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보고 느낀 국보급 문화재(13) -극락전 : 조선시대(세종 12년(1430)
(*아래 글은 이미 본인의 블로그와 관련 카페에 올린 무위사 답사기 내용 중 극락보전 내용만 간추린 것임)
“無爲”란 무엇일까?
無爲의 사전적 의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 이다. 불교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쓰여 있다.
너무 어렵고 난해하다. 좀 더 철학적 해석이 요구되지만....나로선 알 수가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아마도 무위사에 가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사찰의 전각 중에는 국보로 지정된 보물이 여럿 있다.
처음 절 이름은 관음사로서 617년(신라 진평왕 39)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전한다. 그 후 1556년(조선 명종11) 태감(太甘) 스님이 중창하고, 무위사라 개칭하였다. 고찰답게 무위사에는 국보급, 보물급 문화재가 즐비한 사찰이다.
해탈문을 지나 사천왕을 만나고 천상의 극락보전으로 가는 돌계단을 오른다. 극락보전의 건물은 정말 너무도 초라한 모습이다. 여기서 초라함이란 남루하고 보잘것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때 묻지 않은 촌 아낙처럼 수줍고 맑다는 의미이다. 이윽고 계단을 다 오르면 빗자루 자국이 선명한 법당 마당에 이르는데그 법당 누런 흙 마당이 마치 불계의 황금빛 연못처럼 누워 있다. 그리고 그 연못 한 가운데에 연꽃 한 송이가 떠 있으니 바로 연화문 배례석(拜禮石)이다.
어느 사찰에 가보아도 법당 마당에 연화문배례석이 있는 곳을 보지를 못했다. 굳이 예를 든다면 불국사 대웅전 앞 석등 앞에 사각의 배례석이 있긴 하다. 그러나 불국사 배례석은 석등을 밝히고 참배를 하기위한 배례석일 것인데무위사 극락보전 배례석은 석등도 없이 그저 홀로 떠 있다. 마치 연못 위에 유유히 떠 있는 배 같기도 하고, 한 송이 아름다운 연꽃 같기도 하다.
●무위사 극락보전
왜냐 하면 무위사 극락보전은 바로 건물이 국보이면서 건물 안에도 국보급 보물(문화재)이 가득 하기 때문이다.
무위사의 극락보전이 왜 국보가 됐는지 그 이유를 금방 깨닫지 못한다. 그냥 건물을 아래위로, 좌우로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건물 한 체가 무엇이 좋다고 딱히 말할 수는 없는데 하루 종일 바라 봐도 지루하지 않을 그런 느낌을 들게 하는 건물이다. 슬픔과 그리움 같은 것을 느끼게 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곁에서 바라만
국보 13호, 무위사 극락보전 건물은 맞배지붕에 주심포 양식의 건물로 단아하고 사물로서 바라봄이 아니라 내면의 감성으로 봐야하는 그런 건물이다.
극락보전의 좌, 우 측면이다.공포와 가구가 다 드러나 있다. 속된 말로 알몸 그 자체이다. 맞배지붕에 2고주 5고량이니, 1고주 7고량이니 하는 건축 가구(架構)
그런 것 하나도 몰라도 그냥 바라보면 안다. 뭐라고 말로 표현 할 수 있는 재주는 없지만 그냥 느낄 수 있다.초라하지만 위엄이 서려있고, 허전하지만 꽉 차있음을 본다.아무것도 없는 허연 벽이지만 그 안에 진리의 무언(無言)이 있음을 안다. 화려하지 않지만 궁색해 보이지 않고, 간결하면서 균형미가 있다.여유와 여백이 보이고 치우치지 않는 중용(中庸) 같은 것이 보인다. 부처님을 모신 전각은 극락정토를 상징하여 화려한 단청으로 꾸미는 것이 정통인데 반드시 화려하지 않아도 화려함은 느끼게 하는 곳이 바로 이런 법당이 아닌가 싶다.
극락보전 법당 앞 문살이다.이런 문양을 소슬빗살문이라고 한다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꽃이 조각되어 있으면 솟을꽃빗살문이 된다. 왼쪽 것은 밖에서 본 문양이고, 오른편 것은 법당 안쪽에서 본 햇살 든 문양이다. 화려한 꽃문양이 없어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단순하고 간결하고 꾸미지 않은 소박함에서도 미(美)의 극치를 느낄 수 있다. 화려한 옷에 값 비싼 보석으로 치장하고 명품 핸드백을 든 여인 보다는소박하지만 잔잔한 미소에 기품이 있는 부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사물도 그렇지 않은가 싶다.
●천상의 세계 극락보전 법당 안
드디어 법당 안으로 들어간다. 천정도 살펴보고, 사면 벽도 살펴본다. 본존불 후면의 벽화도 살펴보고, 사면 벽화도 살펴본다.역시 초라하다.
법당 안은 쾌쾌한 냄새마저 풍기고 있다. 그러나 그 쾌쾌한 냄새에서 초라함에서 세월의 흔적을 읽을 수 있고, 감히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있음을 느낀다. 두 마리의 늙은 용이 용트림을 치며 천상을 지키고 있다.
▲극락보전 주불 목조아미타삼존불상
법당 안에는 온통 보물급 문화재로 가득하다. 우선 불단의 목조아미타삼존불상은 보물1312호)이고, 주불 뒤에 있는 아미타삼존벽화는 국보313호이다. 그리고 주불 뒷면 벽화는 유명한 백의관음도로 보물 1314호이다. 오불도, 관음보살도, 지장보살도, 주악비천도등 총28점이 가득 그려져 있다. 건물이 국보이니 그 국보 안에 찬란한 보물이 가득히 채워져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많은 보물들 중 주불인 아미타삼존불상과 백의관음도를 제외하곤 모두 진품이 아닌 가짜 복제품 이라는 사실에 경악한다. 진품 벽화는 모두 떼어내 견고한 유리관에 넣어 무위사 성보박물관에 전시해 놓았다. 여기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불상이나 벽화라 할지라도 그것들이 제자리에 있지 않고 박물관으로 옮겨졌다면 그것들은 이미 신성을 상실한 한낱 전시품으로 미술품이나 문화재일 뿐이다.
예배 대상으로 숭앙 받게 되는 것이 아니가? 화재 예방이나 보안이 철저히 보장된 국립박물관 같은 곳이며 몰라도 동일 사찰 경내에서는 법당 안이나 성보관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정 그렇다면 유리관에 넣은 상태로 원래의 법당 자리로 갖다 놓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그러나 절대 옮겨 갈 수가 없을 것이다. 석굴암 본존불은 문화재이기 보다는 우리들의 정신적 신앙의 대상인 부처님 그 자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일종인 기만이 아닌가? 진품이 도난이나 화재로 소실 됐거나, 국립박물관 같은 곳에서 가져가 진품이 사찰에 없다면 몰라도 사찰 스스로 진품을 전시용으로 둔갑시키고, 가장 신성시하는 금당 안에는 복제품을 모셔 예배케 하다니 말이 되는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극락보전 과 삼층석탑
삼층석탑은 경주에 있는 전형적인 신라의 삼층석탑과는 그 뉘앙스가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학자들은 신라 석탑이 아니고 고려 초기 석탑으로 추정한다고 하니 아무래도 석탑은 후기로 (고려, 조선)들면서 점점 간결해 지고 볼품이 전만(신라) 못한 탑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경주의 신라 탑에 비하여 날렵하지 못하고 둔탁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탑과 극락보전 건물이 어우러져 주변 자연경관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바로 배치의 미학이고 여백의 철학이다.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無爲寺 極樂殿 阿彌陀如來三尊壁畵)
이 삼존불 후불벽화에서 눈동자가 미완성인 우협시 관세음보살상에는 아래와 같은 유명한 전설이 전해온다. 사찰에 극락보전을 짓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았을 즈음, 한 노인이 찾아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보물 제1314호
극락보전 후불벽화인 아미타후불벽화(보물 제1313호)의 뒷면 그림으로, 떠가는 듯 일렁이는 파도 위에 연잎을 타고 서 있는 백의관음보살이 그려진 벽화이다.
■ 문화재 설명(*문화재청)
●무위사 극락보전(無爲寺 極樂寶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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