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비로암 가는 길~
비로암 가는 길도 참 좋다. 겨울 숲이 또한 너무 좋다.
옷을 다 벗어버린 나목의 굴참나무, 서어나무, 노각나무 군락이
소나무 군락지를 벗어나 추운 바람에 알몸을 내 맡기고 있다.
비로암 들어가는 다리가 숲 사이로 보인다.
산내 암자 중 백운암 다음으로 높은 곳에 위치한 암자.
오늘의 마지막 순례 암자이다.
다리 이름이 활수교(活水橋)이다.
그런데 겨울 가뭄으로 활활 흘러야할 계곡 물이 하나도 없다.
●비로암 법당에 앉아 좌선에 들었네~
암자 앞에 아주 예쁜 화장실이 먼저 우리를 맞는다.
하필 왜 절 앞에 불결한(?) 화장실인가.
필시 무슨 이유가 있을 법 한데....
더러운 배설물을 다 비우고 깨끗한 몸으로 들어오라는 뜻인가?
우리 일행들도 화장실로 몰려가 배설을 마치고 경내로 든다.
대문 현판 글씨가 또 어렵다.
극락암의 여여문(如如門)이 아니고 이번에는 여시문(如是門)이다.
일행들이 가운데 자를 몰라 의견이 분분한데...
겨우 알아내어 시(是)자임을 밝혔다.
극락암의 여여문 가운데 자는 결국 스님께 물어서 알았다.
한문을 잘 모르는 젊은 사람이 나이깨나 먹은 나 같은 사람에게
저게 무슨 자냐고 물어 오면 참으로 난감하다.
모른다고 하자니 체면이 꾸겨지고, 아는 체를 하자니 역시
체면이 꾸겨진다.
위의 현판 글자 중 여시문 이라는 시(是)자를 구(具)자로 읽기도 했고,
아래 여여문의 여(如)자를 마음 심(心)자로 읽기도 했으니 어이없는
실수가 아니라 무식의 탄로가 아닌가.
그래서 여여문의 경우 문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마음 심자가 되고,
문을 실상의 건물로 보면 문자가 된다. 라고 궁색한 변명을 했으니
참으로 가관이다.
사찰의 한문자는 왜 정자(正字)가 아니고 초서체나 전서체 같은
일반인들은 알아보기 어려운 한문체를 쓰는지 알 수가 없다.
현판이나 편액, 주련 등에 쓰인 한자의 뜻이야 풀어 읽을 수밖에
없지만 글씨체만큼은 알아 볼 수 있는 정자로 썼으면 좋겠다.
어쩠던 비로암의 대문은 현판 앞에 전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
누전될 위험이 있고 보기가 좋지 않아 보였다.
대문짝에 그려진 금강역사가 우리를 반기다.
경내로 들어서니 정말 전망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다.
하긴 영축산 중턱에 위치해 있으니 산 아래 세상이 다 비로암
손바닥에 놓여있는 셈이다.
비로암은 智月님이 자주 들르는 곳이라는 데...
그래서 그런지 특별히 관심이 더 간다.
법당 마당으로 들어서니 전각들이 좁은 땅 위에 조화롭게 앉아 있다.
안양암에서 본 북극전 건물 지붕이 학처럼 날렵한 날개을 펴고 서 있다.
북극전 안에 있던 칠성탱은 너무 귀중하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 중이고 국내 유일한 탱화라 들었는데 내 생각은 원래자리인
비로암에 있는 것이 마땅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비로전 큰 법당으로 들어갔다.
역시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그런데 그 옆에 지장보상도 계신다.
어? 비로자나불 옆에 지장보상이라니....?
그러나 알고 보니 협시불이 아니라 독립된 불단에 있으니
방만 같은 뿐 독립으로 모신 불상임을 알 수 있다.
부처님 앞에 참배하고 모두들 좌선 자세로 불단 앞에 앉았다.
좌선을 하기 위함이 아니고 법당의 방바닥이 너무나 따뜻했기 때문이다.
냉기로 가득 찼던 온 몸이 부드러운 온기로 따스해 진다.
불경스러운 짓이지만 부처님의 품안처럼 따뜻하니 아마도 부처님은
우리들의 불경(?) 스러운 행동을 어여삐 봐 주실 것이라 믿는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노사나불(盧舍那佛),
대일여래(大日如來)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로 태양이라는 뜻으로 연화장세계에 계시면서
대광명을 발하여 모든 법계를 두루 비추신다.
법신불(法身佛)로서 형체가 없으며 모든 부처의 으뜸이시고
수인은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계신다.
불국사의 비로자나불이 유명하고, 전남 장흥 보림사와 강원도
철원 도피안사의 철조비로나불이 또한 유명하다.
어찌 비로암이 이런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 암자가 됐는지
알 수가 없으나 내 멋대로 해석을 하자면 이런 것 같다.
비로자나불은 빛을 상징한다.
그래서 대광명 법신불로서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춘다.
영축산 중턱에서(사실상 정상)에서 산 아래 온 세상을 비추시니
바로 비로자나불이고 그래서 비로암에 계시는 것이다.
이쯤이면 설명이 됐는지 모르겠다.
법당을 나오니 바람이 살랑살랑 분다.
법당 처마 끝에 매달려 있는 풍경(風磬)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정말로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낸다.
글로서는 어떻게 표현 할 수 없는 그런 청음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비로자나불의 법음(法音)이 이런 소리가 아닌가 싶다.
그 작은 풍경이 어떻게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신기하고 오묘하다.
물고기 모양의 풍경, 처마 끝에 매달려 있긴 해도 추호도 걸림이 없는
무애(無碍)의 허공(바다)을 자유자재로 다니는 한 마리의 물고기다.
오늘 하루 피로가 비로암의 풍경소리에 다 날라 가는 것 같다.
법당 쪽마루에 하얀 겨울 햇살이 내려와 앉아 있다.
마치 비로자나불의 대광명 빛처럼 온 세상을 비추고 있다.
쪽마루 한 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무심(無心)에 젖고 싶어진다.
시간은 오후 3시반. 해가 서쪽으로 서서히 기울면서 햇살이 점점
법당 창호를 통하여 방 안으로 들어간다.
하얀 고무신이 쪽 마루 앞 대돌 위에 놓여있다.
신발이 밖을 향해 있으니 스님은 곧 통도사 큰 절로 납실 모양이다.
원명 큰 스님이시다.
현 통도사의 방장스님 이시면서 비로암에 주석하고 계신다고 했다.
흰 고무신은 아마도 방장스님의 신발인지도 모른다.
원명스님이 어느 분인가?
경봉 대선사가 극락암에 계실 때 상좌스님으로 있으시던 분이란다.
큰 바다에 큰 물고기가 있듯이 경봉스님 같은 대덕(大德) 큰 고승 밑에
상좌로 계셨으니 원명스님 또한 대덕 큰 스님이 되시여 삼보사찰의
으뜸인 불보(佛寶) 대사찰 통도사의 방장어른이 되신 듯하다.
비로암 전각 기둥에 붙어있는 주련(柱聯)의 글씨가 보통 수준이 아니다.
양각으로 조각한 솜씨가 상당한 수준의 장인이 판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실력이 모자라 알아보지 못함을 어찌하랴.
(그러면 그렇지 나중에 알고 보니 경봉스님의 글씨이고, 원명스님이
최 근래에 조각하여 주련으로 삼았다한다.)
우리 일행 중 한분이 마침 마당으로 나오신 젊은 스님께 물었다.
“스님 저 글씨(주련)가 무슨 뜻인가요?”
스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답은 안 하시고 손가락질만 하신다.
"저기요, 저기 붙여놨어요.“
스님이 가리키는 쪽으로 가보니 건물 한 쪽에 A4 용지에 프린트한
주련을 해석한 문구가 붙어있었다.
그 내용을 여기에 옮긴다.
주련의 원문을 카메라에 담는 것을 깜박했다.
주련의 내용은 경봉 스님의 시(詩)라고 한다.
이 시(詩)는 경봉스님이 극락암에 주석하고 계실 때, 상좌인
원명스님 에게 주신 것을 그 동안 보관하고 계시다가
주련으로 만든 것이라고 지월님이 귀뜸 해 주신 것임을 밝혀둔다.
비로암 석등 화사석 화창에 왠 동자승이 앉아 계신다.
서쪽을 향하여 앉아 계시니 아마도 서방정토를 꿈꾸고 계신 듯하다.
서방정토는 불교의 이상향인가?
벌써 산문을 나설 때가 왔다.
절간 뒤에 있는 산정약수, 얼지 말라고 쫄쫄쫄 틀어 놓은
수도꼭지에서 차갑고도 찬 물이 나온다.
육심을 부려 그 산정약수 한 사발을 벌컥벌컥 마시니 온갖 속진으로
찌든 오장육부가 용트림을 친다.
서둘러 비로암을 나온다.
산 아래까지 내려가면 아마도 해가 질듯 하기 때문이다.
늘 산사의 해는 짧다.
속인은 산사의 암자에 머물 수가 없다.
저 아래 세심교(세心橋)를 건너 왔는데 마음은 여전히 집착과
욕망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다음 장에 계속
>未知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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