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경주南山 斷想

●비에 젖어 홀로 서 있는 경주남산 잠늠골 삼층석탑

migiroo 2010. 5. 11. 20:03

 ■비에 젖어 홀로 서 있는 경주남산 잠늠골 삼층석탑

 

 

아침 하늘이 온통 뿌연 잿빛이다.
아무래도 실비 정도는 내릴 듯 앞동산의 소나무들이
희뿌연 안개 속에 묻혀 있다.
카메라에 새 배터리를 갈아 끼우고 서둘러
애마(차)를 타고 길을 나선다.

 
경주남산 잠늠골.

 


거기에 남산에서 가장 예쁜 삼층석탑이 있다.
아마도 지금 쯤 탑은 첫 사랑에 실연한 어느 젊은 여인처럼
촉촉이 눈물(빗물)에 젖어 처연히 서 있을 것이다.
그런 탑을 생각하면 빈 가슴이 금세 그리움으로 채워진다.
나는 그 예쁜 잠늠골 석탑을 참 좋아한다.
그녀(탑)를 생각하면 그리움, 기다림, 만남 그리고 이별.....
이러한 애절한 사랑의 단어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탑하나 보는데 왠 사랑 운운이냐 하겠지만
이러한 감정도 없이 비 내리는 날 탑을 보려 간다면
그저 탑만 보고 오는 감정 없는 만남이 될 것이다.

잠늠골로 들어가는 서남산 비파골 길....
그 길 위의 늙은 소나무들이 빗물에 젖어 뿌연 안개에 묻혀 있다.

 

 

 

영롱한 이슬방울이 솔잎 끝에 매달려 있다가
견디다, 견디다 못해 땅바닥으로 뚝 떨어진다.
실연한 여인이 절망의 끝자락에서 흘리는 눈물인양.... 

 

나의 구닥다리 디카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그 눈물 같은 물방울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니 카메라나 사람이나 늙으면 다 그런가 싶어
또 마음이 허망해 진다.


잠늠골은 비파골에서 갈라진 산 중턱에 있는 골짜기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이 흐르지 않는 작은 계곡으로 
그 능선 위에 탑이 있다.

 

 

 

 

안개 속에 묻힌 탐의 가녀린 모습이 시야에 아련히 들어오고,
그 너머 남산의 제일봉 고위봉이 구름 속에 그 모습을 감추고 있다.
진신석가가 현신한 비파골도 전설에 묻혀 잠들고 있고,
불계의 오백나한 닮은 괴암기석 암봉 들도 안개비에 묻혀 있다.

 
골자기 이름이 왜 악기 이름 비파(琵琶)인가?
비파골에 들어 와도 들려야 할 비파소리는 들리지 않고
비바람소리만 들려온다.


비파골에 얽힌 전설이 있다.
임금도 진신석가를 알아보지 못해 어리석은 우를 범했으니
임금이나 중생이나 다를 것이 없도다.

 

 

 

 

●비파골의 전설

 

신라 32대 효소왕(6년,697)이 남산 망덕사 낙성식에 친히 행차하여 제(齊)를 올리는데

이때 행색이 누추한 중 한 사람이 왕에게 재(齋)에 동참하기를 청하니 왕은 마지못해

말석에 참석하라 했다. 재가 끝나고 왕이 조롱조로 그 중에게 말했다.


왕 : 비구는 어디에 사는가?
중 : 예, 남산 비파암에 삽니다.
왕 : 돌아가거든 왕이 친히 불공을 드리는 재에 참석했다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
중 : 예, 잘 알았습니다. 왕께서도 돌아가시거든 진신석가를 공양했다고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그리고 스님은 말을 마치자 몸을 솟구쳐 구름을 타고 날아가 버렸다.
이에 왕이 놀라 스님이 사라진 곳을 향하여 수없이 절하며 어서 빨리
모셔오라고 신하들에게 일렀다.
신하들이 사라진 스님 찾아보니 비파골 안에 지팡이와 바릿대만 보일뿐
스님은 바위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왕은 하는 수 없이 비파바위 아래에 석가사를 지어 사죄하고, 
숨어버린 바위에는 불무사를 지어 없어진 부처님을 공양하였다.
지금도 비파골에 석가사지와 불무사지가 남아 있다.

 

 

●탑과의 만남 그리고 이별

 

비는 오는 듯 마는 듯 오락가락 바람조차 일지 않는다.
나무 가지에 부딪쳐 우산을 쓰기도 그렇고 안 쓰기도 그렇다.
어느새 신발과 바짓가랑이가 흠뻑 빗물에 젖어 버렸다.
애라~ 모르겠다. 거추장스러운 우산을 숲 속에 잠시 감춰두고
탑을 향하여 능선 길을 오른다.
 

 

 

어느 사이 탑 가까이까지 왔다.
탑은 빗물에 흠뻑 젖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탑은 결코 변함이 없다.
백년이 되도, 천년이 되도 늘 그 자리에 서서
찾아오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탑과의 만남 그것은 늘 변함없음이다.
사랑도 이와 같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사랑한다, 사랑한다 하면서도
변하는 것이 사랑이다.    

 

 


석탑을 단순히 문화재나 조각품 같은 사물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답사 다닐 때 보면 간혹 탑에 걸터앉는 사람들을 목격할 수 있다.
비록 불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탑에 무례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되며
만약 불자라면 경건히 합장 예배해야 됨은 물론, 불자로서의 최소한의
탑에 대한 예의를 표한 후에 탑을 관찰해야 할 것이다. 
 
탑이 곧 부처라는 상징성을 인지하고, 탑에 대한 역사는 물론
탑에 얽힌 전설이나 조성 배경 등을 알고 탑을 대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온전히 탑이 내 가슴으로 들어 올 수 있고
탑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드디어 잠늠골 삼층석탑 아래에 섰다.
탑은 보면 볼수록 그 자태가 여성스럽고 앙증맞고 예쁘다.
자연석을 투박하게 정으로 잘라 기단부로 삼은 것이 특이하다.
1,2,3층 인위적인 탑신부의 단조로움에 자연석의 기단부를
가미하므로 서 멋진 조화를 이루게 했다.
자연미과 인공미의 조합이다.
이미 그 인공미마저 오랜 세월에 자연화 됐지만....

 

 

내가 탑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탑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나는 탑을 바라보고 있고, 탑은 나를 바라보고 있다.
탑과 나, 서로 말은 없지만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음을 안다.


이 탑도 오랫동안 무너져 있던 것을 2002년도에
주변에 흩어져 있는 탑재들을 수습하여 복원한 것이다.
몰론 신라 시대의 석탑이다.
인근에서는 지금도 기와 조각 등이 발견 되고 있어
탑 주변이 옛 절터이었음을 알 수 있다.
 

 

 

탑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서남산 아래 형산강이 뱀처럼 꾸불꾸불 흐르고 있고
그 너머 35번 국도와 경부고속도로가 길게 누워있다.


맑은 날 서녘 하늘로 기우는 석양빛이 탑에 비치면
탑은 황금색으로 변하고, 휘영청 보름달 떠 있는 밤이 되면
하얀 달빛이 비친 탑은 신령스러운 모습으로 변한다.
그리고 오늘처럼 비에 젖어 슬픈 듯 서 있는 탑을 보면
짠한 그리움 같은 것이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탑을 떠난다.
만남 후에 오는 것은 이별...,
사랑에는 이별이 있지만 탑과는 이별이 없다.
탑은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기다려 준다.

 
>未知路(2010.4.31)

 


잠늠골 삼층석탑 찾아 가는 약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