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경주南山 斷想

●경주남산 약수골마애대불

migiroo 2011. 6. 1. 01:01

 

 ▷2011.5.28


●마애대불을 향하여~
    
ㅁ경주남산 약수골마애대불입상

 


이번에는 그야말로 험한 바위투성이 길이다.
산길은 점점 가파른 길로 접어들고 있다.
대불을 친견하기 위해서는 더 큰 고행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대불은 의외로 가까이 있었다.
열반의 길인지, 해탈의 문인지...
또 다른 대숲길이 나타났다.
급하게 꺾어진 능선 길을 타고 돌아서니
그 순간 거대한 마애불의 상반신이 시야에 들어온다.
대불은 뿌연 안개 속에 덮여 있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대불도 머리가 없는 마애불이다.
원래 없는 것이 아니라 이 또한 어느 포악한 무리들이
여래의 머리를 아래로 밀어뜨려 버린 것이 분명했다.
엄청 머리가 커서 머리 따로 목 따로 제작하여 붙여 놓은 것을
밀어트려 버렸으니 그 큰 머리는 지금 행방이 묘연하고
삼도가 뚜렸한 동강난 목 부위만 백 여 미터 계곡 아래에
굴러 숲 속에 처박혀 있다.


 

 


커다란 직각의 바위 면에 음각과 양각으로 새긴 마애불이지만
머리만은 입체적인 환조(丸彫)로 조각하여 몸 위에 올려진 듯하다.
자그마치 8미터가 훨씬 넘는 마애대불이니 그 머리인들 얼마나 컷겠는가를 상상해 본다.

담쟁이가 마치 부처님의 가사(옷) 인양 마애불의 몸에 달라붙어 있다.
 

 


 

불두(佛頭)을 붙여 놨던 구멍에는 빗물이 홍건이 고여 있다.
머리가 떨어져 나갈 때 솟아난 붉은 선혈처럼....


 

 


포악한 무리들은 대불의 머리만 없앤 것이 아니다.
따로 만들어 붙인 양 발도 떼어내 버렸다.
그 중 용케도 한 쪽 발이 발견되어 대불 앞에 갖다 놓았는데
어리석은 중생들은 여래의 발마저 올바르게 놓지 못하고
거꾸로 갖다 놓았으니 그저 할 말이 없다.


 

 


*여래여, 여래의 손이여~


대불에서 받는 감동은 크다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대불의 손 모양을 보면 절로 감탄해 마지 않는다.
아, 아! 하는 탄성이 터저 나온다.
대불의 손을 보고 감탄의 탄성이 나오지 않는 다면
그런 사람의 심성은 욕망으로 꽉차 있을 것이다.


 

 


불상의 손 모양을 수인(手印)이라한다.
수인은 수 십 가지나 되어 모두 그 의미를 달리한다.
그런데 이 약수골마애불의 수인은 일정한 도식에서 벗어난 
예술 작품이고, 누구도 흉낼 수 없는 걸작품임을 알 수 있다.


단단한 화강암에 어찌 이처럼 유연하고 부드러운 조각을
할 수 있었는지 신라의 석공은 단순한 장인이 아니고
정을 든 손이 신의 손이었음이 분명하다.


모든 신체부위나 옷 주름은 모두 양, 음각으로 처리했지만
오로지 대불의 손만은 고부조(高浮彫)로 깊게 돋을새김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대불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손 모양에 있다고 봤다.
손을 드려다 보고 또 들려다 봐도 지루하지가 않다,
보면 볼수록 마음이 고요해 지고 편안해 진다.

 

 


올라가서 한번 만져 보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제한다.
카메라의 줌을 최대한으로 당겨 왼손을 찍는다.
그리고 카메라 액정으로 들어온 영상을 보고 또 본다.
현대의 그 어떤 조각가도 이 같은 작품을 낼 수 없을 것이라 본다.
이는 장인의 다순한 기술과 노련함으로 조각한 것이 아니고
영혼과 정신이 합쳐져 심오한 종교적 신앙심으로
조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남산의 석불은 왜 모두 목이 잘렸을까?
언제 누구의 짓일까?
불상을 파괴한 범인이 누구인가“
혹자는 일제가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잘 못된 생각이다.


숭유억불의 조선시대 때 조직적이고 은밀하게
불적들을 파괴했다는 추정이 신빙성 있는 설일 것이다.
그러니깐 바로 우리들 자신이 범인인 것이다. 


어쩠든 불상을 만든 자들도 사람일 것이고,
불상을 파괴 한 자들도 사람일 것이다.
만들 때의 그 지극한 불심은 어떤 것이었으며,
파괴 할 때의 그 사악함은 또 어떤 것인가.
그래서 인간은 선, 악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동물인지도 모른다. 

 


*돌아가는 여정


 

 


돌아가기 싫은 발길을 돌려 오던 길로 내려간다.
안개 걷힌 열반의 길을 나와 다시 속계로 돌아간다.
아무리 열반이나 해탈의 길로 가고자 하나
인간은 속계를 벗어 날 수 없음이다.
내일은 해가 날라나...?
하늘이 아직도 잿빛이다.


늦은 점심으로 삼릉골에서
칼국수 한 그릇을 먹는다.
 

>미지로

 

 

✻문화재 정보
 
●경주남산 약수계곡마애입불상(藥水溪谷磨崖立佛像)
  -경북도지정유형문화재 제114호 
   

높이가 8.6m에 이르는 거대한 이 마애불은 남산에 있는 석불 중 가장 큰 불상으로 현재는 머리 부분이 결실되고 어깨 이하의 부분만 남아 있다. 암면(岩面) 양옆을 30cm이상 파내어 육중하게 불체(佛體)를 나타내었으며, 손이나 옷주름의 표현에서도 10cm정도로 고부조(高浮彫)하여 환조(丸彫)에 가까운 효과를 내고 있다. 왼손은 굽혀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내려서 허리 부분에 두었는데, 모두 엄지, 중지, 약지를 맞대고 있다.


이 불상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양어깨에서 길게 좌우로 내려와 여러 줄의 평행선으로 조각된 통견(通肩)의 옷주름으로 그 가운데에는 부드러운 U자형의 옷주름이 무릎 가까이까지 촘촘히 조각되었으며, 다시 그 아래로 마치 주름치마와 같은 수직의 옷주름을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신체 전면을 감싼 옷주름은 규칙적인 평행 옷주름이어서 다소 단조롭고 도식적(圖式的)이기는 하지만 각선(刻線)이 분명하여 힘이 있으면서도 유려한 주름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의문양식(衣文樣式)은 골굴암 마애불(骨窟庵磨崖佛)이나 축서사 비로자나석불(鷲棲寺毘盧舍那石佛), 도피안사 비로자나철불(到彼岸寺 毘盧舍那鐵佛) 등 9세기 후반기에 집중적으로 유행하던 것이며 불상의 형태와 함께 이 불상의 편년(編年)을 잘 알려주고 있다.
(*자료출처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