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12
●김동리 문학기행
◆ 길의 여정
장마가 시작 됐다는데 아직 비는 보이지 않는다.
올 장마에는 국지성 호우가 심할 것이라는 예보가 나와 있다.
비가 안 오는 가뭄보다야 잘 대처만 한다면 호우라도 좋지만
비가 많이 오면 참으로 걱정스러운 곳이 있다.
바로 MB님의 ‘4대강 사업’ 현장 때문이다.
밤낮없이 강행 되고 있는 4대강 사업현장은 그야말로 열악하여 안전사고는
물론 조그마한 비에도 쌓아둔 토사나 보가 물길에 휩쓸려 나가고 설치한
교각이 무너져 내리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억만년 도도히 흐르는 강을 어찌 인간들이 함부로 건드린단 말인가.
그러나 기왕 시작 했으니 4대강 공사가 아무 사고 없이 잘 진척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만 MB의 치적이 청개천에 이어 강을 바꾼 대통령으로서 후대까지 두고두고
칭송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이 온통 구름으로 가득 찼다.
오늘은 경주의 ‘동리목월문학관’ 문학팀에 붙어 김동리 문학기행에 따라 나섰다.
기행 코스는 경남 하동 화개장터, 쌍계사를 돌아보고, 사천의 다솔사와
이병주문학관 등을 돌아 볼 예정이다
모두가 김동리 선생님이 작품을 구상하고 글을 쓴 배경이 되는 지역이다.
난 아직 김동리 선생님의 작품 세계를 잘 모른다.
그러나 학창시절에 역마, 등신불 등 몇 편의 글은 읽은 기억은 어렵푸시 난다.
오늘 다행스럽게도 김동리 선생님의 작품 배경을 훑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다니 참으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버스는 흐린 남해고속도로를 기운차게 달린다.
차창가로 스쳐 지나가는 6월의 산하는 그야말로 신록의 절정이다.
그러나 도로나 산업단지를 건설한다면서 산하 여기저기를 파헤쳐
누런 속살을 드러내 놓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 섬진강
버스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하동으로 접어든다.
이윽고 굽이굽이 섬진강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섬진강...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강이다.
나는 강중에서도 섬진강이 가장 좋다.
몇날 며칠 섬진강 오백리길을 도보로 완주해 보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그러나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섬진강 도보 여행은 계획만 세웠다가 가질 못했고,
금년에도 생각은 하고 있지만 실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간 다 늙어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할 것 같다.
이것 저것 다 접어 버리고 그저 무작정 떠나면 될 것을...
차창가로 스쳐지나가는 강변의 은빛 모래톱이 키 작은 수변 식물들과
어우러져 정말 환상적인 강변 풍경을 보여 주고 있다.
강물이 유유히 흐른다.
강물이 도도히 흐른다.
사람들은 강물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섬진강은 유유하지도 도도하지도 않다.
그저 돌과 숲 그리고 하얀 모래톱을 이리저리 휘돌아 흘러갈 뿐이다.
도무지 강물이 흐르고 있는 것인지, 머무르고 있는 것인지....
무심히 보면 그것조차 분별할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히 강물은 흐른다. 역사가 흘러가듯이....
천년이 아니고, 만년이 아니고.....
그 보다 더 많은 억만년, 수십억만년 그렇게 강물은 흘러왔고 또 흘러 갈 것이다.
섬진강이 그렇고, 한강이 그렇고, 낙동강, 금강, 영산강이 그렇다.
그러나 이런 도도한 강이 지금 강의 역사 중에서 가장 슬픈 저항에 시달리고 있다.
이른바 4대강에서 벌어지고 있는 ‘4대강 사업‘ 때문이다.
지금 그들 4대강의 물은 잠시 그 흐름을 멈춰있다.
강바닥은 파헤쳐져 거대한 인공 구조물이 박히고....
강물 속의 수많은 어패류들이 죽거나 서식지를 잃어 가고 있다.
강변의 생태계가 갈갈이 파괴되고...
강의 역사가 지금 마구 뒤집어 지고 있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한 일이 하나 있다.
바로 섬진강만은 4대강과는 달리 개발이라는 참변을 피해 간 것이다.
그러나 섬진강도 점점 인공물이 들어서고 이곳저곳에서 크고 작은
개발이 진행되 가고 있어 옛 모습을 점점 잃어 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금 섬진강을 바라보는 마음은 평화로움과 착잡함의 두 감정으로 교차된다.
그래도 아직은 옛 모습을 읽을 수 있는 섬진강을 바라보는 감정이고...
또 다른 감정은 점점 현대화로 변해가고 있는 강의 모습을 바라보는 감정이다.
그래도 큰 상처 없는 섬진강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더욱이나 섬진강 기슭은 근대 문학의 배경이 된 문학의 강이기도 하다.
만해 한용운을 비롯한, 김동리, 이병주, 서정주, 김용택 등등....
수많은 대가들이 배출되고 주옥같은 문학작품이 탄생한 강이다.
오늘 나도 그런 섬진강을 바라보며 시 한수 정도는 짓고 싶지만...
역시 마음뿐 그것을 문자로 표현할 재능이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 화개장터
첫 기행지로 화개장터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화개장터의 역사를 들먹일 여유는 없다.
그러나 지금의 화개장터는 관광객들을 위한 장터일 뿐
그 옛날의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시끌벅적 북적대는 장터는 아니다.
여기저기에서 몰려든 봇짐장수, 장돌박이들의 애환이 서린 장터가 아니고,
어느 고장에서나 볼 수 있는 획일적인 상품에 언제나 그 자리에 그 상인이
붙박이로 앉아 물건을 파는 상가로 변해있다.
장터를 둘러보다 예쁜 다육이 화분 몇 개를 샀다.
김동리 선생님의 대표적 소설 ‘역마’ 의 배경으로서의 화개장터는
그저 글 속에 있을 뿐이고, 조영남의 노래 말속에 존재할 뿐이다.
그래도 ‘역마’의 주인공들이 장터 한 켠 조형물에 새겨져 있으니
아쉬운 마음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
‘옥화’ ‘계연’ ‘성기’ 의 만남 그리고 늙은 체 장수....
소설 속의 주인공들의 이름이 새겨진 조형물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학창 시절에 한번 읽어 봤던 ‘역마’ 의 기억들이 실낱같이 떠오른다.
집에 가서 한번 차분히 다시 읽어 보기로 마음먹는다.
잠간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기 시작한다.
일행들은 식당으로 들어가 비빔밥에 만 원짜리 녹두빈대떡을 시켜
컬컬한 막걸리로 이른 점심을 먹는다.
오늘은 카메라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말 그대로 문학기행이니 물질적 현상을 벗어던지고 오로지
가슴으로, 마음으로, 머리로 기행을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눈으로 보이는 현상을 사진으로 찍다가 보면 도무지
다른 생각들이 비집고 들어 올 틈이 없어진다.
자동차를 버리고 걸어 다녀야지만 눈에 보이듯이....
카메라를 버려야 생각이 일어나고 감정을 가슴에 담을 수 있다.
◆ 쌍계사
사찰 쌍계사는 김동리 선생님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화개장터 지근거리에 있으니 아무래도 선생님도 쌍계사 경내를
산책하시며 작품 구상을 하셨을 것이다.
나는 글은 못쓰지만 문학적 감수성은 조금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언감생심 소설이나 시를 쓸 수 있는 재능은 없다.
그래도 고적한 산사를 거닐 때나 비 오는 날 후미진 길을 걸으면
시나 소설 같은 영감이 떠오르곤 한다.
그러나 그 것들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영감 일뿐 그 것을 글로서
표현할 재주나 문학적 기반이 내게는 턱없이 미숙하다.
쌍계사를 돌아보면서 일어나는 나의 현상은 김동리 선생님의 문학적
배경으로서 라기 보다는 그동안 배워서 조금은 아는 문화재적 시각으로
자꾸만 사찰을 보게 되니 아무래도 조금은 궤도 수정을 해야 할 듯 하고,
문학적 끼를 십분 살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안목과 식견을 길러야
되겠다는 것을 뒤 늦게 절감한다.
쌍계사의 대웅전은 보물(제500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다포양식의 팔작지붕에 정면5칸, 측면3칸인 대웅전은 조선시대에 지은
건물이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하여 내려오다 임난 때 불탄 것을
인조 10년(1632)에 다시 지은 건물이라 했다.
그러다가 근년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여 단청을 새로 입히는 등
천년 고찰로서의 고졸한 맛을 많이 잃었다.
썅계사는 두 개의 계곡이 합쳐진 곳에 세웠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양 계곡에서 들려오는 시원한 바람과 물소리가 기분을 즐겁게 해준다.
김동리 선생님도 이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작품을 구상했을 것이다.
◆ 다솔사
쌍계사를 나와 차창으로 섬진강을 다시 바라보면서 사천의 다솔사로 향한다.
다솔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는 신라시대 고찰이다.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에는 빠져 있지만 분명히 진시사리 108과를 봉안한
금강계단까지 있으니 5대 적멸보궁에 이어 6대 적멸보궁으로 수정해야 될 듯하다.
그 보다는 다솔사는 일제강점기 중 만해 한용운 선생님이 기거하며
수도를 하신 곳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특히 김동리 선생님이 이곳에 머물며 소설 ‘등신불’을 집필한 곳으로 전해져
오늘날 문학기행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다솔사는 사찰 경내로 들어가는 200여 미터의 솔 길이 너무도 좋다.
한용운 선생님도, 김동리 선생님도 이 길을 거닐면서 시를 쓰고 소설을
구상했을 것 같은데...
아뿔사 차에서 내려 걸어가지 않고 버스 타고 바로 올라가니
아무리 시간에 쫓긴다 해도 이건 아닌 듯싶었다.
좀 힘들어도 시간이 늦더라도 숲길을 걸어 들어가면서 김동리 선생님을
생각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인데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든다.
법당에 앉아 주지스님의 법문 아닌 법문 같은 좋은 말씀을 듣기도 하고,
시 낭송까지 부처님 앞에서 하니 역시 문학기행 다운 맛이 난다.
김동리 선생님이 머물며 소설 ‘등신불’을 썼다는 경내의 안심료(安心寮)를
돌아보고 서둘러 다솔사를 나온다.
돌아 갈 길이 바쁘니 어찌하겠는가.
문학기행을 마치고 귀가를 하니 밤 11시가 넘었다.
* 오늘 기행 코스 중 사천의 이병주문학관도 들려 선생님의 문학세계도
잠시 돌아보고 왔었으나 여기에서는 언급을 생략했다.
오늘의 문학기행은 김동리 선생님과 연관된 기행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문학기행에 동참할 수 있게 해준 ‘동리목월문학관’ 측에
감사들 드린다.
>미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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