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9
가을에 떠나는 답사 여행~
▢ 밀양 만어산 만어사에 가다.
●가는 여정
가을에 떠나는 답사 여행은 떠나기도 전에 가슴이 설렌다. 단풍은 아직 설악산 중턱에 머물고 있다지만 남쪽 산자락에도 서서히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누렇게 변해가고 있는 벼들이 파도처럼 가을바람에 출렁이고 있다.
오늘은 김해지방의 문화유적지를 찾아 즐거운 답사여행길에 올랐다. 문화를 좋아하고 문화재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말로 진정한 나라 사랑의 길이고 나 자신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첫 번째 답사지는 밀양의 만어사이다. 절 이름만 봐도 그 절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했는데.... 만어사는 도무지 그 이름이 이상하기만 하다.
“만어사(萬魚寺)?” “산 속에 무슨 물고기야...?”
필시 물고기와 무슨 연관이 있는 절이 분명하다. 절 아래 마을 입구에 차를 세우고 산 길을 걷는다. 절로 들어가는 길은 제법 넓다.
어떤 곳은 흙 길이고 어떤 곳은 다 헐은 시멘트 포장길이다.
한 30분 정도 걸어서 올라가야 한단다.
그러나 걸어서 들어가는 것이 어쩌면 다행한 일인지조 모른다. 요즘에는 왜만한 사찰들은 차 타고 편안하게 절 턱밑까지 갈 수 있다. 그러나 절에 들어가는 것은 속세에서 불계로 들어가는 길이니 조금은 걸어서 들어가 는 것도 운동도 되고 정신상에도 좋을 듯 하다. 비록 작은 고행(?)일망정 걸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며 생각하는 마음으로 절로 들어가는 것이 정서적으로 좋지 않나 싶다.
만어사 들어가는 길은 제법 산길 다운 정다운 길이다. 오랜만에 자연의 정취 속에 나를 묻혀 숲과 시골풍경을 엿보며 걷는 기분이 참 좋다. 정다운 친구들과 함께 한다면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며 자연에 동화되어 걷는 다면 가장 좋은 심신수양 법일 될 것이니 얼마나 좋겠는가.
만어사 들어가는 길을 그런 기분으로 걸어 들어간다. 가는 여정 촌집도 보이고, 정감어린 시골 돌담도 보며 걷는다. 돌담 너머에는 빨간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감나무를 처다 보는 것도 도회지에서는 결코 볼 수도 맛볼 수 없는 행복이다. 재수 좋게도 감나무 밑에 떨어진 홍시라도 하나 발견하여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이것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즐거운 행운일 것이다.
어찌 시골 길을 걷는 즐거움이 이뿐이겠는가? 길가에 피어 있는 가을 들꽃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고 즐겁다. 오늘 만난 가을 친구들은 쑥부쟁이, 벌개미취, 여뀌, 구절초, 산국, 등이다. 이런 꽃들은 아주 작고 화려하지도 우아하지도 못하다. 그러나 순박하고 청조하고 아름답다. 이런 작은 들꽃들을 카메라로 접사하다 보면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신비의 세계가 그 속에 들어있음을 보고 경이의 눈으로 감탄하곤 한다.
문득 조향미 시인의 꽃 같은 시가 생각난다. 그녀의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런 꽃이 있었나.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이 더 많지만 혹 고요한 눈길 가진 사람은 야트막한 뒷산 양지바른 풀밭을 천천히 걷다가 가만히 흔들리는 작은 꽃들을 만나게 되지 비바람 땡볕 속에서도 오히려 산들산들 무심한 발길에 밟히고 쓰러져도 훌훌 날아가는 씨앗을 품고 어디서고 피어나는 노란 민들레 저 풀밭의 초롱한 눈으로 빛나는 하얀 별꽃 허리 굽혀 바라보면 눈물겨운 작은 세계 참, 그런 눈길 고요한 사람의 마을에는 들꽃처럼 숨결 낮은 시들도 철마다 알게 모르게 지고 핀다네.
시인의 눈에는 들꽃도 한편의 시로 보이는 듯하다.
가을 들꽃들을 들여다보며 카메라에 담노라면 가는 길이 자꾸만 늦어진다.
그러나 들꽃들과 만나는 그 순간 순간마다 내 작은 가슴에서는 작은 행복에 솟아나곤 한다.
●만어사의 물고기~
작은 행복에 취해 만어사에 들어 나는 물고기부터 찾는다. 그러나 물고기는 안 보이고 딱하게도 내 눈에는 시꺼먼 돌들만 보인다.
“아니, 물고기가 어디 있어?”
모르는 사람들에게 창피하게 물어볼 수도 없다. 답사 오기 전에 미리 공부 좀 하고 올걸.... 오늘 답사지에는 해설사 마저 없으니 어찌 하겠는가, 알아서 깨달을 수밖에... 그러나 만어사 부처들이 나타나서 그 의문을 풀어 줄지도 모른다.
모든 해답은 전설이나 설화가 가르쳐 준다. 오늘 날 첨단 과학에 중독되어 사는 현대인들은 전설이나 설화 따위는 모두 허망한 이야기로 치부한다.
그러나 전설이나 설화야 말로 역사의 해답을 알게 해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전설이나 설화를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건국 신화 단군할아버지의 탄생 설화를 부정한다면 우리의 고대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구약성경의 천지창조 신화를 부정한다면 서양사도 또한 없다.
전설이나 신화, 설화 같은 것을 믿고 안 믿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것을 부정하는 관념이야말로 더 위험한 일이다. 이 세상의 모든 신비하고 신령스러운 것들은 신화나 전설, 설화로서만 설명이 된다. 아무리 과학적으로 증명하려해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범주가 아닌 신의 범주이기 때문이다.
만어산 돌무더기(만어석)들은 어엿이 문화재청에 등록된 천연기념물 제528호이다. 그런데 이 만어석의 문화재청 공식명칭이 “만어산암괴류“이다. 관공서 사람들의 시각은 전설이나 신화, 설화 같은 것은 늘 싹둑 잘라버린다. 그래서 문화재 명칭이 획일적이고 무미건조한 이름이 되 버린다. 사고방식이 고정되어 닫혀 있기 때문이다. 엄연히 역사 기록인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이름인“어산불영설화(魚山佛影說話)”의 이름을 따서 어산불영석 이라든가 그냥 만어석이라 했으면 좋았으련만 참으로 인색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정부의 공식적 기록물이 아니라고 삼국유사를 아예 부정하면 몰라도 말이다. 문화재 명칭은 이름만 봐도 대충 그 유물을 이해 할 수 있는 이름으로 가능하면 쉬운 명칭으로 지정되어야 바람직하다고 본다.(내 개인적인 생각이 그렇다는 것)
정확히 지질학자들이 과학적으로 밝힌 만어석들의 정체는 이렇다.
고생대 한반도 빙하기가 끝난 후 많은 비가 내려 이곳의 암석들이 양파가 벗겨지듯 침식·풍화되며 생성된 암괴류로, 700m이상 길게 펼쳐지며 독특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는 등 학술적, 경관적 가치가 크다. 밀양의 3대 신비인 얼음골, 표충비각과 함께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만어석에 대한 이런 틀에 박힌 학술적 설명보다는 아무래도 전설적인 설명이 더 설득력이 있고 재미가 있을 것이다. 만어사를 말하려면 아무래도 만마리의 물고기라는 만어석에 대하여 먼저 이야기해야 될 듯하다. 설화 속의 만어석 이야기 보다 우선 지금 당장 보이는 만어석에 대한 주워들은 이야기를 간추려 여기에 싣는다.
만어사 돌(만어석)을 가만히 살펴보면 여기 저기 돌을 정으로 쪼은 흔적이 보인다. 바로 쓸만한 돌을 떼어 간 흔적들이다. 만어석들은 겉으로 보기엔 검으티티 한 것 같지만 돌을 쪼개 속을 보면 매우 양질의 돌이란 것을 알 수 있단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는 물론이고, 배고픈 1970년대 시절 큰 돌들을 마구 채취하여 트럭으로 실어 날아 일본으로 팔려 나갔다는 기막힌 이야기 이다. 그래서 그 당시 만어사 돌을 실어 나르기 위하여 일찍 이 만어사 산간벽지까지 길이 나게 된 것이란다. 하긴 배고픈 그 당시엔 돌이 물고기로 착각해 돈만 된다면 무슨 짓을 못했을 까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현재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지만 만어사 돌도 인간들의 탐욕에 의해 고된 수난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넘어가자.
●만어사 어산불영(魚山佛影) 설화
만어사 하면 어산불영(魚山佛影)’설화를 말하지 않고는 만어사를 설명하지 못한다. 어산불영 이야기는 어떤 도사님 블로그에서 살짝 퍼와 간추려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만어산에는 고기들이 변하여 돌이 되었다는 만어석(萬魚石)이 첩첩이 깔려 있는데, 두드릴 때마다 맑은 소리가 나기 때문에 종석(鐘石)이라고도 한다. 일연스님이 쓴 삼국유사(권3) 탑상편(塔像篇) 어산불영조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만어산은 자성산(慈成山) 또는 아야사산(阿耶斯山)이라고도 하였으며, 그 이웃에는 아라국(阿羅國)이라는 나라가 있어 옛날 하늘로부터 알이 해변으로 내려와 사람이 되어 다스리니 이가 수로왕이다.
설화에 의하면, 지금의 양산 지역 옥지라는 연못에 사악한 독룡 한 마리와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람을 잡아먹는 다섯 나찰(羅刹)이 서로 사귀면서 농민들이 애써 지어 놓은 농사를 망치는 등 온갖 행패를 일삼았는데, 가락국 수로왕이 주술로 그들의 악행을 제거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부처님께 설법을 청하여 이들에게 불법의 오계(五戒)를 받게 하자, 이때 동해의 수많은 고기와 용들이 불법의 감화를 받아 이 산중으로 모여들어 돌이 된 후 대부분 경쇠소리를 낸다고 한다.
이 신비의 종석 너덜을 이루는 수많은 바윗덩이들은 물고기 떼가 수면을 향해 머리를 쳐들고 있는 형상이어서 만어석이라고도 부른다. 쇳소리가 나는 바위들은 대개 밑 부분이 단단히 옥죄어 있지 않고, 가볍게 얹힌 것들이다. 하지만 얹힌 돌들 중에도 소리가 나지 않는 것들이 있으며, 밑 부분이 단단히 틀어박힌 돌 중에도 맑은 소리가 나는 것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종석의 암질이 특이하다. 이 너덜의 돌이 깨진 면을 보면 유난히 푸른 기운이 많이 돈다.
만어사라는 절 이름은 여기서 유래하고, 《삼국유사》 〈탑상편 어산불영조〉에 그 유래가 전한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는 “산중에 한 동굴이 있는데 동굴 안에 있는 크고 작은 바윗돌이 모두 종과 돌쇠(악기)의 소리가 난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동해의 물고기와 용이 돌로 변했다고 한다. 세종 때에 이를 채굴하여 악기를 만들었으나 음률이 맞지 않아서 폐지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출처, 네이버 백과)
만어산은 돌 천지이고 그 산 자락에 위치한 만어사 또한 돌 부자인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방천지 돌투성이라 그런지 어딘지 어수선 느낌이 들고 오밀조밀 고즈넉한 맛이 들지 않는다. 돌로 쌓은 축대도 그렇고 돌계단도 너무 넓어 다니기에 좀 불편하다.
●만어사 거북바위의 황당한 효험
그런데 대웅전 앞마당에 황당한 장면이 목격됐다. 바로 거북바위의 효험이다. 늙은 정자나무 아래에 어떤 보살님(아주머니) 한 분이 거북등처럼 표면이 갈라진 돌을 앞에 두고 사람들을 현혹(?) 시키고 있었다.
이 돌을 들어서 바닥으로부터 들리면 소원이 안 이루어지고, 안 들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단다. 그런데 한번 들어 보는데 3,000원, 돈을 내야지 효험이 생기지 안내면 효험이 없단다. 돈 안 내고 들면 그냥 들어 올려 지지만 돈 내고 들면 들리지 않는 다한다. 돌 옆에 어떤 아주머니 한분이 죽치고 앉아 돈을 받고 있다. 참말로 그런가 하여 3,000원 내고 들어 볼까 하다가 돈이 아까워 남이 드는 것을 바라만 봤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바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미혹하게 하는 혹세무민(惑世誣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절 마당에서 저런 행위를 하는 것을 절 측에서 묵인방조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여인이 돈 주고 돌을 드니 돌이 조금 들린다. 돌이 들렸으니 이 여인 소원 성취하긴 틀린듯하다. 그냥 일부러 돌을 들어 올리지 않으면 될 것인데 그 아주머니 참으로 솔직한 분이다. 이런 행위 만어사 부처님이 아시면 노할 일이다. 그냥 웃자고 재미로 본다면야 그런 대로 귀엽게 봐 줄만도 한 것 같은데 돈까지 받아 가며 절 마당에서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 싶다. 그런데 거북바위라는 그 돌을 가만히 보니 이곳에서 나온 돌이 아니고 외부로부터 들여온 돌인 듯 했다. 차라리 법당 안의 불전함에 돈을 넣고 소원성취를 비는 것이 훨씬 나은 효험을 얻을 듯 싶다.
●만어사 마애불
만어사에 마애불이 있다니....
만어사 경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있으니 근년에 새로 조각한 마애불이다. 아주 우수한 기계로 우수한(?) 장인이 정밀하게 조각한 마애불 인 것 같은데 한참을 바라보고 있어도 마음에서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편리한 기계로 조각한 것과 사람이 일일이 정으로 쪼아 조각한 것의 차이 때문일 것이라 여긴다. 장인의 정신과 혼이 들어간 작품이라면 그런 작품을 보는 사람의 감정은 저절로 일어난다.
그러나 첨단 기계로 깎은 현대의 작품에서는 아무리 정교하게 깎았다 할지라도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마애불은 깊은 돋을새김으로 새겼는데 아마도 아미타여래인 듯 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천년이 지난 나이를 먹으면 사람들로부터 귀중한 문화재로 대접을 좀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돌이 부처로 안 보이고 부처가 돌로 보일 뿐이다.
●만어사 대웅전
대웅전은 만어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전각이다. 제법 멋스러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날렵한 맞배지붕 건물 형식이 절집으로서 친근감을 더해 준다. 건물은 멀리서 보니 제법 나이가 있어 보인듯 했는데 단청을 보니 아직은 새파란
젊은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오래된 건물 위에 단청을 새로 입힌 것인지 아니면 새로 지은 건물인지 알 수가 없다. 아직은 나의 안목이 건축물을 알아보는 시각이 너무 좁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대웅전 건물의 현판글씨가 그 유명하신 노천 월하스님의 글씨라 했다. 1984년도 조계종 제9대 종정이셨던 월하스님의 글씨라면 건물의 나이가 30년이 채 못 된다는 뜻인데.... 창건 년대가 자그마치 46년 가야의 시조 수로왕 때라 했는데 비록 전설이라 하지만 만어사의 창건 년대가 고시대인 것만은 틀림없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조선시대 건물은 남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경내의 모든 건물들이 젊디젊어 보인다. 아무래도 헌 건물을 헐고 새로 지은 듯하니 바로 범종각과 대웅전이 그렇고 중층건물인 미륵전이 또한 그렇다. 기록에 보니 신라시대에는 왕이 불공을 드리는 장소로서 이용되었다고 하며, 조서시대 1180년(명종 10)에 중창되었고, 1879년에 중건되었다 하니 아마도 그 대에 들어서서 만어사 건물들이 또 다시 대대적인 중창이나 재건축이 이루어 진듯하다.
●미륵전에 아미타여래 대신 커다란 바위가 앉아 있다.
미륵전 건물은 중층으로 된 큰 건물이다. 중층이란 안은 통층이고, 밖은 지봉 두 개 이상의 층으로 된 건물을 말한다.
그러나 만어사 미륵전은 왠지 왜소해 보인다. 중층 건물 치고는 장중한 맛이 안 나고 왠지 품위가 떨어져 보인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중층 건물의 사찰은 부여 무량사의 극락전(보물 제356호),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보물 제801호) 그리고 국보로서 유명한 구례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이 있다. 그 외 3층 이상인 곳은 속리산 법주사의 팔상전이 5층이고, 김제 모악산 금산사 미륵전, 화순 쌍봉사의 대웅전 건물은 3층 건물이다.
그러나 이 모든 중층 이상의 전각들도 속은 모두 통층으로 되어 있다. 이 중 부여 무량사의 극락전과 만어사의 미륵전이 아미타불을 모신 거의 유사한 중층건물인데 두 건물을 비교해 보면 한눈으로 보아도 건물의 중후함이 미안 하지만 무량사 극락전이 월등이 깊어 보인다. 왜 그럴까?
장인의 솜씨가 그만해서 그런지, 미륵전에 모셔진 아미타여래의 가피가 부족한 탓인지 암튼 건물 규모에 비하여 왠지 마음에 싹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미륵전 건물이 주전인 대웅전 보다 더 커서 상대적으로 주불 석가모니 삼존불이 봉안 된 대웅전 건물이 왜소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필시 미륵전 안에 모셔진 아미타부처님이 대웅전의 석가여래보다도 훨씬 격이 높을 것이라 상상하며 미륵전 안을 들여다본다. 이미 법당 문은 활짝 열려 있다. 무례하게도 중앙 문으로 머리를 밀어 넣고 안을 들여다본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계셔야 할 부처님은 안 보이고 난데없는 커다란 바위 하나가 법당 안을 가득 차지하고 서 있지 않는가.
바위는 불끈 솟아올라 있어 불경스럽게도 마치 커다란 남근을 연상케 하고 있다.
‘아니 범당 안에 왠 바위이지....’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데 내 옆에 있던 어떤 낯선 분이 친절하게도 가르쳐 준다.
“저 바위가 바로 어산불영의 미륵바위랍니다. 자세히 보면 바위 표면에 부처님 형상이 보인답니다.” “그럼 마애불인가요? 제 눈엔 안 보이는데요?”
내 눈엔 보이지 않으니 나는 정말로 어리석고 우매한 눈을 가지고 있나보다. 아무리 봐도 부처의 형상은커녕 그림의 흔적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때 또 내 옆에 있던 또 다른 분이 내게 웃으며 말한다.
“부처님 형상이 안 보이나요?” “부처는 부처를 볼 수 있고, 중생은 부처를 보지 못하지요.”
하고는 내 옆에서 떠나 버린다. 그러나 내가 부처인지, 바위가 부처인지 분간이 안 된다. 정말 저 바위가 부처란 말인가? 웃기는 소리다. 어찌 이처럼 훌륭한 불전을 지어 놓고 한낱 전설에 얽혀 있는 바위를 떡하니 불전에 모셔 놓고 그 앞에 예배를 드린단 말인가. 예로부터 전해 오는 바위 신앙이 있긴 하지만 바위를 법당에 들여 놓고 예배를 올린다는 것은 진정한 불교의 가르침이 아닐 것이다. 바위는 상징적으로 전설에 얽혀 있을지라도 법당의 예배대상은 불교의 뜻이 아니라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만어사 미륵전 미륵바위는 불끈 솟아 있어 여인네가 소원을 빌면 남아를 낳는다는 속설이 있어 그런지 법당 안에는 몇 명의 여자 분들이 연신 손을 빌며 절을 올리고 있다. 원래 이 바위는 경내 마당에 있었는데 아애 그 바위 위에 중층의 법당을 세운 듯 하다.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드디어 마당에 노출되어 있던 미륵바위를 찾았다.
원래 노천상에 있었던 미륵바위가 법당 안에 있을 때의 모습보다 훨씬 운치 있고 좋아 보인다.
●만어사 삼층석탑,
경주의 신라 탑보다는 조금 거칠고 비례가 별로 이지만 만어사에서 유일하게 보물급 문화재(466호)로 등록되어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이다. 그런데 그만 만어사의 만어석에 눌려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그래도 석탑은 말이 없다.
한 단의 기단 위에 올려진 3층탑으로,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모두 한 돌로 되어 있고, 지붕돌 밑면의 층긋 받침은 3단이다. 탑의 보주형 상륜부는 원래 것이 아닌듯하고, 탑은 대체적으로 노후화가 많이 진행된 상태이지만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고 고려 중기 시대 탑 치고는 비교적 작품성이 뛰어난 탑니다. 안내판에 보니 삼층탑지가 원래 있던 자리라 금당지가 바로 탑 위로 추정된다하니 만어사의 가람배치는 그 동안 많이 변형이 된듯하다.
●나가기~
만어사에는 참으로 신비하고 이상한 것들이 많다. 절 앞에 펼쳐진 만어석군이 그 하나이고, 커다란 바위를 미륵불이라 하여 법당의 불전에 모신 것이 그 둘이고, 절 마당에서 이상한 돌을 갖다놓고 들리면 복이 없고 들리지 않으면 복이 있다고 하는 것이 그 세 번째이고, 네 번째 신기한 일은 바로 근간에 새로 만든 대형 마애불이다.
만어사는 다시 와서 제대로 된 답사 연구를 해야 할듯하다. 언젠가는 만어석들이 진짜 물고기가 되어 이 세상에 큰 복을 내려 줄지도 모르는 일...
만어사를 나오는데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한다. 무엇이 무지한 나를 잡아끌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어찌 중생이 산사에 오래 머물 수가 있겠는가.
턱벅터벅 만어사를 걸어 나온다. 다람쥐 한 마리가 내 앞을 획- 지나간다.
헐~~~
만어사를 나와 은하사로 향하다. 만어사 물고기들이 마을까지 따라온다. 외로운 걸까? 마음이 짠하다.
>미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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