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索의 窓門/태화강 이야기~

울산 덕하 옛 유락가 이야기~

migiroo 2012. 9. 14. 22:44

>2012.9.11


 
●그때 그 이야기들~


 


춘금이, 심순애, 부라보, 수정, 솔밭, 불꽃...,
은하수, 순화, 흑장미, 명동, 풍년, 아씨다방...,

 

 

 

5,6,70년대 공장 주변에 즐비했던 술집 간판 이름들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 지난 세월 아쉬움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시간의 태엽을 거꾸로 감아 내 젊었던 시절의 모습들을 보는 듯 합니다.
그리고 한 장면, 한 장면 마다 옛 추억이 사박사박 떠오릅니다.

기억 인자는 나이가 들 수록 퇴화 된다는데....

왜 이리도 기억이 생생한지 모르겠습니다.

 

 

 


유락가의 밤이 깊어 갑니다.

고향 떠나온 젊은 사내들의 뜨거운 열정을 태우는 시간입니다.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황금심의 단장의 미아리, 뽕따러가세...
웃음 파는 술집 아가씨들의 노래 소리가 귀전을 두드립니다.
요염한 아가씨들의 노래 소리에 홀린 젊은 사내들이 가슴에 불을 지핍니다.
인근 석유화학 단지에서 일하다 퇴근한 사내들입니다.

 

 

 


고복수의 타향살이, 짝사랑....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현인의 고향만리....
박신자의 땐서의 순정...

 

 


저 켠 구석진 술집에선 육자배기, 흥타령도 들려옵니다.
음험한 사내들 짓거리에 섞여 아가씨들의 악쓰는 소리도 들리고,
신세타령하는 여인의 흐느껴 우는 소리도 들립니다. 

 

 

 

위스키 시음장도 있고, 오비맥주도 있습니다.
물론 막걸리도 있지만 양주 위스키나 맥주는 고급 주류로서
공장 근로자들이 어찌 사 먹었겠어요.
그저 막걸리를 동이 체 들여 놓고 마셔라 부어라 합니다.


2012년 지금, 아직도 이런 흔적들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울산의 어느 한 곳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50년대, 60년대, 70년대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울산에 아직도 이런 흔적들이 있다니 참으로 신기합니다.

 

 

 

 

다른 지방에선 이런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테마 마을을 재현하여
관광객들을 끌어드리고 있는데....
울산은 이런 곳을 그냥 방치하고 있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앞섭니다.
당시 고달픈 노동자들의 추억이 서린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곳을 잘 정비하여 추억의 거리로 만들어
그 때 그 모습들을 재현 시켜 놓는 다면 2,7일 마다 열리는 장터의 경기도
좋아지고, 재미있는 광광지가 될 듯 한데 당국은 이런 아이디어를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자랑할 만한 옛 유락(流落) 촌의 흔적들은 아니지만....
사람 사는 세상, 어찌 이런 유락촌이 있었다고 해서
부끄러운 과거였다고 치부 할 수 있겠어요.  
이곳이 몸 파는 유곽(遊廓)은 아니었습니다.
유락촌은 타향살이 사람들이 술 한 잔 기울이며 고향을 그리는 곳이지만,
유곽촌은 사내들의 욕정을 태우는 곳입니다.

 

 

 

 

어찌됐던 이 희미한 옛 추억의 흔적이 서린 곳을 둘러보니 젊었던 옛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잠시 과거 시간의 언덕에 서서 굴뚝들의 숲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울산의 석유화학 단지를 바라봅니다.
그 때 그 시절 두 곳 모두 존재했었지만 공단은 엄청나게 발전 했는데,
퇴락한 유락촌은 과거 시간 속으로 가물가물 묻혀 가고 있어 가슴이 짠~해 집니다.


그때는 왜 그리도 막걸리를 많이 마셨는지 모릅니다.
술상 옆에 막걸리를 큰 동이 체 갖다 놓고 퍼 마시곤 했었으니까요.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장단 맞춰 젓가락 두드리며 유행가를 불러댔습니다.
얼마나 상을 두드렸는지 상 언저리가 울퉁불퉁 온통 상처투성이였습니다.
술집 아가씨들은 대부분 한복을 입고 있었지만 술판이 거나해 지면
아가씨들은 슬그머니 저고리 옷고름을 풀고 팀을 기다렸습니다.
위스키 시음장에는 양장을 한 아가씨들도 있었는데 
비싼 양주 때문에 별로 손님을 끌지 못했습니다.

 

 


이런 추억들은 모두 배고프고 가난했던 그 시절 노동자나
샐러리맨들의 삶의 애환이 깃든 추억들입니다.
이런 추억들이야 말로 오늘날  세계적인 공업도시 울산을 만든 원동력이었습니다.
단순히 술, 여자, 사내들이 놀던 곳. 이런 등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 시절 그 유락촌에서 노래 불렀던 분들이 바로 공단의 산업역군으로서 일했기에
오늘 날 울산의 공업단지가 번성 할 수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 줬으면 합니다.


그 분들이 이제는 모두 6,70세를 훌쩍 넘긴 할아버지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미 세상을 등진 분들도 있습니다.
그 분들이 머물다 흘러간 유락촌, 지금은 퇴락된 과거의 시간 속으로 묻혔지만,
참으로 신통하게도 몇 집이 아직도 저녁이 되면 문을 연다고 합니다.


“아가씨도 있나요?“


하고 길가 허름한 자전거방 아저씨에게 물으니 씩 웃으며 말합니다.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아가씨가 있겠어요.”
“아가씨는 없지만  늙은 작부는 있어요,” 

 
그때 그 술집 그 간판을 버리지 않고 아직도 그 처마 밑에 달아 두고 있으니
이 얼마나 신통하고 신기합니까. 언제 한 번 와서 그때 그 여자, 늙은 작부
한번 만나  술 한 잔 기울이며 과거 시간들을 낚아 볼까 합니다.


나는 장단 맞춰 젓가락으로 술상 두드리고,
그 늙은 작부의 구성진 ‘육자배기’ 한 가락 이라도
들어 볼 수 있다면 이 또한 행운(?)이 아니겠어요.


과거를 먹는 시간,

술잔 속에 시간을 담으며 말입니다.

 


>미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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