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보고 느낀 국보급 문화재(14)
●고선사지 삼층석탑(高仙寺址三層石塔)
경주박물관은 한 달에 두서너 번씩 간다.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엉뚱하게도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다.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탑이다. 이어져 탑의 절정기를 이룬다.
1975년 경주시민의 식수원을 해결하기 위하여 무장산 아래 암곡동 신평천을 막아 댐을 만들면서 고선사지도 그 종막을 맞게 된다. 불행하게도 그 당시만 해도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깊지 않아 면밀한 발굴조사 없이 대충 석탑과 눈에 보이는 석재들만 모아 박물관으로 옮기고 절터는 물속에 잠기고 마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
고선사는 신라 신문왕 대에 원효대사가 주지로 있던 절로 유명하다. 수몰 전 고선사지에는 서쪽에는 삼층석탑이, 東쪽에는 목탑이 자리한 것으로
●원효대사의 서당화상비(誓幢和尙碑)
이 비(碑)는 신라 애장왕 대의 원효대사의 손자이자, 설총(薛聰)의 아들인 설중업(薛仲業)이 원효대사를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비(碑)이다. 서당(誓幢)은 원효의 어릴 적 이름이고 비문(碑文)을 지은 사람과 글씨를 쓴 사람은 전하지 않고, 비에 글을 새긴 사람만 표기 되어 있다.
서당화상비의 비신(碑身)은 깨어진 채로 발견 됐지만,
탑 앞에 서서 탑을 생각하고 나를 돌아 본다. 탑 앞에 서있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 진다. 그리고 탑이 더 거장해 보인다. >미지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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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 설명(*문화재청)
●고선사지 삼층석탑 [高仙寺址三層石塔]
●탑의 구조및 형식
이 석탑은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우리나라 석탑의 전형을 이루게 된다. 그 전형적인 모습은 이 석탑과 감은사탑에서 만들어져, 불국사 석가탑에서 그 절정을 보게 된다. 그러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시점에 조성된 이 탑은 석가탑에서조차 볼 수 없는 생동감과 긴장감이 있다. 기단부의 짜임새를 보면, 하층의 基壇은 지대와 면석이 같은 석재로 모두 12매로 조성되었고, 각 면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가 3개씩 조각되었다. 탑신부의 1층 몸돌은 네 귀퉁이에 우주석(隅柱石)을 하나씩 세워서 양 우주로 삼고, 그 사이에 면석 1개씩을 끼워 모두 8매의 돌로 조성하였다. 그리고 각 면에는 門 모양을 조각하였다. 2층 몸돌은 각 면 1매씩 4매로 구성하고 각 면에 양 우주를 조각하였다. 삼층만은 하나의 몸돌로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사리장치와 찰주(擦柱)를 세우기 위한 배려이었다. 그리고 양 쪽에 隅柱를 조각하였다. 지붕돌 층급받침은 5段씩이고, 상면에는 각 2段의 괴임을 높직하게 조각하여 그 위층에 탑재를 받치고 있다. 상륜부(상륜부)에는 노반(노반)과 복발(복발), 앙화석(앙화석) 등이 차례로 놓여 있고, 찰주(찰주)는 없다. 탑 전체의 높이는 9m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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