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연꽃
혹여 “겨울연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겨울철에 연꽃이 핀다는 말만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저는 한 번도 들어본 적도, 눈으로 본적도 없답니다.
그런데 오늘 실제로 겨울에 피어 있는 연꽃을 보려 간답니다.
자, 관심이 계시면 한 번 따라와 보세요.
바람이 꽤 차다.
내일 모래가 입춘(立春)인데 체감온도는 영하권을 맴돌고 있다.
그래도 나는 겨울연꽃을 보려 길을 떠난다.
찬바람에 목을 자라목처럼 움츠리며 논두렁길을 걷는다.
내 어께엔 2005년도 형 낡은 구닥다리 카메라가 매여 있다.
그분의 모습을 담기 위해서다.
그분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는 행위는 단순한 사진 촬영이 아니고
내 마음속에 그분의 모습을 담는 행위라고 여긴다.
경주의 보문 들판....
황량한 들판엔 차가운 냉기가 가득하다.
하얀 겨울 햇살이 내려 앉아 있긴 하지만 텅 빈 들판은
그야말로 쓸쓸하고 고독하기가 그지없다.
그러나 그분은 결코 외롭지도 고독해 보이지 않았다.
이 한 겨울에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겨울들판에 서 있는 그분을 겨울 연꽃이라 부르기로 했다.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정말 잘 진 이름 같다.
“겨울연꽃“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의 가슴처럼 심장이 펄떡거린다.
황량한 겨울들판에 핀 한 송이 겨울연꽃.....
그분은 천 수백 년 동안을 그렇게 피어 있다.
그분의 몸은 단순한 꽃이 아니다.
천년 세월 모진 세파를 견뎌온 고통의 결정체...
바로 적멸의 꽃이고 부처의 진신(眞身)이시다.
그분이 서 있는 황량한 겨울 보문들판......
그 분은 찬바람에 온 몸을 맡기며 한 점 미동도 없이 서 계신다.
바로 겨울 들판에 핀 한 송이 연꽃이다.
그 어느 꽃보다도 미려(美麗)하고, 화려하고, 고고하다.
불사조처럼 결코 시들지 않는 지존(至尊)의 꽃이다.
경주 보문들판...
사람들은 그분의 땅을 그렇게 부른다.
경주 미(쌀)의 주산지, 아마도 경주 쌀은 모두 여기서 나올 것이다.
그래서 풍요의 들판이다.
그러나 겨울엔 아무 것도 없는 빈 들판이다.
공(空)의 세계이다.
그 공속에 홀연히 피어 있는 한 송이 연꽃....
지금부터 그 연꽃 애기를 하려고 한다.
선덕여왕이 잠들어 있는 경주 낭산(浪山) 아래 들판은 봄부터 가을까지 온통 논밭의 경작물로 가득히 채워진다.
그래서 좀처럼 보문들판에 산재해 있는 천년 신라의 숨결이 배여 있는 불교 유적들을 찾아보기가 어렵고
빈 들판으로 변하는 겨울철에 와야지만 유적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유적이라고 하기보단 차라리 조각이라고 해야 될듯하다.
절터의 주춧돌들, 기와 조각들, 깨진 석탑조각들, 상처 난 당간지주 등등...
이런 것들이 논밭 여기저기 흩어져 땅위에 고개를 내밀고 방치되어있다.
그러나 그런 조각들은 단순한 옛 흔적들이 아니라 천 수백 년 고통을 견디며
살아 숨 쉬고 있는 부처의 분신들이고 역사의 언어들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겨울연꽃처럼 보문들판에 피어 있는
국내 유일의 “보문리연화문당간지주”이다.
몸의 반은 땅속에 묻혀있고, 반은 하늘을 향하고 있다.
당간지주의 맨 위쪽 끝에 “팔엽연화무늬“가 양 기둥에 새겨져 있다.
당간지주는 많지만 연화문당간지주는 국내에서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더 든다면 충주월악산 미륵리 절터에 망가져 쓰러져 있는
당간지주가 있고, 전북 고창 흥덕사지에 고려시대 새운 당간지주가 있는데
원래 절단되어 있던 것을 근세(1987)에 복원 수리하여 다시 새운 것으로
기둥에 3개의 연화문이 새겨 있다.
하지만....
그 연화의 조각술이 너무 볼품이 없고 경주 보문리당간지주 연화문과는
그 정교함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뒤떨어져 있다.
당간지주는 보통 산문 앞에 새운다.
보문리 당간지주는 과연 어떤 사찰의 당간을 내 걸었던 지주 이었을까?
보문들판에는 수많은 절터의 흔적들이 있지만 모두 논밭에 묻혀 있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래도 보문리 연화문당간지주는 그 특유의 연화무늬 때문에 국가 보물급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보물 제910호)
지주의 아랫부분은 땅 속에 묻혀 있다는데.... 한번 파 봤으면 속이 시원할 듯하다.
무너져 망가진 석탑도 복원하는데 땅 속에 묻힌 것쯤이야 파내어 바로 세우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터인데... 그럴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보물로 지정했으면 보물급 문화재로 대접을 해야 되는데...
이처럼 아름다운 당간지주를 가지고 있었던 절은 도대체 어떤 절이었으면 어디쯤 있었을까?
절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주변을 돌아봐도 그저 보이는 것은 바람만 부는 겨울 들판뿐이다.
그래도 요즘은 보문들판에 있는 문화재들의 환경이 많이 변했다.
두기의 당간지주 주변도 잘 정리됐고 잔디까지 입혔다.
진평왕릉과 석조 주변도 잘 정비를 했다.
그러나 아직도 보문들판에는 숱한 귀중한 문화재들이 논바닥이나 논두렁에 그냥 방치되어 있는
실정여서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하기야 경주는 국보나 보물급 문화재가 쌔고 샜으니 이 따위(?)
것들은 문화재 축에도 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지.....
이대로 방치했다간 아마도 10년 후 쯤에 모두 사라지고 말지도 모른다.
그러면 연화문에 대하여 잘 설명한 사찰 전통 미술 연구가 허균님의 글을 잠깐 인용해보자!
(*허균: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8엽의 연꽃의 중앙은 불성자체인 대일여리를, 주변8엽은 법신불의 방편으로
나타난 네 부처와 네 보살을 의미 하는데 꽃잎이 모두 중심에 붙어있어
네 부처와 네 보살은 결국 하나의 법으로 귀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불성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음을 8엽의 심장
곧 마음의 연꽃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허균, 사찰장식 그 빛나는 상징세계에서....)
연꽃~
그러면 연꽃은 도대체 불교와 어떤 상징적 관계일까?
나는 단 한 마디로 말하고 싶다.
“연꽃 곧 부처의 몸이다.”
여기서 나의 짧은 견해가 아닌 연화(蓮花)를 잘 그리는 화가 유정 박명희님의 연꽃과 불교에 관한 글을 인용해 본다.
마음이 없이는 부처도 없다는 말의 뜻은 부처가 마음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연꽃과 같습니다. 연꽃은 진흙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진흙은 아니죠. 진흙과 연꽃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았는지요? 연꽃은 진흙에서
나와서 물 위로 피어오릅니다. 그때 연꽃은 하나의 초월인 것입니다.
진흙이 없다면 거기에 연꽃도 없습니다.
연꽃이 없어도 진흙은 존재할 수 있는데 이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연꽃은 석가모니 부처가
특별히 '연꽃'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정도로 아름다운 꽃입니다. 그래서 부처는 자신의
낙원을 '연꽃 낙원'이라고 불렀습니다.
진흙은 연꽃없이 존재할 수 있어도 연꽃은 진흙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단 한 명의 부처도 없이 수백만 개가 존재할 수 있어도 부처는 이 모든 마음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마음은 진흙과 같은 구실을 하며 부처는 진흙과 물을 초월해서 태양과 만납니다.
그러므로 부처는 마음에서 나오지만 마음은 아닙니다.
그리고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자신의 아버지에게 오랜 침묵후 이러한 말씀을 하게 됩니다.
"나의 침묵이 옳은 행동입니다. 나는 이전에 당신을 떠난 그가 아닙니다. 그는 오래 전에 죽었습니다.
물론 나는 같은 몸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 그가 진흙이라면, 지금의 나는 연꽃입니다.
그러니 그 연꽃에 대고 화풀이를 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지금 진흙 때문에 화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로 하여금 당신의 눈물을 닦게 해주십시오."
따라서 연꽃은 불교에서 깨달음과 지고지순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간지주 찾아가는 약도
■문화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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