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경주南山 斷想

●폐사지의 아픔, 그 천년의 숨결이....

migiroo 2010. 6. 17. 11:36

 

 ●폐사지의 아픔, 그 천년의 숨결....


•경주 南남산의 외로운 폐사지 별천룡골양조암골 2,3사지


오늘은 경주남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옛 절터 두 곳을 찾아 나선다.
경주남산에서 지금까지 확인 된 옛 절터(폐사지)는 모두 147 곳이나 된다.
그 중 오늘 찾아 가는 南 남산에 위치한 두 곳의 폐사지를 소개한다.
이 두 곳의 신라시대 절터는 너무 깊숙한 산 속에 위치해 있어
일반인들은 찾아 가기가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평소에 사람들의 발길이 별로 없는 유적지이다. 


그러나 쓸쓸한 천년 폐사지에서 느끼는 감정은 너무나 진하게 다가온다.
절터 여기저기에 나뒹굴고 있는 석탑의 부재들이나 건물지의 주춧돌,
그리고 기와 조각 등을 만나게 되면 참으로 형용할 수 없는
연민의 감정을 감출 수가 없다.
비록 깨지고 부서져 넘어져 있는 석탑이지만 아직도 살아 있는 듯
천년 숨결이 들리는 듯 하고, 그 처연한 모습이 마치 부처님의 몸이
부서져 방치된 된 것 같은 송구함에 가슴을 아프게 한다.


경주남산에서 옛 절터를 찾기란 참으로 쉽지가 않다.
그 흔적이 너무나 희미하기 때문이다.
천년세월이 지났으니 절터의 흔적들이 어찌 확연히 남아 있겠는가?


그러나 누구나 아주 쉽게 찾는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민묘(무덤)가 있는 곳을 찾아 가면 어김없이 옛 절터임을 알 수 있다.
절터가 명당자리(?)라 여기고 잽싸게 사람들이 절터에 묘를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덤이 있는 곳이 바로 절터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가 됐다.
그러나 여기에서 화가 나고 얄미운 생각이 드는 것을 어찌하랴.


저 잘 되자고 절터의 금당자리와 석탑을 밀어 내고 무덤을 썼으니
부처님 자리에 제 조상 무덤을 쓴 것이나 다름없지 않는가.
그러니 어찌 그 자손들이 잘 되겠는가?
묘를 쓴 것도 모자라 석탑의 부재들을 무덤의 상석(床石)으로 삼고,
축대로 이용하는 등 그 행위가 참으로 가증스럽고 괘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절터의 무덤을 보면 그 얄미움에 화가 나고 감정이 격해지곤 한다.


오늘 찾아 가는 두 곳의 절터도 예외 없이 무덤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적멸에 묻혀 있는 별천룡골 폐사지

 

별내마을, 오가리골, 별천룡골....
이름이 참 예쁘다.
천룡이 별이 됐다는 뜻인지, 별이 천룡이 됐다는 뜻인지...
별천룡골은 南 남산 별내마을에서 동쪽 개울 오가리 고개를 넘어
2km쯤 가다가 개울 건너 남산으로 오르는 깊은 산골에 위치해 있다.
별천룡골에는 세 곳의 절터와 두기의 석탑재가 발견됐다.

 

 

 

암자가 있었던 옛 모습을 상상해 본다.
별천룡골 전망 좋은 곳에 작은 암자 한 체가 있고 그 암자 마당에
작고 예쁜 삼층석탑 한기가 서 있다.
암자 앞에는 졸졸졸 옥수 같은 계곡물이 흐르고,
암자 뒤쪽엔 키 큰 대숲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춤을 추고 있다.
그리고 숲 속의 새소리에 합창하듯 스님의 낭랑한 염불소리가
목탁소리에 묻어 남 남산 온 산골짜기로 퍼져나간다.
아마도 천 년 전 이 곳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 그러나 이제는 암자는 오간데 없고
처참하게 무너져 깨진 석탑 조각들과 기왓장들만 무성한
잡초 속에 묻혀 천년 회한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깨진 석탑의 지봉돌(옥개석) 하나는 땅에 반쯤 머리를 박고 있고,
숲 속엔 탑신 하나가 허리를 다쳐 누워 있다.
탑의 또 다른 몸돌 하나는 어이없게도 무덤의 상석(床石)으로 사용되고,
상처 하나 없는 멀쩡한 주춧돌 하나도 잡초 속에 묻혀 있다.
무너져 깨진지가 100년이 됐을까, 500년이 됐을까?
탑재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도무지 말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죽어 육신이 섞어 한 줌 흙이 되도
여기 탑재들은 변하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다.

 

 

南 남산 내남면 노곡리 별천룡골(別天龍谷) 폐사지를 찾는 발길은 별로 없다.
그래서 늘 외롭고 쓸쓸한 곳이다.
이 계곡에서 현재까지 확인되는 유적지로는 옛 절터 3곳이 있는데
그중 한곳이 별천룡골 제1사지이다.
폐사지 주변에는 무너진 석탑과 초석 그리고 많은 석재들이
대부분 땅에 묻혀있고 지금 남아있는 유물로 미루어 보아
꽤 큰 절터였음을 짐작 할 수 있다.

 

1사지 금당지로 추정되는 곳에는 옥개석3개, 기단면석, 원형초석, 장대석,
난간석 등이 있으며, 대부분의 부재는 흙에 묻혀 있다.
여기도 예외 없이 민가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고 더욱 괘씸한 것은
석탑의 탑재를 무덤의 상석이나 축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계곡 옆에도 석탑의 옥개석이 보이고 그 외에도 여러 건물지에도
많은 석재들이 흩어져 나뒹굴고 있거나 땅에 묻혀 있어 폐사지의
슬픈 단면을 보는 아픔이 더 가슴을 아리게 한다.

 

 

 

 

>별천룡골 폐사지에서~

 

 

●민묘(무덤)가 천년의 유적을 밀어낸 양조암골 제2,3 절터

 

 

 

별천룡골을 나와 양조암골 1사지를 거처 2,3사지로 들어선다.
석불 상이 산산 조각난 1사지에서 받은 충격이 체 가시기도 전에
2,3사지에서 다시 한 번 더 충격을 받는다.
무덤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석탑재들....
그 것들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파 온다.

 

 

 

 

제3사지에는 탑재들이 민묘 주변에 무수히 널려 있다.
온전히 남은 것을 추스른다면 충분히 복원이 가능할 정도이다.
이곳은 여러 번 와 보았지만 올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분노뿐이다.
절터에는 예외 없이 무덤들이 자리하고 있다.
일말의 양심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행위이다.
부처님 자리인 탑지(塔址)나 금당지(金堂址)에 무덤을 쓰다니....
그런데 화가 더 나게 하는 것은 무덤을 쓰기 위해 탑재를 묘역 아래로
밀어내고 무덤을 썼다는 점이다.
심지어 탑재들을 무덤의 축대로 이용한 그 이기적이고 무지함에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화나게 하는 점은 또 있다.
당국에서 탑을 복원하려고 땅 값과 묘 이장 비를 보상 할 테니
무덤을 옮겨 달라고 해도 묘주인은 이곳이 명당자리임을 고집하면서
묘 이장을 거절하고 있다고 한다니 참으로 기막힌 일이다.
그러나 당국이 탑을 복원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만 있다면
왜 묘를 이장 못 시키겠는가.
당국의 어벌쩡한 태도에도 화가 나긴 마찬가지이다.

 

 

 

 

한국 사람들은 화를 잘 낸다고 한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화는 禍를 낳는다.
그러나 의분(義憤)이 없다면 발전도 없는 것이다.
화를 삭이는 방법은 마음의 수양뿐인데 나는 아직도 멀었다.


석탑을 밀어내고 무덤을 쓴 묘 주인이 얼마나 잘 됐는지 궁금하다.


 
>양조암골 3사지에서...


>未知路(201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