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내가본國寶문화재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 유감

migiroo 2011. 11. 29. 17:15

■ 내가 보고 느낀 국보급 문화재(28)

 
▶국보 제285호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 유감

 

 

 

 


울산에 오면 요란한 것이 딱 하나 있다.
바로 고래이다.
울산 앞바다에도 고래 천지이고, 시내 곳곳에도 고래가 가득하다.
심지어는 가로등도 고래 형상으로 디자인되어 있고,
공공시설물에도 고래 디자인 되었거나 반구대 암각화를 외벽에 그려 넣고 있다.
울산시의 온갖 홍보물에도 어김없이 고래가 등장하고, 웬만한 건물에도 고래문양으로
디자인된 조형물이 많다.
그래서 고래박물관도 있고, (고래)암각화 박물관도 있다.


이렇게 울산이 고래와 인연을 맺게 된 동기는 두 가지 인연으로 기인한다.
하나는 장생포항이 고래를 잡는 포경의 요람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다음은 선사시대에 그려진 바위그림인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그림 때문이다.
오늘은 그 반구대 암각화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이야기는 문화재 암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현재 암각화가 처한
딱한 환경적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다.
 

 

 

울산의 유일한 국보급 문화재는 딱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보 285호인 반구대 암각화이고,
또 하나는 국보 147호인 천전리각석이다.
이 둘다 모두 바위면에 그려진 그림이나 글씨이다.


이중 반구대 암각화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제하려고 하고 있을 정도고
귀중한 우리의 문화재이다.
그런데 이런 문화재의 관리는 참으로 한심하고 형편없다.
몰라서 방치한 것이 아니고 관련 당국자 간의 의견 차이로 세계적인 문화재가
지금도 망가지고 있는 중이다.

 

 

                                             ▲물속에 잠긴 반구대 암각화(바위 면)

 


울산 울주군 대곡천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해마다 수십 차례 물속에
잠겼다가 물 밖으로 나왔다 빈복하는 수난을 겪고 있어 그 마모율과 훼손정도가
심각한 상태이다.
암각화가 수난을 겪게 된 주원인은 울산 시민의 식수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1962년도에 대곡천에 댐(사연댐)을 설치하고부터 이다.


울산시와 문화재청 그리고 환경단체들 간에 끊임없는 기 싸움을 하는 동안
암각화는 해마다 심각하게 훼손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이 세 단체들은 십 수 년 동안을 서로 자기네 주장대로 관리해야
한다고 기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마치 위중한 환자를 앞에 놓고 의사들끼리 그 치료 방법을 가지고
이렇게 해야 된다, 저렇게 해야 된다고 싸우고 있는 형국이다.

 
그 동안 국회의장, 국무총리 등 나라의 내노라하는 높은 분들이 다녀갔지만
올 때 마다 큰 소리만 떵떵 쳤지 하나도 추진 된 것이 없다.
정치인들이 하는 일이 원래 구호와 공약만 요란하다는 것은 알지만
금방 해결 해 줄 것 같이 큰 소리쳐도 한번 지나가면 캄캄 무소식이다.

 

 

                                                      ▲울산 박물관 외벽의 반구대 암각화 문양


급기야 금년(2011년)10월에 대통령까지 와서 울산시가 제시한 유로변경 방법으로
추진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관련 당국자들은 대통령 지시도 안중에 없다는 듯
또 자기네 주장대로 해야 한다면서 싸우고 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고 안타까운 일이다.


환자는 죽어가고 있는데 의사들끼리 자기주장이 옮다고 싸우고 있으니
아무래도 환자가 죽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듯 싶다.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동국대학교 학술조사단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대곡천 높은 바위 면에 고래를 비롯한 각조 가축들과 선사시대의 생활 모습이
생생하게 바위에 새긴 바위그림이다.
선사시대  우리 선조들은  깊은 바다에 나가 고래를 관찰하고 사냥을 했다.
암각화는 고래뿐이 아니라 다양한 동물들과 선시시대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바위 면에 200여점이 새겨져 있다.

 
특히 고래그림이 으뜸이다. 고래도 단순한 고래가 아니고 그 종류대로 그려져 있다.
세계적인 해양학자들도 반구대 암각화를 보고 그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오늘 날의 첨단 장비를 갖추고도 오랜 시간 고래를 관찰해야 그 생태를 알 수 있는데
원시인에 가깝던 선사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고래의 생태를 이렇게 정밀하게 관찰하여
바위그림으로 묘사할 수 있었는지 놀랍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지론이다.


그래서 국보급 문화재로 등재 됐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도록 추진 중이다.
그러나 정작 말만 무성할 뿐 심각하게 훼손되어 가는 암각화는 안타깝게도 그 운명이
일각에 달려 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이 공업도시라는 이미지를 문화도시도 탈바꿈하게 한 심벌이다.
그래서 울산시는 암각화를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구대 암각화의 그림은 생활 디자인 화하여 시민 생활 속에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해마다 시끌벅적 고래축제도 열린다.
고래축제는 고래를 보호하자는 축제인지, 고래를 잡아먹자는 축제인지 모호하고
시내에는 고래 고기 파는 음식점이 곳곳에 숨어 장사를 하고 있다.
돌고래 몇 마리도 일본에서 수입하여 대형 수족관에 들여놓고 어린이들은 유혹하여
학부모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비싼 입장료를 내게 하고 있다.


대통령 지시가 있은 후 서울에서 반구대암각화 보존대책 회의(2011.11.28일)가
열렸던 모양이나 그러나 배짱 좋은 문화재청에서는 대통령이 지시한 물길을 바꾸는
울산시 방안이 심각한 환경 파괴 방안이라 하면서 울산시 방안을 거부했다한다.
대통령 지시마저 거역(?) 한 문화재청의 결단이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문화재청의 주장이 일면 맞는 것 같지만 울산 시민의 식수원을 고려한
울산시 주장 또한 틀린 것은 아닌듯 하다.


다시 말해서 문화재청은 사연댐의 수위를 낮춰 원래 환경대로 복원시켜야 주변
환경이 살아 암각화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다는 주장이고,
대통령이 손들어 준 울산시의 주장은 암각화 상, 하단에 제방을 쌓고 물길을 새로
만들어 돌리자는 방안이다.(이 방안은 대규모 토목 공사로 주변 환경이 훼손될
소지가 크다.)
대통령도 그렇지 쌍방의 주장을 면밀히 검토하여 가장 최상의 방안으로 추진하도록
지시 하지 않고 4대강 공사 밀어부치기 식으로 일방적으로 울산시의 손을 들어 줌으로서
이를 문화재청이 거부케 했으니 대통령의 체면이 꾸겨진 셈이다.


보존대책회의(자문회의)의 결론은 반구대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주변 환경의 원형복원(회복)이 필요하며, 인근 천전리 각석(국보 147호) 등을
포함해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하니 아무쪼록 빨리 좀 좋은
방안이 추진되어 기로에 서 있는 암각화를 구해 내야 되지 않을까 싶다 .


이제 구만 싸우고 제발 암각화의 심각한 훼손을 막을 대책을 세우고
즉각 시행해야 한다. 환경도 중요하고, 암각화 보존도 중요하고, 식수원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모두를 만족 시킬 수 있는 보존 대책이 있다면야 금상첨화이겠지만
조금씩 양보하고 피해를 최소화 하는 방법으로 세계적인 암각화가 더 이상 물에
잠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 될 듯하다.

 
원래 되로 돌려줘야 한다.
그래서 천년만년 우리 후손들에도 이 귀중한 선사시대 암각화를 볼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내일은 오랜만에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서을 찾아
일일 여행을 하려 한다.
비가 내릴 것이라지만
그건 상관이 없다.

 

>미지로

 

 

■문화재청 자료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蔚州 大谷里 盤龜臺 岩刻畵)
 -국보  제285호 

 

 


높이 3m, 너비 10m의 'ㄱ'자 모양으로 꺾인 절벽암반에 여러 가지 모양을 새긴 바위그림이다. 바위그림을 암각화라고도 하는데, 암각화란 선사인들이 자신의 바램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바위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그림을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암각화는 북방문화권과 관련된 유적으로 우리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1965 년 완공된 사연댐으로 인해 현재 물 속에 잠겨있는 상태로 바위에는 육지동물과 바다고기, 사냥하는 장면 등 총 75종 2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육지동물은 호랑이, 멧돼지, 사슴 45점 등이 묘사되어 있는데, 호랑이는 함정에 빠진 모습과 새끼를 밴 호랑이의 모습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멧돼지는 교미하는 모습을 묘사하였고, 사슴은 새끼를 거느리거나 밴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바다고기는 작살 맞은 고래,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의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사냥하는 장면은 탈을 쓴 무당,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어부 등의 모습을 묘사하였으며, 그물이나 배의 모습도 표현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선사인들의 사냥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길 기원하며, 사냥감이 풍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위에 새긴 것이다.


조각기로 쪼아 윤곽선을 만들거나 전체를 떼어낸 기법, 쪼아낸 윤곽선을 갈아내는 기법의 사용으로 보아 신석기말에서 청동기시대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선과 점을 이용하여 동물과 사냥장면을 생명력있게 표현하고 사물의 특징을 실감나게 묘사한 미술작품으로 사냥미술인 동시에 종교미술로서 선사시대 사람의 생활과 풍습을 알 수 있는 최고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전체 화면에는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동물 그리고 탈을 쓴 무당, 사냥꾼, 배를 타고 있는 어부, 목책, 그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들 모습은 떼어내기 수법으로 형체를 표현한 음영화(陰影畵)와 쪼아파기 수법의 선으로 나타낸 선각화(線刻畵)로 나타내었으며 시베리아 암각화의 전통을 보여주고 있다.


수렵과 어로를 위주로 한 당시의 생활풍속을 알려주는 가장 귀중한 선사시대 문화유산으로 한 화면에 200여점에 달하는 다양한 종류의 물상들이 새겨져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예로서 고고학, 미술사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대곡천

 

                                                     ▲대곡천

 

 

                                                          ▲사연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