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索의 窓門/思惟의 방

법정 스님을 회고 하며....

migiroo 2010. 3. 16. 22:07

 

▶2010.3.16

아래 글은 2002년 8월. 법정 스님에 대하여 쓴 글입니다.

이제 그 분을 잃은 슬픔으로 다시 옛 글을 끄집어 내어 그분을 생각합니다. 

(슬픈 마음으로 잠시 배경 음악을 넣었습니다. 볼륨을 조금 올려 주시면...)

 


法頂 스님

 

 


‘모든 고뇌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만족할 줄 알아라.
만족할 줄 알면 항상 넉넉하고 즐거우며 평온하다.
그런 사람은 비록 맨땅 위에 누워 있을지라도 편안 하고 즐겁다.
그러나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설령 천국에 있을지라도

그 뜻에 흡족하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이 마지막 설하신 유교경(遺敎經)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98년도에 출간된 법정(法頂) 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 에 인용된 구절이기도 합니다.
한 말로 표현 하자면 지족(知足)의 지혜를 알고 살라는 것이겠지요.
법정스님의 신조가 된 無所有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제가 법정스님의 글을 접한 것은 ‘90년대 중반입니다. 늦은 샘이지요.
불자도 아닌 제가 스님들의 글을 읽을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 보다는 法頂 이라는 법명이 주는 뉘앙스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신문에 연재된 스님의 칼람도 외면해 버리곤 했었습니다.
法頂이란 뜻은 법의 정점이라는 의미로 받아 들여져 조금은 오만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法이란 불교에선 진리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부처님의 진리를 말합니다.
그런 법의 정상에 자기가 서 있다는 법명을  갖었으니 저로선 좀 불편한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분의 글을 통하여 스님의 법명인 법정의 의미를
달리 해석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법정은 법의 정점이라는 뜻이 아니고,

청빈의 정점이라는 뜻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부처님이 누구보다도 청빈하셨으니 바로 겸손과 청빈의 정점이 법정인 셈이지요.


그 후 전 스님이 쓰신 책이란 거의 다 사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애독자가 됐습니다.
한 가지 의문은 그렇게 많이 책을 팔아 받으신 돈이 꽤나 될 것인데
그토록 청빈하신 분이 어디다 돈을 쓰시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공연한 의문이지요.

 

어리석은 중생은 이렇게 쓸데없는 걱정과 의문에 왜 매달려 있는지 모릅니다.
출판사들은 스님의 글을 받기에 혈안이 되여 있지요.
그래서 스님의 글들이 본인도 모르게 책명만 바뀌어 새로 출간되기도 하고,
한 내용이 이 책에서도 나오고, 저 책에서도 나오곤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들의 얄팍한 상술이 스님의 법문(글)에 누를 끼치고 있는 것이지요.

 


요즈음 제가 읽는 스님의 책은 ‘96년도에 초판을 발행하고,
금년 1월에 4판을 발행한 ‘물소리 바람소리’ 입니다.
스님의 글에는 대단한 주제가 없습니다.
그저 살아가시며 틈틈이 쓰시는 자질구레한 애기 들입니다. 
그러나 스님의 글에는 채찍이 들려있고, 감동이 있습니다.
그리고 청빈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가르치십니다.
때로는 질책하고, 때로는 얼려고, 때로는 감동을 주십니다.


파괴돼 가는 환경을 걱정하고, 삭막해 가는 인심을 걱정하십니다.
무디어진 사람의 마음속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 넣어주시고,
인간들의 오만과 과욕에 대한 호통도 빼트리지 않으십니다.


이렇듯 스님의 글에는 그냥 쓴 것이 아닌 체험적 가르침이 충만합니다.
그래서 저는 스님의 가르침에 닫힌 가슴을 열고 있습니다.
비록 그 분과의 직접 만남은 없었지만 우리는 날마다 만납니다.
청량한 풍경소리처럼 스님이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일갈하는
할(喝) 소리가 허공 속에서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듯 합니다.  

 

<후기>
 

나중에 안 일이지만 스님은 책을 팔아 한 푼도 손에 쥐어 보신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모두가 자선단체나 어려운 사회단체에 주신 것이고...

아예 자신의 은행 통장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이 왜 자신의 글들이 공해가 되어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는지...,

이제는 절판을 하라는 말씀의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죽음에 대한 흔적을 하나도 남기지 말라는 유훈에는

너무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듭니다. 

이제 49제가 되면 당신의 뼈가루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뿌린다고(산골0 합니다.

그러면 남은 우리는 이 삭막한 세상에서 무엇을 스승으로 삼아 살아가야 합니까.

 

스님의 뜻을 조금은 거스르는 한 있더라도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아주 작은 부도하나 세워 스님을 그릴 수 있도록 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제 우리 세대의 마지막 선지식이며 스승을 잃었습니다.

그 분이 돌아 가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슬픔이고 허망함인지

아직은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지나면 우리는 그분을 잃은 사실이 얼마나 큰 슬픔이고 고통인지를

가슴 절절히 느끼게 될 것입니다.

 

"스님 부디 부처님 품안에서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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