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전국문화재 斷想

8.반야암을 가다.

migiroo 2010. 2. 3. 09:37

 

8.반야암을 가다.


산을 내려오니 시간이 조금 남는다.
지나는 길에 반야암 가는 길을 가리키는 표지석이 보인다.
반야(般若)라는 말이 정말 좋다.
모두들 늦더라도 반야암을 보고 가자고 조른다.
오늘 순례 예정에는 들어가 있지 않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반야암으로 향한다.
반야암 가는 길은 조금 길다. 그러나 깨끗하게 포장된 길이
걷기에 너무 좋은 길이다.

 

 

 

시간은 오후 4시 반이 넘었다.
벌써 산자라 북향은 산 그림자가 드리우고 기온도 점점 떨어지기 시작한다.
일주문 대신 반야암 세진정(洗塵亭)이 암자 앞에 앉아 있다.
법당에 들기 전에 마음의 먼지를 털고 오라는 정자 인듯 하다.

 

 

이미 극락암도 갔다 오고, 비로암도 다녀와 세심은 조금 된 듯한데...
아직도 세진(洗塵) 할 먼지가 남았음인가. 정자에 올라 얼어붙은
계곡을 바라본다. 
 

 

 

 

 

반야암 지붕이 참으로 정갈하고 정겹다.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 지붕의 유연한 곡선이 너무 좋다.
한 옥은 선(線)으로 이루어진다.
주변 자연과 이반(離叛)하지 않고 동화되고 조화를 이루게 한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심성이 거친 것은 선이 없기 때문이다.
한옥은 여인의 몸매를 닮았다. 그래서 선이 유연하고 부드럽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심성도 부드러울 것이다.

 

 

그런데 경내로 들어서니 이게 왠 말인가?
지붕의 유연한 곡선이 밑으로 내려오자 직선화된 아파트 같은
시멘트 요사체가 눈을 거스르게 한다.
집 지을 땅이 부족했던가?

 


 


다행히 본전 법당은 그런대로 전통 사찰양식에 충실한듯하다.
본전 현판에 대웅보전이 아니라 반야보전(般若寶殿)이라 쓰여 있다.
반야암은 1999년 지안 스님이 창건했다 한다.
법당 안에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암자 앞 계곡을 건너는 출렁다리가 참으로 재미있다.
출렁다리를 건너니 그림 같이 예쁜 토방집 한 체가 앉아 있다.
일행 중 누군가가 “아! 저런 집에 살고 싶네...” 한다.
 

 

반야암을 나오려는데 석장승 두 개가 돌아가는 발길을 잡는다.
장승의 표정이 재미 있다기 보단 뭔가 골이 난 듯한 굳은 표정들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 장승같다.

 

 

 

두 분이 아마 간밤에 다투신 모양 이다.
꾸벅 부부장승에게 인사을 하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반야암을 나온다.
길을 걸으면서 반야(般若)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
반야, 너무나 많이 듣는 말인데....
막상 반야가 뭐지? 하고 자문해 보니 시원한 해답이 안 나온다.
반야, 반야, 반야가 뭐지...???


●금강계단에서 반야을 알다.


해가 저문다.
오늘 순례 길을 마무리 할 시간이 왔다.
우리 일행은 통도사 본찰 금강계단에 합장하고 섰다.
해는 이미 영축산을 넘고 보이지 않는다.
스님 한 분이 금강계단 네 방향 석등에 불을 밝히고 있다. 
나는 비로소 반야(般若)라는 의미를 조금 깨닫게 되는 것 같았다.

 

 

 


般若


만물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고 불법을 꿰뚫는 지혜.
온갖 분별과 망상에서 벗어나 존재의 참모습을 앎으로써
성불에 이르게 되는 마음의 작용....


오늘 통도사 산내 암자 1차 도보 순례를 무사히 마치게
해주신 부처님께 합장 감사드립니다.

 

끝.

 

>2010년 1.25일. 未知路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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