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전국문화재 斷想

진홍빛 동백꽃이 핏덩이 되어 떨어지는“강진 월남사지”

migiroo 2010. 4. 16. 18:19

 

 

●진홍빛 동백꽃이 핏덩이 되어 떨어지는“강진 월남사지”


 

무위사를 나온다.
길 너머 월출산이 길게 누워있다.
금강산의 한 봉우리를 옮겨다 놓은 듯 월출산 봉우리의
기암괴석이 잡힐 듯 아련히 솟아있다.


 

 

 

녹차 밭 하면 보성을 떠 올리는데 강진에도 보성 뭇지 않은
녹차 밭이 있다는 사실을 여기 와서야 비로소 안다.
너른 차 밭에 커다란 선풍기 같은 팔랑개비가 보이는데 이는
서리를 방지하는 시설 이란다.
그러나 은은하고 그윽한 녹차 보다는 프림 설탕 탄 달콤한 커피에
익숙해 있으니 건강하게 오래 살긴 틀린 듯 하다.
녹차가 그렇게 건강에 좋다 하는데 마시는데 왜 인색한지 모른다.

 

 

 

바람, 녹차나무 냄새, 바람개비...
그리고 맑은 봄 하늘....
자연은 이렇게 우리의 피로한 여정을 말끔히 씻어 주고 있다.


오래된 옛 절터 월남사지에 든다.
나는 화려한 전각들이 즐비한 절 집보다도
왜 황량하기 그지없는 옛 절터를 좋아 하는지 모른다.
거기엔 보이지 않는 과거 시간의 흔적들이 있고,
폐사지로서의 허무와 허망함이 있고,
그리고 쓸쓸함과 고독이 서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독하게 서 있는 석탑 하나...
비록 오랜 세월 모진 풍파에 상처 입은 석탑이지만
그는 언제나 변함없이 나(우리)를 기다려 주고 있다.
깨어지고 부서진 기와조각들과 옛 건물의 주춧돌들도...
이끼가 덕지덕지 낀 어느 고승의 부도도…….
그리고 이름 모를 폐사지의 잡초들도....
한 결 같이 나(우리)를 기다려주고 있다.
기다림과 만남이 있는 곳 옛 절터....
그래서 나는 폐사지를 좋아한다.


강진의 월남사지(月南寺址)가 어떤 절터인가?


낡은 민가와 돌담, 그리고 죽은 잡초들이 절터를 점령하고 있지만
가만히 그 안에 들어서면 역사의 숨결이 면면히 숨어있음을 본다.


 

 

월남사지는 월출산을 배경으로 월남마을에 있는 고려 후기의 절터이다. 
월남사라는 절은 13세기 경 진각국사가 창건한 절로서 기록에 의하면
조선시대까지 유지됐다가 아마도 임진왜란 때 소실된 사찰로 추정하고 있다.

 

 


금당지(金堂址)에는 월남사의 건물 초석과 기단으로 보이는 축대가 남아 있으며,
마을 어귀의 돌담장 근처에서 기와 편과 청자·백자편, 탑재로 쓰인
직사각형의 판석들이 발견되었다 한다.  
이 절터에는 진각국사의 행적을 새긴 진각국사비와 형태가 이상한 삼층석탑
한기가 남아 있고 절터는 민가가 점령 하여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월남사지 삼층석탑(보물 298호)


 

월남사지 삼층석탑은 월남사의 흔적을 알려 주고 있는 유일한 유적으로서
이 석탑은 모전석탑의 외형을 하고 있으며, 돌을 벽돌처럼 쌓은 것처럼
보여서 한 동안 모전석탑으로 불리웠으나 지금은 문화재청에 의하여
보통삼층석탑으로명칭이정정되었다.


높이는 740㎝. 단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과 상륜부가 놓여 있다.
높은 하대석 위에 있는 단층 기단은 우주(隅柱)와 면석(面石)이 각각
다른 석재로 되어 있고 폭이 좁은 편이다.
기단 위에는 여러 개의 판석(板石)으로 된 갑석이 있다.
탑신부의 옥신석과 옥개석은 여러 개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고,
1, 2층의 옥신은 단층 기단과 마찬가지로 우주와 면석이 다른 돌로 되어 있지만
3층은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옥개석은 복잡하게 여러 개의 석재로 짜여 있는데
1, 2층의 층급받침은 3단으로 3층은 2단으로 되어있다.


아무튼 이 석탑은 고려시대에 건립된 백제계 양식의 석탑으로서
고려시대에 왜 이곳 월남사에 백제계통의 석탑이 세워졌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관계 학자들 간에 주목되어온 탑이란다.
아무튼 경주의 신라 탑에 익숙해 있는 나에겐 좀 특이한 탑으로 비춰졌다.


탑에 얽힌 전설 한 토막.

월남사지 삼층석탑에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이 탑을 만들게 된 석공에게는

아름다운 젊은 부인이 있었다.
석공은 탑이 완공 될 때까지

나를 찾지 말고 집을 잘 지키고

있으라고 당부한 후 탑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너무 오랫

동안 집을 비운 남편이 견딜

수 없이 보고 싶었다.
어느 날 그녀는 몰래 남편이

일하는 월남사를 찾아 들었다.
그리고 먼발치로 불사에 열중한

남편을 훔쳐보았다.
그러나 남편은 부인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체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만 돌아서려던 부인은

아쉬운 마음으로 작은

목소리로 남편을 불러봤다.
그런데 사랑하는 부인의 목소리를 들은 석공은 그녀를 향해 머리를 돌렸다.
순간 벼락이 치며 그가 완성직전에 있던 석탑은 산산 조각이 나고 사랑하는
부인은 돌로 변해버렸다.


석공은 돌이 되어버린 부인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다.
석공은 다시 처음부터 탑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탑을 만들 좋은 석재를 구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석공은 생각 끝에 돌로 변한 그의 부인의 화신인
돌을 쪼아 다시 탑을 완성했다고 한다.
바로 오늘 날까지 전해 오는 월남사삼층석탑이 그 탑이란다.
전설이긴 해도 가슴이 뭄클한 이야기다.

불국사 무영탑(석가탑)을 만든 아사달과 아사녀 이야기와 비슷하다.
아사달이 죽은 자기 부인 아사녀를 돌로 만든 불상이 아직도
경주에 남아 있다. 일명 아사녀석불좌상이다.

 

 

●월남사지 진각국사비(眞覺國師碑, 보물313호)
 

 

 

꽤 큰 비석이 너무 좁은 비각 안에 있어 답답하게 갇혀 있다.
비각 주위에 설치한 뾰쭉뾰쭉한 목창살도 너무 높아 사진 찍기도 용이치 않다.
겨우 창살 틈으로 카메라를 들이밀고 찍으니 비석의 일부분만 찍히곤 한다.
비좌의 귀부의 꼬리가 왼편으로 꼬여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이 석비는 사찰을 창건한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비문은 고려시대의 문인인 이규보(李奎報)가 지었으며,
고려 고종 때 세워진 비로 추정하고 있다.

 

 

 

월남사지를 떠난다.
그런데 문득 떠나려는 내 발길을 잡는 것이 있다.
무수히 떨어져 낙화된 동백꽃송이들이다.
수령이 수백 년이나 됨직한 동백나무들이 일제히 각혈 같은 피를 토하고 있다.
동백나무 아래엔 온통 핏빛으로 붉은 선혈이 낭자 하다.
겨우내 눈 속에서도 눈부신 꽃을 피우더니 막상 꽃피는 계절 봄이 되자
미련 없이 목체 떨어져 낙화하고 있는 동백꽃들....
그 처연한 꽃들의 죽음을 보니 코끝이 찡해 온다.

 

 

 

 

나는 그 동백나무 아래 무릎을 꿇고 앉아서 뚝뚝 떨어져
죽은 진홍빛 꽃송이들을 주서 모으며 생각한다.


“꽃들은 피었다가 왜 시들어 죽는가?”


“모든 꽃들은 꽃잎이 시들어 죽는데 동백꽃은 왜 시들지도 않고
  어느 순간 목체 뚝 떨어져 죽는가?“


나도 이렇게 한 순간 뚝뚝 떨어져 죽을 수 없을까? 

 
“빨리 오세요. 뭐 하세요?“


등 뒤에서 동료들이 빨리 가자고 소리를 지른다.
해는 서서히 서쪽 하늘을 넘어 가고 있다.


<강진 답사기 끝>


*보잘 것 없는 글을 읽어 주시여 감사합니다.


>未知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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