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3(수)
●경주 율동마애열반상 답사기
겨울은 춥다.
그러나 정신까지 추울 수는 없다.
춥다고 방안에 웅크리고 있다면 아무것도 이루어 지지 않는다.
여름은 더워서 좋고, 겨울은 추워서 좋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오늘(1.13), 완전 무장을 하고
일행 몇 분들과 경주 율동에 있다는 마애열반상을 찾아 나선다.
“마애열반상(磨崖涅槃像)...?”
경주에 마애불은 많지만 열반상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아니, 우리나라에 바위에 새긴 열반상이 있다는 말조차 듣지 못했다.
금동 와불(臥佛)을 모신 사찰은 더러 있지만 마애열반상은 거의 없다.
기온이 왜 이리 뚝 떨어진 걸까?
겨울은 추운게 당연 하지만 요즈음의 추위는 아무래도 예사롭지가 않다.
기상 이변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두가 급속한 문명의 발달이 가지고 온 재앙이다.
자연 재앙이 아닌 인간 스스로가 자초한 재앙....
경주 형산강 서천교를 지나 무열왕릉 쪽으로 핸들을 튼다.
멀리 서악의 거대한 고분군(古墳群)들이 천년 잠에 들어있다.
무열왕릉을 지나 율동마을로 가는 좁은 길로 들어선다.
율동마을 노인들은 마을 이름을 사당골(일명 방목골)이라고도 부른다.
▲마애열반상이 있는 율동마을 뒷산
차에서 내려 미로처럼 얽혀 있는 마을길을 지나 마을 뒷산으로 들어선다.
마애불을 찾아 가는 이정표나 표지판 같은 것은 없다.
그냥 아는 사람의 말을 빌려 대충 눈짐작으로 마애불을 찾고 있다.
길이 없으니 마애불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열반으로 들어가는 길인가?
적멸에 들어 열반의 세계에 들어계신 부처님을 어찌 쉽게 친견 할 수 있겠는가?
▲마애열반상이 있는 길로 들어 가는 대숲 길
다행히 겨울철이라 숲이 없으니 마애불 찾기가 훨씬 수월한 편이다.
일행 모두 인근 바위를 찾아보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보물찾기에 들어갔다.
바람을 동반한 추위가 산 속 깊숙이까지 들어와 있다.
그러나 산 속을 뒤지고 다니다 보니 추위는 달아나고
이마에 땀이 촉촉해 지기 시작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일행 중 누군가가 고함을 친다.
“심봤다~”
마애불을 찾았다는 고함소리다.
모두들 소리 쪽으로 몰려갔다.
“어디야, 어디~~~“
▲마애열반상 과 명문이 있는 바위 면
그러나 커다란 바위만 보일뿐 마애불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실망의 눈초리로 바위 면을 살핀다.
“여기 있다. 여기~~~”
바위면 아래를 보니 보일 듯 말 듯 한 석불의 얼굴 윤곽이 겨우 보인다.
그러나 몸 전체 형체는 보이고 않고 불안(佛眼)과
한 쪽 손만 간신히 보일 뿐이다.
“잘 안 보이는데요, 안 보여요?”
내가 일행들에게 한 마디 한다.
“불심이 깊지 않으신 분은 잘 안 보일 것이고,
불심이 깊은 분은 보일 것입니다.“
모두들 의미 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한 바탕 웃음을 터트린다.
부처님은 점점 우리들의 시야에 나타나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각(線刻)이 너무나 옅고 희미하여 전체적인 윤곽은 보이지 않는다.
▲마애열반상이 그려져 있는 바위면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대지만 앵글에 잡히는 것은 거무티티한 석화가
잔뜩 낀 바위만 잡힐 뿐이다.
부처님(열반상)은 잔잔한 미소 속에 눈을 지그시 감고 누워계셨다.
그저 그 자비에 가득한 얼굴과 가지련한 손 만 보일뿐이지만....
우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 동안 경이와 감동에 벅차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추위는 매섭게 몸속으로 파고들었지만 우리들은 마애불을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며 자리를 뜨질 못했다.
여기가 적멸의 세계인가, 열반의 세계인가?
부처님은 이 음습한 바위 아래에서 누워 계시니 얼마나 춥고,
고독하고 외로우실까? 생각하니 고통이 절절히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마애열반상은 얼굴 부분과 손 부분만 그려져 있고 나머지 신체 부위는 그림이 없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율동마애열반상은 1998년 여름 어느날 태풍“에니”호가
휩 쓸고 지나 간 후 기적적으로 사람들 앞에 현신(現身)했다한다.
그 후 1999년에 정식으로 학계의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아직 문화재로는 지정되지 않았다.
선각으로 그려진 마애불은 7~8m 가량의 큰 바위 아랫부분에 새겨져 있다.
열반상이 새겨진 면은 북면이며 마치 불전처럼 움푹 파인 면에 오른쪽 어깨를
땅으로 향한 채 누워 계신다.
육계로부터 발까지의 길이는 대략 180cm에 이르지만 특이한 것은 완전한 불두
그리고 왼손과 두발을 선각으로 새겼을 뿐 광배나 두광이 없다.
더구나 불두로부터 손에 이르는 몸이 조각된 흔적을 찾을 수 없으며 손에서 발까지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마애불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뚜렷하지 않는 윤곽 때문에 실망을 하고
돌아갈지 모르지만 깊은 불심이나 감성으로 보면 그 어느 멋진 마애불보다도
깊은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어찌 석굴암의 본존불이나, 경주 남산의 칠불암 같은 멋진 석불만 보고
감정을 일으키겠는가.
조각술이 볼품없고, 불상으로서의 형식에 맞지도 않은 불상일지라도
거기에서 받는 감정이 깊다면 불상의 모양이나 형식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마애열반상 옆 바위면에 있는 명문
열반상 곁의 바위면에 명문은 30자 가까이도 발견 되었다.
우리들도 몇 자 명문을 알아보긴 했지만 학자들의 조사결과 명문은
“무술년(戊戌年) 법태법사(法泰法師)”라는 글자만 판독되고
나머지 전체 내용은 파악이 어렵다고 한다.
열반상이란 무엇인가?
그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자.
열반항이란 석가모니가 입적하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다.
머리를 북쪽에 두고, 얼굴은 서쪽을 향하며 오른쪽 옆구리를 밑으로 하고
누워 계시는 모습이 열반상이다.
이 열반상은 부처님의 생애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팔상도의
맨 마지막 단계의 그림이다.
보통 이를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혹은 열반적정상(涅槃寂靜相)이라고도 한다.
'열반(涅槃)'은 산스크리트 '니르바나'(nirvāuc0ṇ)를 음역한 것이고,
취멸(吹滅)·적멸(寂滅)·멸도(滅度)·적(寂) 등으로도 번역된다.
열반의 본래 뜻은 '소멸' 또는 '불어 끔'인데, 여기서 '타오르는
번뇌의 불길을 멸진(滅盡)하여 깨달음의 지혜인 보리(菩提)를
완성한 경지'를 의미한다고 되어있다.
열반은 생사(生死)의 윤회와 미혹의 세계에서 해탈한 깨달음의
세계로서 불교의 궁극적인 실천목적이다.
>미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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