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전국문화재 斷想

6.극락암으로 오르는 길~

migiroo 2010. 2. 2. 20:57

 

6.극락암으로 오르는 길~


 


안양암에서 극락암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한다.
2차선 도로에서 왼편으로 좁을 큰크리트 길이 나있다.
길 어귀에 여러 암자의 이정표가 서 있고, 이정표를 지나니
바로 세심교(洗心橋)라는 다리가 나온다.

 

 

 

마음을 깨끗이 닦고 들어오라는 뜻인지....
다리를 건너면 더러운 마음이 깨끗이 씻긴다는 뜻인지....
후자라면 몰라도 전자처럼 먼저 마음을 닦고 들라는 뜻이라면
나는 자신이 없다. 염치불구 다리를 건넌다.
다리 끝 산불감시소 앞에 친절하게도 산행 후 먼지를 털고 가라는
에어 건(공기 권총)이 설치되어 있다.
洗心이 어렵다면 신발의 먼지라도 털고 가리라 마음먹고
공기총을 쏘니 강력한 바람이 신발과 옷의 먼지를 단숨에 날려버린다.
가벼운 마음으로 극락암을 향한다. 

 
도중에 반야암 가는 길이 먼저 나오지만 곧바로 극락암으로 향한다.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면 그야말로 소나무 세상이 펼쳐진다.
소나무도 그냥 소나무가 아니라 붉은 빛이 나는 적송이다.

 

 

 

바람이 제법 쌔게 부는데도 별로 차갑지가 않다.
숲 해설사의 숲 이야기를 들으며 소나무 길을 걷는다.
그런데 좁은 길에 고급승용차들이 제법 오르내리고 있다.
모두들 극락암이나 비로암에 다녀오는 불자들인 듯싶다.
요즈음엔 암자까지도 차에게 길을 내주고 있으니 참 편안 세상이다.
편안히 차타고 가서 암자 법당에 엎드려 무엇을 염원하고 오는 것일까?
고행을 동반하지 않은 편안한 암자 참배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수행하듯 땀 흘린 후 법당에 엎드리는 것이 진정한 불자의 자세일 것이다. 
좋은 유산소 운동도 되고 다이어트도 될 터이니 부처님도 그런 불자를
어여삐 여길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이 차에 의존하고 산다.
그러니 다리의 힘이 점점 부실해지고 가파른 길을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힘들어 한다.
도심 생활에 늘 차를 타고 다니니 산행이나  암자 참배 만이라도
저 아래 큰 주차장에 차를 대 놓고 걸어 들어 갈 수 없을까?

  
●극락암에 오니 극락이 거기에 있네~

 

 

 

극락암은 오래 전에 딱 한 번 와 본적이 있다.
나무며 전각들이 낯설지가 않은 것이 그 때문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거목(巨木)들이 암자를 지키고 있다.

 

 

 

극락암에 오면 극락교라는 보잘 것 없는 시멘트로 만든
홍교(虹橋) 즉, 무지게 다리가 먼저 보인다.
다리는 극락영지(極樂影池)라는 연못 가운데 아슬아슬 걸쳐있는데
잘 못 다리 한 번 삐꺽하면 연못 속으로 곤두박질 떨어지기 십상이다.
난간도 없이 위험천만하게 보이는 다리를 왜 만들었을까?

 

 

 

그 부실하게 생긴 다리를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해 본다.
스님은 왜 별 쓰임도 없이 저런 다리를 연못 가운데에 만들었을까?
분명히 어떤 의미를 가르치기 위한 다리였을 것이다.
바로 이승에서 극락으로 넘어가는 다리인 셈이디.
나는 오늘 극락암 홍교를 건넜으니 극락에 오른 셈이다.
그러나 아뿔사, 극락세계에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이승으로
돌아오지 못함을 뒤 늦게 깨닫는다.
그리고 재빨리 다시 다리를 건너 되 돌아온다.
이승의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돌아 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불확실한 극락세계보다는 현실의 이승에
더 집착이 가기 마련이다.
아직 이승에서의 삶에 대한 집착이 나를 강하게 붙들고 있으니
극락을 앞에 두고도 들어가긴 망설이고 있으니 어리석고 어리석도다.
홍교의 용도가 어떤 것인가를 깨달으니 홍교를 만든 스님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홍교을 지나 여여문(如如門) 앞이다.
바로 극락으로 들어가는 첫 문이다.
여여(如如)라는 의미가 무슨 뜻인지 도무지 절에 오면
화두(話頭)가 너무 많아진다.
단순히 한문으로 보자면 如자는 같다는 의미일 뿐인데...
무엇이 같다는 의미인지 그 깊은 의미를 모르겠다.
마음이 여여 하지 못하니 그 좁은 문으로 어찌 들어갈 수 있는가.
도무지 극락암이라는 암자에는 왜 이리 아리송한 화두가 많은 것일까?


아마도 근세의 대 선사 경봉(鏡峰)스님이 주석하시고
입적하신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여한 마음으로 여여문 밑을 지나 절 마당으로 들어서니
극락암 큰 법당이 서 있다.

 

 

 

극락암의 전각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기품이 있어 보인다.
극락암을 비롯하여 삼소굴, 원광제, 조사각, 단하각, 수세전,
정수보각, 영월루, 설법전 등이 있는 비교적 규모가 큰 암자이며
주변 경관 또한 매우 뛰어나다.

그런데 특이 한 것은 전각들의 현판들이다.
현판의 글씨들이 보통 사람들은 쉽게 알아 볼 수도 없고
글씨체가 예사롭지가 않기 때문이다.
많은 현판 글씨 중 특이한 현판 몇 가지만 알아본다.
그러면 그렇지 보통 글씨가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안다.
어떤 것은 경봉 스님 글씨이고, 어떤 것은 추사 글씨가 아닌가.
여기에 몇 가지만 사진을 정리해 본다.

 

 

 

명필을 알아보고 분별할 줄 아는 식견이 내겐 없지만
추사, 경봉, 청남 같은 대 명필가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으니
극략암에 와서 이 분들의 명필을 대하니 감개가 무량할 뿐이다.

 

 

 

극락암 요사체의 측면 고량이다.
간결하면서도 정결하고 흰색의 벽면과 빛바랜 고주의 은은한
색상의 조화가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듯하다.
목조건축물의 기본 골격은 기둥, 보, 도리 등이 중심이 되어 도리의
배치 수에 따라 3량가, 4량가, 5, 7량가 등으로 불리는데
극락암의 이 건물은 아마도 2고주 7량가가 아닌가 싶다.

 

 

 

극락에 왔으니 감로수 한 잔 안마시고 갈 수 없다.
산정약수. 한 잔 마시니 간밤에 마셨던 숙취가 한 순간 사라진다.
그런데 석조에 물은 철철 넘치는데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도 안 보이고,
물이 나가는 출수구도 안 보인다.
수조의 구조는 모두 5단으로 아랫단으로 내려가면서 작아지고
위단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아랫단이 받아 다시 아래 수조로
물을 흘러 보내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다.
입, 출수구가 보이진 않지만 땅 속에 묻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들어옴도 없고, 나감도 없는데 어찌 물은 흐르고 있는가?
산정약수의 석조를 만든 스님들의 진의가 무엇인지 알듯 모를 듯
아리송하기만 하다.


물은 흐르는데 들고나감(入出)이 없다.
이 엉뚱한 화두가 극락암을 떠날 때까지도 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저 무심(無心)이 가장 좋은데....
공연히 유심(有心)을 일으켜 가슴만 답답하게 하고 있다.


시간이 없으니 경봉스님에 대하여 알아보고 극락암을 떠나려한다.


극락암은 1332년에 창건되었다.
이 암자에는 극락선원(極樂禪院)이 있어서 늘 많은 수행승이 머물고 있다.
특히 1953년 11월 경봉(鏡峰)이 조실(祖室)로 온 뒤부터 많은 수행승들이 몰려들자

1968년에 선원을 크게 늘렸단다. 여러 전각 중 삼소굴(三笑窟)은 경봉스님이

1982년까지 거처하던 곳이고 한다.

 
삼소굴의 주인 경봉스님은 1842년 4월 9일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생사의 의문을 풀기 위해 15살 무렵 출가하였다.
경봉이 깨달음을 얻은 것은 36세 때였다.


깨달음을 얻고 극락암 삼소굴 뒤에 올라가 덩실덩실 춤을 춘 경봉은 다음날 법좌에
올라가 『화엄경』을 설하였다한다.
1953년 극락암 조실에 추대되어 그로부터 입적 순간까지 30년간 극락암 삼소굴에
머물면서 중생을 어루만지며 극락으로 이끌었다.
또 경봉선사는 다법(茶法)으로도 유명하다. 삼소굴에 머물면서 찾아오는 사람에게
선다일미(禪茶一味)를 실천해 온 선승이었다 전한다.


경봉스님 말고도 극락암에는 꼭 기억해 둬야할 스님 한 분이 계신다.
세간에 아주 이름난 분은 아니시지만 부처님 같으신 분이시다.
물론 절간의 스님들이 모두 부처님이시지만 이 분은 특히 부처님을
닮은 분이시다. 그리고 경봉스님하면 바로 떠오르는 그런 스님이시다.
극락암의 선원장이신 명정스님이 바로 그분이시다.
스님은 해인사에서출가한 후 1961년 경봉스님을 은사로 모시며 20여년
동안이나 스님을 시봉한 분으로 한결같이 극락암을 지키고 있으시다.
 

 

경봉스님의 제자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분이 왜 부처님 닮았냐고
묻은 다면 실제로 그분을 만나 보면 알 수 있다.
스님을 만나서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그분의 모습만 봐도
형용할 수 없는 맑고 순수한 부처님의 웃음을 보게 된다.
실례를 무릅쓰고 인터넷에서 담아 온 스님의 모습을 여기에 싣는다.


“당신은 저런 웃음을 지을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도 부처님 이십니다.”

  
명정스님을 한 번 더 만나 뵙고 싶지만 이 역시 속인의
욕심임을 깨닫고 발길을 돌린다.


아직은 극락에 갈 수 없으니 극락암을 나온다.
다시 산길을 올라가 비로암으로 향한다.


다음 장에 계속


>未知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