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내가본國寶문화재

▶국보 84호, 서산마애삼존불 그 천년의 미소

migiroo 2011. 2. 7. 21:55

 

 

   ■ 내가 보고 느낀 국보급 문화재(22)
 
   ▶국보 제84호, 서산마애삼존불

 

*이 글은 2010년 5월에 쓴 것을 여기에 옮긴 것임.

 

●서산마애불 백제 그 천년의 미소

 

 


이른 5월의 햇살이 너무도 뜨겁다.
봄인가 했는데 벌써 한여름 더위가 몸은 지치게 한다.
그래도 답사는 간다.
 

 


 

4년 만인가? 
이제 오랜만에 다시 국보 84호 서산마애불을 찾으니 그 감회가 깊다.
그러나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 말은...
이제 수정 되어야 할 것 같다.


겨우 4년 만인데 와보니 주변이 온통 예전과는 달리 새롭게 변해있다.
자연석으로 이어졌던 길이 편리한 나무계단으로 변해있고,
자연스러웠던 주변 환경이 온통 인위적 환경으로 변해 있다.
불이문(不二門)이라는 없던 쪽문도 보이고,
성곽(?)같은 인위적 축대가 마애불을 압도하고 있다.   
 

 

 

 

마애불을 가둬놨던 보호 건물도 헐리어 없어지고,
세분의 마애불은 5월의 햇살에 온 몸을 내주고 있다.


주변 환경이 어떡케 변하든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부처님의 자비스러운 미소이다.
아슬아슬한 바위 한 면에 새겨진 마애삼존불은
여전히 변함없는 여여한 미소로서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으신다.
 

불안(佛眼)가득히 담고 계시는 마애불의 미소.... 
보면 볼수록 마음이 여여해 짐은 무슨 조화인가?

 

 


마애불 앞에 한 중년의 여인이 온 몸은 내 던져 절을 올리고 있다.
맨땅이다. 무릎이 얼마나 아플까?

 

 

 

여인은 내가 옆에 서 있는 데도 아는지 모르는지...
오직 절에만 몰두해 있다.
무아의 경지에 도달한 듯 여인의 이마에서 수정체 같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나는 여인 옆에 서서 마애불을 바라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왜 여래는 미소를 띠고 계시는 걸까?

그저 단순히 웃으시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무엇인가의 메시지를 주시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 들었다.

 

 

 

 

웃음을 잃고 사는 사람들...
이기와 집착에 사는 사람들...
절망과 실의에 빠져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
사랑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
남을 용서하기 보다는 미워하며 사는 사람들...


아마 이런 사람들이 당신의 미소를 보고
속죄와 용서를 구하라는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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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마애삼존불상의 문화재 정보(*문화재청 자료)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층암절벽에 거대한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입상,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흔히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이 마애불은 암벽을 조금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하고 그 앞쪽에 나무로 집을 달아 만든 마애석굴 형식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연꽃잎을 새긴 대좌(臺座) 위에 서 있는 여래입상은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 반원형의 눈썹, 살구씨 모양의 눈, 얕고 넓은 코, 미소를 띤 입 등을 표현하였는데, 전체 얼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하여 백제 불상 특유의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준다. 옷은 두꺼워 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으며, 앞면에 U자형 주름이 반복되어 있다. 둥근 머리광배 중심에는 연꽃을 새기고, 그 둘레에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는 오른쪽의 보살입상은 얼굴에 본존과 같이 살이 올라 있는데, 눈과 입을 통하여 만면에 미소를 풍기고 있다. 상체는 옷을 벗은 상태로 목걸이만 장식하고 있고, 하체의 치마는 발등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왼쪽의 반가상 역시 만면에 미소를 띤 둥글고 살찐 얼굴이다. 두 팔은 크게 손상을 입었으나 왼쪽 다리 위에 오른쪽 다리를 올리고, 왼손으로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 오른쪽 손가락으로 턱을 받치고 있는 모습에서 세련된 조각 솜씨를 볼 수 있다.
 

반가상이 조각된 이례적인 이 삼존상은『법화경』에 나오는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존불의 묵직하면서 당당한 체구와 둥근 맛이 감도는 윤곽선, 보살상의 세련된 조형 감각, 그리고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는 쾌활한 인상 등에서 6세기 말이나 7세기 초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곳은 백제 때 중국으로 통하는 교통로의 중심지인 태안반도에서 부여로 가는 길목에 해당하므로, 이 마애불은 당시의 활발했던 중국과의 문화교류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2010.5.29
>未知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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