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전국문화재 斷想

무위사에서 無爲를 배우다.

migiroo 2010. 4. 15. 16:29

 

무위사에서 無爲를 배우다.

 


“無爲”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무위사에 가려니 먼저 무위(無爲)라는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한다.


“無爲 란 무엇인가?”


무위라 하니깐 언뜻 무위도식(無爲徒食)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면서 먹기만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無爲의 사전적 의미는 글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음” 이다.


그렇다면 불교적 의미는 무엇일까?
불교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쓰여 있다.


“현상을 초월하여 상주불변(常住不變), 즉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존재를 이르는 말”


궁극적으로 無爲의 진정한 의미는 열반(涅槃)의 길임을 암시하고 있다.
너무 어렵고 난해하다.
나 같은 범부가 어찌 무위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단 말인가.
아마도 무위사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모른다.


 
●황량한 무위사 일주문


무위사(無爲寺)는 강진 월출산에 있는 고찰이다.
처음 절 이름은 관음사로서 617년(신라 진평왕 39)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전한다.
그 후 1556년(조선 명종11) 태감(太甘) 스님이 중창하고, 무위사라 개칭하였다한다.
무위사에는 국보급, 보물급 문화재가 즐비한 고찰이다.


도갑사에서 내쳐 무위사로 오니 먼저 일주문이 반갑게 맞아 준다.
그런데 무위사 일주문은 도갑사 일주문 보다 더 황량하다.
완전히 포장된 광장 한 복판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단청의 옷도 입지 못하고 이름표(현판)도 못 달은 벌거숭이 건물이다.
산문은 들어가는 사람을 위한 문이 아니라 자동차를 위한 문으로 변해 있다.
아예 일주문 옆으로 1차선 포장길이 나 있다.

 

 

 

요즘 사찰의 일주문이 왜 이처럼 푸대접(?)을 받게 됐는지 가슴이 아프다.
비록 불자가 아닐지라도 산문인 일주문 앞에 합장하고 마음을 청청히 다스려
불계로 들어가는 첫 관문을 겸허히 통과해야 될 것 아닌가.
허허롭게 서 있는 일주문을 보니“無爲”라는 말이 조금은 공허하게 들린다.
무위 보다는 왠지 무위사의 일주문으로부터 받는 감정은 황량함과 외로움,
슬픔 같은 감정이다.

 

 

●무위사의 해탈문은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고...


 

 

참으로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도갑사 해탈문도 해체 되어 수리 중이더니 무위사 해탈문도 수리 중으로 바리케이트가 처지고

포크레인 한대가 들어 앉아 사람의 출입을 막고 있다. 
아무래도 속진(俗塵)으로 얼룩진 나에겐 해탈의 경지로 들어가는 문을 허락할 수 없다는 모양이다. 


 

 

해탈문이 닫혔으니 사천왕님도 뵙지 못하고 국보 13호 무위사 극락보전으로
오르는 천상의 돌계단도 밟아 보지 못하게 되었으니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엉뚱한 옆길로 걸어서 법당 마당으로 향한다.
그냥 지나자니 서운하여 온전한 해탈문(천왕문) 사진 만이라도
여기에 실어 해탈문을 통해 걸어 들어가는 연출을 해 본다.

 

 
건물의 현판은 해탈문이 아니라 “月出山 無爲寺”라 쓴 현판이 걸려있다.
무위사 해탈문은 두가지 용도로 쓰이고 있는 듯 하다.
들어가는 문은 해탈 문이고, 안에서는 사천왕이 계시니 천왕문이다.
특이 하게도 해탈문 입구 두 기둥에 용머리가 얹혀 있다.
문 안 쪽의 천장 대들보 단청이 산뜻하고 화려하다. 

 

해탈문의 기둥 초석은 자연 그대로의

덤벙주초 형식이다.
덤벙주초 형식이란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을 다듬지 않고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해 주춧돌이 평탄하지 않은 초석

(礎石)을 덤벙덤벙 놓았다하여 붙여진
재미있는 우리말 이름이다.

해탈문과 천왕문을 통과한다. 

 

 

사대천왕(四大天王)·호세사천왕(護世四天王)이라고도 한다. 욕계육천(欲界六天)의 최하위를 차지한다.

수미산 정상의 중앙부에 있는 제석천(帝釋天)을 섬기며, 불법(佛法)뿐 아니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호법신이다. 동쪽의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毘沙門天王)을 말한다.


●천상의 극락보전으로 오르는 해탈의 돌계단

 

 

 

 

해탈문을 통과 하니 오직 해탈한 자만이 오를 수 있는
극락보전 수미단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나타난다.
나는 오늘 해탈문을 통과하지 못했으니 그저 구경 하는 나그네 일뿐이다.
돌계단 너머 극락세계의 보궁(寶宮)인 극락보전이 보인다.


극락보전의 건물은 정말 너무도 초라한 모습이다.
여기서 초라함이란 남루하고 보잘것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때 묻지 않은 촌 아낙처럼 수줍고 맑다는 의미이다.


가지러한 돌계단을 한단한단 올라서면 점점 극락보전이 가까이 다가온다.
이윽고 계단을 다 오르면 빗자루 자국이 선명한 법당 마당에 이르는데
그 법당 마당이 마치 불계의 황금빛 연못처럼 누워 있다.
그리고 그 연못 한 가운데에 연꽃 한 송이가 떠 있으니
바로 연화문 배례석(拜禮石)이다.
  

 

 

 어느 사찰에 가보아도 법당 마당에 연화문배례석이 있는 곳을 보지를 못했다.
굳이 예를 든다면 불국사 대웅전 앞 석등 앞에 사각의 배례석이 있긴 하다.
그러나 불국사 배례석은 아마도 석등을 밝히고 참배를 하기위한 배례석일 것인데
무위사 극락보전 배례석은 석등도 없이 그저 홀로 떠 있다.
마치 연못 위에 유유히 떠 있는 배 같기도 하고,
한 송이 아름다운 연꽃 같기도 하다.

 


●무위사 극락보전


오늘 동쪽 끝 경주에서 서쪽 끝 강진까지 멀고도 먼 길을 왔다.
바로 무위사의 극락보전을 보기 위함이었다.
이곳 강진까지 와서 설령 무위사 극락보전 하나만 보고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해도 서운할 것이 없다.
왜냐 하면 무위사 극락보전은 바로 건물이 국보이면서
건물 안에도 국보급 보물(문화재)이 가득 하기 때문이다.


 

 

무위사의 극락보전이 왜 국보가 됐는지 그 이유를 금방 말하지 못한다.
그냥 건물을 아래위로, 우로 좌로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안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건물 한 체가 무엇이 좋다고 딱히 말할 수는 없는데
하루 종일 아니 몇 날 며칠이고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들게 하는 건물이다. 다시 말해서 바로 이런 감정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곁에서 바라만 봐도 좋은 것처럼, 그런 느낌이다.”


무위사의 늙은 극락보전을 바라보고 있으면 비로소 無爲 라는 의미를
조금은 이해 할 듯도 하다.


절 집은 늙어 갈수록 아름답게 보이고,
나 같이 나이 먹은 사람은 왜 늙어 갈수록 추해 보이는지 모른겠다.

 


국보 13호, 무위사 극락보전 건물은 맞배지붕에 주심포 양식의 건물로

단아하고 기품이 있는 건물이다.
건물은 아무것도 입지 않은 알몸인데도 부끄러움이나 수줍음조차 들지 않는다.

순수 그 자체 같기 때문이다.
도갑사 대웅보전이 화려함의 극치라면 무위사 극락보전은 초라함의 극치다.
그러나 두 보궁 중 아름다움의 우위를 따진다면 단연 무위사 쪽이다.
도갑사 대웅보전은 아름답게 화장한 얼굴이라면 무위사 극락보전은 화장하지 않는 민얼굴이다.
도갑사 대웅보전은 화려한 사물로서 바라보고, 무위사 극락보전은 내면의 감성으로서 보아야

제대로 그 진가를 발견하게 된다.   

 

 

 

극락보전의 측면이다.
공포가 어떻고, 추녀마루의 선이 어떻고...
맞배지붕에 2고주 5고량이니, 1고주 7고량이니 하는 건축 가구(架構) 용어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평방, 창방, 사래, 부연 등등 하며 전통 건축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복잡한 한옥 용어를 대고

구차스럽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런 것 하나도 몰라도 그냥 바라보면 안다. 
뭐라고 말로 표현 할 수 있는 재주는 없지만 그냥 느낄 수 있다.
초라하지만 위엄이 서려있고, 허전하지만 꽉 차있음을 본다.
아무것도 없는 허연 벽이지만 그 안에 진리의 무언(無言)이 있음을 안다.
화려하지 않지만 궁색해 보이지 않고, 간결하면서 균형미가 있다.
여유와 여백이 보이고 치우치지 않는 중용(中庸) 같은 것이 보인다.
부처님을 모신 전각은 극락정토를 상징하여 화려한 단청으로 꾸미는 것이
정통인데 반드시 화려하지 않아도 화려함은 느끼게 하는 곳이 바로 이런
법당이 아닌가 싶다.


 

극락보전 법당 앞 문살이다.
이런 문양을 솟을빗살문이라고 한다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꽃이 조각되어 있으면 솟을꽃빗살문이 된다.
왼쪽 것은 밖에서 본 문양이고 오른편 것은 법당 안쪽에서 본 햇살 든 문양이다.
화려한 꽃문양이 없어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단순하고 간결하고 꾸미지 않은 소박함에서도 미(美)의 극치를 느낄 수 있다.


사람도 이와 같지 않을까?
화려한 옷에 값 비싼 보석으로 치장하고 명품 핸드백을 든 여인 보다는
소박하지만 잔잔한 미소에 기품이 있는 부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사물도 그렇지 않은가 싶다.


드디어 법당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옷깃을 여미고 서툰 몸짓으로
삼존불에 절을 올린다음 이리저리 법당 안을 살펴본다.
천정도 살펴보고, 사면 벽도 살펴본다.
본존불 후면의 벽화도 살펴보고, 사면 벽화도 살펴본다.
역시 초라하다. 퇴색된 단청과 벗겨지고 빛바랜 벽화도 초라하다. 


 

 

법당 안은 쾌쾌한 냄새마저 풍기고 있다.
그러나 그 쾌쾌한 냄새에서 초라함에서 세월의 흔적을 읽을 수 있고,
감히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있음을 느낀다.
천정의 보개형 닫집에서는 수많은 꽃비가 내리고,
두 마리의 늙은 용이 용트림을 치며 천상을 지키고 있다.


 

 

법당 안에는 온통 보물급 문화재로 가득하다.
우선 불단의 목조아미타삼존불상은 보물1312호)이고,
주불 뒤에 있는 아미타삼존벽화는 국보 313호이다.
그리고 주불 뒷면 벽화는 유명한 백의관음도로 보물 1314호이다.

 

아미타삼존불 뒤 아미타삼존벽화(국보313호) 관음보살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다.

이 연유에 대하여 전해 내려 오는유명한 설화가 있다.

 

창건 당시 한 노인이 49일간 안을 들여다 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 극락보전 안에 들어가

벽화를 그리기 시작하였으나, 49일째 되는 날 주지스님이 약속을 어기고 안을 들여다 보자,

파랑새 한 마리가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고 날아가 버려 관음보살에 눈동자가 없다는

전설이다.  

 

그리고 일괄 보물1315호로 지정된  법당의 사면 벽에는 아미타래영도를
비롯한 삼존불화, 오불도, 관음보살도, 지장보살도, 주악비천도등 총28점이 가득 그려져 있다.

건물이 국보이니 그 국보 안에 찬란한 보물이 가득히 채워져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많은 보물들 중 주불인 아미타삼존불상과 백의관음도를 제외하곤

모두 진품이 아닌 가짜 복제품 이라는 사실에 경악한다.
진품 벽화는 모두 떼어내 견고한 유리관에 넣어 무위사 성보박물관에 전시해 놓았다.

 

 

여기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불상이나 벽화라 할지라도 그것들이 제자리에 있지 않고 박물관으로 옮겨졌다면

그것들은 이미 신성을 상실한 한낱 전시품으로 미술품이나 문화재일 뿐이다.


불상은 불단 위에 있을 때, 불화는 법당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신성의 생명을 얻어 불자들의

예배 대상으로 숭앙 받게 되는 것이 아니가?


화재 예방이나 보안이 철저히 보장된 국립박물관 같은 곳이며 몰라도 동일 사찰 경내에서는

법당 안이나 성보관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정 그렇다면 유리관에 넣은 상태로 원래의 법당 자리로 갖다 놓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불국사 석굴암 본존불이 보안상 불안 하다면 국립경주박물관이나 중앙박물관으로 옮겨야 한다.

그러나 절대 옮겨 갈 수가 없을 것이다.
석굴암 본존불은 문화재이기 보다는 우리들의 정신적 신앙의 대상인 부처님 그 자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원래 것은 박물관에 전시해 놓고 복제품을 금당에 모셔두고

사람들에게 예배케 하는 행위는 속임수의 일종인 기만(사기)이 아닌가?
진품이 도난이나 화재로 소실 됐거나, 국립박물관 같은 곳에서 가져가 
진품이 사찰에 없다면 몰라도 사찰 스스로 진품을 전시용으로 둔갑시키고,
가장 신성시하는 금당 안에는 복제품을 모셔 예배케 하다니 말이 되는가?


이런 현상은 비단 무위사뿐이 아니고 전국 사찰이 대부분 저지르고 있는
잘 못된 현상이니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제일의 명종(名鐘) 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은 울지 않는다.
국보급 문화재로서만 여겨 종을 치지 않고 보호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종의 원음은 바로 불음(佛音)이다. 종에 그렇게 쓰여 있다.

불음이 뭔지 아는가?

바로 부처님의 소리 죽, 부처님의 말씀이다.
울지 않는 종은 더 이상 종이 아니고 그냥 쇳덩이에 불과 할 뿐이다.
에밀레종은 겉모양이 멋져서 세계 제일의 종이 된 것이 아니고
그 소리가 신비스러워 세계 제일이 된 것이다.
에밀레종은 다시 쳐야 된다.
그래야 세계 제일의 종 값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본은 감춰두고 복제품을 불단에 모시고 예배케 하는 행위도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다. 너무 비약적인 비판인가?

 

 

●극락보전 과 삼층석탑

 

 

 

천년 고찰 무위사에 이 두 불적이 없다면 무위사가 아닐 것이다.
삼층석탑은 경주에 있는 전형적인 신라의 삼층석탑과는 그 뉘앙스가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학자들은 신라 석탑이 아니고 고려 초기 석탑으로
추정한다고 하니 아무래도 석탑은 후기로(고려, 조선)들면서 점점 간결해 지고
볼품이 전만(신라) 못한 탑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경주의 신라 탑에 비하여 날렵하지 못하고 둔탁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탑과 극락보전 건물이 어우러져 주변 자연경관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바로 배치의 미학이고 여백의 철학이다.

 


●무위사 미륵전의 엄마 석불

 

 


앙증맞게 예쁜 미륵전 안에 왠 요상하게 생긴 석불이 서있다.
석불은 원래 미륵전에 있던 것이 아니라 동내 마을에 있던 것을 수습하여
미륵전에 모신 것이라 한다.
석불은 석불 같지가 않고 수더분하고 살이찐 50대 아주머니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 모습같은 석불이다.
마애불로 조성한 것이긴 한데 돌을 적당히 잘라 광배까지 갖췄으니 아무래도
보살님(여인)들이 좋아할 불상이 아닌가 여겨진다.

 


●무위사 선각대사편광탑지(보물 제507호)


 

 

이 비는 선각대사를 기리기 위하여 고려 정종 원년(946)에 건립된 탑비이다.
선각대사는 신라 말의 명승으로 고려 태조 원년에 54세로 입적하였다 한다.
탑비는 용케도 큰 손상이 없이 이수와 비신 그리고 비좌인 귀부가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귀부의 몸은 거북이지만 머리는 용두로서 여의주를 물고 무섭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조각술이 조금은 조야스럽고 거친 편이다.


 

 

무위사는 근래 들어 범종각과 요사체 등 불사가 한창이다.
그래서 분위기가 좀 어수선하다.
無爲寺에 無爲가 아니라 有爲를 보는 듯 하다.
그러나 아무리 無爲를 실천한다 해도 가람으로서의 전각들은 필요할 것이다.
좀 시끄럽고 어수선해도 이해하고 참아야 한다고 본다.
아마도 내년쯤엔 차분한 분위기를 되찾을 것 같고,
그 때 와서 다시 無爲를 찾아야 될 듯 싶다.


무위사를 나온다.
다시 포장 길 위에 서있는 일주문을 차 몰고 휭~ 빠져 나오니
어쩐지 일주문이 외로워 보여 가슴이 찡~해 온다.


다음 답사지는 옛 절터 강진의 “월남사지” 이다.


>未知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