 

 

(4).천은사 보제루 쪽 마루에 앉아 극락보전을 바라보네...

 

 

○극락보전

 

 

 

 


 극락보전 앞 보제루 처마 아래 쪽 마루에 앉았다.
그리고 극락보전을 바라본다.
극락보전 앞에 서 있는 석등이 제법 웅장하다.
그러나 법당도 석등도 만든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고색의 맛은 없어 보이나 그래도 기품이 풍겨온다.

 

건물은 정면3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이고,  민흘림기둥에
창방과 평방을 걸고 공포를 올린 다포양식 건물이다.
정면의 창호(문)는 소슬빗꽃살과  빗살 문양이다.

 

 

○보제루 

 

 

 

보제루란 대중의 법요식(法要式) 집회소로 사용하는 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강당형식으로 내부는 우물마루를 깐
대청형식으로 꾸몄다.
비 단청의 단아한 건물 모습과 빛바랜 나뭇결이 세월의 흔적을 엿보게 한다.
특이하게도 앞면의 쪽 마루가 계단식으로 되어 있다.
새로 만든 큰 석당 앞에 팔작집의 극락보전이 더욱 돋보이게 보인다.

 

 

○관음전 

 

 

 

관음전이다.
날렵한 처마선이 마치 날개를 활짝 편 학이 비상하려는 모습 같다.
정면3칸 측면1칸 팔작지봉, 겹겹의 공포에 단청이 화려하다.
관음전에는 11면관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설선당

 

 

 

'ㄷ'자 형태 건물로 정면 6칸, 측면 6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역시 비단청 건물로서 그 나무의 질감이 너무도 좋다.
스님들의 요사채로 쓰고 있는 건물이다.

천은사에는 이외도 전각들이 여럿이 있다. 

 

 

○탑 대신 바위...? 

 

 

                                                  <팔상전과 바위> 

 

천은사에는 삼층석탑이 없다.
그 대신 팔상전과 관음전 마당 한 가운데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석탑 대신 앉아 있다.
무슨 연유인지... 알길 이 없다.
스님께 물어 보려 해도 독경 소리는 들리는데
스님은 보이지 않는다. 

 

 

○부도 밭 

 

 

 

일주문 옆에 부도 밭에 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연유인가?
꽃단장한 천은사 전각들은 화려한데....
고승들이 잠들어있는 부도 밭은 잡초만 무성하다.
깨지고 마멸된 부도들은 거무티티한 석화(石花)와
퍼런 이끼를 온 몸에 뒤집어 쓴 체 잡초더미 속에 묻혀 있다.
쯔 쯔, 잡초만이라도 베어주지....

 

자! 이제 산문을 나설 시간이다.
운명처럼 나는 산문 안에 머무를 수가 없다.
백팔번뇌가 우굴 거리는 속계...
나는 그 속에서 절대로 빠져 나갈 수가 없다.

 

산문을 나선다.
2시간 남짓 산사에 머물렀다.
물질적으로 얻은 것은 없지만...
정신적으로는 천은사 감로수 한 잔 마신 것만도
내 가슴에 큰 행복으로 가득 채워졌음을 느낀다.

 

다시 스님의 독경소리가 일주문 밖까지 들려온다.
앰프의 성능이 아주 좋은 모양이다.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진다.
서둘러 산문을 떠난다.

 

 

>미지로(2008.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