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索의 窓門/여행~

부산 감천문화마을, 그 애잔한 추억 속으로 들어가다.

migiroo 2013. 3. 29. 21:56

 

 >2013.3.27

 


●들어가는 여정~

 

 


 

오늘은 부산 갈맷길을 걷고자 이른 아침 길을 나선다.
본격적으로 갈맷길을 걷기 전에 우선 한국의 ‘산토리니‘ 라고 하는
부산 사하구의 ’감천문화마을‘을 탐방하기로 한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니 아뿔싸 빗방울이 보인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말짱했던 하늘이 오늘은 심술첨지처럼 잔뜩 찌푸리고 있다.
설마 비가 올까, 아마 안 올 꺼야....
한 시간 남짓 버스를 타고 부산 노포역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비는 무시할 만큼 한 두 방울씩 뿌리고 있다.


다시 노포역에서 전철을 타고 40여분 가니 자갈치를 지나 토성역이다.
토성역에 내리니 바로 부산대병원 앞이다.
부산대병원 암센터 앞에서 감천문화마을까지 걸어갈까 하다가
복잡한 도심길이라 걷기가 불편하여 마을버스를 기다린다.
작은 미니버스가 왔다.


“이 버스 감천문화마을 가나요?”


버스 기사가 50대 정도로 되 보이는 여자 분이시다. 


“빨리 타이소”


강한 경상도 악센트가 섞인 목소리다.
버스가 이내 좁은 가파른 골목길로 올라간다. 만약 브레크라도 고장 나면 한 순간에 뒤로 미끄러져 나갈 듯 아찔한 길이다. 그러나 아주머니 기사는 능숙한 운전술로 중간 중간 마다 손님을 내려주고 태우고 하면서 굴곡이 심한 좁은 산비탈 길을 잘도 올라간다.


이윽고 감천마을 앞에서 내리니 이내 사진 상으로 많이 보아 왔던 아름다운(?) 감천마을이 가파른 산등선을 따라 알록달록한 성냥갑을 늘어놓은 것처럼 펼쳐져 시야에 들어온다.

 

 

●감천문화마을~

 

 

 

 
마을의 모습을 보니 왠지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촉촉해져 온다.
먼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가 애잔한 추억들이 영상처럼 떠오른다. 


기라성처럼 서 있는 고층 아파트 숲보다 얼마나 정겨운 모습인가?
사람들이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마을.....
인정과 나눔이 있는 이웃과 이웃이 있는 마을....
그림처럼 알록달록, 다닥다닥 밀집되어 있는 집과 집들마다 개성이 있고 길이 있는 마을...
아름답다고 하기보단 왠지 가슴이 짠한 그런 애잔한 슬픔이 들게 하는 마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내 젊었을 적 과거의 시간으로 찾아 온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온갖 불편과 어려움이 도사린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마을...
울컥 눈물이 쏟아 질 것 같다.
왜 그럴까!

 

 

 

 

한 떼의 젊은 사람들이 깔깔대며 연신 카메라의 사타를 눌러 대고 있다.
저 젊은 사람들 눈엔 아마도 마을이 신기하게만 보일 것이다.
온갖 편리함에 길들여진 젊은 사람들이 마을에 서린 애환을 알까 모를까?

 

 

 

 

감천마을은 5,60년대 마을이다. 그래서 마을의 집들도 그 당시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만 낡고 지저분한 곳을 정비를 하고 집집마다 다른 색을 입힌 것은 근래의 일일 것이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마을미술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미술품들이 마을에 들어서고 2010년에는 '미로미로(迷路迷路)라는 골목길 프로젝트'을 통해 마을에 벽화와 조형물이 만들어 졌다 한다.

 

 

 

그리고 작년 11월에 열린' 2012 아시아 도시경관 대회'에서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되어 한국의 ‘산토리니’이니, ‘마추픽추’이니 하며 소문이 나기 시작한 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한다.
감천고개 옥녀봉에서 천마산에 이르는 산자락을 따라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마치 그리스의 산토리니와 꼭 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 와서야 비로소 감천마을에 대한 유래를 알게 됐다.
마을의 원래 이름이 ‘태극도 마을’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태극도(太極道)가 뭐지...?

 

 

 


태극도는 우리나라의 민족 종교로 1921년 조철제(趙哲濟)가 세운 증산교 계열의 신흥 종교이고 바로 그 본부가 감천마을에 있다.

태극도마을의 유래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 사하구청이 펴낸 <사하구지>는 태극도마을을 “태극을 받들며 도를 닦는 신흥종교로 태극도 신도 4,000여 명 모여 집단촌을 이룬 마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 온 태극교도들이 몰려들면서 판자집 800여 호가 지어졌고, 이후 1958년 충북 괴산 등지에서 온 태극교도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 후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판잣집 골격을 그대로 둔 채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것을 제외하면 마을은 당시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1980년대에는 주민들이 2만 명에 이를 정도로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1만 명 남짓 살고 있다 한다. (자료, 네이버케스트 최갑수님 글에서 발췌)

 

 

                                                   

                                                              ▲5,60년대의 감천마을 모습, 아래 큰 건물은 태극도 본부.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길 이름이 ‘태극1길, 2길, 3길....로 되어 있다.
마을을 돌아보기 전에 ‘하늘마루’전망대에 올라가 마을 전체를 조망해 본다.
카메라 렌즈를 광각렌즈로 바꾸어 그림 같은 마을의 풍경을 담는다.
당국에서 신경 써서 여기 저기 상징적 조형물을 설치하고,
담벼락 등에 벽화를 그려 넣고, 빈 집을 매입 리모델링하여 ‘어둠의 집’ 이니,
’빛의 집, 평화의 집, 카페, 갤러리, 어울터 등을 만들고,
길마다 골목길 프로젝트로 테마가 있는 마을로 꾸며 놓았다.
그리고 다행히 마을 집들이 비교적 그 원형이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
되어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테마가 있는 마을 골목길~

 

 

 

 

길은 길이다.
감천마을의 집들은 가파른 산등선 위에 지어진 집들이다.
골목길들은 수평으로 나 있지만 수직으로 올라가는 길은 급 경사 길목길이다.
그래서 자동차는 물론, 오토바이, 자전거조차도 다닐 수 없는 길이다.
사람도 겨우 한 사람이 다닐만한 작은 골목길이다. 
길을 가다 반대편에서 마주 오는 사람이 있으면 두 사람 중 누구든
옆으로 비켜서서 양보를 해야 지나 갈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감천마을 사람들은 양보를 잘하는 착한 미덕이 남다르다는 것일까?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 같은 문명의 이기들은 절대 사절이다.
그러나 길은 막힘이 없이 미세한 혈관처럼 어디든 이어져 있다.
인정이 있고, 나눔이 있고, 이웃이 있는 길....
그런 길이 바로 감천문화마을 골목길이다.


집집마다 화단은 없지만 화분 대용 플라스틱 용기에 꽃은 피어 있다.
집집마다 대문은 없지만 집집마다 창문은 있다.  
젊은이들은 보이지 않지만 어르신들은 많이 계신다.
햇볕 잘 드는 양지쪽에 앉아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계시고,
골목길엔 강아지, 고양이도 살고 있다.

 

 

 

 

할머니 두 분이 힘겹게 오르막 골목길을 올라가고 계신다.
나도 숨이 차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얼마나 숨이 차실까, 생각하니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할머니가 잠시 쉬는 동안 나도 할머니 옆에 앉아 숨을 고르며 말을 건다.
그 할머니 하시는 말씀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여기 귀경(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은 좋을지 몰라도....
 우리는 귀찮아 죽겠어....”


“주말이면 사람들이 몰려와 설치는 바람에 우리는 밖에 나올 수도 없고,
 집을 헐고 새로 질 수도 없어....“


할머니 말이 맞는 말씀이다.
주말이며 많은 탐방객들이 마을을 찾는다지만 그 경제적 이득이
마을 주민에게 나누어지지 않는 다면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은
주민들에겐 귀찮은 존재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마을 공동체가 작은 찻집 같은 수익사업을 벌리기도 한다지만
얼마나 큰 수익을 올려 주민들에게 수혜가 가겠는가.

 

 

 

 

할머니와 헤어져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2시간여가 소요 됐다.
마을을 돌아보는 동안 마을 몇 분의 주민들과 마주쳤지만
한 결같이 나이가 많은 노인들인데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길을 알려 주는 등
반갑게 탐방객들을 맞아 주었다.

 

 

 

 

지금의 감천마을이 가슴을 짠하게 하는 것은 젊은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50년대 한국전쟁 전, 후의 그 어려웠던 삶의 현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에 있다. 그런 가슴 아팠던 시절을 모르는 요즈음 젊은 사람들을 비롯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떠들고 사진 찍고, 집안을 기웃거리고 하니 주민들에겐 즐거움 보다는 고통일 것이다. 그렇잖아도 마을의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이 모호하다보니 사생활 침해가 있는 공간에서 사진을 촬영하거나 소음 때문에 불편하다는 주민들의 신고가 잦다는 소식이다. 이건 안 된 말이다. 마을을 찾되 마을 주민을 만나면 인사도 잘하고 조용히 감사한 마음으로 마을을 돌아보는 탐방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고 본다.


감천 마을을 나선다.
이제부터는 골목길이 아닌 부산 갈멧길을 걸을 작정이다. 


 
●사진으로 보는 감천문화마을~

 

 

▲마을 초입 길이다. 조형물도 세워지고, 집들은 옛 집이지만 마을이 깜끔하다.
차들이 보이지만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 외는 아무것도 들어가지 못한다.

 

 

 

▲마을 초입 떡볶기 집에 들려 오뎅 하나를 사 먹는다.
50대 떡볶기 아주머니는 마을 내력을 줄줄히 이야기 해 주신다.

 

 

 

▲마을 초입에 설치한 물고기 형상의 조형물이다.
작은 화살표 모양의 물고기 떼가 한 마리의 큰 물고기를 만들었다.
아마도 작은 물고기들은 문화마을의 집집을 의미하는 것 같고,
큰 물고기 형상은 마을 전체를 상징하는 것 같다.

 

 

 

▲마을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카페의 벽면에 그려진 예쁜 벽화이다.
그러나 이런 벽화는 본 마을에 들어가면 보이지 않는다.

 

 

 

 

▲어느 집의 지붕에 있는 새 형상의 조형물이다.
그런데 앵무새 같은 이 새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면 몸은 새 모양인데
얼굴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왜 그럴까? 아마도 ‘가릉빙가’가 아닌가, 여겨진다.

 

(*가릉빙가(迦陵頻伽)' 란 불교에 나오는 '극락조'를 말함이고, 인도에서 나는 새의 일종인데 소리가 곱기로 유명하다.

깃이 아름답고 소리가 맑은 새를 말하기도 하는데 이새를 "극락조"라고도 하며 사람의 머리에 몸은 새 모습으로 그린다.
불화나 사찰 법당 천장에도 많이 가릉빙가가 많이 나타나고, 고승의 부도(승탑) 같은 석조물에도 조각되어 있기도 한다.)

 

 


▲사진 속의 아가씨들은 일본 관광객들 이다.
일본에도 이런 마을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일본인 말고 다른 외국 관광객들도 가끔 눈에 띄었다.
외국인들의 눈에 이런 마을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꽃의 아름다움은 꽃 모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꽃을 가꿔 피운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에서 일어난다.
집은 가난해도 꽃은 그런 것을 가리지 않는다.
감천마을 사람들이 골목길 모퉁이에 꽃을 피웠다.
 


 

 

골목길 옆에는 장독대로 있고, 빨래 줄도 있다.
그래도 간장, 고추장은 담가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에 빨래는 언제나 함께하는 동반자이다.
이 높은 산비탈 달동네에 물이 흔치 않을 것 같은데....
빨래는 어찌 하는지....
깨끗이 빠른 옷들이 봄 햇살에 투명하게 보인다.

 

 

 


▲어린 왕자와 고양이가 길 난간에 걸터앉아 마을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수입된 왕자의 조형물을 설치했을까?
동네 개구쟁이들의 모습이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마을 어느 집의 축대이다.
깨진 시멘트 블로크를 쌓아 올린 축대가 무너질까 조금은 불안해 보이지만...
쓸모없는 것들이 모여 기하하적인 무늬를 만들었으니 한편의 예술작품이다.
만약에 이 블로크를 벽돌쌓기처럼 차곡차곡 싸 올렸더라면
집의 무게에 못이겨 쉽게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일정한 기법을 무시하고 대는 데로 막 쌓아 올려 무게의 중심이 분산된
결과를 초래 더 견고한 축대 역할을 한듯 보인다.
다만 불로크의 부식 율이 빨라질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

 

 

 

▲골목길이 걷기에 불안해 보이지만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무리는 없다.
이런 골목길은 막힘이 없이 골목길과 골목길이 서로 혈관처럼 연결되어 있다.
골목길 마다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만 관광객들 중 자기 쓰레기를 버리지만 않는 다면 좋겠다.

 

 

 

▲마을 어느 집 담벼락에 쓰여 있는 쓰레기 무단 투기자에 대한 엄중한(?) 경고문이다.
맞춤법 하나 틀리지 않고 먹으로 쓴 붓글씨가 명필(?)이다.

 

 

 

▲강아지 두 마리가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붕위에 엄마곰 인형이 아기곰을 안고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봄볕이 곰인형 등위에 가득히 쏟아지고 있다.


 

 

▲마을에는 비교적 햇빛이 잘 드는 장소에 조성 되어 있다.
그러나 깊은 골목길에는 삶의 고통처럼 항상 그늘이 숨어있다.
흑백사진으로 처리한 이 마지막 사진에서 그늘을 발견하고
감천마을 주민들의 힘든 삶이 가슴으로 파고듦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골목길 찻집에 들어 차를 마신다.
그런데 의외로 찻집 주인이 찻값을 받지 않고 율무차를 내 준다.
그러나 누구나, 언제나 무료로 주는 찻집은 아니다.
(*며칠 후 경주 친구들과 함께 마을에 다시 들렸는데 그 때는 제대로 찻값을 내고 차를 마셨다.)


찻집 이름이‘하늘 찻집’ 이다.
이름도 예쁘지만 찻집 주인(구성은)의 마음이 더 예쁘다.


자, 이제부터는 마을을 떠나 본격적인 부산 갈맷길 트레킹에 들어간다.
감천마을에서 감천항을 거쳐 암남공원, 송도해안 볼레길을 걸어
자갈치 시장까지 갈 예정이다.


갈맷길 탐방기는 다음 편으로 이어진다.

 


>미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