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내가본國寶문화재

▶국보 제39호-경주나원리오층석탑

migiroo 2011. 8. 20. 23:54

■ 내가 보고 느낀 국보급 문화재(27) 

 
▶국보 제39호-경주나원리오층석탑

 
●순백의 경주나원리오층석탑

 

 


경주 나원리오층석탑을 보러 가려면 겨울보다는 가을이 좋고,
여름보다는 봄이 좋다.
사계중 하나를 꼽으라면 봄이 가장 좋다.
봄도 이른 초봄이 좋다.
탑 아래 잔디밭에 노란 들꽃들이 무수히 피어 있어 노란 융단을
깔아 놓은 것처럼 탑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 같기 때문이다.
애기똥풀, 괭이밥, 개소시랑개비, 미나리아재비...등

 

 

누가 심은 것도 아닌데 꽃들은 떼를 지어 폐사지에 피어 있다.
폐사지는 늘 쓸쓸하고 황량하다.
마치 시간이 정지 된 듯한 아픔이 폐사지에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봄이 되면 어린 꽃들로 그런 아픈 감정을 잠시 잊을 수 있다.


경주에는 신라시대의 석탑이 즐비하게 남아 있다.
대부분 삼층탑이지만 오층석탑도 몇 기가 있다.
국보39호 나원리오층석탑과 국보236호 장항리사지오층석탑이 있고,
경주남산의 늠비봉오층석탑이 있다.
 

 


이중 나원리오층석탑은 나원백탑 이라고도 불리는데 탑이
이끼조차 끼지 않고 하얀 백색의 빛을 발한다하여 백탑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신라 팔괴 중에 하나로 꼽히는 탑이기도 하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대기 오염의 영향인지 천년의 세월 속에서도
흰빛을 잃지 않았던 탑이 조금씩 거무스레하게 색이 변하고 있음을 본다.
탑지에 오르는 예쁜 오솔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무 계단을 설치하고,
진입로가 포장되는 등 인위적인 시설이 들어서니 자연과 어우러진 탑의
옛 모습이 자꾸만 변질 되 가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통일신라시대 8세기경에 조성된 나원리오층석탑은
신라시대의 석탑 중에 감은사지삼층석탑과 고선사지삼층석탑
다음 가는 아주 큰 석탑이다

 
탑 앞 아래에서 탑을 처다 보면 장중하고 수려하다.
탑신에 아무런 조각이나 장식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탑이 꾸밈없이 간결하다. 
 

 

 

 


다른 곳의 탑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무너져 있던 것을 다시 복원한 탑이지만

나원 탑은 근간에 해체 복원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온전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탑이다.


 


그리고 이곳에 있었던 절 이름은 확실히 모르고 탑 아래 절터에
근세에 새로 지은 나원사라는 작은 암자  한 체가 있다.

 


◯ 나원리오층탑 출도 사리장어구

 


 
출토된 금동제 사리함의 외함 네 면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고,
사리함 바깥에는 목조 오층소탑 및 목제판 등이 있었으며,
사리함 안에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종이 조각과 불상,
금동제 삼층소탑 1기,  구층소탑 3기, 구슬 3점 등이 수습되었다. 

이들은 모두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다.
 
>미지로

 

 

 ■ 문화재 정보(문화재청)


○나원리오층석탑

-국보 39호


나원리마을의 절터에 남아 있는 석탑으로, 경주에 있는 석탑 가운데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국보 제112호)과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8호)과 비교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순백의 빛깔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나원 백탑(白塔)’이라 부르기도 한다.


2층 기단(基壇)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으로, 기단과 1층 탑신의 몸돌, 1·2층의 지붕돌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은 각 면마다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는데, 가운데부분의 조각을 아래층은 3개씩, 위층은 2개씩 두었다. 탑신부는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경사면의 네 모서리가 예리하고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있어 경쾌함을 실었고,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부서진 노반(露盤:머리장식 받침)과 잘려나간 찰주(擦柱:머리장식의 무게중심을 지탱하는 쇠꼬챙이)가 남아있다.


짜임새있는 구조와 아름다운 비례를 보여주고 있어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 부근에서는 보기 드문 5층석탑으로, 탑이 지니고 있는 듬직한 위엄에 순백의 화강암이 가져다주는 청신한 기품이 잘 어우러져 있다. 높은 산골짜기에 우뚝 솟은 거대한 모습에서 주위를 압도하는 당당함이 묻어난다.
이중(二重)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부(塔身部)를 구성하였으며 탑신부 윗 부분에 장식(裝飾)되었던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과 찰주(擦柱) 일부만이 남아 있다.


경주(慶州)에서는 보기 드문 거대(巨大)한 규모의 석탑으로 각 부(部)의 구조(構造)도 정연하고 비례도 아름다우며 높은 위치에 세워 주위를 압도(壓倒)하는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석탑은 세운 당시의 절 이름은 전하지 않고 있으나 경주의 석탑 중에서는 비교적 빠른 시기인 8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전형적(典型的)인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