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경주南山 斷想

●경주남산 약수골석조여래좌상

migiroo 2011. 6. 1. 00:49

 ▷2011.5.28

●머리 없는 여래여! 목 잘린 부처여!     
     ㅁ경주남산 약수골석조여래좌상

 

*길의 여정

 

며칠째 날이 흐리고 찔끔찔끔 봄비가 내리고 있다.
해가 나지 않는 날이 벌써 한 주가 지나니
햇볕을 좋아하는 우리 집 다육이가 걱정스럽다.

 

오늘 아침 하늘도 뿌연 안개비를 내리고 있다.
이런 날이면 가고 싶어지는 곳, 경주 남산이다.
안개 속에 서 있는 신령스러운 소나무들이 보고 싶고,
비에 젖어 고독하게 앉아 있는 석불이 그리워진다.

 

발길은 어느새 경주 남산 약수골로 접어들고 있다.
계곡에 맑은 약수가 나온다하여 붙여진 이름이지만
비가 내리지 않으면 계곡에 물은 흐르지 않는다.
이곳엔 옛 신라시대의 절터 두어 곳이 남아 있고
아주 큰 마애불과 머리 없는 석불이 있다.

 

약수골 초입에 이정표가 서있다.
산길은 비교적 완만하지만 꽤 길다.
두 석불이 있는 곳까지는 약 1.5km...
산길이니 한 시간 정도는 걸어야 될 듯하다.


 

 

 

오월의 싱그러운 숲은 이미 성하의 신록이 다 되어
좁은 산길이 숲 터널을 이루고 있고, 뿌연 안개에
묻혀 있는 산속은 그야말로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주말인데도 산속은 거의 인적이 없다.
홀로 걷는 산길이 그런대로 사색하며 걷기에 좋다.
처음 길은 원만하다가 점차 가파라 지기시작 한다.
커다란 떡갈나무 이파리에 영롱한 물방울이 다닥다닥 맺혀 있다.
잠시 그것들은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은 행복감에 취해있다. 


 

 

 

계곡에 제법 많은 물이 흐르고 있다.
졸졸졸~ 자잘대는 물 소리가 너무나 맑고 청아하다.
물은 돌과 바위 사이를 이리저리 헤집고
아래로, 아래로 흘러 내려가고 있다.
물은 왜 흐르며 어디로 흘러 가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그리고 싱그러운 숲 소리...
오랜만에 자연의 소리를 들으니 너무도 상쾌하다.
가다가 사자 닮은 바위도 만나고
부처 닮은 암반도 만난다.
흠뻑 물기를 머금은 숲 속은 생명이 용솟음 치고 있고,
그 속에 묻혀 걸으니 이 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다.


 

 


 
산길을 걷다 보면 무덤들을 자주 만난다.
국립공원 내 무덤 설치는 불법인줄 알면서도 무덤은 자꾸 늘어나고
이미 설치된 무덤을 이장해 달라는 당국의 호소문들이 여기저기
무덤 옆에 붙어있다.


 

 

 

 

떼죽나무의 꽃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땅 위에 무수히 떨어져 있다.
그 하얀 꽃 모양이 마치 반짝반짝 빛나는 별같이 생겼다.
그 꽃잎을 차마 밟고 가기가 미안해 한 참 동안 드려다 보다
그 앙증맞은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열반의 길

 

-약수골석조여래좌상   

 

 

 

 

한 시간 쯤 걸었을까 길은 점점 가파라지고 호흡이 빨라진다.
이마에 맺힌 땀이 안개비와 섞여 발아래 뚝뚝 떨어진다.
오로지 석불을 만나기 위한 고행이라 생각하니 힘듦 보다는
짜릿한 기쁨 같은 희열이 온 몸으로 파고든다.


 

 

 

소나무 숲길이 끝나고 갑자기 대나무 숲길이 나타난다.
열반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이 길 끝에 머리 없는 그 분이 앉아 계실 것이다.
비와 안개를 다 맞고 하염없이 그렇게 앉아 계실 것이다.


 

 

 

대나무 숲길을 지나니 바로 눈앞에 그분의 모습이 보인다.
화려한 연화문 대좌도 옆에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축축한
맨 땅에 미동도 않고 앉아 계신다.
안개비가 그분의 어께를 타고 눈물처럼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나는 감정에 복받쳐 절절한 마음이 된 체 그분을 바라보았다.

 

 

*석불이여, 머리 잘린 여래여!


 

 

 

한쪽 구석에 대빗자루가 있다.
나는 빗자루를 집어 들고 빗물에 젖어 있는
그 분의 앞을 쓸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무명의 속진(俗塵)을
한 톨 한 톨 씻어내듯 힘주어 바닥을 쓸었다.
땅바닥은 금세 깨끗해 졌다.
그러나 선명한 빗자루 자국이 또 다른 무명이 되어 돌아온다.
무명은 이렇게 아무리 쓸어내도 씻어 낼 수가 없다.
빛이 없는, 밝음이 없는 것이 무명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한 평생을 무명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나는 그분 앞에 머리 숙여 합장하고 기도를 드렸다.
기도는 어느듯 그분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기도가 되고 말았다.


 

 

 

아픈 마음으로 석불을 만져 본다.
얼마나 오래 동안 여기에 버려져 있었는지
석불의 온 몸에는 거무티티한 석화와 이끼가
덕지덕지 끼어 있다.
천년 하고도 수백년이 지났으니 백년도 못 사는
인간들이 어찌 석불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으리오.
석불이여, 여래여!


 

 

 

석불은 처참하게 목이 잘려 있다.
육중한 둔기로 머리 뒤를 내려쳐 떨어져 나간 끔찍한 자국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잘린 목 부위에서 지금도
시뻘건 선혈이 솟구치고 있는 듯하다.


 

 

 

수년 전까지도 이 석불은 앞으로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누군가에 의해 지금처럼 몸만 일으켜 세웠지만
온전한 모습으로 복원한다는 소식은 전혀 없다.

 

 

*석불의 방형대좌


 

 

 

석불 옆에는 아직도 연화무늬가 선명한 불대좌가 있다.
대좌도 그냥 대좌가 아닌 보기 드문 사각의 방형대좌(方形臺座)다.
조금 위쪽 숲 속에 또 다른 연화대좌가 땅위에 반쯤 박혀 있다.
아마도 대좌가 주변에 여러 조각으로 흩어져 땅 속에 묻힌듯 하다.


 

 

 

그리고 또 그 윗 쪽엔 건물이 섰던 축대가 보인다.
바로 옛 절터의 축대이다.
석불이 좌정하고 있던 금당지(金堂址)가 분명해 보인다.
간혹 와편(기와조각)도 보이고 주춧돌도 보인다.


 

 

 

그러니깐 석불은 윗 쪽 절터에 있었는데 사악한 무리들이
석불의 목을 잘라 비탈진 언덕 아래도 밀어 버린 것이리라.
지금은 숲이 많아 전체 절터를 볼 수 없음으로 연필 그림을
대신 여기에 싣는다.


 

 

 

이 숲 속이나 계곡 어딘가에 잘린 석불의 머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南 남산의 열암골 석불도 수년전에 우연히 숲 속에서 발견했듯이
이 약수골 석불의 머리도 빨리 되찾기를 간절히 바란다.    
 
경주남산에는 목 잘린 석불이 왜 많은가?
남산에는 옛 절터가 현재까지 147 개소가 발견 됐다.
절터마다 석불이 있었다고는 볼 수 없지만
현존하는 석불은 마애불을 합쳐 모두 118기 정도 이다.
 
이 중 마애불을 제외하곤 머리가 온전히 붙어 있는 석불은
5기뿐인데 그나마도 2기는 남산을 떠나 서울의 중앙박물관과
경주박물관으로 옮겨 갔다.
 
석불의 목을 무참하게 자를 때 무섭지 않았던가?
목에서 붉은 피가 솟구쳐 나왔을 터인데
그 사람들 온전한 정신으로 석불을 훼손했을까?
 
잘린 목 부위를 한 번 더 어루만지며 
‘여래여, 목 잘린 여래여! ’를 뉘이다
발길을 돌려 다시 능선을 타고 올라간다.
약수골마애대불을 만나기 위해서다.

 

다음 장-‘약수골마애대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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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10년 후 불두 발견

경주 약수골 석조여래좌상 불두 발견
2020.6.3
 

경주 남산 약수골 계곡서 불두, 불두 이마 백호수정, 청동탑, 철탄생불 발견

 

땅 속에 드러난 불두 모습

 

경주 남산 약수골 머리가 유실된 석조여래좌상 주변에서 발굴조사 중 땅 속에서 불두가 출토발견 되었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 1-1번지 일대 약수골 4번째 절터를 최근 정비를 위해 발굴 조사한 결과, 현장에 머리 없이 방치된 통일신라 시대 석불좌상(높이 109cm)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불상의 머리를 발견했다고 2020.6.3.일 밝혔다.



발견된 불두의 백호(수정)모습

 

새로 발견된 불두는 높이 50cm, 너비 35cm, 둘레 110cm 정도로, 불상 인근에 있는 큰 바위의 서쪽 영역에서 땅 속에 묻힌 모습으로 확인됐다. 안면 오른쪽 일부와 오른쪽 귀 일부에서는 당시 장인들이 입혔던 금박이 나타났다. 미간 사이의 백호를 장식했던 둥근 수정은 떨어진 채 불두 근처에서 같이 발견됐다. 신라인이 수놓았던 금박과 수정이 불두 옆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통일신라 석조불상의 원형을 고증하는데 중요한 근거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불두 주변에서는 소형 청동탑, 소형 탄생불상 등도 함께 출토됐다.

 

땅 속에 묻힌 체 드러난 불두 모습

 

이번 조사는 약수골의 석조여래좌상 절터 영역에 방치된 석불좌상을 보수 정비하기에 앞서 석조여래좌상의 원래 자리를 확인하고 주변을 정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됐다.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후기 작품이다경주 석굴암 본존불상과 같이 왼손을 펴서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하고 오른 손은 펴서 무릎 아래로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 도상을 하고 있다. 통일신라 석불좌상의 받침 대좌는 상당수가 팔각형으로 조성된 것과 달리 이 불상은 받침대좌가 사각형(방형)으로 조각된 것도 특징이다.

 

불두와 함께 출토된 청동탑과 탄생불

 

조사구역에서는 시기를 달리 하는 두 개의 건물터 층도 위아래가 겹쳐진 채 드러났다. 윗층에서는 고려 시대 기와가, 석불좌상과 동시대인 아래층에서는 통일신라 평기와가 주로 출토됐으며, 연꽃보상화문 무늬를 지닌 수막새와 암막새도 함께 확인된다. 주변에서는 통일신라시대 건물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공석 등도 나왔다. 연구원 쪽은 발견한 불두에서 당대 신라인들이 불상에 금칠하는 개금 작업과 채색 흔적이 나타난 것은 석조불상, 마애불상에서는 드문 사례로 추가 조사를 통해 좀 더 면밀하게 실상을 파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경주시는 발굴된 불두와 석불좌상을 복원할 계획이다. 불두 등 출토유물들은 오는 10일 일반공개된다. (>,사진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일부 내용은 요약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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